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Michelangelo in my previous life RAW novel - Chapter 122
122
* * * *
“다비드가 아닌 것을 없애고 나니, 다비드가 되었다.”
–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
* * * *
3월 6일.
겨울이 끝이 나고 아직 서울까지는 벚꽃이 닿기 전.
봄을 알리는 비가 가늘고 조용하게 내린 뒤의 오후였다.
“이제 진짜 봄이 오려나 옵니다. 봄비가 다 내리고 말이죠.”
래쉬 가드를 입은 류정형과 대충 수영복 바지만 걸친 박선우가 백산호텔 야외온천길을 걸었다.
찬 바람은 땅으로 스며들듯 발 쪽으로 내려오고, 온천의 뜨거운 열기는 하늘로 올라가려는 듯 얼굴로 치솟으니 야외온천 전체에 안개가 자욱했다.
그때였다.
온천 특유의 뜨거운 수중기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유황이라고 해야할지 약초라고 해야할지 사우나 찜찔방에서나 맡을 수 있는 냄새라 해야할지···시원한듯 보슬거리게 코끝에 스며드는 냄새를 맡는 그 순간.
비가 그친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지 쌀쌀한 바람이 불어왔다.
동시에 반투명한 수중기를 뚫고 하늘이 보였다.
새파란 것이 딱 하늘색이었다.
하늘을 바라보며 박선우가 툭, 말을 내뱉었다.
“비가 그쳐서 다행이네요. 전 오늘 온천 체험 못하나 조마조마 했거든요.”
박선우가 수건을 걸친 채, 주변을 돌아보았다.
비가 이제 막 그쳤는데 벌써 사람들이 온천에 한가득이었다. 역시 연일 매진 행렬을 이어가는데다 주변 일대 호텔의 95%를 매진시키는 온천다운 인기였다.
박선우가 담담한 얼굴 밑으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대부분이 힐긋거리며 한곳만을 바라보는 게 무엇 때문에 왔는지가 명확했다.
슬쩍슬쩍 들려오는 대화들이 그걸 또 증명했다.
“저게 이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힐링 되는 기분이야.”
“나가기가 싫다.”
“아. 이래서 명당 자리 꼭 얻으려고 한 건데···무슨 매일 품절이야. 이거 진짜 한 번은 볼 수 있는 거겠지?”
“나 오늘 쓰러질 때까지 안 나간다. 말리지 마.”
“저 구름들 좀 봐. 진짜 무슨 산수화가 현실에 튀어나온 것 같아. 예쁘다.”
“저 누나 날개옷 말이야. 하늘하늘한 게 진짜 무슨 옷 같지 않냐? 무슨 맺혀있는 이슬까지 아름다워.”
명당이 아니기에 잘 보이지도 않을 텐데 사람들은 하늘에 걸린 산수화를 바라보듯 온천에 앉아 의 뒷모습을 넋을 놓고 쳐다봤다.
은 어느 각도에서 보아도 완벽해야 한다는 강석의 평소 지론에 맞게 뒷모습조차도 감상할 맛이 있는 작품이었다.
박선우가 마치 제가 만든 작품에 대한 칭찬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입매를 꿈틀거렸다. 미소가 자꾸 튀어나오려는 걸 막는 몸짓이었다.
그걸 바라보던 류정형이 조심스럽게 박선우 쪽으로 다가와 속삭였다.
“으로 난리도 아니네요.”
여기 모인 사람들이 다 비등을 보러 온 것 같다는 뒷말을 들으며 박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백산의 주인인 본인부터가 스케줄을 조정해 을 만나러 온 것인데 남들이라고 안 그럴까. 박선우가 기대된다는 표정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박선우가 이 야외온천을 찾는 일은, 백산 호텔에다가 을 가져다 놓은 이래 계속해서 반복되었지만···이렇게 수영복까지 갖춰 입고 온 것은 처음이었다.
최근에 이사벨라 리날디와 방문했을 때도 정장을 갖춰 입고 있어서 온천에는 들어가지 못했으니 탕에 직접 들어가 작품을 바라보는 것 역시 처음이었다.
‘평지에서 올려다보는 것과 조금 더 지대가 낮은 온천탕에 들어가 을 바라보는 것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을 터.’
박선우가 신이 난다는 듯 걸음을 빨리했다.
