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91)
91화
퍽!
쿵, 쿵, 쿵!
“어머나, 우리 신관님께서 제빵 마스터가 되셨어요.”
“저희는 행복하지만 무슨 일이 있으신 거 아니에요, 시종장님? 전 걱정이 드는데요.”
요이델이 밤새 만든 빵들을 맛있게 먹던 시종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왜 이렇게 빵을 열심히 만드시는 거지? 구휼 봉사가 예정에 있던가?
듣고 보니 어쩐지 요이델 신관님의 얼굴이 붉은 것도 같고.
요이델은 시종들이 한참을 불러도 반죽을 때리기 바빠 고개를 들지 않았다.
“신관님, 열이 있으시네요. 많이 아프신가요?”
“……제가요?”
요이델은 화들짝 놀라서 라나를 쳐다보았다.
라나는 요이델의 이마에 살포시 손등을 올려놓았다.
“정말로 열이 있으신데요? 어제 외출 다녀오신 후부터 얼굴이 빨갛고…… 밖에서 무슨 일 있으셨나요?”
“아, 아무것도 안 했어요.”
“오호라. 뭘 하셨군요?”
“아니에요, 정말로!”
아니라니까요! 하고 외쳐도 라나는 그저 호호, 하고 웃었다.
“어떡해, 어떡해, 진짜 어떡해!”
얼굴이 화끈거렸다. 어젯밤부터 내내 요이델은 한숨도 자지 못했다.
뜬눈으로 대낮까지 깨어 있던 요이델의 머릿속을 딱 한 가지 생각이 지배했다.
골목에서의 그 일.
‘이번 키스에는 계약서가 필요하진 않을 겁니다.’
상냥했던 눈빛만큼이나 간지러웠던 목소리.
‘성하에게도 그런 표정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
아니! 당연히 처음 알았겠지!
요이델의 얼굴이 다시 펑 터질 듯 붉게 타올랐다.
성하는 날씨나 기온처럼 외부 상태 때문이 아니면 얼굴을 붉히는 일 따위는 절대 안 할 줄 알았다.
물론 어제도 얼굴이 발그스름하진 않았다. 하지만 귀가 엄청 빨갰다.
‘성하는 가까이서 봐도 아름다웠어. 눈도, 코도, 입술도.’
또 차가운 성격과 다르게 따뜻하고 부드러운…… 뭐가 부드러워!
해가 저렇게 쨍쨍하고 밝은데! 음란 마귀가 끼었나 봐!
“미쳤나 봐, 진짜 이상해! 왜 자꾸 그 생각만 하는 거야. 그만 좀 해.”
쿵, 쿵!
요이델은 반죽을 마구마구 두드렸다.
시종들은 빵을 먹으며 작은 응원을 보냈다.
“역시 재능이 있으셔. 제빵은 어느 관의 신관님께 말씀드려야 하지? 아니, 대신전의 조리장님인가?”
“우리 신관님은 못 하는 게 없으셔.”
요이델은 자신이 변태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억지로 진정시킬수록 얼굴은 불타는 당근이 되어 갔다.
밤부터 이어진 그 생각이 하루가 꼴딱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다. 요이델은 분홍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렸다.
물론 요이델도 실수로 한 건 아니었다. 그와 가까이 있을 때 오히려 두근거렸으니까.
입술이 예뻤고, 기분이 좋았다. 뒷목을 쓰다듬던 손길도.
그런데 하루가 지나고 나니 너무 부끄러웠다.
‘성하와 그런 짓을 했어.’
이제 얼굴을 어떻게 보지?
생각만 해도 심장이 갓 잡은 물고기처럼 펄떡 뛰고 난리였다.
어떡하지? 요이델은 계속 ‘어떡하지!’를 남발하며 입술을 만지작거렸다.
이전에 살기 위해 했던 입맞춤 따위와는 차원이 달랐다.
똑똑.
“신관님!”
그때 들뜬 얼굴의 시종이 달려와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밖에 좀 나와 보세요! 성하께서 로사리움에 장미가 없으니 미관상 좋지 않다며 장미를 보내오셨어요.”
“네?”
이게 다 뭐야?
