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reincarnated while trying to climb the mountain RAW novel - Chapter (350)
제 350화
350화
솔라가 눈을 떴다.
잿빛의 아지랑이를 피어 올리는 작은 생명체가 보였다.
무척이나 작았다. 또한 보잘것없었다.
한때 자신에게 큰 모욕과 치욕을 안겨준 것이었다.
솔라는 제론의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했다.
[그대는 초월자를 뛰어넘어 불멸자가 되었구나.]“잠이 오냐고 묻잖아.”
제론은 검을 휘둘렀다. 잿빛의 아지랑이가 검신을 타고 흘렀다.
솔라의 몸뚱이가 측정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하여 검이 아닌 아주 얇은 침으로 찌르고 베는 것에 가까우나, 고통은 결코 그러하지 않았다.
[……!]솔라의 파충류 눈이 크게 뜨여지며 엄청난 기파가 제론을 때렸다.
시야가 암전되었다.
다시 정신이 들었을 때에는 솔라의 꼬리가 눈앞을 가리고 있었다.
맞으면 온몸이 부서지는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
그 사실을 직감한 제론은 모든 힘으로 호신강기를 펼쳤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해 무당파의 태극으로 공격을 흘려보냈다.
쾅!
하지만 흘려보낼 수 없었다.
부드러운 것이 강하고 굳센 것을 누른다는 유능제강柔能制剛의 묘리도 압도적인 힘 앞에서는 소용없던 것이었다.
전신이 유압프레스로 강하게 짓누르는 것처럼 으깨질 것 같았다.
실제로도 오른발이 으깨지며 피와 살점이 튀었다.
그러나 탈각에 가까워진 경지와 하나로 합쳐진 신성과 내공은 제론을 인간의 범주에서 벗어난 존재로 만들었다.
으깨진 오른발이 빠른 속도로 재생했다.
‘이 정도면 네임드 트롤은 내 앞에서 명함도 못 내밀 정도겠어.’
사실 웃픈 이야기였다. 인간이 아닌 존재로 변해간다는 증거였으니까.
지금도 육을 떠나려고 하는 영을 간신히 붙잡아놓은 상태였다.
게다가 물리적인 충격이 전부가 아니었다. 솔라의 신성이 제론의 몸속으로 파고들어 신성을 갉아먹고 있었다.
‘위험해.’
제론은 직감했다. 공간을 뛰어넘어왔던 그 감각을 되살려 솔라의 후격을 피했다. 빛의 입자로 이루어진 브레스가 제론이 있었던 장소를 격타한다.
공간이 부서지며 어둠만 도사리는 차원의 틈이 생겨났다.
‘큰일 날 뻔했어.’
조금만 늦었다면 몸이 으깨지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분해되어 사라졌으리라.
인간이 아닌 존재로 변모하고 있는 제론이었지만 신체가 전부 사라지면 되살아날지 죽을지 쉽게 판단하기 어려웠다.
도박이니만큼 함부로 몸을 내어줄 수 없었다.
‘지금 상태로는 절대로 저 녀석과 이기지 못해.’
솔라는 말로만 신이라고 불리는 존재가 아니었다. 신살의 힘으로 공격해도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존재였다. 하지만 나중을 기약하며 도망치거나 물러날 수 없었다.
태양이 사라지면 땅 위에 살아가는 모든 것이 얼어붙고 죽는다.
제론은 생각하던 것을 멈췄다. 어금니가 꽉 깨물어졌다. 고민하고 있을 시간 따위는 없었다.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대로는 솔라를 절대로 이기지 못한다.
‘하지만 완전한 탈각을 이루면…….’
고민은 1초도 지나지 않은 짧은 시간 동안 끝났다. 육을 떠나려고 하는 영을 붙잡고 있던 힘을 거둬들였다.
잿빛의 아지랑이가 더욱 짙게 피어올랐다. 제론의 신체 전체가 잿빛으로 물든 것처럼 보일 정도로 짙어졌다. 하지만 그것은 겉으로 보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번데기가 나비로 탈피하는 것처럼 영이 육을 떠나며 신성과 내공이 하나로 합쳐진 힘으로 이루어진 새로운 몸을 갖게 된 것이다.
[아.]제론은 탈각을 이루자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솔라가 모든 것을 하찮게 여긴 것처럼 제론 역시 비슷한 감정에 지배되었다. 하지만 그 감정을 제대로 느낄 새도 없이 솔라의 막강한 힘이 제론을 덮쳐왔다.
그러나 아까와는 다르게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베어낼 수 있다.’
