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nfinite Regressor, But I’ve Got Stories to Tell RAW novel - Chapter (304)
무한 회귀자인데 썰 푼다 304화(304/304)
당서린이 마치 미친 또라이 대하듯 내 쪽을 쳐다봤다.
나로서는 제법 억울했다.
언제나 그러했듯 이번에도 내 정신은 지극히 정상이기 때문이었다.
“당서린. 난 진심이다. 너에겐 어느 밤하늘의 별보다도 밝게 빛날 스타의 자질이 있어.”
“…미안한데 혹시 나 플러팅 당하는 중이야? 그럼 기분은 안 나쁘긴 한데, 웬만하면 멘트를 좀 바꿔 주면 좋겠어. 장의사. 나 지금 상당히 당황스럽거든?”
글쎄.
지금까지 회귀자의 썰을 엿들어 온 여러분이라면, 아주 오래전부터 당서린에게 [삼한제일돌]이라는 전용 칭호가 달렸다는 사실을 기억하겠지.
여기서 질문해 보자.
어쩌다 저 수많은 과거 회차들에서 당서린은 한반도에서 제일 인기 많은 각성자로 거듭났을까?
나라는 민완 프로듀서를 만나서?
이것도 틀린 대답은 아니었다. 하지만 당서린은 나를 고용하기 전부터도 잘나갔다.
정답은 당연하게도―― 당서린 본인부터 자기 자신을 광고하는 일에 있어서 천부적인 재능과 의욕이 넘쳐흘렀으니까.
“아니, 천하의 눈을 다 가려도 나만큼은 속일 수 없다. 네가 사실 마음속 깊은 곳에선 누구보다 스타가 되고 싶어 한다는 것을, 나는 고스란히 느낄 수 있어.”
“…….”
“당서린. 넌 타고난 관종이다. 너의 관종력은 심아련과 대등하거나 그 이상이야.”
“아-. 플러팅이 아니라 욕을 하는 거였구나? 아휴, 당신도 참. 진즉에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 주지 그랬니.”
당서린이 빗자루를 들어 내 정수리로 두더지잡기 놀이에 돌입하기 직전, 나는 다급히 말을 덧붙였다.
“잠깐. 내 설명을 들어다오. 당서린 너는 괴이를 잡아 와서 월말마다 사지절단쇼를 시민들한테 제공했다. 이건 너에게 쇼 기획자로서의 재능이 있음을 뜻해.”
“그건 어디까지나 권력을 잡기 위한 행위지.”
당서린이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뻔뻔하게 대꾸했다.
저 표표한 얼굴 너머에 어떤 괴물이 도사리고 있는지 잘 아는 내 입장에선 실로 두려워질 정도였다.
“당신도 알잖아, 장의사. 위정자가 되려거든 빵과 서커스를 뿌려야 한다는 거. 난 부산의 왕좌를 차지하기 위해 서커스를 제공했을 뿐이야.”
“그뿐만이 아니다. 심지어 너는 다른 길드들이 감히 따라 할 수 없을 정도로 독특한 유니폼과 아이템을 만들어서 부하들한테 강요했다. 덕분에 삼천세계 길드원들은 어느 동네에 가도 ‘아, 쟤들?’ 하고 알아주지.”
“응. 그건 내 취미의 일환. 대형 길드의 수장한테도 사생활이란 게 있단다. 존중해 주지 않을래?”
“좋다. 그럼 이 게시글을 봐다오.”
나는 스마트폰으로 미리 SG넷에서 캡처해 둔 이미지 파일들을 차례차례 들이밀었다.
-[삼천]마녀재판장: 잠이 안 오는 새벽. 과거였다면 밤의 카페라도 방문했으련만. 이제는 심해의 터널 정도밖에 산책길이 남지 않았다.
-[삼천]마녀재판장: 모두가 잠들어서 고요해진 카페 아지트. 100미터를 걷고, 200미터를 넘어갈 때마다, 발자국에 시름의 무게가 더해져 울려 퍼진다.
-[삼천]마녀재판장: 어느새 도착해 버린 1,200미터의 심처. 산책길의 끝.
-[삼천]마녀재판장: 하지만 길의 끝에는 항상 사람이 기다린다. 내 발소리를 들은 것일까? 바리스타가 마중을 나왔다. 참, 괜찮다는데도 굳이 나를 위해 아포가토를 만들어 준다.
-[삼천]마녀재판장: 달달한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한입. 밤하늘의 별빛에 새벽의 시름이 녹아내리듯, 달콤함이 내 혀에서 흘러내린다…….
