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touch it, it'd all be profit RAW novel - Chapter (175)
‘이미 징후가 있었던 거야.’
그래서 더 찾아봤더니 바로 고관절 괴사라는 병명이 나왔다. 정확히는 대퇴골두무혈성 괴사.
‘대퇴골두······ 무혈성······ 괴사.’
혹시나 누군가에게 정확히 알려야 할 순간이 올까 봐 몇 번이나 병명을 되새겼다.
‘괴사라니······ 이름이 너무 무서워.’
다행히 바로 죽음에 이르는 병은 아니었다.
그러나 고령자에게는 치명적.
괴사의 진행 정도가 관건이었다.
‘그때 바로 병원가라고 말씀을 드렸어야 했는데······.’
당시에는 나조차도 고령으로 인한 당연한 통증이라 여겼다.
무엇보다, 드라마에서 보면 재벌가에 항상 주치의가 있지 않나. 몸이 안 좋다면 주치의에게 바로바로 조치를 받을 거라 짐작했었다.
그런데.
이연수를 만나서 들어보니 그 또한 오해였다.
“주치의? 우리 주치의는 병원장인데? 우리 회장보다 더 바쁜 사람이야.”
재벌가 주치의는 주로 병원장이 많고.
그렇다 보니 세간의 인식과 달리 문진 횟수도 적다는 이야기였다.
황당했다.
“매주 오는 시스템이 아니에요?”
“우리가 매주 가야지. 그런데 보통 사람이어도 매주 병원 가기가 쉽나. 귀찮아서 못 가.”
“아······ 혹시 지금 많이 불편하지 않으세요?”
이연수는 골반께를 쓸며 답했다.
“불편하기야 불편하지. 그런데 나이 들면 온몸이 다 그래. 이 정도로 병원 가면 매일 가야 돼.”
그게 아니라고요······.
“제가 아는 분도 사모님이랑 똑같은 말을 했어요. 고관절이 좀 아프다, 그런데 골절 같은 건 아니다, 본인 몸은 본인이 제일 잘 안다.”
“그래?”
“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아프셨단 거예요. 그래서 병원을 갔는데, 글쎄!”
나는 최대한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야 했다.
“고관절······ 괴사였다고 하더라고요.”
“······괴사?”
“예, 뼈가 썩고 있었던 거죠.”
“어마마······.”
이연수가 쥐고 있던 유리 물컵이 격하게 흔들렸다.
“원래 그 병이 그렇대요. 처음에는 괴사가 진행돼도 아무 통증이 없대요. 그런데 진행될수록 사타구니 쪽이 뻐근하고.”
“맞, 맞아.”
“걷기도 힘들고, 특히 양반다리를 못하고요.”
“맞아맞아!”
“나중엔 심해지면 고관절 골절도 훨씬 쉽게 오고, 양다리 길이가 달라져서 신체 균형이 아예 망가진다고 하더라고요. 그럼 누워서 지내야 하니까 이런저런 합병증이······.”
“어마, 안 되겠어, 안 되겠어. 폰······ 내 폰 어디 갔지?”
이연수는 두리번거리며 급히 일어났다.
이러다 또 아이코 하실라.
나는 이연수의 양팔을 붙잡았다.
“천천히, 천천히. 제가 전화해볼게요.”
“그래, 그래줘요.”
그러자 이연수의 주머니에서 구성진 트롯트 가락이 흘러나왔다.
“아이고, 주머니에 있었네. 잠깐만.”
이연수의 폰 화면에 ‘송용식 병원장’이라는 이름이 큼지막하게 떴다.
“어어, 송 교수. 나 지금 병원 갈게. 그 고관절 때문에. 어, 아무래도 안 되겠어. 1시간 안에 도착해. 그래, 이따 보자고.”
이연수는 전화를 끊고는 내 손을 붙잡았다.
“유원 씨가 같이 좀······ 가줄 수 있을까?”
“그럼요. 그런데 회장님이나 다른 가족분들한테 연락을─”
그러자 내 손을 두드리며 말을 끊는 이연수.
“아니, 됐네요. 일단은.”
“네?”
