I reached the ending with a death route character RAW novel - Chapter 47
제47화
“영주님, 혼자 가시는 것보다 옆에 누가 같이 있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이건 윈터가 한 말이었다.
“흠흠, 그대는 따라올 거 아니잖아?”
“아! 저는 아내랑 자식들도 그렇고… 저보다 젊은 기사가 함께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쓰윽.
윈터가 주위의 지휘관들을 쳐다보는데, 몽크와 페온을 볼 때는 1~2초 정도 시선을 멈추며 시간을 끌었다.
마치 두 사람에게 ‘너희가 따라가!’ 하는 것 같았다.
‘용병 출신이니까 쉽게 보는 건가?’
이러다 불화라도 일어날까 걱정이 되었다.
이때 레아, 아나이스, 이자벨이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희 셋이서 그동안 대화를 많이 나눠 봤어요.”
“전에는 떠나지 않겠다고 했었는데요…….”
“저희 셋이 함께할래요.”
뭐지?
지금 셋이서 날 따라오겠다는 건가?
다 끝난 얘기인 줄 알았는데.
“레아 양, 왜 갑자기요? 집 떠나면 고생이란 말 몰라요? 그리고 아나이스 양, 아버지는 어떻게 하고요? 이자벨 양, 포기한 거 아니었어요?”
“고생인 거 알아요. 그래도 함께하면 추억이 생기잖아요. 우린 함께한 시간도 짧으니 여행하면서 서로에 대해 더 잘 알아 가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느낌은 누군가 옆에서 부추긴 것 같았다.
‘누가 바람을 넣었을까?’
“기사 수행은 생사를 걸 위험도 많을 거예요. 추억은 이런 걸로 쌓는 게 아니죠. 적어도 죽음의 위험은 없어야죠.”
“네?”
드드드.
레아의 두 눈에 살짝 동공 지진이 찾아왔다. 그리고 그녀가 눈치를 보며 바라본 건…
‘이자벨? 바람은 넣은 게 당신이었어?’
내 눈빛을 읽은 이자벨이 선수 치듯 먼저 입을 열었다.
“죽음의 위험이 있다면 더더욱 따라가야죠. 결혼할 사람이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불안해서 어떻게 집에 있겠냐고요.”
“맞아요!”
맞장구를 치는 건 레아였다.
끄응.
반박을 하고 싶은데 이자벨의 논리도 틀린 말은 아니라 대꾸할 말이 없었다.
“아버지께서 같은 말을 하시면서 허락하셨어요.”
아나이스가 나섰다.
말콤을 쳐다보니 살짝 고개를 숙인다.
젠장, 뜻하지 않게 세 여인을 데리고 가야 할 판이 되었다.
‘남자는 나 혼자, 그리고 미녀가 셋.’
이 구성은 누가 봐도 위험했다.
‘가만히 있기만 해도 시비가 걸리겠어.’
여행길에 만날 무수한 남자들.
혈기 왕성한 놈들일수록 참지 못하겠지.
남자가 나 하나라는 건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았다.
“흠흠, 제가 따라가죠.”
“저도요.”
분위기 파악을 하고 손을 든 건 몽크와 페온이었다.
“그대들이?”
“평생 떠돌다가 영지에서 지내니 좀도 쑤시고 그러네요.”
“영주님이 보시기에도 저희가 제일 낫잖습니까.”
하긴 맞는 말이다.
용병 출신인 두 사람이 데리고 다니기엔 제일 나았다.
“그대들이 따라와 준다면 나야 편하지.”
못 이기는 척 받아들이기로 했다.
혼자만 떠나려 했다가 혹이 여러 개 붙긴 했지만 일정을 미루지는 않았다.
영지민들의 열렬한 배웅까지 받으며 막 겨울이 오려는 때에 출발했다.
“그런데 영주님, 추워지는데 북쪽으로 가시는 건 좀……. 동쪽도 있고, 서쪽도 있고, 남쪽도 있는데 왜 북쪽부터 가시는 겁니까? 혹시 몬스터 토벌인가요?”
방향을 북쪽으로 잡은 게 마음에 들지 않은 몽크가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설마 이 인원으로 토벌을 가려고 했을까.”
“하하, 영주님은 혼자서도 빅자이언트를 잡으셨잖습니까.”
“그건 좀 예외지. 하여튼 토벌은 아니다.”
“그럼?”
“기사 수행. 북쪽에서 겨울을 나 봐야 제대로 수행했다고 할 수 있을 거 아닌가. 따뜻한 여름에 북쪽을 가는 건 편한 거지. 그리고 편하려면 기사 수행을 시작하지 않았겠지?”
