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single before returning RAW novel - Chapter 64
64화 분명 도움이 될 겁니다
“…뱃지 사냥꾼?”
내가 되묻자 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꼬치 가게에 자리 잡은 예선 참가자가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지. 가까이 가는 놈들의 참가 뱃지를 모두 부러뜨린다는. 그리고 그 녀석은 여우 가면을 쓰고 있다더군.”
그런 적 없어.
누가 보면 내가 지나가는 사람들 소지품 검사라도 한 줄 알겠다. 소문은 마치 내가 참가자 수를 줄이기 위해 닥치는 대로 사람을 사냥하고 다니기라도 한 것처럼 부풀려져 있었다.
내가 한 일은 단지 가게에서 소란을 피우는 놈들을 혼내 주고, 겸사겸사 뱃지도 빼앗은 것뿐이었다. 내가 먼저 건드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나도 들어 봤어.”
“저 녀석이 그 소문의…….”
나를 두고 수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주변에선 이미 나를 공통의 적으로 설정한 모양이었다.
그 광경에 소문 이야기를 꺼낸 남자가 피식 웃으며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넸다.
“너무 억울하게 생각하진 말라고. 원래 모난 돌이 정 맞는 거 아니겠어?”
“…….”
“그러게 적당히 나댔어야지.”
한심한 꼬라지들을 보니 한숨이 다 나왔다.
고작 예선에서 실력으로 이길 생각 안 하고 다굴부터 칠 생각 하는 놈들이라니. 이건 이미 싹수부터가 틀려먹었다. 이런 놈들은 결국 본선에 가도 들러리, 그 미만이었다.
알아서 하라고 대답하려는 찰나, 어떤 여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잠깐! 설마 비겁하게 단체 행동을 하자 이겁니까!?”
…쟤는 또 뭐야.
남자가 어깨를 으쓱하고 대답했다.
“글쎄, 난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뭐가 현명한 판단일지는 각자 생각하는 거지.”
“그런 비겁한……!”
여자는 주먹을 틀어쥐며 분개했다. 이곳 참가자들은 모두 가면을 쓰고 있어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적어도 연기로 보이지는 않았다.
“마음에 안 들면 이쪽에 붙든가. 그 경우 머릿수는… 2명 대 나머지가 되겠군.”
남자가 나를 가리키며 비웃음을 머금자, 여자는 질 수 없다는 듯 당당한 걸음으로 내 곁으로 다가왔다.
“예! 차라리 그러고 말죠!”
“잘됐군. 적어도 가는 길이 외롭진 않겠어, 형씨.”
남자가 낄낄거리며 멀어졌다.
내 곁에 남은 건 이 나사 빠진 여자뿐이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난 손을 잡겠다는 말은 한마디도 안 했는데.
그렇게 어처구니없이 세력이 나뉘고, 잠시 기다리자 직원으로 보이는 자가 들어와 안내했다.
“곧 6조의 예선 경기가 끝납니다. 7조 여러분은 대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곧 예선전이 시작된다는 말.
그 말대로 얼마 기다리지 않아 예선전이 시작되었다.
* * *
안내에 따라 도착한 곳은 거대한 사각 경기장이었다. 사람들이 나뉘어 서 있어도 제법 널찍이 떨어져 있을 수 있을 정도로 넓었다.
“예선전은 자유 경쟁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정해진 인원수 이하에 도달할 때까지 경쟁자를 제거하고 살아남으십시오. 물론 도중에 항복을 할 수도 있습니다.”
룰은 심플했다.
개싸움. 살아남는 자가 승리하는 방식이었다.
하긴, 이곳의 관람객을은 피와 살이 튀는 혈투를 보고 싶어 방문한 자들이다. 복잡한 게임 같은 걸 만들어 규칙 아래에서 점수를 벌어들이는 기발한 발상을 엿보고 싶은 게 아니었다. 이 대회가 좀 더 양지에서 치러지는 대회였다면 그런 경기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물론 나도 이게 편했다.
“그럼… 예선 7조, 경기 시작합니다!”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경기가 시작되었다.
경기가 시작했다는 말이 무색하게 참가자들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서로 주변을 견제하느라 바빴다. 나부터 먼저 탈락시키겠다는 약속도 미뤄 둔 채.
힘을 합쳐 강자를 배제하고는 싶지만, 괜히 먼저 움직여 탈락당하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이대로 하나씩 천천히 정리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굳이 그런 번거로운 방법을 택할 필요가 없었다. 나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적이라면.
모두가 눈치만 살피고 움직이지 않는 사이, 나는 경기장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갔다.