“아직 확실한 것도 아니니······ 괜히 사람들 걱정시키지 말고. 정 회장만 따로 연락하지.”
“······.”
나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물었다.
“그럼······ 어느 병원으로 모시면 될까요?”
이연수는 멀건 웃음으로 답했다.
“내가 재단장인데 어딜 가겠어. 우리 병원으로 가야지······.”
*
이내 도착한 >서울중앙병원>.
이연수의 부탁으로 오긴 했지만, 내가 할 일은 거의 없었다.
도착하는 순간, 병원 측에서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기다리고 있었으니.
“재단장님, 여기 앉으십쇼.”
“고마워요.”
VIP 주차장에 들어서자 미리 나와있던 직원이 휠체어를 끌었다.
그리고 병원 접수도 하지 않고, 전용 엘리베이터를 태우더니 바로 VIP 특실로 향했다.
“담당의 곧 올 겁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쇼.”
“네.”
다만 나에게도 몇 가지 할 일이 있었으니.
첫째는 의사를 확인하는 것.
김치호에게 벌어졌던 촌극을 되풀이할 순 없었다.
“담당의 성함 좀 알 수 있을까요?”
내가 묻자 직원은 이연수에게 되물었다.
“이분은······ 보호자 되십니까?”
“보호자는 아닌데 그냥 알려줘요.”
“아, 예. 잠시만요······ 정형외과에서 고관절, 슬관절 전문으로 하시는 김진수 교수입니다.”
김진수, 메모.
이따가 「양질 전환」도 돌려보고, 저번처럼 이름을 키워드로 「에어드랍」도 해볼 생각이었다.
그리고 둘째로 할 일은.
“유원 씨, 잠깐 손 좀 빌릴게요······.”
“당연하죠. 아예 가지셔도 됩니다.”
“하하······.”
이연수의 불안을 덜어주는 것.
“······큰 문제 없겠지요?”
“그럼요, 괜찮을 겁니다.”
맞잡은 손 끝으로.
이연수의 심정이 그대로 전해졌다.
나이가 들면 작은 수술조차도 큰 위협.
CT나 MRI검사도 함부로 못한다고 들었다.
불안할 수밖에.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말씀은 그렇게 드렸지만, 빨리 치료받으면 큰 문제 없을 거예요.”
이연수는 말없이 고개를 주억였다.
그때, 특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의사겠거니 했는데 헐레벌떡 들어온 건 정기현이었다.
“여사! 괜찮소?”
역시 부부는 부부일까.
이연수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괜찮죠. 아직 뭐 한 것도 없고, 여기 누워있는 게 다인데.”
“의사는?”
“아직 안 왔어요.”
“이놈들이 빨랑빨랑 움직일 것이지 뭐하고 있는 거야! 아니, 내가 그러니까 병원 가보자고 했잖어. 왜 고집을, 고집을 부려가지고!”
“그래서 왔잖아요. 왔음 됐지.”
“사람 참······ 내 말이라면 지독하게 안 들어.”
정기현은 걱정 섞인 얼굴로 툴툴대다가.
날 바라봤다.
“자네가 이야기해서 데리고 왔다고?”
“네.”
“잘했어, 아주 잘했네. 복덩이가 따로 없어.”
말은 그렇게 해도.
여전히 굳어있는 얼굴.
그때, 의사와 간호사 무리가 들어왔다.
“회장님, 재단장님. 안녕하십니까.”
“그래, 인사는 됐고, 빨리 어떻게 좀 부탁해.”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는 그럼 나가있겠습니다.”
“그래, 멀리 가지 말고 대기실에 잠깐만 있게.”
“아, 넵.”
거의 가정집 수준의 VIP 특실.
병실 문을 닫고 나오면 응접실이 있었고, 그 옆에는 보호자 대기실이라고 또 방이 하나 있었다.
거기로 들어가서 안락의자에 앉으니.
온몸의 긴장이 풀렸다.
‘휴우······.’
3일동안 쪽잠자면서 장례식장을 지키느라 심신이 지칠대로 지쳤는데 너무 강행군이었나.
그렇지만 어떤 병이든 빨리 찾아내고, 치료할수록 좋은 법이니 괜찮았다.
