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i put it in, I'll be SSS class RAW novel - Chapter 38
〈 38화 〉 처음 하는 수업
“루시아입니다. 풀 네임은 루시아 폰 노이스에요.”
가장 먼저 소개를 시작한 것은 가장 왼쪽에 앉아있던 루시아였다.
“신입생 중에는 두 번째로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체력은 약하지만 검술과 마법에는 자신이 있어요.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원작 게임에서의 잔뜩 긴장해서 더듬거리는 목소리가 아닌,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듣기 좋은 자기소개였다. 괜히 뿌듯해졌다.
열심히 떡친, 아니 노력의 결실이다. 떡친 것도 노력이라면 노력이지.
“스테이시아. 스테이시아 폰 하이델베르크. 그노시스 제국의 제2후계자고 반장이야. 특기는 검술과 도끼. 약간의 마법이야.”
‘그리고 마조히즘과 암컷으로서 복종하는 것이지.’
다음은 자연스럽게 옆에 있던 텟샤의 자기소개로 이어졌다. 나는 슬쩍 속으로 몹시 불경한 말을 덧붙였다.
반장선거를 한 기억은 없지만 텟샤의 반장 선언에 태클을 걸어오는 사람은 없었다. 제국과 교단이 사이가 나쁘다고 해도 아비는 그런 걸 신경 쓰는 성격이 아니니 얌전했다.
“황녀든 스테이시아든 텟샤든 편한 대로 불러도 좋아. 함께 면학에 힘쓰게 되어서 기뻐. 우리가 함께라면 제국의 앞날은 분명 밝겠지.”
하지만 우리를 제국에 연관 짓는 말에는 움찔하는 사람이 있었다. 당연하게도 유에다.
“…….”
유에는 설명을 원하는 듯 살짝 나를 쳐다보았다가 시선을 돌렸다. 나는 별 것 아니라는 듯 어깨를 살짝 으쓱해 보이는 것으로 답했다.
“아비게일이에요. 성은 없고, 편하게 아비라고 불러주셔도 좋아요. 특기는 지원이에요. 교단에서 배우고 자라서 여기에 오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려요.”
아비다운 평화로운 자기소개였다. 다만 ‘교단에서 배우고 자라서’가 어떤 일을 겪어왔다는 것을 뜻하는지 아는 학생은 아마 이곳에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잘 부탁드린다고 하며 주변을 둘러보는 순간, 모리건에게 향한 시선은 한순간이지만 결코 호의적인 눈빛은 아니었다.
‘약간의 마찰 정도는 각오하고 있는 게 좋겠군.’
아무리 서포터라고 해도 이단심문관으로서 고문에 가까운 전투 훈련을 받았다는 설정을 가진 아비다. 초기 직업이 시스터이면서도 미묘하게 높은 공격력과 체력이 그를 증명했다.
“아비. 교단에게는 잘 말했나? 힘든 부분은 없었어?”
나는 신경 쓰고 있던 것을 물었다.
“네. ……의외로 쉽게 허락해주셨어요. 신부님께서 저라면 어디에 가서도 신의 위대함을 설파하고 그 뜻을 실현할 수 있으실 거라고 격려해주셨습니다.”
아비는 미소지으며 기쁜 듯 나의 질문에 대답했다. 잘 된 일이지만 꽤 의외였다.
‘신부라고 하면 사관학교 성당의 가장 높은 사람인 헤이젠을 말하는 거겠지.’
헤이젠은 오른쪽 눈을 중심으로 한 십자가 형태의 흉터를 지닌 아무리 봐도 신부로는 보이지 않는 근육질의 남자로, 극한의 무투파 같은 인상에 비하면 성격은 의외로 신부답고 좋은 사람이다.
물론 그런 만큼 빡치면 답도 없다. 이 게임에서 가장 상대하기 어려운 유닛 중 하나라고 단언할 수 있다.
‘그래도 이쪽을 꽤 호의적으로 여겨주는군. 아니면 그냥 아비를 신뢰하는 걸까?’