조용한 가운데 발걸음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아! 참가자명 ‘여우’ 선수, 경기장의 중앙으로 이동합니다! 전략일까요? 아니면…….]관객이 지켜보는 경기여서 그런지 중계를 진행하는 해설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해설자의 입장에선 눈에 띄는 행동을 하는 내가 반가운지 밝은 목소리로 설명하고 있었다.
내가 경기장의 중앙에 도착하는 순간까지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참가자들을 비롯한 모두가 내 행동을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결국 중앙에 도착해, 걸음을 멈춘 내가 신호를 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손가락을 들어 올려 까딱였다.
“들어와.”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기氣를 타고 모든 경기장에 고루 울렸다.
[아앗! 여우 선수! 설마 하던 도발입니다! 그것도 다른 모든 참가자들을 상대로 한 도발! 단순한 객기에 불과할까요, 아니면 어지간히 실력에 자신이 있는 걸까요?!]해설자가 흥미진진하다는 듯이 소리치는 것과 동시에 다른 녀석들의 표정이 구겨졌다.
나를 단순히 주의해야 할 다크호스로 인식하는 것을 넘어 반드시 쓰러뜨려야 할 공공의 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소원이라면 원하는 대로 해 주지!”
누군가 그렇게 외치고 마력을 끌어 올렸다. 다른 사람에게 기습당할 것조차 대비하지 않은 채 커다란 기술을 준비하고 있었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로 각자 자신 있는 기술을 선보였다. 목표는 중앙에 홀로 서 있는 나.
준비 시간을 충분히 기다려 준 후.
참가자들은 신호라도 한 것처럼 일제히 공격을 쏟아 냈다.
거대한 검기에서부터 각종 속성의 마법. 심지어 실체가 있는 듯 거대한 형상을 한 망치가 머리 위로 떨어지기도 했다. 온갖 방식으로 나를 해치기 위해 사방에서 마력의 포화가 쏟아졌다.
콰아앙-!
정돈되지 않은 협공에 굉음과 흙먼지만이 거창하게 피어올랐다.
[과연 어떻게 됐을까요! 이 광대한 공격에서 뼈라도 추릴 수 있다면 정말 다행……. 아니!]해설자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황한 것은 나를 공격한 참가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각자가 가진 최대한의 화력을 쏟아부었으니 상상 이상의 결과가 나오리라 예측한 듯했다.
하지만 정말 예상외인 건, 그 공격을 받은 내가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하다는 점이었다.
[이럴 수가! 여우 선수! 그 집중 포화 속에서도 태연하게 옷을 털고 있습니다! 정말 어마어마한 방어력입니다!]다른 참가자들의 표정이 심각하게 물들었다. 나름대로 비장의 수단을 숨겨 둔 건지 진지하게 자세를 다잡았지만.
두 번의 기회를 줄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몇 번을 반복해도 의미는 없었다. 공격 한 번 못 하고 탈락하면 아쉬울 테니까 한 번뿐인 배려심을 발휘한 것에 불과했다.
검지와 중지를 펴 검의 형상을 이루었다.
“여뢰.”
수평으로 손끝을 미끄러뜨렸다.
검 한 자루 없이 뻗어 나간 칼날이 주변을 메우고, 닿은 것을 베어 냈다.
푸슛!
가슴에 붉은 실선이 생기고 그 사이로 피가 튀었다.
“커헉……!”
참가자들이 가슴을 감싸 쥐며 피를 토했다.
나름대로 위력은 조절했다. 각성자인 만큼 제때 치료를 받으면 목숨에 지장은 없을 정도로. 실제로 기감을 통해 확인한 결과, 기절한 사람은 있어도 사망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 상황에 해설자도 할 말을 잃었다.
상황을 수습한 건 대회를 진행하던 직원이었다. 무대에 올라와 경기 종료를 알리고 부상자들을 위한 의료진을 불러왔다.
“……7조. 예선 통과자, 한 명입니다.”
직원이 그렇게 보고하려는 사이, 누군가 달려왔다.
“잠깐! 아직 저도 남았는데요?!”
누군가 했더니 아까 내 편을 들던 여자였다. 그러자 직원이 정정했다.
“두 명입니다.”
지금은 사태 수습에 바빠서 한 명이 남을 때까지 경기를 속행하기 곤란한 상황이었다. 애초에 예선 조마다 한 명만 남아야 한다는 법은 없었고.
함께 예선을 통과하자 여자가 휴우,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보니 커다란 동글뱅이 안경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그런 녀석에게 내가 물었다.
“너 어떻게 무사한 거냐?”
“예? 저 말입니까?”
동글뱅이 안경이 땅을 내리쳤다.
“그쪽이 당했을 때……. 젠장! 그러게 혼자 나대지 말고 얌전히 힘을 합쳤어야죠! 하고 있었더니 머리 위로 바람이…….”