밖으로 나가 보니 정원에 장미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한겨울에 어디서 장미를 구한 거지?
정작 당사자는 경악하는 줄도 모르고 시종들은 낭만적으로 환호했다.
“성하께서는 자상함과 섬세함마저도 특별하시네요. 어머나…… 정말 완벽한 로사리움이 됐어요.”
“요이델 신관님, 와서 자세히 보세요! 보존 마법이 걸려서 시들지도 않는대요.”
세상의 모든 장미가 요이델의 정원 안에 있었다.
종류별, 색깔별로 빨간 장미, 파란 장미, 노란 장미에 하얀 장미, 심지어 희한하게 색이 섞인 장미들까지.
“보세요, 장미의 종류가 각각 달라요. 지상 대륙의 여러 나라에서 피는 장미를 전부 모아 왔어요.”
“그러게요. 저는 신전 생활 동안 이렇게 아름다운 장미 정원은 처음 봤어요, 신관님. 그런데 꼭 연인의 선물 같아서 신기하네요―”
“어? 그런데…….”
“연분홍색 장미만 없어요. 그렇죠, 신관님? 성하께서 연분홍색을 꺼리시나 보군요.”
시종들은 의아해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요이델은 바로 알아들었다.
‘아카코스 왕자님에게 꽃다발 받았던 걸 본 거야.’
장미가 예쁘고 이 건물과 잘 어울리긴 하지만, 아는 사람이 본다면 노골적인 선물이라 민망했다.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지만.’
그러니까, 요이델에게만은 더 이상 숨기지 않겠다는 선전 포고였다.
━━━━⊱⋆⊰━━━━
그런데 하일 님은 또 왜 이럴까?
“아아…… 이제야 알게 되다니요……. 이 하일은 바보입니다, 흐윽.”
“왜, 왜 이러세요?”
“요 못된 땅, 카펫을 깔아 드려도 모자라는데 흙 잔디를 밟고 계시다니요. 당장 정원을 갈아엎겠습니다!”
요이델은 당황스러워 시종들을 물렸다.
하일은 장미가 흐드러지게 핀 정원을 보며 퉁퉁 부은 눈을 들고 마치 흙으로 만든 토우처럼 웃었다.
“제 소원은 이제 다 이뤄졌습니다…… 아아…….”
그는 어제 오후부터 지금까지 내내 예배당에서 감사 기도를 드렸다. 그의 숙원이 이뤄진 것이다.
그동안 눈앞에 두고도 몰라봤다니.
하일은 입이 제멋대로 벙긋대려는 걸 참고 은혜로운 작은 손을 잡았다. 그리고 반드시 해내야 할 약속을 떠올렸다.
“앞으로 땅에 발을 디디지 마십시오.”
쿵.
그는 머리를 깊게 조아렸다.
“부디 제 목마를 타 주십시오. 대륙 횡단을 시작하겠습니다.”
━━━━⊱⋆⊰━━━━
“……하일 님이 정상이 아니신 것 같아요.”
“미쳤다고 표현하셔도 무방합니다.”
요이델의 걱정에 율리시스는 신랄하게 대답했다.
보지 않아도 율리시스는 그 답을 알고 있었다. 요이델이 반려이고 여자인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겠지.
두 원로는 그에게 와서 사실대로 실토했다. 반려인 줄 모르고 소개를 알선했다는 사실도 함께.
덕분에 없는 감찰까지 만들어 냈다.
그런 자신의 유치함에 놀랐으나 후회하지 않았다. 오히려 만족스러웠다.
요이델이 자신에 대해 그런 쪽으로 자각을 했는지는 몰라도…….
뺨이 내내 빨간 걸 보면 그런 것 같기도 한데.
“저희의 거리가 너무 멀군요.”
율리시스는 그녀를 보며 어느 때 보다 아름답게 미소 지었다. 그는 자신의 장점을 잘 아는 남자였으니까.
“그런데 요이델 님께서는 저를 앞에 두고도 다른 사람의 안부부터 말씀하고 싶으신가 봅니다.”
“앗, 아뇨, 그게…… 학술원 일로 부르셨다고 해서 그 말씀을 드리려고 했어요.”
“현재의 거리로는 원활한 대화가 이루어지기 힘들 듯한데.”