잿빛으로 이루어진 검이 제론의 손에 들려졌다. 이내 나뭇가지를 휘두르듯 옆으로 그었다. 제론을 덮쳐오던 솔라의 힘이 베어졌다. 반으로 갈라낸 것이 아니라 통째로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어떻게?]솔라의 권태로웠던 표정이 변한다. 하지만 제론은 방어하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솔라의 힘을 통째로 사라지게 만든 검격이 꼬리를 뎅겅 잘라냈다.
포효와는 비교도 되지 못할 엄청난 비명이 전 대륙을 흔들었다.
잘려 나간 꼬리가 재생되지도 않았다.
이내 고통과 분노에 찬 눈빛으로 제론에게 브레스를 뿜어냈다.
‘베어낼 수 있다.’
브레스의 흐름이, 결이.
보였다.
검을 휘두르자 브레스가 갈라졌다.
[나의 권능을 어떻게 갈라낸 것이냐!] [보이니까.]제론은 짧게 대답했다. 이윽고 이 세상에 남아 있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음을 직감했다. 허나 담담하게 검을 들어 올렸다.
그리곤 생각했다.
‘아무래도 약속을 지키긴 힘들 것 같네.’
* * *
제론과 솔라의 싸움은 가장 낮은 땅 위에서도 뚜렷하게 보일 정도로 거대하였고, 치열했으며, 오랜 시간 이어졌다.
땅이 얼어붙기 시작했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추위에 떨고 두려움에 잠긴 채 싸움이 끝나기를 기도했다.
그들은 누가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알지는 못하나 저 싸움의 결과가 모든 것을 결정지으리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던 것이었다.
콰앙!
빛이 번뜩이며 전 대륙을 흔드는 굉음이 터져 나왔다.
모두가 흠칫 놀랐으나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그저 간절하게 기도하고, 또 기도할 뿐이었다.
* * *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제론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솔라를 베어내야 한다. 검을 휘두르고, 또 휘둘렀다. 다른 무엇도 의식하지 않고 오롯이 솔라를 베어내는 행위만 반복했다.
솔라가 발악하듯 외쳤다.
[왜 나를 막는 것이냐!]제론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럴 가치가 없었다.
그 이후로 솔라는 몇 번이고 다시 물었다.
[무슨 이유로 나를 막는 것이냐?]그 질문이 수십 번을 넘었을 무렵 제론이 대답했다.
아니, 되물었다.
[너는 왜 세상을 멸망시키려는 건데?] [나의 의지, 세상의 의지이기 때문이다!] [너를 막는 것도 내 의지야.]솔라의 거대한 몸뚱이는 비루해진 지 오래였다. 제론의 검에 베여 모조리 잘려 나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론은 방심하지 않았다. 솔라를 압도하여 쭉 베어왔으나 그 힘은 몸뚱이의 크기에 비례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또한 제론도 멀쩡한 상태가 못 되었다.
완전한 탈각을 이루며 인간을 벗어난 존재가 되었으나 솔라 역시 완벽한 존재였다. 아니, 완벽한 존재였다고 생각될 정도로 대단했다. 그런 존재와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도 알지 못할 정도로 싸워왔으니 멀쩡할 리가 없었다.
이대로는 둘 다 소멸하리라.
솔라가 다급하게 말했다.
[네가 태어났던 세상으로 돌려보내 주겠다.] [뭐?]제론의 가슴이 철렁였다.
‘돌려보내 준다고?’
태어났던 세상이라면 현대를 일컫는 것이었다.
[혹여나 무림으로 돌아가기를 원한다면 그것 역시 가능하다.]솔라는 제론이 움직임을 멈추자 화색이 된 채 재차 말했다. 자신의 제안이 통한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제론의 기운이 자폭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증폭하자 당황하며 다시 외쳤다.
[돌아가고 싶지 않은 거냐! 돌려보내 줄 수 있다! 그대가 원한다면 어디든!] [필요 없어.] [어째서?! 어째서 내 제안을 거절하는 것이냐!]제론은 모든 힘을 끌어올리며 검을 높이 들었다. 현대의 세상으로 돌려보내 준다는 말에 찰나이지만 흔들렸다.
환생하여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몇 번씩 현대를 떠올리곤 했으니까. 하지만 돌아간다는 생각을 한 순간 여러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들과 함께 살아온 모든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제론은 검을 들어 올리며 솔라에게 대답했다.
[나는 유민현이 아니니까.]제로니아 페리안이니까.
