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Inheriting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165
<소설을 계승 중입니다 165화>
빛의 강림(2)
필라 가네스트와 그 일행들은 천사들이 빠져나간 사이 최대한 빠르게 이동했다.
언제 천사가 돌아올지 모르는 상황이니 한시라도 빨리 이 잿빛낙원의 최하층으로 이동할 필요가 있었다.
‘정말로 의식을 우리가 먼저 해 버리는 것만으로 모든 게 해결될까?’
키세아는 필라의 등을 쫓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왜 의식을 먼저 할 필요성이 있는지는 방금 들었다.
성녀의 육신에 알타이르를 강림시키는 의식.
필라는 그것을 역이용하여, 현재 육신과 괴리된 성녀의 혼을 본래의 육신으로 되돌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설마 클레이가 지니고 있던 반지에 성녀의 혼이 담겨져 있었을 줄이야.’
시모사의 눈이라고 했던가.
아텔가에서 줄곧 지켜 왔다는 성녀의 유물.
설마 그런 걸 지니고 있을 줄은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
“그런데 정말 작전대로 되겠죠?”
“아마 분명하다.”
“……앞에 ‘아마’라는 말이 무척 불안한데, 제 착각이죠?”
“착각이다.”
필라는 망설임 없이 답했지만, 키세아는 매우 불안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건 키세아만이 아니라 메르사야도 마찬가지였는지 상당히 떨떠름한 얼굴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메르사야는 고개를 붕붕 흔든 뒤에 입을 열었다.
“클레이 님이 분명하다고 했으니 분명할 거다!”
그 말에 키세아는 내심 놀랐다. 메르사야가 클레이에게 가지는 신뢰도가 생각보다 높았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클레이를 믿네?”
“생각보다라니.”
“아니,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아서 사실 좀 싫어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이,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진 않았다!”
메르사야는 애써 강하게 부정하긴 했지만, 사실 틀린 말은 아니긴 했다.
“어, 어쨌든. 뭔가 클레이 님은 달라. 알 수 없는 신뢰감이 느껴진다. 이런 말한다면 좀 우습다만…… 드래곤 로드인 라르기오스 님보다도.”
“어마어마한 신뢰감이네.”
“그렇다. 이유는 나도 모른다. 그냥 감이 그럴 뿐이다.”
단지 감만 믿고 인생, 아니 용생을 걸다니 참 이상한 곳에서 대범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확실히 메르사야의 말처럼 클레이에겐 묘한 신뢰감이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일도 가능케 할 것 같은 신뢰감.
‘부디 이번 일도 그랬으면 좋겠는데.’
키세아는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들을 발견하고 소리치리는 성기사의 목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촤르르륵!
뱀처럼 유려한 움직임을 보이는 사복검은, 부드러운 움직임과는 달리 그 위력은 절륜했다.
길을 지키던 성기사들은 잠시도 버티지 못한 채 목을 바닥에 떨구었다.
그 잔혹한 장면에 미셸은 눈을 찡그렸지만 별말은 하지 않았다. 당장 저런 것에 신경 쓰기엔 상황이 상당히 급박했으니까.
“이 바로 아래에 성녀님의 유해가 있습니다!”
“그래?”
미셸의 외침에 필라의 손에 백색의 거검이 잡혔다.
그는 그것에 막대한 신성력을 응집시킨 뒤, 바닥을 향해 휘둘렀다.
콰콰콰쾅!
“허억?! 가, 갑자기 이 무슨……!”
바닥을 부수며 착지하자, 의식을 준비하기 위해 설치한 다양한 장식물과 마법진이 눈에 들어왔다.
‘성기사가 열둘.’
‘사제는 일곱인가.’
적지 않은 숫자였지만, 키세아나 메르사야를 막기엔 턱없는 숫자였다.
사복검이 휘둘러지고 메르사야의 용언이 발현되자, 눈 깜박할 사이에 주변은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대, 대단하군요. 이들도 분명 세트람의 정예일 텐데…….”