노을이 지기 시작해 조명을 켜야 하는 시간대가 되기 전에 어서 환한 태양에 비추어지는 을 보고 싶어서였다.
“대표님. 다치십니다. 천천히 가세요.”
“알겠어요. 류이사님도 어서 오시지요.”
류정형이 그 말에 김이 낀 안경을 슬쩍슬쩍 닦으며 박선우를 쫓았다. 그리고 류정형이 안개비가 내린 것처럼 보슬보슬한 공기 속에서 안경을 다시 꼈을 때. 류정형의 앞에는 이 있었다.
발목을 움켜쥔 사내와 두 아이를 두 팔로 껴안고 하늘을 바라보며 날아오르는 여인. 여인의 곁을 넘실거리는 구름까지.
장관이었다.
류정형이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단비를 마시듯 목울대가 침을 스르르 흘러넘겼다. 동시에 뜨거운 물이 류정형의 발등을 슬쩍 적셨다. 옆에 있던 박선우가 온천에 들어가며 물이 흘러넘쳐 일어난 일이었다.
찬바람 속에서 닿는 뜨거움에 류정형이 깜짝 놀라 시선을 내렸다. 시선이 한껏 낮아진 박선우가 류정형을 바라보고 있었다.
“안 들어오고 뭐합니까.”
류정형이 그 말에 박선우를 따라 온천에 몸을 담갔다. 시야가 순식간에 낮아졌다.
그와 동시에 두 남녀를 조각한 은 하늘을 다 가릴 기세로 치솟았다. 그리고 여인 즉, 선녀의 주변을 노니는 구름은 하늘을 지나가던 구름이라고 오해할 정도로 비대해졌다.
···마치 지상에 있는 거인이 하늘에 올라가는 여인을 붙잡는 것 같은 웅장함이 류정형의 시야 속으로 들어왔다.
벽면 하나를 가득 채운 동양화 한폭.
그런 느낌이었다.
그 정도로 충격적인 아름다움과 섬세함이 제 눈앞에 존재했다.
이란 조각이 하늘을 캔버스 삼아 그려진 회화 같이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한 두 문장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격한 감동에 박선우와 류정형은 그저 조용히 침묵을 유지했다.
그리고 을 바라보았다.
감히 하늘을 캔버스 삼았다고 해도 될 정도로 거대해보이는 사회에 찌들 때로 찌든 둘을 정화시켰다. 마치 케케묵은 때가 쏵 벗져겨 내려가는 시원함었다.
그 둘 뿐만이 아니었다.
온천에 들어가 을 올려다보는 모든 사람들의 공통적인 생각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사람은 늘어만 가고, 빠질 생각을 하지 않는 온천의 풍경 속에서 을 바라보던 류정형이 붉어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진짜 강작가님은 엄청난 사람이네요.”
을 본 이들은 모두가 동의할 터였다.
보는 것 하나만으로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니···류정형이 을 보며 진정한 재능이란 무엇인지 엿본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때였다.
박선우가 대답 아닌 대답을 내놓았다.
“앞으로 어떤 작품을 내놓을지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네요.”
누가 봐도 에 심취한 목소리였다. 류정형이 고개를 돌렸다. 박선우의 눈은 똑바로 을 향해 있었다.
류정형은 강산이 두번 바뀌고도 남을 시간동안 박선우와 함께했다. 박선우의 눈동자만 봐도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단 소리였다.
그런 류정형이 보기에 박선우의 저 눈은 누가 봐도 심지에 불이 붙은 느낌이었다. 앞으로 어떤 작품을 내놓든, 모든 작품을 제 눈이 닿을 수 있는 곳에 가져다 놓고 싶다는 곧은 의지가 엿보이는 눈동자였다.
진짜 백산 호텔을 통째로 주는 건 아니겠지.
누가 찬물을 확 끼얹기라도 한 것처럼 류정형이 희게 질린 낯으로 박선우를 바라보는 순간. 박선우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는 곧은 눈동자로 류정형을 바라보며 물었다.
“조사장님한테 듣기로는 어제 우리가 봤던 그 하얀 천으로 덮어놓은 그게 지금 제작하던 이라던데 뭐 들으신 거 있어요?”
“어떤 거 말씀이십니까.”
“뭐···앞으로 그것에 대한 거취를 어떻게 하기로 결정했다거나 하는?”