‘아, 의사, 의사.’
쉴 틈이 없었다.
의사명 ‘김진수’를 키워드로 「에어드롭」을 돌렸다.
──「에어드랍」이 발동됩니다!
──《상점》에 보급상자가 투하됩니다!
──구매할 상자를 결정하세요!
──제한시간: 1분
눈앞에 나타난 번쩍거리는 상자들.
「양질전환」의 재료를 담은 보급상자들이었다.
[ 보급상자 A: 수술기록지 ] – 60,000G [ 보급상자 B: 의무기록지 ] – 60,000G [ 보급상자 C: 세미나 ] – 40,000G‘글로리 다 녹겠네.’
6만 글로리라면 최근에 얻은 글로리를 거의 다 소진할 정도였지만, 사람 목숨 앞에선 그깟 글로리였다.
‘A로 부탁할게.’
그러자 탐의 마법진이 세차게 회전하더니.
한 가지 의미있는 옵션을 반환했다.
──B. 김진수의 최근 5년 수술기록지
문을 등으로 막고, B옵션을 선택하니.
팔랑거리며 떨어지는 종이뭉치.
바로 집어들어 읽었다.
‘뭐야, 다 영어네.’
놀란 것도 잠시, 예전의 신유원이 아니었다.
바로 속독.
그러나.
‘의학용어가 왜 이렇게 많아······.’
어쩔 수 없이 그 서류뭉치 전체를 다시 탐에게 맡겨 「양질 전환」을 시켰다.
그렇게 얻어낸 요약본.
훑어보니 인공관절 치환술 집도 횟수도 많았고, 개중 고령 환자도 많았다.
게다가 최근 5년은 100%의 성공률.
‘최고를 붙여줬나 보네. 다행이다······.’
하긴 상대가 재단장인데 안 그러고 배기겠나.
일단 안심하고, 다시 안락의자에 몸을 맡겼다.
‘그래도 수술은 안 하는 게 베스트인데······.’
그렇게 앉아있다가 어슴푸레 잠이 들었다.
누군가 날 깨우기 전까지.
“······원 씨, 유원 씨.”
누구지, 하고 눈을 뜨니 정우희였다.
“어, 어머님!”
나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생각했다.
‘······조졌다.’
지금 사람이 아파서 병원에 와있는데 잠이 와요? 라는 대사가 머리에서 자동재생되었다.
그러나 정우희는 예상과 다른 이야기를 했다.
“유원 씨, 내가 너무 고마워요. 나는 전혀 몰랐어요. 우리 엄마가 이렇게 고생했을 줄은······.”
아아, 잠든 사이에 뭐가 진행되었나.
“아, 어떻게 됐나요? 수술해야 됩니까?”
“지금 MRI 찍으러 가셨어요. 그런데 주치의 말로는 아무래도 수술해야 될 것 같다네요······ MRI는 확인을 위한 거고. 걱정이에요, 그 연세에 수술받기가 쉽지가 않을 텐데······.”
정우희는 평소처럼 우아한 차림이었지만.
안색도 엉망이었고, 띄엄띄엄 말하는 게 정신이 없어 보였다.
나는 얼른 잠기운을 떨쳐내며 말했다.
“그쵸. 그래도 제가 알아보니까 믿을 수 있는 의사분이더라구요. 괜찮으실 겁니다.”
“그래야죠······ 그런데 유원 씨, 내가 너무너무 고마워요. 더 늦게 알았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고관절 괴사가 웬 말이에요, 정말. 하아······.”
한숨을 쉬더니 안절부절못하는 정우희.
어쩐지 그 모습에 채연이가 겹쳐보여서 더 안쓰러웠다.
그런데 문득 날 훑어보는 정우희.
“그런데 유원 씨 잠 많이 못 잤어요?”
“아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아니, 이 훤칠한 사람이 오늘따라 퀭한 게 잠 설친 거 같은데. 우리 엄마 걱정돼서 그랬어요?”
어······ 어?
“그게 아니라······.”
“그럼 그러지 말고, 옆 병실 가서 한숨 자요. 오면서 보니까 비어있던데.”
“어, 그래도 돼요?”
