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take over the male lord RAW novel - Chapter 3
3
‘아니지.’
이곳에서 커피는 아주 고급 식품이었다. 후작 가문에서도 한 달에 한두 번 아껴 마실 정도로 귀했다.
‘그래, 정원에서 차를 마시는 게 아니라 커피를 마시는 거야.’
좋은 생각인 것 같았다.
음식을 다 먹은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녀들이 와서 자리를 치우기 시작했다.
“수고해.”
시녀들에게 이런 말 한마디로 호의를 얻을 수 있다.
“네, 아가씨.”
아리스는 시녀들이 대답하는 걸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그 다음 시간은 춤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열일곱 살이 되면 제국의 귀족 영애는 황궁에서 데뷔를 한다.
아리스는 열여섯 살이기에 춤을 꼭 배워야 했다. 몸치가 아니었기에 다행히 춤을 그럭저럭 따라할 수 있었다.
3층으로 올라간 그녀는 먼저 와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선생에게 고개를 숙였다.
30대 중반의 여자 선생님은 수도에서 알아주는 춤 선생이었다. 이안이 특별히 그녀를 초빙했다. 모두 다 딸을 위해 최고급 실력자를 데리고 왔다.
아버지는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딸을 무척 사랑했다. 그것을 아리스만 모를 뿐이었다. 남자 주인공에 대해서도 충분히 알아보고 혼담을 받아들였었다.
이것도 아리스는 죽어도 몰랐지.
“안녕하세요.”
아리스는 환하게 웃었다. 거울을 보며 연습한 미소였다. 자신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도록 꾸민 미소.
“호리슨 영애는 언제나 반갑게 웃네요.”
선생님은 아리스의 환대에 기분이 좋아졌다. 꼬박꼬박 전날에 배운 것을 잊어버리지 않는 아리스가 마음에 든 것이다.
“어제도 춤 연습을 늦게까지 했나요?”
“물론이에요.”
아리스는 자신이 한 일은 티를 내었다. 춤 연습을 몰래 하는 게 아니라 모든 시녀가 다 알도록 시끄럽게 연습했다. 주변 이들에게 자신이 이렇게 노력한다고 보여 주는 것이다.
그래서 아리스가 열심히 하는 것은 춤을 가르치는 그녀도 알고 있었다.
아리스가 물론이라고 말하자 선생의 얼굴에 홍조가 어렸다. 당당히 말하는 그녀가 사랑스러웠다.
“오늘 배울 춤은 무도회가 아니라 가면무도회나 은밀한 곳에서 추는 춤입니다.”
“어머.”
“야합니다.”
“배우고 싶어요!”
“다른 귀족 영애들은 모두 다 싫다고 하던데.”
“뭐든 배우는 건 좋은 것 같아요.”
“맞아요.”
아리스는 선생의 마음에 쏙 들 이야기를 하며 방긋 웃었다. 야한 춤이라니 개인적으로 무척이나 기대가 되었다.
오늘 배운 춤도 기억했다가 저녁에 연습해야지.
그렇게 아리스는 오늘도 주변 이들의 칭찬을 들으며 살고 있었다.
* * *
이안은 황궁을 바라보았다. 제논 제국의 황궁은 위풍당당하게 서 있었다. 가문의 인장이 박힌 마차가 동문을 향해 가고 있었다. 동문은 귀족들이 드나드는 문이었는데 호리슨 후작 가문 역시 이 문을 통해 황궁을 들어가고는 했다.
오늘은 회의가 있는 날이다. 황태자가 곧 성년이 되기에 황태자비와 관련된 일이 거론될 예정이었다. 이안은 오늘 아침 자신을 향해 방긋 웃어 주던 딸, 아리스를 생각했다.
“내 딸은 아직 어려.”
딸이 곧 사교계에 데뷔하는 나이인 것을 알고 있지만 이안은 아직 아리스가 황태자의 결혼 상대에 오르기엔 어리다고 생각했다.
제논 제국에서 남자가 보통 20대 후반에, 여자는 20대 초반에 결혼하는 걸 생각하면 아리스는 많이 어렸다. 하지만 그건 평민일 때 이야기다.
귀족은 보통 성년이 되기 전에 약혼식을 하고 20대 초반에 결혼했다.
그것으로 볼 때 슬슬 약혼을 생각해야 할 때였지만, 이안의 머릿속에서 아리스는 아직 끼고 살아야 할 존재였다.
마차가 멈추었다. 마부가 문을 열어 주었다. 문에서 내린 이안이 호위 기사와 함께 천천히 걸어갔다. 오늘 회의는 황제의 집무실이 있는 중앙궁에서 열린다. 중앙궁으로 가고 있는 고위 귀족들이 눈에 들어왔다.
중앙궁에 도착한 이안은 천천히 복도를 걸었다. 복도에 햇살이 비추고 있었다. 따뜻한 햇살로 봄의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호리슨 후작.”
이안은 자신을 부른 남자를 보았다. 긴 셔츠를 차려입은 화려한 금발에 파란 눈을 가진 미남자였다.
“에셀 공작 각하.”
루이슨 디 에셀, 에셀 공작이었다. 에셀 공작은 호리슨 후작과 비슷한 나이였다.
사적인 자리에서는 서로 이름을 부르는 사이였지만 이곳은 황궁이었다. 공식적인 자리였기에 서로 예의를 차렸다.
“폐하께서 오늘 황태자 전하와 관련해서 할 이야기가 있으신 것 같던데.”
“알고 있습니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무엇을 말입니까?”
“황태자비 후보로 자네 딸이 거론될 수도 있어.”