한마디로 운이 좋았다 이거군.
* * *
“예선전? 그런 걸 다 챙겨 봤어? 어지간히도 쫄리시나 봐?”
구릿빛 피부를 가진 여자의 목소리엔 비아냥이 가득 담겨 있었다.
놀림의 대상이 된 금발 남자가 인상을 찌푸렸다.
“시끄러워. 나라고 가고 싶어서 간 줄 알아? 부탁받아서 간 거잖아. 애초에 나 말고도 다들 왔을 텐데, 참석 요청.”
“씹었지~”
“자랑이다.”
금발의 남자, 토마스가 혀를 찼다.
그가 대화를 나누는 상대는 아크투러스의 랭커 중 하나인 ‘흑희’였다. 성격이 조금 짜증 나긴 하지만, 그나마 말이 통하는 랭커 중 하나였다.
대화가 성립하는 것 자체가 소중하게 여겨질 지경이었다. 가령, ‘데드 페이스’ 같은 경우엔 아예 말이 통하질 않았으니까. 그 거구의 사내가 사람 말을 지껄이는 걸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눈에 띄는 인간은 있었어?”
“그가 돌아왔더군.”
“돌아와? 누가?”
“주혁.”
토마스가 꺼낸 이름에 웃는 낯이던 흑희의 얼굴이 굳었다.
“아, 나 그 새끼 맘에 안 드는데.”
“동감이다.”
그는 벌써 예선전에서부터 사망자를 만들며 대회를 피에 물들였다. 사람을 맨손으로 잡아 찢는 과도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부활을 알렸다.
일부 그에 열광하는 관객도 있었지만, 상대하게 될 입장에선 썩 달갑지 않은 존재였다.
“그리고.”
“그리고?”
토마스가 테이블 위로 사진을 늘어놓았다. 대회 운영 측에서 촬영해 놓은 참가자 사진이었다.
“이쪽은 신입이다. 여우 가면을 쓴 놈이지. 참가명도 여우더군.”
“흐응.”
흑희는 사진을 주워 들고 살피다 웃음을 터뜨렸다.
“나 얘 마음에 든다.”
“…왜?”
“잘생겼어♥”
“뭐……?”
토마스가 테이블 위에 남은 사진을 뜯어보았다.
“…얼굴 안 나와 있잖아?”
“분위기 미남.”
“미친년…….”
그러거나 말거나, 흑희는 여우 가면을 쓴 사내가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분명히 괴롭히는 맛이 있는 남자일 거야.”
“…….”
“참고로 넌 심지가 너무 굳세서 탈락. 얼굴은 제법 내 취향인데 말이지.”
“꺼져라.”
이상한 취미에 어울려 줄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얘가 왜? 뭐 했는데?”
그제야 토마스는 본론을 꺼낼 수 있었다.
“검 한 자루 없이 다른 참가자들을 모두 베어 버렸더군. 그것도 단숨에, 마력을 사용하는 기색도 없이.”
놀라운 건 그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었다. 마력을 칼날로 바꿨다면 흔적이 남았을 텐데. 토마스가 그걸 놓칠 만한 남자는 아니었다.
마력이 아닌 다른 수단인 건지. 도저히 ‘어떻게’ 했는지 알아낼 수가 없었다.
“흐음. 뭔가 속임수를 쓴 거 아냐? 실이라든가.”
“모를 일이지, 당한 놈들이 아니면.”
책상 앞에서 머리를 굴린다고 알 방법은 없었다. 두 사람 모두 분석가는 아니었으니까.
뭐가 됐든 대단한 강자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러한 자라면, 분명히 계속 이겨 그들이 있는 곳까지 올라올 터였다. 언젠가 만나게 될 상대.
“기대된다♥”
즐거운 듯한 흑희의 반응에, 토마스는 짙은 한숨을 내뱉었다.
* * *
“여우 님.”
예선전을 마치고 난 후, 돌아가려는 찰나.
직원이 나를 불러세웠다.
“무슨 일이죠?”
“이거.”
직원이 작은 상자를 내게 건넸다. 손바닥 안에 들어오는 크기였지만, 안에 무언가가 들어 있는 것처럼 무게감이 전해졌다.
“이건?”
“예선을 조별 1위로 통과한 참가자분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선물?”
수상쩍은 말이었다. 이런 걸 준다는 말은 어디에도 없었는데. 단순한 기념품을 이렇게 비밀스럽게 전해 줄 것 같지도 않고.
그러나 직원은 조심스럽게 웃으며 내게 장담했다.
“분명 도움이 될 겁니다.”
결국 내용물이 뭔지에 대해선 듣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