“우리 병원이에요. 걱정마요.”
갑자기 등을 떠미는 정우희.
아니, 내가 환자도 아닌데 들어가서 자라고?
“그래도······.”
“내가 불편하고 미안해서 그래요.”
거의 끌려가다시피 해서 들어간 옆 병실.
정말로 아무도 없었다.
“여기 VIP실이라 보통 비어있어요. 내가 원무과에 얘기해둘 테니까 저기 침실 들어가서 자요. 얼른.”
진짜 이래도 되는 거야?
아냐, 그래도 예의가 있지. 정신 차리고 있자.
그런데······
왜 이렇게 잠이 오지······.
스르르 감기는 두 눈.
병원 이불은 유난히 더 포근한 것 같았다.
*
얼마가 지났을까.
낯선 목소리가 들려와 잠에서 깼다.
“나이 들면 고관절 좀 아플 수 있는 거 아닌가?”
“괴사래잖아. 의사가 괴사래면 괴산거지.”
남자 하나, 여자 하나.
꽤 나이든 목소리.
내가 침실에 있다는 걸 모르는지.
바로 옆 응접실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래도 요즘 과잉진료다 뭐다, 여기저기 말 많잖어. 아, 혹시!”
“혹시 뭐.”
“그놈이 억지로 수술시킨 거 아냐?”
“아유, 사람들 들어. 무슨 그런 말을 해.”
“그놈이 보통놈이 아니잖아. 지 손에 쥘 수만 있으면 부모 팔아서라도 쥘 놈이야.”
도대체 뭔 소리 하는 거야.
그놈은 누구고, 억지 수술은 뭔데.
‘설마 내 얘긴 아니겠지?’
나는 고개를 뒤척이다 상체를 일으켰다.
그런데.
“······.”
“······.”
침상 옆 의자에 앉아.
아무 말 없이 내게 손바닥만 내보이는 정기현.
조용히 있으라는 뜻이었다.
‘미친······.’
나는 입술을 악물고, 다시 상체를 눕혔다.
계속해서 들려오는 말소리.
“그래도 설마 그러겠어? 인간이면?”
“그때, 솔루션 김 대표. 암도 아닌데 암으로 오진해서 수술할 뻔했지? 그것도 그놈 짓이라는 소문이 있어.”
“아이구, 여보. 어디 가서 함부로 그런 소리 하고 다니지 마. 다 소문날라.”
여자는 급히 목소리를 낮췄지만.
이미 다 소문났다.
슬쩍 고개를 돌려 본 정기현의 얼굴은.
울그락불그락, 터지기 직전의 냄비밭솥 같았으니까.
여자는 다시 입을 열었다.
“여보, 잘 들어요. 거기 첫째 진홍이, 주가조작하다 잡혀갔잖아요? 그것 때문에 아버님 심기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니래.”
아, 내 얘기는 아니었다.
닉네임 ‘정신과’의 이름이 정진홍.
정기현에게는 차남의 장남.
그러니까 손자였다.
그렇다면 ‘그놈’은 정기현의 차남이고.
저 사람들은 장남 부부인가?
“그래, 그건 나도 들었어.”
“그러니까 경거망동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요. 가만히만 있어도 중간은 가.”
“그건 맞지.”
“그리고 행여나 과잉진료라 해도······ 우리도 뭐······ 나쁠 건 없잖아요.”
“그지.”
뭐?
“아무튼 됐어. 여기서 할 이야기 아니잖아.”
“그래, 무슨 말인지는 알겠어. 참, 저녁에 레스토랑은? 취소해?”
“이 사람이! 그걸 취소하면 어떡해요. 거기 다시 예약하려면 몇 달 기다려야 되는데!”
“왜 성질을 내. 그래, 우리도 먹고는 살아야지. 그럼 이제 나가자고.”
듣고만 있어도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나와는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고.
사람마다 각자 개성이 있고, 상황이 다르다지만······.
‘이건 아니지.’
그런데 문득.
내게 얼굴을 갖다대고 속삭이는 정기현.
“저것들 정신나갔지?”
아니, 회장님······ 그걸 지금 저한테 물어보시면 어떻게 대답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