당서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게 어때서? 새벽 감성이 좀 들어갔긴 했어도 무척 평범한 일기잖니.”
“아니, 이건 일기장이 아니라 마공서다.”
나는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스마트폰 화면을 슥슥 내렸다.
“이 게시글엔 참으로 흉흉한 내공이 담겨 있다. 우선 넌 새벽에도 언제든 카페에 들락날락거려도 되는 실력자임을 얼핏 드러냈지. 게다가 대부분의 각성자들이 심도 100미터와 200미터에서 알짱거린다는 사실을 짚으며, 자신은 가뿐히 그 수준을 뛰어넘었다고 암시했어.”
“…….”
“감성적이고 낭만적인 문장으로 위장술을 시도했으나 어림없는 소리. 결국 너는 새벽에도 원할 때면 언제든 자신의 전용 바리스타가 귀하디귀한 아이스크림을 꺼내와서 야밤의 간식을 제공해 준다는 사실을 자랑하고 싶었을 뿐이다.”
“흐으응.”
“하물며 넌 이 게시글을 바로 올리지 않았어. 사람들이 일어나기 시작한 시각에- 어제 아침 6시에 업로드했다. 왜?”
나는 당서린을 척 가리켰다.
“SG넷에 접속한 사람이 적은 새벽에 업로드해 봤자 아무런 반응 없이 뻘글로 묻혀 버렸을 테니까! 어그로를 끌기에 최적의 시간대에 올린 것이다!”
“과연……. 흥미로운 해석이야.”
당서린이 눈웃음을 지었다.
턱을 짚은 그녀의 입가엔 여전히 여유로움이 묻어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은 당신의 주관적 해석이고 심증일 뿐이지? 내가 관종이라는 결정적이고도 객관적인 증거는 없어.”
큭. 이토록 적나라하게 꼬집었는데도 표정에 흔들림이 일절 없다니……!
만만찮은 강적이었다. SG넷에 접속할 때마다 기본적으로 댓글이 120개 이상씩 달리면서(그중 60%는 삼천세계 길드원들이 작성함) 온갖 관심을 흡성대법처럼 빨아들이는 네임드다운 품격.
나는 접근법을 수정했다.
“당서린. 요즘 노도하 관리대장이 너무 나댄다고 느낀 적 없나?”
속닥.
“SG넷이든 현실이든 어디서나 노도하 노도하, 온갖 관리대장 찬양밖에 들려오지 않는다.”
“흐음…….”
그제야 당서린의 얼굴이 혹했다.
“너무 한 사람한테 권력이 집중된단 느낌이 들긴 했어. 견제가 없는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하잖니. 한반도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 걱정할 수밖에 없지.”
“바로 그거다. 원래는 동방신성국의 심아련이 견제기를 넣어줘야 하는데 요즘엔 그러지도 못해.”
“뭐, 애초부터 깜냥이 안 되던 애였으니까. 그쪽은.”
“이런 비상시국으로부터 사람들을 구할 수 있는 인물은 역시나 삼천세계의 대마녀밖에 없지 않은가―. 그런 풍문을, 나는 시장바닥의 민심에서 엿들을 수 있었다.”
“흐으음…….”
당서린의 얼굴이 조금 더 가까워졌다.
어그로꾼이라 해도 성격이 다 똑같진 않았다.
고려장 빌런이 무턱대고 사방팔방 어그로 기관총을 쏘아 대는 돌격병이라면, 삼천세계의 마녀재판장은 ‘명분’이 있어야만 움직이는 거물.
그래. 당서린은 누군가 자신을 우습게 취급하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았다.
그녀의 행동은 언제나 ‘정당’해야만 했다.
“그리고 이건 아직 세간에 공개되지 않은 사실이다만……. 최근에 저녁이 되면 송출되는 노변담화는, 사실 노도하 관리대장 본인이 아니라 괴이의 짓이다.”
“어머나, 세상에. 정말로?”
당서린의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거의 넘어온 느낌이었다.
“그렇고말고. 누구 앞인데 내가 거짓말을 일삼겠나? 현재 한반도는 미증유의 위기에 처했다. 국도관리대장을 흉내 내는 괴이에 의해 천하만민이 다 속고 있어. 단언컨대 이 난국을 돌파해 줄 사람은 당서린, 너밖에 남지 않았다.”
“하아.”
당서린이 한숨을 쉬었다.
그녀의 눈빛이 아련하게 기차의 창밖을 내다보았다.
“정말이지……. 난 되도록 조용하게, 자기한테 주어진 역할만 수행하면서 살고 싶은데 세상이 나를 가만히 내버려두질 않는구나.”
