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living as a healer in the fantasy Nord world RAW novel - Chapter 413
413화
【엘류드니르】
헬라의 저택이라니. 예상치 못한 정보에 모두의 입이 벌어졌다. 반가워해야 할 정보에도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건 신사였다.
“잠시만요. 성안에 길이 있고, 필연적으로 모드구드를 잡았어야 하는 거라면. 우리에게 미리 말했으면 되는 일 아닙니까?”
찌푸린 신사의 목소리에 여러 사람이 맞장구쳤다. 리디안도 이상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그랬다면 플레이어들이 굳이 레이드 도전에 대한 찬반 투표를 하지 않았을 테니까.
“어차피 성문을 열고 진입한다고 해도, 내 도움 없이 입구를 찾긴 힘들어. 게다가 나로선 너희가 정말 모드구드를 잡을 수 있을지 모르는 일이잖아? 중간에 너희가 포기하고 도망칠 수도 있고. 그렇게 되면 나는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그저 정보만 다 넘겨준 꼴이 되는 거잖아.”
잊힌 군주가 어깨를 으쓱였다.
조금 맹해 보인다 싶더니, 속으로는 철저히 손해를 계산하고 있던 모습에 리디안이 혀를 내둘렀다.
그래도 그런 속내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며, 사람들은 잊힌 군주의 농간을 크게 트집 잡지는 않았다.
“흠. 뭐, 그래요. 처음 보는 우리를 믿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그렇다고 칩시다. 근데 여기에선 엘류드니르랑 우트가르드랑 무슨 관계입니까? 중요한 건 아니지만, 내가 아는 지식 선에선 조금 이해가 안 가서요.”
박회장이 개인적인 궁금증을 내비쳤다. 그 질문에 잊힌 군주가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였다.
“관계? 흠. 무슨 말을 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의미 있는 관계는 아니야. 니플헤임에는 아주 오래전부터 죽은 자의 영역이 일부 존재해왔으니까. 엘류드니르는 신이 주거할 수 있도록 설계된 곳이라 그 존재 자체가 신성시되거든. 그래서 저택을 은닉하기 위해 그 입구 위에 우트가르드가 지어졌다고 하더군. 당시 헬라는 딱히 소유권을 주장하진 않았지만, 아마 그 때문에 나를 내쫓았을 거야.”
잊힌 군주는 우트가르드 성에서 쫓겨나기 직전까지 그 사실을 몰랐다며 구시렁거렸다. 개인적으로 불만이 많은 듯했지만, 길드 마스터들. 특히 마제스티는 바쁜 와중에 시시콜콜한 과거 이야기를 더 듣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우리가 성안으로 들어가서 어떻게 해야 하는 겁니까?”
“응? 엘류드니르? 말했잖아. 저 안에 그리로 향하는 입구가 있다고. 일단 안개가 피어오르는 샘을 찾으면 돼. 그 샘에 돌을 던지면 안개가 걷히고 문이 생겨날 거야. 헬라를 따르는 자들이 그렇게 오갔으니까, 너희도 똑같이 따라 하면 될 거야.”
“될… 거라고요?”
신사의 한쪽 눈썹이 삐죽 솟았다. 정확하지 않은 정보에 불퉁한 시선이 닿자 거인이 손을 휘저었다.
“잠깐 포로로 잡혀있을 때 몇 번 보기만 했지. 사실 내가 문을 통해 직접 가본 적은 없어.”
“그런 무책임한 말이 어디 있어요? 들어갔다가 잘못되면 어쩌려고요? 와, 괜히 도와줬어.”
박회장처럼 잊힌 군주와 조금 친해진 스타일리쉬가 목소리를 높였다.
배신감을 느낀다는 그의 말에 군주는 땀을 흘리며 당황했다. 그럼에도 비난이 멎지 않자 잊힌 군주가 마지못해 대꾸했다.
“아, 알았어. 그럼 같이 가줄게. 어차피 모드구드도 죽었으니까. 나도 이젠 성문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을 거야.”
“오. 정말요? 헬라한테까지?”
“…이왕 가는 김에 그러지 뭐.”
찝찝함이 섞인 대꾸에 리디안이 놀라 손을 들었다.
“그런데, 헬라 때문에 그리되신 건데. 다시 만나면 조금 불편하지 않을까요?”
“흠? 당연히 날 곱게 보진 않겠지. 그런데 어쩌겠어. 어차피 너희가 헬라를 만나면 산맥에서 일어난 일을 알게 될 텐데. 그러니 내가 도망가도 얼마 못 가 금방 잡힐 거야. 물론, 난 너희와는 달라서 목숨은 하나뿐이지만. 어차피 죽을 거라면 헬라에게 마음껏 욕하고 죽을래.”
어쩐지 눈치 주는 듯한 표정과 목소리에 사위가 숙연해졌다.
장난인지 진심인지. 의도를 알 수 없어 모두가 눈치를 보던 때, 잊힌 군주가 별안간 껄껄 웃기 시작했다.