쉽게 허가를 받은 것은 제법 의외였다. 상황에 따라선 내가 직접 찾아가서 담판을 짓는 것도 생각하고 있었다.
‘이렇게 된 거, 교단과는 가능한 우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어.’
나는 잠시 고민했다.
게임의 시작에서 여신이 나오니 교단은 착한 애들이 아닐까 흔히 생각하곤 하지만, 실상 교단은 신의 이름을 빌리는 거대한 파시스트 집단이나 다름없었다.
교단의 상층부는 이미 신의 목소리 따위 듣지 못하게 된 세속적인 자들뿐이고, 이단심문관은 그저 그들의 뜻대로 움직이는 살육 기계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종교혁명 루트의 최종장에서 죽이게 되는 자는 다른 세력이 수장이 아니라 교단의 수장이었다.
울프힐데와 함께 교단의 수장을 죽이고 교단이 거짓된 신의 이름으로 억압해온 진정한 인간의 가능성을 대륙에 설파한다는, 루트명 답게 종교혁명을 다룬 이야기였다.
‘분위기나 결말이 멋진 것치고는 다른 루트에선 엄청나게 약하지만 말이야.’
물론 다른 루트에선 그저 토벌해야 할 적일 뿐이다. 심지어 멋있는 이름인 주제에 동방연맹보다 훨씬 약해서 먼저 토벌당해 ‘황건적’이란 불명예스러운 별명까지 있다. 기본적으로 부패한 조직이기에 약해빠진 건 어쩔 수 없다.
‘외부에서의 개혁을 시도한 후 흡수합병을 시도해보는 것은 어떨까?’
교단의 상층부는 완전히 썩어빠져 누구도 신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지만, 교단의 몇몇 유닛(당장 아비와 헤이젠, 그리고 사생아라 불리며 멸시당하는 루트 유닛, 울프힐데가 있다)은 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을 중심으로 지금의 썩어빠진 교단을 개혁할 수 있다면 어떨까.
제국의 힘이라면 충분히 교단에 압력을 넣을 수 있다. 제국과의 포교와 우호를 위해서라면 교단은 제국이, 황녀가 지지하는 자들을 높은 자리에 앉힐 수밖에 없으리라.
그것이 가능하다면 교단은 스스로 개혁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최우선으로 토벌해야 할 적에서 든든한 아군으로 삼을 수 있게 된다.
“……소개를 하면 되겠습니까?”
“아. 그래. 잠시 생각을 너무 했네.”
내가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고 고민하고 있어 이어서 자기소개를 하지 못한 유에가 물었다. 나는 멋쩍어하며 이어서 자기소개를 하라고 명했다.
“잔 유에. 동방연맹에서 왔습니다.”
유에의 자기소개가 끝났다. 짧다.
뭐, 원래는 제대로 수업을 듣지도 않는 유닛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할까. 동방연맹 루트에서의 잔 유에는 내내 안 보이다가 전투만 시작하면 어디선가 나타나 참전하는 기묘한 유닛이었다.
그 다음은 모리건의 자기소개가 시작되었다.
“모리건. 보시다시피 마족이야. 잡아먹지는 않으니까 안심해.”
모리건의 자기소개도 유에와 비견되게 짧았다.
그나마 농담이 섞인 것이 양심일까. 아마 제 딴에는 열심히 생각한 자기소개라고 생각하면 장하기도 하다. 아무도 웃어주지 않았지만. 아비의 시선은 묘하게 적대적이기까지 하다.
“이걸로 자기소개는 끝인가. 다들 사이좋게 지내도록 해.”
“네!”
“알겠어.”
“노력하도록 할게요.”
“……존명.”
“그게 되면 좋겠네요.”
과하게 제각각의 대답이 들려왔다. 머리가 조금 지끈거려온다.
‘이거, 생각 이상으로 막막한데…….’
나는 입을 다물고 마음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마음속으로 예행연습은 꽤 했지만 이렇게 나란히 앉혀두고 보니 상당히 긴장되었다.
‘교대라고 해도 제대로 뭐 하지도 못하고 중퇴했단 말이야, 나는…….’