루이슨의 말에 이안이 헛기침을 했다.
“제 딸은 어립니다.”
“열여섯 살 아닌가?”
“그러니 어리지요.”
이안은 딸이 어리다고 계속해서 말했다.
“에셀 각하의 따님이 거론될 수도 있지요.”
“뭐?”
그가 어이가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내 딸은 열세 살이네.”
루이슨의 딸은 비올레 디 에셀이었다. 비올레는 아리스보다 세 살 더 어렸다. 확실히 황태자비 후보로 거론될 확률은 아리스가 더 높았다. 하지만 이안은 태연하게 웃으며 말했다.
“황태자 전하와는 여섯 살 차이밖에 안 납니다.”
황태자와 나이 차가 얼마 나지 않는 것은 아리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안은 그리 말하면서 루이슨을 바라보았다. 루이슨 역시 이안을 바라봤다. 그들은 서로 자신의 딸은 황태자비로 절대 거론되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우리 딸은 좀 더 커야 해.”
“그건 저희 딸도 마찬가지입니다, 각하.”
두 남자는 똑같은 말을 하며 회의실로 향했다.
* * *
제논 제국의 황제, 주셀 렌 제논은 명단을 살피고 있었다. 수도에서 아름답기로 유명하고 성격도 괜찮은 여자들만 모아 둔 명단이었다. 명단에는 여성들의 간략한 프로필과 특이 사항이 적혀 있었다. 오늘 회의에 참여할 신하들 수만큼 명단은 준비되어 있었다.
“그럼 가지.”
“네, 폐하.”
황제가 걸음을 옮기자 시종들이 명단을 들고 그 뒤를 따랐다. 회의실은 바로 집무실 옆에 있었다. 회의실에 들어가니 귀족들이 이미 모두 자리하고 있었다. 그의 충신인 루이슨과 이안이 먼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나머지 신하들도 일어나 인사했다. 주셀은 그들의 인사를 받으며 자리에 앉았다.
“모두 앉지.”
주셀의 말에 모두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명단을 들고 온 시종들이 그것을 귀족들에게 나눠 주었다. 명단을 받은 귀족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곧 있으면 황태자가 열아홉이 된다. 황태자의 성년식이 열릴 것이다.”
“네, 폐하.”
“거기 적힌 아가씨 중에서 성년식에 황태자와 춤을 출 여자를 고를 것이다.”
그들은 얼른 명단을 살폈다. 딸이 있는 몇몇 귀족들은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성년식 날 황태자와 춤을 출 수도 있었다. 거기에서 황태자가 영애를 마음에 들어 하면 좋은 인연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반면 명단에 자신의 딸이 없는 것을 본 귀족들은 실망했다.
하지만 모든 귀족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폐하.”
이안이 먼저 손을 들었다.
“말해 보시게, 호리슨 후작.”
“왜 제 딸이 명단에 있는 겁니까.”
“후보로 올릴 만큼 아름답고 성격도 남다르다고 들었네.”
조사를 하니 그녀에 대한 칭찬만 있었다.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기 마련인데 그녀는 좋은 소문만 가득했다. 그래서 일부러 명단 첫 페이지에 넣은 것이었다. 거기에 호리슨 후작이라면 대대로 황가에 충성을 바친 집안이었다. 집안도 괜찮았다.
“폐하, 거두어 주십시오.”
이안은 딸이 명단에 있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주셀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황태자비가 될지도 모르는 기회를 이안이 걷어찰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제 딸은 어립니다!”
이유는 간단했다. 자기 딸이 어리다고 우기기 시작한 이안을 보고 주셀은 어이가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 옆에 있던 루이슨이 손을 들었다. 그의 딸도 명단에 포함되어 있었다. 나이가 조금 어리긴 했지만 황태자와 나이 차이가 그리 많이 나는 것도 아니었다.
“제 딸은 이제 열세 살입니다!”
“에셀 공작.”
“거두어 주십시오.”
그들은 우선 자기 딸이 당첨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황태자 파벌에서 자기 딸이 어리다고 말하기 시작하니 다른 이들도 말하기 시작했다. 모두 다 딸을 끔찍이 여기는 이들이었다.
황태자비 자리라 해도 아직 시집보내기 어리다고 말하면서 그들은 자신의 딸이 명단에서 빠지기를 바랐다. 주셀은 하나둘 빠지기 시작한 명단을 바라보았다.
“아무튼 어리다는 이유로 빠지는 건 허락 못 해!”
주셀은 내심 호리슨 후작이나 에셀 공작의 딸이 당첨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들은 혈통도 좋고 미래에 황태자에게 충성을 맹세할 집안이었다. 황권 강화에 도움이 될 수 있었다. 거기에 쓸데없이 권력을 탐하는 무리도 아니었다.
사정이 이런데 정작 두 남자는 자기 딸이 어리다고 빠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황제에게 충성하는 것과 딸이 관련된 일은 별개인 것 같았다.
그때였다. 갑자기 문이 활짝 열리고 한 남자가 들어왔다. 주셀을 닮은 금발이 어깨 부근에서 찰랑거렸다. 거기에 하늘을 닮은 파란 눈동자가 반짝이고 있었다. 아버지를 닮아 굉장한 미남자로 자란 황태자, 이엘 렌 제논이 나타난 것이다.
“무슨 일이지?”
주셀은 갑자기 나타난 이엘을 보았다. 그러자 이엘은 귀족들이 들고 있는 명단을 들고 휙휙 넘겼다.
“오늘 저와 같이 춤을 출 영애를 고른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
“그 이야기를 듣고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