“그냥 쉽게 생각해. 사실 너희 하는 게 궁금해서 그래. 정말로 저 모드구드를 처리한 걸 보니 약간 믿음이 가기도 하고. 헬라가 너희를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그리고 이 일에 어떤 생각을 하는지도 궁금해졌거든.”
“오, 그럼…….”
“그럼 빨리 이동하죠.”
감동한 스타일리쉬의 목소리를 신사가 단칼에 끊어버렸다. 조금은 생색을 내고 싶었던 잊힌 군주는 매몰찬 반응에 뚱한 시선을 건넸다.
물론 얼굴의 반 이상이 덥수룩한 머리에 가려진 터라, 심통난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 서운함을 눈치챈 박회장이 군주를 위로했다.
“원래 좀 정 없는 사람이에요.”
잔뜩 풀 죽은 거인을 등진 신사는 사람들을 끌어모았다. 헬라를 만나러 가는 거지만, 싸우러 가는 건 아니기에 불필요한 인원을 줄여야 했다.
그 이야기를 꺼내니, 과반수가 우르르 뒤로 빠졌다.
조금 씁쓸한 일이긴 해도. ‘신’이라는 미지의 존재는 궁금증을 가져다줌과 동시에 공포를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헬라가 어떤 성격인지 전해 들은 사람들로선 쉽사리 동행을 결정지을 수 없었다.
“혹시 모르니 지원자 위주로 빈 직업 충원할게요.”
최대한 소수 정예로 인원을 맞추고 나서야 얼추 상황이 정리됐다.
우트가르드 성 내부로 진입하지 않는 플레이어들은 그길로 곧장 미드가르드로 돌아가기로 했다. 어렵사리 용기를 보여준 군황과 채이는 귀환팀에 속했다.
이왕 여기까지 온 김에 끝까지 같이 가면 좋겠지만. 겁 많은 두 사람의 성격상 레이드에 참여해준 것만으로도 참 고마운 일이었다.
“그럼 무사히 돌아오시기를 기다릴게요.”
두 사람은 연신 미안해하며 파티원들과 돌아갔다.
비로소 최종 인원만 남은 상태에서 리디안은 군주와 게이트를 힐끔 바라봤다.
모드구드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게이트는 아직 푸른빛을 내며 작동 중임을 과시했다.
과연, 저 빛이 언제까지 유지되느냐를 두고 작은 설전이 오갈 때. 잊힌 군주가 머리를 긁적였다.
“근데 저거 공간 마법 같은데. 정말 내가 들어갈 수 있으려나?”
또다시 불확실한 발언이 새어 나왔다.
겨우 누그러진 플레이어들의 시선이 날카로워졌다. 폭발 직전인 신사가 한 소리 하려던 순간. 잊힌 군주가 무작정 앞으로 걸어 나갔다.
“에이, 모르겠다. 일단 내가 먼저 들어가 볼게.”
상의도 없이 커다란 몸집이 불쑥 게이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즉흥적인 움직임에 당황한 플레이어들이 어버버, 소란스러워질 무렵.
푸른빛 게이트 안에서부터 군주의 얼굴이 달랑 튀어나왔다.
상당히 괴기스러운 광경에 몇몇이 비명을 질렀다.
그런 마음도 모르고, 군주는 껄껄 웃으며 신기해했다.
“이거 신기한데? 어떻게 안이랑 밖이 다르게 분리되어 있지?”
군주는 거북이처럼 목만 쭉 내밀며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그 해맑은 모습에 간부들이 경악하면서도 몸소 증명해준 ‘안정성’에 안도했다.
“음. 게이트는 맞네요. 그런데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게이트가 아니라, 경계의 숲에서 봤던 비밀 통로처럼 원래의 이쪽 세계의 힘에 가까운 듯하네요.”
이제는 아예 들어갔다가 나오기를 반복하는 군주의 모습을 바라보며 박회장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간단한 정의가 내려지자 날카로운 긴장감이 눈 녹듯 사라졌다.
제일 먼저 다람이 신이 난 얼굴로 거인의 뒤를 따랐다. 뒤이어 겁 없는 사람들이 훌쩍 게이트 안으로 들어섰고 리디안도 세인트들과 함께 성안으로 건너갔다.
“와…….”
박회장의 짐작대로인지, 우트가르드 성 내부에서 맵의 정보는 뜨지 않았다.
성벽 내부는 낡은 고성의 모습을 보였다. 관리되지 않아 건물 곳곳에 이끼가 가득했고 벽은 온통 금이 가 있었다.
특이한 점이라면 지저분한 마당 곳곳에 보라색 돌멩이가 나뒹굴었는데, 자세히 보니 자수정이었다. 어느 한 곳엔 자수정이 아예 돌탑처럼 쌓여있기도 했다.
“저걸로 뭘 만들려고 했나? 주변에 삽도 있고 수레 같은 것도 있네?”
“혹시 진짜 자수정이에요? 자수정 동굴에 있던…….”