다들 해보는 교원실습 같은 것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기껏해야 교육학이론 같은 거나 적당히 공부하다가(그마저 성적도 나빴다) 중퇴한 게 전부다.
게임에서 참고해보자니 수업하는 부분은 짤막한 컷 하나로 넘어갔기에 100회차를 하는 동안 써먹을 만한 장면은 하나도 떠오르는 게 없다.
‘그렇다고 실무적인 이야기를 하기도 불편하고.’
앞으로의 진행이나 육성 방향에 대해 말하고자 해도 제자들의 나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가 파편화되어있다보니 말을 꺼내기도 쉽지가 않다.
루시아와 텟샤는 에 대한 정보를 니 인큐버스니 하는 것으로 적당히 이해하고 있기에 이야기가 쉽다. 대놓고 ‘오늘 밤 내 방에서 3P를 하자’같은 말도 할 수 있을 정도로 편하다.
하지만 아비, 유에, 모리건은 그 사실을 전혀 모른다. 모르는 것뿐만 아니라 각각 나에 대한 이미지가 완전히 다르다.
아비는 나를 끝없는 고통을 견디며 무한히 루프를 반복하는 라고 생각하고 있다.
유에는 나를 모종의 방법으로 동방연맹에서 보낸 교수로 위장한 진 가문을 지지하는 고위 간부라고 생각하고 있다.
모리건은…… 강한 수컷으로 생각하고 있을까. 그나마 제일 간단하다.
‘그냥 생색내기 식으로 적당히 시간만 보내면 될까……?’
이쯤 되니 각자 자습하라고 한 뒤 나가고 싶은 충동마저 일었다. 이 세계로 온 뒤 처음으로 속이 쓰려오기 시작했다.
“저, 선생님!”
내가 거의 패닉에 가까운 상태에 도달했을 무렵, 루시아가 손을 번쩍 들었다.
“아아. 루시아. 무슨 일이지?”
“괜찮다면 모두에게 질문 하나 해도 될까요?”
내가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대답하자 루시아가 눈을 반짝이며 물어왔다. 모두와 좀 더 친해지고 싶은 것일까.
“그래. 물어도 괜찮아.”
‘맞아. 첫 강의는 바로 뭔가를 하는 것보단 적당히 오리엔테이션 느낌으로 하는 게 좋겠지.’
루시아의 질문에 대답하고 나니 굳어있던 머리가 다시 굴러가기 시작했다. 루시아에겐 이것저것 고마운 일이 많다. 동정도 루시아로 뗐고.
“다소 부끄러운 질문일지도 모르지만, 같은 선생님의 제자이니 묻고 싶은 게 있어요.”
그렇게 말하며 루시아는 심호흡을 하며 모두를 돌아보았다. 넷은 루시아가 무슨 질문을 할지 궁금한 듯 일제히 루시아를 주목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루시아는,
“다들 선생님이랑 섹스는 몇 번씩 하셨나요?”
“푸크흡?! 자, 자자자자, 잠깐만, 루시아?!”
아무렇지 않게 강의실에 핵폭탄을 투하했다.
훈훈하게 웃고 있던 나는 혀를 콰악 씹었다. 피가 나지 않는 게 다행이었다.
“갑자기 애들한테 뭘 묻는 거야!”
“네? 저, 그게. 선생님은 인큐버스잖아요? 지혜와 능력을 주기 위해서는 결국 섹스를 해야 할 테니까요!”
“그야 그렇긴 한데 그렇게 쉽게 말할 건 아니지!”
루시아가 기운차게 대답했다. 너무 아무렇지 않게 섹스를 하다 보니까 정조 관념이 맛이 가버리고 만 것일까. 나는 괴물을 키워버리고 말았다. 여러 가지 의미로!
“……잠깐만, 루시아.”
모두가 완전히 굳어진 가운데에서 텟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역시 황녀다. 분명 텟샤라면 이 상황을 잘 수습할 수 있을 거다!
“그 섹스를 했다는 카운트의 기준은 뭐야?”
텟샤는 내 기대를 배신하고 정말 아무래도 좋을 지금 상황에는 절대로 도움이 되지 않는 질문을 해왔다.