“어쩔 수 없다. 뛰어난 인재에겐 그만큼 막중한 사명이 주어지는 법이야.”
스윽.
나는 품속에서 종이뭉치를 꺼냈다.
그것은 노래가사와 음정이 다 적힌 악보였다. 당서린이 눈을 깜빡거리며 악보를 내려다보았다.
“이건 뭐니? 장의사?”
“아아, 별건 아니고. 단지 내가 혼자서 밤을 새워 가며 만들어 본 주가영창의 악절들에 불과하다.”
“헤에?”
“이건 [언제나 피부를 완벽하게 재생해 주는] 주가영창이다. 그리고 여기 이건 [머리카락 상태를 항상 완벽하게 유지해 주는] 주가영창이지.”
“어머나? 헤에에. 흐응.”
“물론 너의 작곡 실력에 비하면 한없이 비루하다마는, 본래 예술가는 자신의 뮤즈에게 작품을 바치는 것을 최고의 영광으로 삼기 마련이지. 당서린. 이 부족함 많은 악보를 부디 받아주지 않겠나?”
“그러게.”
당서린의 표정이 비장해졌다.
“이렇게나 성의가 담긴 선물을, 절대로 뇌물이라고 폄하할 수 없는 장의사 당신의 창작물을 냉정하게 거절하는 것은 도저히 인간으로서의 도리라고 볼 수 없겠어.”
“그럼. 우리는 영혼의 파트너 아니겠나?”
“당연하지.”
덥썩.
당서린과 나는 찐하게 악수를 나누었다.
“비록 아이돌이니 뭐니 하는 겉모습엔 전혀 관심이 없지만, 한반도를 위해서, 사람들을 위해서, 무엇보다 장의사 당신의 마음에 응답하기 위해서, 나 또한 최선을 다할게―.”
“물론이다. 나 역시 너를 전력으로 보좌하마, 파트너―.”
이로써 ‘빅 시스터’의 프로파간다를 물리칠 유일한 희망.
아이돌(偶像)의 데뷔가 확정되었다.
경사로세, 경사로세.
[…장의사 씨.]회의가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성녀가 텔레파시를 보내왔다.
[이따금 저에게 ‘천리안’ 능력이 없었으면 오히려 좋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요.] [그랬다면 인간의 밑바닥을 이렇게 항상 눈앞에서 지켜보는 일이 없어졌을 테니까요.] [저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약간의 비밀스러운 기대감, 약간의 달콤한 허상이라도 가졌을 것이고, 지금처럼 집에만 틀어박히게 되지 않았을지도 몰라요.]“아아. 당서린이 친해지면 조금 깨는 면이 있긴 하죠. 그래도 너무 실망하지 마십시오. 성녀님 곁에는 항상 한결같이 강직한 저 장의사가 존재하지 않겠습니까.”
[……….]어째서일까? 성녀는 침묵했다.
솔직히 영문을 모르겠다.
6
후일담.
-안녕하세요! 오늘도 멋진 저녁. 님프칼립스입니다.
-오늘 먼저 들려드릴 노래는, 와아! 엄청난 실력의 보유자. 그야말로 반도의 가희라고 불리시는 분이죠? 당서린 님의 신곡, 저항의 깃발을 올려라! 입니다.
-오늘도 매지컬☆ 래번클로의 강림일세!
-이 대마법사가 그대들에게 소개시켜 주고 싶은 곡이 있어 가져왔다네. 이럴 수가! 어디에서도 공개된 적 없는 대마녀의 신곡 어쿠스틱 기타 버전!
-지난번엔 SG넷의 공식 인기투표에서 당당히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지! 우리 죽먹자 어린이들도 함께 들어보세!
갖가지 방송매체로 파상공세가 펼쳐졌다.
이미 사람들이 즐겨 듣는 라디오 채널들은 전부 나 장의사의 후원 아래 운영되고 있었다. 내게 여론조작 따윈 팔굽혀펴기보다 간단했다.
어디 이뿐이랴.
-나와 함께 바다를 보지 않을래?
-심도 1,200미터의 풍경. 인류의 장엄한 비밀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답니다.
-마치 커피의 향기처럼. by 당서린.
SG넷 상단에는 광고가 생겼다.
이제 각성자들은 SG넷에 접속할 때마다 매번 당서린의 사진이 박힌 카페 광고에 노출되어야만 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호에에. 서기장 동지! 동지께서 명령하신 작업을 완수한 거예요!”
튜토리얼 요정을 자그마치 수백이나 동원하여 한반도 이북을 싹 순례하도록 시켰다.
