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Michelangelo in my previous life RAW novel - Chapter 182
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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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목적. 인류의 목적은 아이스킬로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예수,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스피노자, 코페르니쿠스, 뉴턴, 괴테, 베토벤 같은 위인들을 낳는 것이다.”
– 게오르그 모리스 코헨 브란데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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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4일.
전국적으로 비가 쏟아지는 한밤.
폭우와 파도가 몰아치듯 정보가 범람하는 인터넷 한 귀퉁이에 새로운 사이트가 신설되었다. 1초 단위로 네트워크 안에서는 무수히 많은 사이트 주소와 활자가 생겨났다가 숫자로 다시 분해되어 사라지니 눈여겨볼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네트워크 세계에 비밀은 없듯이 누군가에게는 발견되기 마련이다.
새로운 사이트. 씨엘로 갤러리의 공식 홈페이지도 그렇게 개설된지 2시간도 지나지 않아 사람들에게 발견되었다.
최초의 발견자가 누군지는 규정할 수 없지만 씨엘로 갤러리 공식 홈페이지를 처음 언급한 것은, 강석의 팬카페였다.
씨엘로 갤러리를 오픈할 예정이라고 강석이 공헌한 날짜로부터 반년 가까이가 지난 시점이었으나, 그들만은 기억하고 있었다.
항상 새로운 정보를 위해서 검색창에 이런 저런 단어를 서치하는 게 일상이었던 회원들이 재빠르게 그 소식을 팬카페에 올렸다.
[들어가보니 맞는 것 같네요] [알려준 사이트 주소 들어가보니까 전화번호도 있어서 내일 전화해볼까 합니다.]ㄴ [진짜면 좋겠네요ㅠㅠㅠㅠㅠ]
ㄴ [너무 기다렸다]
ㄴ [내일 당장 전화건다]
ㄴ [관장직 구미령 나이 좀 있어보여서 검색해보니까 경력 뭐임? 검색창에 나오는 구미령이 씨엘로 관장이랑 동일인물이면 개쩌는데?]
팬카페가 빠르게 시끄러워졌다. 그리고 강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기타 커뮤니티도 팬카페의 소식을 빠르게 나르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한국에서였다.
[국제 갤러리 관장직 수행했던 구미령이 씨엘로 갤러리 관장직 맡은 거 맞다고 하네요]ㄴ [이거 맞음. 내 지인이 강석이라 알고 있음.]
ㄴ [? 강석 인맥 협소한 건 여기 커뮤 사람들은 다 아는 내용 아닌가ㅋㅋㅋㅋㅋ]
ㄴ [ㄴㄴ강석 의외로 핵인싸임 근데 인맥들 대부분이 핸드폰이랑 친한 세대가 아니라서 그러지ㅋㅋ]
ㄴ [애초에 외부 활동을 하는 작가님이 아니신데 잘 아시는 척 말씀하시는 거 되게 불편하네요.] [그나저나 씨엘로에는 뭐가 있음?]
ㄴ [일단 가봐야 알지]
ㄴ [그걸 누가 알아?]
ㄴ [작품있겠지ㅎㅎㅎ]
ㄴ [보러 간다]
ㄴ [난 묵힐 예정. 비엔날레 끝날 때 즈음에 백퍼 씨엘로로 들어오겠지. 그때 보러 간다]
ㄴ [자리가 있을 거라 보냐? 꼴 날 것 같은데·········내가 사람 빠지면 보겠다고 묵히다가 묵은지 다 익었는데 아직도 보러가지 못하는 중; 자리가 기다려도 안 생겨; 그냥 볼 수 있을 때 보셈] [강석오빠 르네상스 쇼핑몰 주차장에서 목격 많이 되던데 작업 백퍼 들어갔다]
ㄴ [??? 누구 맘대로 강석오빠임?]
ㄴ [서울 사는 사람들 좋겠다ㅠㅠㅠ]
ㄴ [지방 서러워서 살겠냐고ㅠㅠㅠㅠㅠㅠㅠ]
사람들은 다양한 주제로 강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럴수록 씨엘로 갤러리 홈페이지에 팬을 비롯하여, 같은 업계 종사자 및 기자들이 사이트를 들락날락거렸다. 진위여부 확인과 새로운 정보를 얻어갈 수 있을까, 싶어서였다.
일반적인 사이트라면 한 번에 많은 접속량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속도가 느려질 만도 하건만, 구미령이 몇 달 동안 열심히 준비한 씨엘로 갤러리 홈페이지는 그런 건 끄덕도 없다는 듯 버텨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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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트 잘 돌아가네요.”
“···아직 이렇다 할 게시글들이 올라간 것도 없고 카테고리 대부분이 빈탭이니까요.”
구미령은 강석의 칭찬에 겸손하게 대답했다. 그런 구미령을 잠깐 응시하던 강석이 마우스 휠을 움직였다. 스크롤이 내려가면서 심플하지만 촌스럽지 않게 배치된 무채색 배열이 강석의 시야에 들어왔다.