풍월주의 물음에 군주가 곧장 긍정했다.
“맞아. 자수정. 지금 저기 있는 것들은 우리 거인들이 자수정 동굴에서 캐온 거야. 그걸 다 캐서 할 게 없어지니까 바위를 캐서 보수 공사를 진행한 거고.”
“아니, 자수정은 왜요?”
“왜긴. 헬라가 시키니까 그냥 캤지.”
신의 의중을 누가 알겠냐고. 군주는 한숨과 함께 푸념했다.
자수정 채굴이 헬라의 명령이었다니. 리디안은 의아한 얼굴로 갸웃했다.
혹시 헬라가 보석 같은 걸 좋아하는 걸까? 아니면 자수정으로 무언가 만들려고 그랬던 걸까?
원초적인 상상부터 기능적인 목적까지, 리디안 말고도 여러 사람이 자수정을 두고 이런저런 추측을 했다.
“혹시 저 바닥에 있는 것들이 이것과 같은 건가요?”
보조직업으로 세공사를 가진 페페가 인벤토리에서 자수정을 꺼내 보였다.
영롱한 보랏빛 보석에 잊힌 군주가 호들갑을 떨었다.
“뭐야? 상급 자수정이네? 너 이거 어디서 주웠어? 자수정 동굴은 이미 다 채굴됐을 텐데?”
“주운 게 아니라, 제가 만든 거예요.”
부끄럽게 웃는 페페의 뒤로 세공사 직업을 가진 일부 플레이어들이 너도나도 보석을 꺼내 들었다.
곳곳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자수정 조각에 군주의 입이 쩍 벌어졌다. 군주의 기억으로 니플헤임에서 이런 보석류는 꽤 가치 있는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와! 너희 정말 대단한데? 이런 걸 만들어내는 능력도 있단 말이야?”
과하게 반응하는 군주의 모습에 레온, 마제스티, 신사가 서로를 쳐다봤다.
“나스트론드에서도 감시자가 보석을 요구했었죠?”
“파파 말로는 사적으로 좋아하는 느낌이 강했다던데…….”
“어떤 목적이든, 헬라 측에서 이 보석을 원한다면 거래에 도움이 될 수도 있겠네요. 우선 귀환팀에 연락해서 최대한 생산해놓으라고 할게요.”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한 신사가 서둘러 허공을 두드렸다.
* * *
자수정에 감탄하는 군주를 따라 성벽 내부의 길을 따라 걸었다. 부식된 구조물을 따라 안쪽으로 더 들어서니, 정원 비슷한 공간이 나타났다.
뭐, 정원이라고 해봤자 온통 죽은 풀투성이였고 건축물이나 장식품들은 전부 노후돼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황폐한 정원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왼쪽 끝자락, 안개가 가득한 구역이었다. 불이라도 난 것처럼 뿌연 연기가 가득 피어오르니 모두가 그곳을 쳐다봤다.
바라보던 군주가 자연스럽게 앞장섰다.
“여기야. 흐베르겔미르. 내가 말한 샘.”
가까이 다가간 곳은 작은 연못이었다.
다만 무슨 문제인지 수면 위에서부터 짙은 안개가 끊임없이 뿜어져 나왔다.
혹시 뜨거워서 생기는 수증기인가, 하고 가까이 다가간 리디안은 반사적으로 비명을 질렀다.
조금은 탁한 수면 아래로 가느다란 뱀 수백 마리가 우글우글 들끓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물밑의 상황을 인지한 사람들이 기겁하며 물러났다.
“머리 봤어요? 독사 아니죠?”
“어우, 징그러워.”
“토, 토할 것 같아요…….”
이런 모습에 비위가 약한 대장군은 저 멀리까지 뛰어나가 토악질 시늉까지 보였다.
군주는 그를 한심하게 바라보다가 샘 앞으로 성큼 다가갔다. 그러곤 근처에 있던 돌 하나를 주워 샘으로 휙 던졌다.
첨벙, 작은 파동을 시작으로 잔잔했던 수면이 끓는 물처럼 흔들렸다. 그와 함께 물밑에 있던 뱀들이 물고기처럼 펄떡거리다가 물 밖으로 뛰쳐나왔다.
세상 징그러운 광경에 대부분이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 쳤다. 용감한 플레이어들은 무기를 들어 공격할 준비를 했다.
하지만 뱀들은 플레이어를 그대로 지나쳐 어딘가로 사라져버렸다. 뱀들이 다 빠져나간 샘은 어느새 맑고 투명해졌다.
더불어 주변으로 짙게 퍼진 안개도 걷혔다.
몹시도 징그러웠던 샘이 깨끗하고 신비로운 샘터로 탈바꿈하자 리디안을 포함한 모두의 말문이 막혀버렸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하고 물으려던 때.
이번에는 샘의 가운데가 갈라지며 흙바닥이 드러났다.
곧은 길 끝에 생겨난 커다란 검은 거울이 마치 들어오라는 듯, 반짝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