말은 이렇게 했지만, 여러 목적이 있었다.
우선 여행의 어려움을 세 여인들이 절실히 깨닫기를 바랐다.
‘어려운 걸 알면 영지로 돌아가겠지.’
다음으로 북쪽은 사람이 별로 없다. 겨울이라 더 없을 테고.
사람이 있으면 문제가 생긴다. 그러니 아예 사람이 없는 곳부터 가려는 거였다.
마지막으로 그곳에서 숨겨진 던전을 발견하려는 거고, 얻어야 할 자도 있었다.
“그렇긴 하죠.”
몽크는 납득을 하면서도 여전히 불만스러워했다.
옆에 있는 페온도 마찬가지였고.
여기서 내가 찾아야 할 자에 대해 말해 본다면…
이름은 한스.
직업은 사냥꾼.
신분은 평민.
나이는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정도.
특성은 야수 조련과 최면.
야수 조련 특성은 사냥꾼으로서는 최고겠지만 나를 보좌하는 이로서는 꼭 필요한 건가?
‘오우거 정도의 괴수를 조련해서 부린다면 도움이야 되지. 다만 사람들이 어떻게 볼까?’
날 몬스터들의 왕? 아니면 흑마법사?
하여튼 좋은 소리는 나올 것 같지 않다.
‘내가 한스를 필요로 하는 건 야수 조련 때문이 아니라 최면 능력 때문이지.’
이건 정밀 분석을 써서 내가 얻을 것도 아니다.
내 목적은 나에게 최면을 거는 건데, 내가 내 자신에게 최면을 걸어서 뭘 어쩌자는 건가!
나에게 최면을 걸려는 이유는 뇌 속에 잠재된 기억들을 꺼내기 위해서였다.
정확하게는 스치고 지나간 수많은 지식들.
태어나서 지금껏 보고, 듣고, 배우고 했던 지식들도 있지만 요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인터넷을 통해 보는 영상들.
소위 우튜브 말이다.
꼭 나와 관련된 분야가 아니라도 그냥 소소한 관심으로 본 것들이 있었다.
장르 소설의 영향으로 알아본 총의 발전사, 흑색 화약 제조, 총알 제작 과정 등.
이것 외에도 숱한 잡다한 것들이 있었다.
원래도 우튜브 보는 게 취미였는데 코로나 때문에 집콕하면서 더 많이 봤었다.
그런데 봤다는 거 외에는 다 까먹었다.
솔직히 이걸로 뭘 어떻게 해 볼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지.’
21세기 지구에선 필요 없는 구시대의 지식이지만, 이곳에서는 황금보다 더 귀한 것들.
‘이 지식을 꺼낼 방법은 최면이 유일할 거야.’
그래서 한스가 필요했다.
***
몬스터 토벌을 하기 위해 전에 빅자이언트를 잡으려고 갔던 땅을 다시 가고 있었다.
지금은 초겨울.
‘내년 봄 안으로는 한스를 찾았으면 좋겠네.’
기간은 대략 6개월.
내가 잡은 기사 수행 3년의 6분의 1에 해당하는 엄청난 기간.
나도 6개월이나 쓰고 싶진 않지만 한스를 얻고, 최면으로 내 뇌의 밑바닥에 있는 온갖 지식들을 얻을 걸 생각하면 투자를 안 할 수 없다.
그래도 6개월은 좀 심하지 않냐고?
이 드넓은 북쪽 땅에서 사람 하나 찾는 게 쉬울 수가 있겠나?
‘내가 아무리 고인물이라고 해도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지.’
계속 이동하는 인간의 위치를 특정할 수도 없고 말이다.
‘흠흠, 그래도 나에게 행운 룰렛이 있으니 6개월까지 걸리진 않을 거야.’
내심 빠른 시간 내에 찾을 걸 기대했다.
“레아 양, 많이 추워요?”
일행 중에 가장 약한 게 레아였고, 두꺼운 옷을 입고 있음에도 추워서 퍼렇게 언 얼굴이었다.
“네, 조금.”
“영지에 있을 걸 그랬나요? 지금이라도 돌아가요. 몽크에게 부탁하면…….”
“아니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질색하며 외쳤다.
“흠흠, 그래도 표정이 어두워 보이는데……. 깊이 들어갈수록 돌아가기 힘들다는 거 알죠?”
“알아요. 그래도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입술을 앙다물며 결의를 다지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갑자기 와락 끌어안고 싶어졌다.
‘흥분하지 말자.’
옆에 아나이스와 이자벨도 있어서 눈치가 보였다.