“···그런 것은 들은 적이 없고요. 씨엘로 갤러리에 과 도 있었던 데다 그 검은 천막 같은 거에 가려진 공간도 그렇고, 아마 씨엘로 갤러리에 지금 조각하고 있다는 도 설치될 것 같던데요.”
그 말에 박선우가 아깝다는 듯 혀를 찼다.
동시에 이사벨라 리날디를 챙기느라 검은 천막 뒤에 가려진 를 보지 못했던 것이 생각났다. 보고 가고야 싶었으나 리날디가 강석과의 대화로 완전히 넋이 나가서 어쩔 수가 없었다.
‘다시 또 보러 가기에는 작업에 방해가 될 것 같은데···’
거장의 작업실은 쉽게 방문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박선우는 자신이 어느새 강석을 거장이라고 자연스럽게 인정하고 있다는 것도 인식못하고 지금이라도 문자를 보내야 하나 골몰하는 그 순간. 류정형이 생각났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 대표님.”
“네?”
“조사장님이 진도욱 관장에게 그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조사장님이 진관장님에게? 둘이 친했어요?”
박선우가 금시초문이라는 눈으로 류정형을 바라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류정형을 땀을 수건으로 닦으며 말을 이었다.
“···이번에 조각하고 있는 은 꼭 프란체스코 퀘이롤로의 을 떠올리게 한다더군요.”
“요?”
그게 뭔데요.
그 투명한 눈동자에 류정형이 대답했다.
“그 프란체스 퀘이롤로가 조수 도움 없이 7년 동안 혼자서 작업했다는···그 있잖아요. 사람 위에 그물을 올려놓은 것 같은 작품이요.”
“아아!”
작품의 이름은 몰라도 사진은 봤다.
날개달린 아기천사인지 에로스인지부터 성인남자가 이불마냥 뒤집어쓴 그물, 그리고 책과 지구본 같은 동그란 것까지···그 모든 게 대리석 한 덩어리에서 나왔다고는 믿을 수 없는 괴짜같은 작품.
정말 변태가 만들었구나, 싶었던 작품이었지.
···근데 그 작품을 떠올리게 한다고?
도대체 어떤 작품을 만들고 있는 거야?
머리를 쓸어넘긴 박선우가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와 동시에 박선우의 눈에 들어왔다.
파랬던 하늘이 점점 보라색과 주황색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노을이 오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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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우와 류정형이 온천에 몸을 맡기고 을 바라보고 있는 그 시각.
르네상스 쇼핑몰 7층 밖으로도 보라색과 주황색으로 뒤섞인 노을이 지고 있었다.
강석은 노을이 지건 말건 손을 움직였다.
그의 왼손에는 망치가 들려있었고, 오른쪽에는 바늘이라고 오해할 정도로 얇은 송곳 같은 도구가 들려 있었다. 끌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얇은 도구였다.
그는 얇은 송곳 같은 것으로 조각상의 손을 다듬고 있었다. 검을 움켜쥔 손은 그림자가 진것처럼 짙은 회색이었다. 그 손을 타고 불쑥 삐져나온 검집까지 송곳으로 살살 긁은 강석이 허리춤으로 손을 뻗었다.
허리춤에는 작업복대가 달려있었는데 망치와 평평한 끌 하나를 넣을 수 있는 홈 옆으로는 볼을 덮을 정도 되는 면적의 둥근 붓과 눈동자 겨우 칠할 정도의 두께의 둥근 붓 하나가 들려있었다. 작은 붓 옆에는 엄지손톱 겨우 덮을만한 평붓도 삐쭉 튀어나온 채였다.
붓 세 자루 모두 대리석에 끼인 가루를 털기 위해서 들어있는 것이었다.
그 세자루의 붓 옆에는 마른천이 하나 들려있고, 광택을 내기 위한 물 넣은 미니 스프레이 하나. 그리고 오른쪽으로는 줄줄이 톱니바퀴가 달린 것부터 그 모양과 크기가 세밀하게 다른 11자루의 세공도구가 넣어져 있었다.
강석은 송곳만한 얇은 세공도구를 대충 빈 곳에 쑤셔 넣더니 곧장 둥근 붓을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송진가루를 털어내듯 조각상 손에 달라붙은 먼지들을 손톱 부분까지 정성스레 닦아냈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강석은 붓으로 먼지를 털어내고도 모자랐는지 천으로 닦고, 미니 스프레이까지 뿌려댔다. 그리고는 강석이 사다리에서 내려왔다.