임무는 간단했다.
사람들이 꾸는 꿈에 몰래 잠입하여 ‘당서린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는 것!
예컨대 괴이한테 쫓기는 악몽을 꿈꾸고 있었다면 거기서 당서린이 등장하여 꿈속 주인을 구해주는 식이었다.
그야말로 의식과 무의식을 넘나들며 사람들한테 ‘당서린☆최고’의 이미지를 주입하였다.
그 결과.
“…국도관리대 캐러밴들한테서 정기보고가 들어왔는데, 이번에 1차 물량으로 싣고 간 삼천세계 길드장의 앨범이 죄다 동났다고 합니다…….”
노도하가 썩은 고등어 눈깔로 말했다.
“앨범뿐만 아니라 마법학교 그림이 그려진 티셔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마법 빗자루, 고깔모자와 마녀로브 등등, 굿즈란 굿즈들은 전부 없어서 못 팔 지경이라는군요…….”
그렇다.
한반도는 전례 없는 당서린붐을 맞이했다.
나는 덤덤히 말했다.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 굿즈들은 수많은 회차를 통해서 검증된 인기 상품. 한번 보면 지르지 않고는 배길 수 없겠지요.”
“그딴 걸 알아내려고 회차를 보내지 마십쇼, 미친놈 씨…….”
특히나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것은 당서린의 ASMR 미니앨범들이었다.
[이것만 들으면 잠이 솔솔 오는 자장가]라거나. [아침에 딱 3분 들으면 정신이 번쩍 드는 각성곡]이라든지.실제로는 딱히 마법적인 효과가 없었음에도 당서린의 주특기가 주가영창이었던 만큼, 구매자들 사이에선 플라시보 효과가 강하게 일어났다.
지금도 SG넷엔 호평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었다.
뭐, 혹평 리뷰 같은 건 아무도 모르게 비밀글로 처리해 버려서 관심 자체를 못 받았으니 당연했다.
이게 바로 정보 권력의 위대함이었다. 꼬우면 회귀자로 태어나십시오, 휴먼.
“아무튼 덕분에 ‘빅 시스터’의 노변담화는 싹 묻혀 버리지 않았습니까. 당서린 관련 라디오 채널들이 전부 같은 시각에 방송하니 말입니다.”
“아니, 뭐어. 묻히긴 묻혔는데……. 이런 방법으로 괴이를 토벌해도 되는 건지……?”
“원래 괴이의 존재를 깔끔하게 삭제시키는 공략법은 의외로 적습니다. 그보단 존재의의를 옅게 만들어 버리는 게 정석이지요.”
결국 유행이란 돌고 도는 법.
처음엔 노도하의 신앙이 열풍처럼 몰아쳤으나, 사람들의 관심도가 딴 곳으로 이동하자 급격하게 세가 줄어들었다.
이북 출신의 사람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노도하의 초상화를 떠받들고 모셨던 기억을 잊어버리기 시작했다.
자갈치시장의 뱅쇼 가게 주인장도 ‘으잉? 내 포차에 왜 이런 그림이 있어?’ 하고 놀랐다던가.
“이로써 사건 해결입니다. 큰 불편을 끼쳐서 죄송했습니다, 노도하 관리대장.”
“흠……. 뭐. 사람들 기억에도 남지 않는 거 같으니 저로선 상관없습니다만…….”
“다만?”
탁.
노도하는 대답 대신 라디오 버튼을 돌렸다. 그러자 주파수가 맞춰지는 소음이 들리면서 곧, 차례차례 광고가 흘러나왔다.
-싱그럽게, 가볍게! 올여름의 패션 아이템은 세일러 교복! 백화여고의 학생회장이 품질을 보장합니다.
-삶이 고달프신가요? 마음이 외로우신가요? 세상이 한스러운가요? 그런 분을 위해 평양은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모광서그리스도를 찬양합시다. 여러분의 성녀, 심아련.
-대전에선 굶주린 사람을 위해 항상 무상으로 급식을 나눠 드리고 있답니다. 어서 오세요. 알레알레, 대전. 희망으로 하나 된 도시, 대전.
노도하가 이쪽을 비딱하게 쳐다보았다.
“댁이 쏘아올린 폭죽 때문에 온갖 동네에서 라디오로 광고 때리는 게 유행이 되어 버렸고, 얘네들도 괴이로 발전해 버릴 가능성이 심히 농후한데, 자칭 괴이전문가 나으리께선 이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음.”
나는 라디오 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머그잔을 머금었다.
오늘도 커피는 맛있었다.
-선동자. 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