영지를 나온 후에 난 계속 행운 룰렛 특성을 사용했다.
방향은 북쪽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직진은 아니니까.
‘방향도 동인지, 서인지. 그 정도도 서로 다 다르지.’
행운 룰렛을 돌린 후에 마음이 가는 방향을 정하고 그쪽으로 향했다.
북으로 올라갈수록 몬스터들을 많이 만났지만 대단한 놈은 없었고, 무리를 지어 봤자 수십.
노련한 몽크, 페온이 있고, 나와 아나이스도 적극적으로 전투에 임했기에 레아와 이자벨은 나서지 않아도 되었다.
솔직히 정체를 숨기며 전투에 참가하지 않는 이자벨이 괘씸하긴 했는데, 그래도 레아 옆에 있으면서 그녀를 지켜 준다고 생각하며 마음을 풀었다.
이렇게 가기를 대략 보름여.
드디어 목표로 한 첫 던전이 있는 자작나무 숲에 도착했다.
원래는 나 혼자 와서 상자 빼기만 하려고 했던 곳이었고, 오면서도 고민을 많이 했다.
과연 여기를 일행에게 오픈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지금 일행이라면 던전 클리어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도 들었다.
‘문제는 이자벨이야.’
본인의 능력을 온전히 발휘한다면 던전은 쉽게 공략이 될 거다.
‘아나이스 정도만 되어도 보스까지 잡을 테지.’
하지만 ‘난 아무것도 할 줄 몰라요.’ 하는 식으로 지금처럼 능력을 감춘다면…
‘죽어나겠지. 보스 방까지만 가면 내가 가진 능력을 다 발휘해서 어찌어찌 싸워 볼 수 있겠지만, 거기까지 가는 게 문제야.’
하여튼 일행을 데리고 추운 지역에서도 잘 자라는 자작나무 숲에 왔는데 들어가기도 전에 몽크가 막았다.
“영주님, 숲에 들어가시게요?”
“그렇다.”
“안 됩니다!”
단호한 목소리.
반드시 막겠다는 결의가 흘러넘쳤다.
“제가 알기로 북부의 숲은 엄청나게 거대합니다.”
맞는 말이다.
게임에서 설정한 북부의 숲은 웬만한 왕국 하나가 온전히 들어갈 만큼 크다.
마치 시베리아의 광활한 숲처럼 말이다.
“나도 알고 있다.”
“아신다면서 들어가시게요?”
“깊이 들어가진 않을 생각이다.”
“그래도 위험합니다. 이 안은 미로나 다름이 없습니다. 방향 감각도 사라집니다.”
쓰윽.
품에서 돌돌 말린 양피지를 꺼냈다.
“이거면 문제없다는 걸 알게 될 거다.”
“그게 뭡니까?”
“아버지의 서재에서 발견한 보물이다.”
보물은 맞지만 서재에서 발견했다는 건 거짓말이었다.
포인트 상점에서 아껴 둔 50퍼센트 할인권에다 포인트 20점까지 써 가면서 산 거였다.
특성은 이미 10개로 최대치를 넘게 보유한 상태라 이제부터 모으는 포인트는 아이템에 써야 했다.
자신 주위로 10킬로미터 이내의 지형지물을 지도로 보여 준다.
지도의 한가운데에는 자신이 빨간 점으로 표시된다.
그뿐만 아니라 지도에는 지형지물만 아니라 동서남북의 방향도 표시되어 있다.
단, 이 지도에는 단점이 있는데 실외용이다.
실내에선 쓸 수 없다.
다음으로 단점은 나를 중심으로 10킬로미터 이내를 보여 주어야 하기에 가까운 곳의 세밀한 건 표시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단점이라 하기엔 좀 그렇지만, 지금 들어온 숲은 크기가 너무 커서 지도로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거.
10킬로미터가 굉장히 넓은 것 같으면서도 생각보다 좁다는 것. 이게 단점 아닌 단점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지도에 방향이 표시되기에 나침반과 같은 역할을 하는 건 좋은 점이었다.
양피지를 펼쳐서 나를 가리키는 빨간 점을 보여 주며 설명했다.
몽크만 아니라 다른 일행도 다 같이 듣고 보았는데 모두들 신기해했다.
“진짜 보물이네요!”
“이것만 있으면 방향을 잃지 않겠어요!”
“영주님, 움직여 보세요. 진짜로 움직이는지 알고 싶어요.”
움직여 보라는 아나이스의 말에 난 피식 웃었다.
“여기로 들어가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걸요?”
일행을 이끌고 숲으로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