제론의 발목을 붙잡고 있던 과거의 족쇄가 풀린 순간이었다.
[불멸자가 되었는데도 어찌하여 그리 어리석단 말이냐!] [우리 같은 존재는 욕망을 위해 살아간다며?]제론은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았다.
유민현이 필사적으로 싸운 이유.
투쟁의 삶을 살아간 이유.
지금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서가 아니었다.
[내 욕망은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참으로 외로운 삶이었다. 그 무엇도 유민현의 가슴을 채워주지 못했다. 하지만 제론은 달랐다. 유민현이 갖지 못한 것을 갖고 있었다.
이제는 그 욕망을, 존재의 이유를 이루기 위해서 싸워야 할 때였다.
-이제야 깨달은 거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온 순간 제론의 검이 필사적으로 무어라 외치는 솔라의 몸을 베었다.
번쩍-!
거대한 빛이 폭발하며 전 대륙을 밝게 물들였다.
* * *
사라진 태양이 돌아왔다. 추위에 떨며 두려움에 잠겼던 모든 사람들은 억눌러왔던 감정을 터트렸다. 폭포수 같은 눈물을 흘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껴안고, 옆에서 함께 기도하던 친구와 어깨동무를 하며 기뻐했다.
비록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죽었지만 그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음에 안도하고, 또 슬퍼했다. 하지만 그들의 슬픔은 오래가지 않았다.
놀라는 것을 뛰어넘어 혼란이 찾아올 정도로 엄청난 기적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종말로 인해 죽은 모든 사람들이 되살아난 것이다.
그런 말도 안 되는 기적에 모두가 경악하며 언데드가 아니냐는 웃픈 의심도 했지만, 며칠이 지나자 그들이 진짜 살아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곤 순수하게 기뻐하며 울고 웃었다.
물론 무너지고 박살 난 탑이나 건물이 멀쩡해지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종말이 끝났다는 사실과 희망이 다시금 생겨났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났다.
무더운 여름이 지나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이 찾아왔다.
종말이 닥쳐왔을 때만 해도 두려움에 떨었던 사람들은 그날이 이제는 옛날인 것마냥 잊고 평범한 하루를 살아가기 바빴다.
그것은 페리안 백작가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페리안 백작가의 모든 이들은 한 사람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 * *
“하암.”
금색과 갈색, 그 중간쯤 되는 머리카락 색깔의 청년이 멍한 눈빛으로 방에서 나와 옷을 갈아입고 세수를 한 뒤 저택을 나섰다. 이윽고 고급스러운 복장과 어울리지 않게 빗자루를 든 청년이 수련장에 쌓인 낙엽을 쓸었다.
“아이고. 이런 일은 저희에게 맡기십시오.”
“괜찮아요.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인 걸요?”
“그래도 귀하신 분께서…….”
하인은 감히 청년의 빗자루를 빼앗지도 못한 채 안절부절못했지만 사실 몇 달째 반복되고 있는 일상에 가까웠다.
결국 이번에도 체념하며 돌아섰다.
“흐아암.”
아직 덜 깬 잠을 쫓아내기 위해 크게 하품을 한 청년은 누군가의 시선을 느끼곤 고개를 들었다. 저택 3층의 창문에서 고양이상의 여인이 청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침 대련 하실래요?”
“그러지 뭐.”
여인이 창문으로 뛰어 내려왔다. 잠시 후 대련을 끝낸 청년과 여인은 땀으로 흠뻑 젖은 몸을 씻고 나와 아침 식사를 했다.
저택의 주인이 아침 식사를 마치자 두 사람을 불러 묻는다.
“언제까지 기다리려고 하시오?”
“조금만 더 기다려보려고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청년과 여인은 같은 대답을 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기다림이 아무런 기약도 없는 사실을 알고 있는 저택의 주인으로서는 고마움 반, 미안함 반의 마음밖에 없었다.
“알겠소. 허나…….”
저택의 주인은 말끝을 흐렸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 아니었다.
창문 밖으로 새하얀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눈이 내리네요.”
여인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창문 밖을 바라봤다.
종말이 끝나고 첫눈이었다.
“어?”
창문으로 첫눈이 내리는 것을 바라보던 여인의 두 눈이 곧 크게 뜨여졌다. 무언가를 잘못 보기라도 한 것 아니냐는 듯 두 눈을 손으로 문댔다.
“왜 그래요?”
청년이 고개를 갸웃하며 묻는다. 하지만 여인은 청년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달려가 저택을 나갔다.
그곳에는 그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한 사람이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그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나 돌아왔어.”
완결>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