강석의 작품은 죄다 크고 화려한 편이라 이렇게 기본적인 흰색과 회색만으로 작업된 홈페이지 디자인과 잘 어울릴 것 같았다.
“디자인 좋네요.”
“감사합니다.”
“하청 안 맡기시고 직접 하셨다고 그랬죠?”
“네. 딱히 오래 걸리는 일도 아니니까요.”
오래 걸리지 않고 말고할 문제인가? 그렇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확실히 사무나 업무보조적으로 감각이 뛰어나다.
‘이런 자잘한 것들은 상의하지 않고 알아서 잘 처리하는 게 진짜···’
이래서 경력직을 찾는 거구나. 강석이 감탄했다. 7월 23일. 작품 설치를 완성하고 홈페이지 같은 게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말에 준비가 이미 준비해놓았다는 구미령 말을 들었을 때는 큰 기대가 없었는데···마음에 들었다.
“그러면 여기에 개관식 일정 대문 배너로 하나 달아주실 수 있어요? 저번에 포스터 작업하셨다고 하셨죠?”
“네. 잠시만요. 포스터 이미지 열어드릴게요.”
홈페이지 제작에 웹디자인, 포스터 같은 시각디자인은 물론이고 세무회계 및 일반적인 사무업무나 기타 자잘한 업무들까지···구미령 관장님 혼자서 처리하는 업무량이 말도 안 되게 많았다.
‘그만큼 능력이 되신다는 거겠지만, 조만간 부하 직원 하나를 뽑아드려야 하나?’
자잘한 업무를 다 맡겨서 시간을 뺏기엔 아까운 직원 같았다. 더 큰 일을 맡겨도 될 지도 모른다. 강석이 짤막하게 뇌리에 해당 정보를 입력한 뒤, 정면을 응시했다.
“이건데 어떠세요?”
화면에 푸른기가 도는 이미지가 꽉 찼다.
청백색 밤 속에 두 팔을 벌리고 서있는 강석의 사진이었다. 살짝 비스듬하게 돌아간 고개는 머리카락이 여름 바람을 맞은 듯 살랑 흔들리고 있었다.
플래시가 터져서 이미지가 날아갔던 사진을 겹쳐놓았는지 몇 개의 잔영이 스쳐지나가는 것도, 화성과 같은 머리카락에 푸른 점이 깃든 선명한 적갈색 눈동자도 사진 보정 작업이 깔끔하게 잘 들어간 것 같았다.
유성우가 쏟아지듯 내려오는 빛의 궤적에 꿰뚫리는 소년.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화보 같기도 하고, 광고 같기도 했다. 잡지 표지나 만화책 표지를 보는 느낌이기도 했다.
“좋네요.”
아닌 게 아니라 진짜 좋았다.
미적으로는 까다로운 성미에 가까운 강석이 보기에도 마음에 들었다. 강석이 입매를 손바닥으로 슬쩍 가리듯 쓰다듬었다.
‘B컷이어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피사체가 좋아서 그런가?’
강석이 작품 일부에 녹아든 제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사람이 잘생기고 봐야 한다는 건가? 무덤덤한 얼굴 밑으로 낯부끄러운 기쁨이 슬쩍 스쳐지나갔다. 객관적으로 보기에 하이라이트가 얼굴이었다.
묘한 감정을 느끼며 강석이 포스터를 바라보는데 구미령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그러면 전시 제목은 어떻게 할까요? 생각해놓으신 거라도···”
구미령의 말끝을 흐리며 강석을 쳐다봤다.
전시 제목.
강석이 생각지도 못한 소리를 들었다는 듯 눈을 끔뻑였다. 전시 제목. 전시와 관련한 제목을 정하는 건, 처음이었다.
는 프레스코를 재현한 것인데다 도시 재생 프로젝트에 일부 벽화로 시작된 작품이고, 과 은 고두한 선생님 개인전에 껴서 내놓은 작품이었다.
또 는 전시 4실에서 단독으로 진행했지만 당시에는 청화예고 졸업작품 전시회용 작품이었고, 는 용신랜드 재개장을 위해 작업한 작품이었다.
은 말 그대로 소묘 자료를 출간하는 일이었고, 은 인체 프로젝트용 작업물이었지.
는 아트바젤 마이애미비치 갤러리 세션에 전시될 작품 의 연작이었고, 은 호텔 야외온천 조경용 전시작품이고, 와 는 아직 세상에 내놓지도 않았다.
연작과 는 베네치아 비엔날레 국제관 한국전에 빈자리를 채우기 위한 작품이었다.
오로지 개인 전시를 위한 작품은 연작이 처음이었다는 걸, 강석도 방금 깨달았다는 듯 눈을 끔뻑였다.
“개인전······”
이건,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강석의 첫 개인전이었다.
처음.
언제나 처음은 특별하다. 강석이 자신이 개인전을 열게 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하며 재차 입을 가렸다. 입매가 꿈틀거렸다. 꼬물거리듯 광대 쪽으로 올라가는 입술 끝에 남은 것은 희열이었다.