“가, 가까이 갈까요?”
“네.”
율리시스는 집무실 소파에 앉아 차를 따르고 있었고, 요이델은 정반대인 문가 구석에 서 있었다.
이래서야 이전과 다를 바가 없다.
‘벽을 파고들겠군.’
어쩔 수 없나.
그래도 율리시스는 그녀에게 있어 편하고 흔한 친구 따위는 되고 싶지 않았다.
아무에게나 베푸는 수많은 친절도 사양이었다.
물론 그런 친절마저 잔챙이들 따위와 나눠 갖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녀가 원한다면 지금은 이 정도로도 충분하다.
“앉으십시오.”
찻잔을 내어 주자 조심히 다가온 요이델은 경계를 풀었다.
율리시스는 아무렇지 않게 차를 마시며 설핏 웃었다. 좀 더 경계해 주면 좋을 텐데.
달칵.
율리시스는 찻잔을 내려놓았다. 어쨌든 선택은 그녀의 몫.
그는 어두운 속내를 잠재웠다.
“학술원은 예정대로 충실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다만 새로운 총괄 관리가 필요하게 됐습니다.”
“염두에 두셨던 지오르베니가 그렇게 돼서 처리할 일이 많으시겠어요.”
“애초에 그의 의중을 알기 위한 장치였으니 실질적으로 임명하진 않았습니다.”
요이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총괄 관리는 아슈레오 원로께서 맡게 되나요?”
“그렇습니다만, 실질적으로 현장에서 관리 감독을 할 부원장을 새로 물색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아슈레오 원로는 생각보다 훌륭히 소화하고 있으나, 그에겐 적응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네, 그럼 그동안 받은 지원서 중에서 찾아볼게요.”
각 나라에 퍼진 게르암의 사유지였던 곳을 활용해 학술원을 만드는 것이니, 친화 정책으로 부원장에는 현지의 사람을 채용하기로 했다. 라보르비치도 이미 정해졌다.
다만 성국에 세워질 학술원은 다르다.
“그리고 또 하나.”
율리시스는 차분한 낯으로 요이델을 응시했다.
“요이델 님께서 요보힐데 공작가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묻고 싶습니다.”
“조금의 아쉬움도 남아 있지 않아요.”
요이델은 단호하게 잘랐다. 그 공작가는 잊힌 지 오래였다.
“성하께 의심받을까 봐 하는 말이 아니에요. 저는 성하께서 인정해 주신 한 명의 신관이에요.”
겉옷에 달린 뱃지를 짚으며 요이델은 제 의사를 말했다.
“대신전의 신관은 바깥의 소속을 잊는다. 그게 첫 번째 마음가짐인 거잖아요?”
이전에는 분명히 ‘부모님’이라는 존재에 대해 마음이 떨렸다. 이제는 아니다.
학대의 기억이 남아 아직도 가끔은 괴로웠지만 이젠 견뎌 낼 자신이 있었다.
요이델은 빙긋 웃어 보였다.
“당신답습니다.”
율리시스도 그런 요이델을 보며 미소 지었다.
햇병아리는 이제 햇병아리 취급하기에도 미안할 정도로 훌륭히 성장했다. 과연 눈부시다.
그는 서류를 요이델의 앞에 내밀었다.
“당신의 국적을 포기한다는 공증입니다.”
이전에 시종들도 귀띔해 준 방법이었다. 성하도 같은 생각을 하고 계셨구나.
“하지만 브리칼트에서 과연 해 줄까요?”
“아니요. 그들은 당신을 절대 빼앗기지 않을 겁니다.”
“다른 방법이 있나요?”
요이델에게 단 하나의 족쇄가 있다면, 그건 바로 부모의 존재였다. 놓아주지 않는다면, 할 수밖에 없게 만들면 된다.
율리시스는 차분히 요이델을 바라보았다.
“머리카락을 주실 수 있겠습니까.”
“제 머리카락을 왜, 아.”
신체 일부, 즉 머리카락은 일부 특수한 마법에 사용된다.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요이델의 시선이 크게 흔들렸다.
“제가 요보힐데 공작가의 혈육이 아닐 수 있다는 말씀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