“그거는 저도 많이 생각해봤는데……. 역시 안에 정액을 받은 게 좋겠죠? 아래든 입이든.”
그 질문에 루시아는 또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역시 그게 좋겠네.”
텟샤는 거기에 또 진지한 표정으로 수긍했다. 슬슬 뭐부터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사실 너희 둘 짜고 이러는 거 아니냐, 그런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저는 세어보면…… 5번이네요!”
루시아가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세더니 손을 앞으로 뻗으며 기세등등하게 선언했다. 나는 가벼운 현기증이 와서 이마를 짚고 칠판에 몸을 기댔다.
“많이도 했다. ……나는 처음 하는 날에 실신한 채로 당해서 정확한 횟수는 모르겠네. 일어났을 때 엄청나게 흘러나왔던 건 기억하지만. 그리고 어제 한 번 늘었을까.”
텟샤가 굳이 어제 했다고 어필하며 밝혔다.
“……나는.”
그런 당황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입을 연 다른 학생은 모리건이었다.
“이 모습으로 한 건 아니지만, 3번인가.”
대화에 끼고 싶어 노력하는 모습은 좋지만 오늘 처음 본 사람들에게 나와 섹스한 횟수를 밝히는 것은 어떨까 싶다!
“설마 뒤쪽으로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그것까지 밝히지 말아줬으면 한다!
“뒤쪽이요? 후배위로 하는 거 말씀이신가요?”
“아니. 그보다 뒤쪽일까. 그, 구멍적인 의미로…….”
부끄러워서 새빨개질 거면 처음부터 밝히지를 마라!!
“구멍적인 의미……? 거, 거기에 그게 들어가요?! 굉장하다!!”
너는 좀 부끄러워해라!! 텟샤는 날 좀 그만 째려보고!! 띄우지 말고!! 진짜 귀찮네!!
“아, 아직…….”
그 와중에 절망적이게도 유에까지 입을 열었다.
“……‧애무만 조금 받았습니다.”
그리고 아주 짧은 한마디를 한 뒤 바로 입을 다물었다.
아직 애무군요, 느긋한 것도 좋지, 나는 받아본 적이 없네. 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훈훈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아니, 아니아니아니아니. 잠깐만. 너무 패닉하지 말자. 냉정해지자. 냉정해지는 거야.’
나는 심호흡을 하며 기분을 다스렸다. 냉정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루시아의 말대로 어차피 나는 을 위해 모두와 섹스를 해야 한다.
괜히 각각 다른 설정으로 들이대며 섹스를 하는 것보단, 차라리 이렇게 모두에게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이 장기적으로 보면 관리나 육성에도 편할지도 모른다. 괜한 오해가 겹쳐 가 우글우글 생기거나 하는 일도 방지할 수 있다.
그리고 애초에 유에는 나에게 복종하고 있고, 모리건은 처음부터 강한 수컷인 나를 보고 왔다. 이렇게 섹스 횟수를 밝히는 상황에서도 크게 놀라거나 동요하지 않고 이야기에 끼어드는 시점에서 큰 탈 없이 받아들여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여기까지 보면 오히려 잘 된 일이다. 하지만 아주 심각한 문제가 하나 남아있었다.
‘그게 안 되는 애가 있단 말이지…….’
이 모든 상황에서 완전히 동떨어진 아비게일, 아비였다.
“…….”
아비는 루시아가 ‘섹스’라는 단어를 꺼낸 시점부터 지금까지 완전히 망부석처럼 굳어있었다.
한창 섹스 이야기를 나누던 넷이 뒤늦게 알아차리고 아비를 주목했다.
“저 저어. 저기.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무슨 암호 같은 건가요?”
모두의 주목을 받는 가운데 아비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어쩌면 적당히 둘러대고 넘어갈 수 있을지도 모를 기회는,
“아뇨, 섹스에요!”
루시아의 당당한 섹스 선언과 함께 사라지고, 아비는 영혼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의식을 잃고 책상에 풀썩 엎드려졌다.
“……하아아아.”
차라리 기절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한숨을 깊게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