청화예고의 실기 꼴등이 이렇듯 성장하여 제 건물에 자리한 개인 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열게 되다니. 인생역전과 같은 자수성가 스토리가 아닐 수 없다.
이 모든 것을, 스물에 이룩했다.
강석은 비가 오는 밤에 제 단전 아래 꿈틀거리는 능구렁이 노인이 기억도 안 난다는 듯 새푸름을 느꼈다.
강석은 그 묘한 고열감에 가만히 허공을 응시했다.
그런 강석을 바라보며 구미령이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대표님?”
짧은 부름에 적갈색 눈동자에 이채가 돌았다. 상념에서 빠져나온 강석이 짧게 탄성을 내었다. 질문이 뭐였더라. 아. 관장님이 방금 개인전시 제목을 어떻게 지을 건지에 대해서 물어봤었지.
강석은 잠시 고민하다가 빠르게 결정했다.
“스물. 스물로 하죠.”
“스물이요?”
이번 전시를 관통하는 철학이나 주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번 전시는 개인전 이전에 씨엘로 갤러리, 말 그대로 강석이 작업한 하늘에 관한 작품들을 모아놓은 갤러리의 개관식이자 오픈식을 위한 전시였다.
연작을 가져오고, 연작을 작업해서 세상에 내놓았을 뿐이다. 아직 씨엘로 갤러리를 처음 기획했을 때 만들어놓은 네 구획 중 두 곳만 채웠을 따름이기도 했다.
네 구획을 언젠가 다 채우게 되었을 때. 진짜 주제를 이름으로 내걸어도 되리라. 지금은 그저 [스물]이면 족했다.
“예. 스물로 부탁드립니다.”
스물. 푸른색과 여름에 참으로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알겠습니다. 바로 작업해서 개관식 일정이라 같이 내용 첨부해서 배너로 올려놓을게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강석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고개를 들자 씨엘로 갤러리에 네 구역이 보였다. 하나는 이 들어가있고, 하나는 연작이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한 구역은 연작을 위한 한정상품 향수가 진열되어 있었다. 그리고 한 곳이 비어있었다.
이제 저것을 채울 준비를 할 때였다.
“관장님. 혹시 갤러리에 배정한 예산으로 제품 하나만 사주실 수 있어요?”
“네. 어떤 걸로 준비할까요?”
“프로젝터요. 아주 큰 프로젝트면 좋겠어요.”
“어느 정도로요?”
강석의 적갈색 눈동자가 정면을 응시했다.
“저곳을 채울 정도면 될 것 같아요.”
강석의 눈동자가 향한 곳은 정면. 네 개의 구역 중, 유일하게 비어있는 한 곳을 향해서였다. 저곳을 가득 채울 이벤트 하나를 준비한 참이었다.
그때였다.
“석아!”
“선생님!”
엘리베이터를 타고 양선구와 조동범이 모습을 드러냈다. 야식을 사러갔다왔는지 둘 다 양손이 무거웠다. 비에 어깨가 젖어있는데도 그들의 눈이 기대로 반짝였다.
전시회가 시작되기까지 일주일도 안 남은 시점.
오늘 연작의 마지막, 여신을 볼 생각에 설레이는 모양이었다.
강석이 그들을 향해 한 발을 내디뎠다.
그런 강석의 등을 씨엘로 갤러리의 관장직을 맡고 있는 구미령이 응시했다.
대한민국의 미술계는 크지만 작다.
세계에서 통하는 작가들은 많은 것 같으면서도 순수미술 작가는 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루칩이라는 말이 유행하면서 대한민국엔 수많은 블루칩 작가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정말 수익성도 좋고, 작품의 성장성과 잠재력도 훌륭하고, 작품을 뽑아내는 속도도 안정적인 작가들이 많아지긴 했다.
‘하지만 진짜는 적지.’
이름만 들어도 알 정도로 세계시장에서 인정받는 작가란 그런 거다.
당장 대한민국 출신이면서 한국에서도 인정 받고, 세계 미술시장에서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진짜 블루칩 작가를 말해보라하면 사람들 대다수는 그냥 입을 다물 것이다.
일단 내뱉어 볼 수 있는 이름으로는 소묘로는 고두한, 조각으로는 양선구가 있었다. 그 뒤를 따르는 이름들은 떠올려보던 구미령은 포스터 위에 푸른 글씨로 [스물]을 새기며 생각했다.
블루칩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곧 한국에 눈이 부실 정도로 푸르른, 혜성 하나가 나타날 것 같았다.
강석이 수익성은 말을 더할 필요도 없이 좋고, 잠재력은 감히 재단할 수 없을 정도로 깊으며 작품을 뽑아내는 속도 역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놀랍다는 것을 알면서도 강석을 순수미술성과 상업성을 동시에 갖춘 작가냐고 하면 업계 사람들은 고집스레 입을 다문다.
그는 수상경력이 전무하고, 판매한 작품은 단 하나에 불과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아무도 강석이 푸르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게 될 거였다.
확신이었다.
구미령이 고개를 들었다.
아주 푸르고 짙은 밤이 오고 있었다.
183.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집필한 [이탈리아 기행] 1권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