“미셸, 이들은 확실히 상당한 실력들이다만 드래곤과 한계를 목전에 둔 소드 마스터를 상대하는 건 불가능하다.”
상대가 나쁘다는 말이 맞았다. 아마 이들을 막으려면 칠영웅쯤 되는 존재가 튀어나와야 할 터였다.
“경비가 허술하네요. 천사가 하나쯤은 있을 줄 알았는데.”
키세아가 약간 낙담했는지 중얼거렸다.
그녀는 편하게 이곳에 잠입했다는 것보다 천사와 제대로 싸워 보지 못한 게 아쉬운 모양이었다.
“이곳에 침입할 만한 간 큰 자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겠지.”
“그래도 만약이라는 게 있잖아요?”
“만약이라는 건 없다. 애초에 이 마법진은 천사나 신이 아니고서야 발동할 수 없으니까.”
필라는 찬찬히 주변을 훑었다.
마법진은 이 넓은 방을 뒤덮고 있을 정도로 거대했으며, 극도로 촘촘한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다른 이들은 도저히 이 마법진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할 테지만, 필라는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이건 필라가 단순히 천사의 혼혈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어떤 천사들도 만들어 내지 못한 ‘천쇄의 무구’를 만든 자였다. 각인과 마법진에 대한 이해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그러니 설령 이곳에 누군가 도달한다 한들 아무런 문제도 없겠다고 생각했겠지만…….”
설마 오래전에 실종됐던 이단심문관인 필라가 이곳에 나타날 줄 알았겠는가.
필라는 마법진을 전체적으로 확인한 뒤, 그 중앙에 있는 백색의 관을 응시했다.
“저것이 그란세시아 님의 유해가 잠들어 있는 관입니다.”
“과연.”
필라는 그란세시아의 유해를 보는 것이 처음이었다.
“가능…… 한 거죠?”
불안한 듯 묻는 키세아에게 필라는 힐끗 시선을 돌렸다.
“물론이다.”
“정말, 일개 인간인 성녀가 이 상황을 타파할 수 있을까요?”
“내가 아는 전설대로라면.”
“성녀의 전설이라면 저도 귀에 딱지가 생길 만큼 들었어요. 수많은 기적으로 인간들을 치유하고 구했다는 전설. 하지만 그것과 전투는 다르잖아요?”
“상당히 불안한 모양이군.”
태평한 그의 모습에 키세아는 괜히 부루퉁해졌다. 마치 자신을 겁에 질린 어린아이라 생각하는 것 같았으니까.
“……불안한 게 당연해요. 클레이는 믿을 수 있지만, 성녀는 아니니까요.”
“그래, 확실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일반적으로 알려진 성녀의 전설은 그러하니까.”
“일반적으로 알려진?”
묘한 뉘앙스가 담긴 말에 키세아가 되묻자 필라는 그저 피식 웃었다.
그리곤 성녀의 관에 다가가 천천히 손을 댔다.
그런 필라의 모습에 키세아는 의아할 뿐이었다.
“어떤 전설이 있는지는 말해 주지 않는 건가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네?”
그게 무슨 뜻인가 싶어 바라보자, 필라의 몸에서 밝은 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진짜 천사보다도 강렬하고 신성한 광채가.
“이제 곧 직접 보게 될 테니까.”
관 안으로 막대한 신성력이 흘러들자, 관을 중심으로 자색의 마법진이 기동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은은하던 마법진의 빛은 점차 강렬해졌고, 이윽고 맹렬히 요동쳤다.
“성공적으로 작동했군.”
“포, 폼 잡지 말고 어서 이리로 와라!”
만족스런 미소를 짓는 필라의 손을 잡아끌며 메르사야가 헐레벌떡 주변의 동료들을 한곳에 옹기종기 모았다.
「위대한 마력이여, 우리를 모든 재난으로부터 수호하라!」
메르사야의 용언이 발동됨과 동시에.
콰아아아아!
자색으로 빛나는 빛의 파도가 폭발했다.
* * *
“대체…… 왜?”