조동범도 급하게 볼일이 있다고 몇 시간 전에 나간 터라 7층은 고요했다. 강석이 사다리를 내려오는 소리가 아직은 가구가 완벽하게 채워지지 못한 공간을 슬슬 울려댔다.
강석은 침묵을 때리는 발소리와 함께 사다리를 완전히 내려왔다.
을 완성한 이래, 하루 15시간 이상씩은 작업에 매달렸던 것 같았다.
7층 구석에는 미술작업실에서 자주 보인다는 접이식 간이침대가 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잠을 자러 가는 시간도 아까워서 주문한 것이었다.
일주일의 일주일.
하루 스물네시간의 열다섯시간.
시간이란 시간을 갈아넣어 당긴 작품 은 검은 장막 앞에서 감정 없는 눈으로 강석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조각상을 온도에 덧대어 본다면 여태까지 만든 조각상 중 가장 차가운 녀석이었다.
물에 넣은 듯 무중력에 닿은 듯 한올 한올 흔들거리는 머리카락.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시선. 감정없는 무표정의 회색 얼굴.
투구가 벗겨진 얼굴 아래로 살 하나 내보임 없어 중세 기사를 떠올리게 하는 철갑옷차림. 달빛의 표면을 머금거 은은하게 광택이 흐르는 갑옷 사이로 벗겨진 왼쪽 철장갑. 드러난 회색 손.
들려있는 검. 그리고 검의 중간에 달에 생긴 웅덩이마냥 일부러 움푹 파놓은 흔적. 그 위로 홈을 메꾼 반투명한 유리.
차갑게 떨어지는 발 아래로는 고슴도치처럼 사방팔방군데로 뭉툭한 가시를 뻗은 바위가 있고, 뭉툭한 끝에는 압정처럼 날카로운 유리로 된 고드름이 박힌 모양새였다.
오른발은 그 바위 위쪽에 올려놓아 무릎이 90도 각도로 굽혀진 채였고, 왼발은 쭉 뻗어서 바위에 올라 검을 빼든 상태로 사람을 내려다보는 것 같은 자세를 완성시켰다.
당장이라도 검을 휘둘러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순간을 포착하여 돌에서 꺼내온 강석은 천천히 작품을 돌아보았다.
극도로 세심하게 깎아내어 당장이라도 검지를 툭, 하고 휘두르면 깨질 것 같은 얇다란 돌가시들을 바라보며 강석이 천천히 물러났다.
달의 표면을 옮겨다놓은 무늬가 반들거리는 돌갑옷 위를 흐르고 있었다. 누가 보면 조각상 위에다가 진짜로 철갑옷이라도 입혔다고 오해할만한 빛흐름이었다.
그걸 천천히 바라보며 한두 걸음 더 뒤로 물러나자 대리석 위에 붙여놓은 유리들이 조명에 닿아 반짝거렸다.
“흐음.”
이걸로는 뭔가 부족했다.
대리석은 완벽한 빛 아래에 있을 때 그 특유의 석질이 드러나는 법이었다.
잠깐 동안 주변을 훑어보던 강석이 머릿속에 있는 풍경을 끌어내기 위해 먹잇감을 찾듯 주변을 돌아보았다. 곧 그의 시선은 빛 하나 통과시키지 않을 정도로 검게 드리운 장막에게로 향했다.
저거다.
강석이 사다리를 끌고 곧장 장막으로 걸어갔다. 장막으로 다가가는 강석의 손에는 어느새 가위가 들려있었다.
* * * *
어둠이 얕게 깔린 밤.
양선구가 걸음을 옮겼다.
그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한복 자락이 바람 흐름에 따라 흔들렸다.
– ‘이탈리아 카라라산 대리석을 구하고 싶은데요.’
– ‘구해다주랴?’
– ‘아뇨. 한국이 아니라 이탈리아에서 작업할 겁니다.’