넋이 나간 얼굴로 비올레트는 창밖으로 보이는 광경을 응시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여태 몰래 준비하던 의식이 멋대로 발동해 버렸으니까.
「비올레트!」
“저,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분노에 찬 천사의 외침에 비올레트는 급히 부정했다.
정말로 비올레트는 어안이 벙벙할 것이다.
「성천무극의 후예여, 저것도 네가 꾸민 짓이냐!」
“글쎄. 난 잘 모르겠는데?”
「이 상황에서 오만하게 지껄이다니!」
분노한 천사가 나를 향해 덤벼들며 창을 내질렀다.
확실히 매서운 찌르기였지만, 분노에 몸을 맡겨서인지 피하기는 수월했다.
도리어 나는 녀석의 틈을 노려 허리춤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큭?!」
주먹에 얻어맞은 천사는 주르륵 밀려나며 재차 나를 향해 덤벼들려 했지만, 주먹을 얻어맞은 녀석의 허리춤의 피부가 쩌적 갈라졌다.
이후에 어떻게 됐을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으리라.
「크아악!」
천쇄의 무구의 영향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천사의 모습에 다른 천사들이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뭐냐! 저 힘은?!」
「성천무극에 저런 힘이 있다는 말은 듣지 못했는데?」
제대로 숨도 쉬지 못하고 바닥을 뒹구는 동료의 모습이 상당히 낯설겠지.
그나마 놈들 중 가장 직위가 높아 보이는 천사가 상황을 수습하며 말했다.
「그래, 확실히 오만한 말을 할 실력은 되는구나. 그란세시아도 그랬지. 그 계집도 인간인 주제에 터무니없이 오만했다.」
“그건 그냥 너희가 약하고 건방져서가 아닌가?”
「……그럼에도 그 계집이 살아남았던 건, 오만할 정도로 강한 실력을 지녀서다. 너도 분명 뛰어나지만 그 계집만큼은 아니지.」
나의 도발에도 천사들의 대장은 차분히 말을 이었다.
「의식은 어떻게 발동시켰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건 이제부터 네 몸에 물어보면 될 일이니.」
방금 내 공격을 보아서인지 서른이 넘는 천사들은 저마다 나를 경계하며 천천히 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제대로 상황을 판단할 줄은 아네.’
놈의 말대로 나는 서른이 넘는 천사들을 상대하긴 벅찼다. 내게 천쇄의 무구가 있긴 하나, 이 힘에도 한계는 있었으니까.
‘근데 진짜 천사가, 만들어진 천사나 마찬가지인 세이건보다 약한 것도 웃기군.’
하긴 그러니 비올레트가 저토록 자신했던 거겠지.
진짜 천사보다 강력한 세트람 최강의 검.
놈은 지금 겨우겨우 상처를 회복하며 어떻게든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천쇄의 무구에 당했음에도 움직일 수 있는 건, 그나마 녀석이 완전한 천사는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 점이 참으로 아이러니했다.
「어떻게 천사를 동료로 삼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참으로 어리석구나. 의식을 발동시켜 무엇을 하려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강림시킬 신이 없는 한 의식은 무의미하다.」
천사는 내 의지를 꺾고자 했는지 친절하게도 의식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하나의 천사로는 신에게 닿을 정도의 힘을 발휘할 수도 없지. 보아라, 강림의 빛은 하늘은 고사하고 고작 이 작은 도시를 전부 벗어나지도 못했다.」
확실히 그 말대로였다.
자색의 빛기둥은 놀라울 정도로 선명했지만, 하늘에 닿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시놉시스에도 그렇게 적혀 있었지.’
수많은 천사들이 힘을 모아 의식을 발동시키면, 마법진에서 뿜어져 나온 빛이 하늘에 닿는다.
그리고 그 빛을 따라 알타이르가 그란세시아의 육신에 강림하게 된다.
“꼭 빛이 하늘에 닿을 필요는 없어서 말이야.”
「무슨 뜻이지?」
“이거면 충분하고도 넘쳐.”