이탈리아라···양선구가 걸음을 내디뎠다. 어느새 몸은 르네상스 쇼핑몰 엘리베이터 안이었다. 이탈리아. 그것도 베네치아. 그곳에서 작업을 4월 말까지는 끝내야 한다며 카라라산 대리석을 구해달라던 강석의 말은 곧 베네치아 비엔날레에 참석한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어찌된 경위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3, F, 5···올라가는 숫자를 바라보며 양선구가 뒷짐을 졌다. 길게 늘어트린 흰색 수염이 슬쩍슬쩍 흔들렸다.
그리고 붉은색으로 7이라는 숫자가 깜빡거림과 동시에 엘리베이터가 양문을 밀며 열렸다.
“으잉?”
보이는 것은 어둠이었다.
아까 들어올 때만 해도 7층의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는데 지금은 바깥보다 더 새카맸다. 양선구가 잠깐 눈을 끔뻑거리다 닫히려는 문을 잡고, 천천히 걸음을 바깥으로 옮겼다.
이게 또 어찌된 영문인감.
어둠 속에 핸드폰 불빛에 의지하여 천천히 발걸음을 내딛는 그때.
텅, 소리가 들렸다.
조명이 켜지는 소리였다.
어디지.
조명이 켜지는 소리가 들렸으나 환해지는 공간은 없었다. 아니, 없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 검은 천막 뒤로 동그란 점과도 같은 별들이 떴다. 그래. 그건 7층 한 구석에 밤하늘 별이 떴다고 하는 표현이 옳았다.
검은 공간 속에 조명도 아닌 것이 하얀 빛을 뿜어냈다. 어느새 불빛을 잃어버린 액정을 대충 갈무리하고는 양선구가 홀린 듯 걸음을 옮겼다.
검은 어둠 속에서 점점이 박힌 별들을 따라 걷는 걸음이었다. 몇 걸음을 내디뎠을까.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하얀 점은 더 환한 빛을 뿌리더니···어느 순간 하얀 점에서 쏘아진 빛이 무언가에 닿았다.
닿았다는 표현이 어울리리라.
수십, 수백개의 새끼 손톱만한 별들이 동굴 안으로 들어오는 달빛처럼 무언가를 비추었다. 그와 동시에 닿은 물체가 반짝거리며 빛을 반사했다.
부딪히고, 맞닿고, 빛을 품고, 반사하고···하나의 반복은 수십번 수백번 반복을 낳았다. 수없는 작은 빛이 부딪히고 맞닿고 반사하고 서로 다시 닿고 점점 빛은 크기를 키워갔다.
그리고 종래에···하얀 광원이 그곳에 도래했다.
무늬가 새겨진 유리컵 하나를 하얀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빛의 투과를 지켜본 적이 있는가?
동굴 호수 위를 흐르는 빛의 흐름처럼 검은색 위로 하얀 빛 그림자가 흔들거리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그것과 같았다.
마치 어둠 속에 피어난 광원은, 달의 표면 위를 넘실거렸다. 빛을 유리가 반사하여 흩뿌려진 광채는 하얀 오로라와 같았다.
태양에서 오는 빛을 반사하여 빛을 뿜어내는 달.
빛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회색의 기사를 바라보며 양선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 ‘···달이라도 조각할 모양이지.’
진정 달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양선구는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여태까지 스물이 조각했다고는 믿어지지 않는 작품들을 완성해왔던 강석이지만, 이것은 궤가 달랐다.
머리카락 한올 한웅큼 결을 살려 흩날리는 순간을 표현한 작품은 역사에 남을 작품이었다. 순간적으로 저것이 돌이라는 것을 잊어버릴 정도로 부드러운 움직임이었다.
‘무서울 지경이다.’
어둠 속에서 환하게 빛을 품은 채 넘실거리는 것은 그림자만이 아니었다. 당장이라도 움직일 것 같은 저 생생함을 보아라. 머리카락도, 눈도, 손도, 검도, 그 아래 흩뿌려진 얼음가시도. 무엇 하나 돌이라고 생각되는 것이 없었다.
그야말로 변태적인 표현력이었다.
– ‘그럼 저것도 달을 그대로 조각하는 게 아니라 달의 혼을 조각하는 것일 수도 있지 않나.’
저게 달이 아니면 무엇이 달이겠나.
···양선구가 경악 속에서 천천히 을 바라보고 있는 강석에게로 걸음을 내디뎠다.
위대한 창조주를 향해서였다.
123. 내 그림 실력은 미켈란젤로를 이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