필라 가네스트가 가진 천사의 힘은 생각보다 엄청났다.
성황궁을 넘어 세트람의 수도인 일리샤드 전체를 비췄으니 가공할 정도였다.
이건 내 예상을 넘어선 결과였다.
‘자, 시작해 보실까.’
나는 손에 착용하고 있던 건틀릿, 아니 모습을 변화시킨 제노바를 검으로 되돌렸다.
그리고 손에 끼고 있던 장갑을 천천히 벗었다.
“그, 그건?!”
건틀릿이 갑자기 검으로 바뀌자 눈을 동그랗게 떴던 비올레트는, 내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보았는지 경악에 찬 외침을 내질렀다.
“그건 시모사의 눈……! 네, 네가 그것을 어떻게 가지고 있는 것이냐!”
비올레트의 외침에 나는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내 신경은 오로지 오랜 시간 나와 함께해 온 시모사의 눈을 향해 있었다.
‘그란세시아.’
[응.]‘나 믿지?’
[믿어.]간결하게 답하는 그란세시아의 목소리에는 힘이 있었다.
그 무한한 신뢰에 나는 내심 감동했다.
‘사기꾼의 말을 믿어도 되는 거냐?’
[이제 와서 갑자기 무슨 말이야?]이전에는 자주 놀리듯이 이야기하던 말을 언급하자 그녀가 작게 웃었다.
정말로 그란세시아는 내 말을 완벽히 신뢰하고 있었다.
‘그동안 고마웠어.’
나는 짤막한 감사의 인사를 한 뒤, 손가락에 끼고 있던 시모사의 반지를 빼 손 위에 올렸다.
「막…….」
이 모든 광경을 멍하니 보던 천사들의 대장이 입을 열었다.
「막, 아라.」
「예?」
「막아라! 어서 막으란 말이다!」
다급하게 외쳤지만 이미 늦었다.
그때는 이미 내가 시모사의 눈을 온 힘을 다해 강하게 움켜쥔 이후였으니까.
쩌적! 쩌저적!
아텔가의 유물이자, 성녀의 마지막 유산.
나는 그것을 온 힘을 다해 파괴시켰다.
파아아아!
그러자 내 움켜쥔 주먹에서 무언가가 새어 나오며 흩어졌다.
시모사의 눈을 파괴하며 통찰안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기에, 그것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인지할 수 없었다.
그저 무언가가 방금 내 손아귀에서 빠져나갔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성천무극의 후예여! 지금 대체 무엇을 한 거냐!」
“그건…….”
눈앞에 천사가 있음에도 나는 차분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느꼈다.
“이제부터 알게 될 거다.”
통찰안은 사용할 수 없었지만, 내 육신은 녀석이 알려 준 가르침을 따르고 있었다.
극한까지 단련된 유식(唯識)이 내게 알려 주고 있었다.
지금 이곳을 향해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다는 걸.
드드드드드드!
“지, 지진인가?! 왜, 왜 하필 지금?!”
땅이 울리며 무언가가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지진?
아니, 이건 그런 게 아니다.
이건 단지 ‘뚫고 올라오고’ 있는 거다.
잿빛낙원이라는 이 일리샤드에 지하에 위치한 장소부터 무언가가 올라오고 있었다.
콰쾅! 콰콰쾅!
부수고, 부수고, 또 부수며.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모든 걸 죄다 부수며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땅의 울림이 어느 순간 멎었다고 생각한 순간──
콰아아아앙!
나와 천사가 대치한 바닥을 뚫으며 무언가가 치솟았다.
반짝이는 금색의 머리칼에, 강인한 빛을 품은 금안.
그리고 순백의 복장을 입은 아름다운 여성.
“지금부터 다섯까지 셀게.”
그녀는 차분한 목소리로 노래하듯 읊으며 내 앞에 내려섰다.
그리곤 당당히 팔짱을 끼고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모든 이들을 내려다보았다.
언제나 보는 한없이 오만하고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지금부터, 무릎을 꿇고 기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