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Michelangelo in my previous life RAW novel - Chapter 187
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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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8년 10월 3일.
피렌체 산 로렌초 성당 내 신성구실을 조성에 힘을 쓰던 미켈란젤로는 피렌체 남쪽, 산 미니아토 언덕 방어에 대한 논의를 하는 회의장으로 불려갔다.
그의 손에는 산 미니아토 언덕을 방어할 스케치들이 잔뜩 들려있었다. 여름내내 작업한 것들은 대부분 방어와 관련한 것이었다.
미켈란젤로는 한 단어로 설명하기 힘든 표정을 지은 채, 회의장 안으로 들어갔다.
50대 중반을 바라보는 미켈란젤로는 그렇게 군인이 되었다.
그리고 피렌체를 방어해야 하는 자,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와 피렌체를 공격해야 하는 자, 안토니오 상갈로.
두 피렌체 출신 건축가의 싸움이 피렌체 공성전보다 먼저 깃발을 올렸다.
옛 가을의 일이었다.
* * * *
“···잡소리만 안 나오면 병역 특례자 추천도 문제없게 진행할 수 있는 거죠?”
“쯧. 조용히 못해.”
등이 가려져서 보이지 못하는 누군가에게 중년의 남성이 힐책했다. 이런 공공장소에서 소리가 새서 좋을 게 없다는 뜻이었다.
맞은편에 앉아있던 이의 어깨가 좁아지며 소리가 낮아졌다. 그러나 이미 중요한 내용은 다 들은 뒤였다. 강석이 눈을 가늘게 떴다.
미술대전과 병역 특례자 추천.
다른 걸 더 들어볼 것도 없다.
예술체육요원 편입제도를 노리는 거다.
예술체육요원.
국위선양과 문화창달에 기여한 예술 및 체육 특기자들을 군복무 대신 예술체육요원으로 복무하게 하는 제도.
한마디로 병역특례다.
사회복무요원들처럼 기초군사훈련까지는 동일하게 진행하고, 그 이후에는 예술체육요원으로 2년 10개월동안 544시간동안의 공익복무 활동 후. 예비군도 동일하게 동원된다.
‘······그게 미술 분야에도 있었다고?’
미술대전.
대한민국내에서는 가장 권위있는 공모전 중 하나라고, 청화예술고등학교 미술이론 시간에 얼핏 들었던 것도 같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생들이 그 미술대전에 대한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비엔날레나 아트페어가 전세계에 널려있었고, 기성과 신인의 구분이 없어진 미술대전은 대한민국 미술협회 내에서 교수들도 출전하는 공모전이었다.
협회에서 주최하는 공모전 특성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경력을 많이 본다는 것이다. 그리고 얼마나 무르익은 벼인지가 중요했다.
한마디로 못먹는 감이었다.
입선이나 특선은 가능하겠지만 그거를 노린다면 아트페어에 나간다거나 다른 개인전을 준비하는 게 효율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혹 새로운 신예들이 나와 공모전 대상을 갑자기 받기도 한다. 강석의 눈동자가 서늘해졌다.
“·········이미 이사장과 얘기가 다 끝난 문제다. 네가 작품 제출을 안 하지 않는 이상 문제 없어. 정신 똑바로 차리고 준비해.”
“네.”
겁먹은 개같은 대답에 사내, 이철원에 표정이 구겨졌다. 이철원은 주름이 절로 지는 미간을 살살 밀며 제 눈앞에 앉은 아들, 이영훈을 바라보았다.
‘이거 하나 군대 보내지 않겠다고 차광손 그 영감한테 돈을 쑤셔넣은 게 잘한 짓이 맞나.’
회의감이 밀려오는 멍청한 얼굴이었다.
아들 셋있는 것중에 막내라고 귀하게 키워줬더니 가장 형편 없게 자랐다.
‘얼굴 쳐다보고 있으면 열만 더 받지.’
이철원은 이 자리를 파할 때가 되었음을 느꼈다. 인내심의 한계였다. 그는 제 옆에 놓았던 꽃다발을 집어들어 이영훈에게 던지듯 안겼다.
그래도 눈치는 있는지 꽃다발이 상하지 않게 제대로 잡았다. 이영훈을 시원찮게 바라보던 이철원이 입을 열었다.
“네 친구한테 전달하는 거 잊지 말고.”
“·········네.”
친구. 그 얄팍한 단어를 곱씹으며 이철원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씨엘로 갤러리에 들어가기 위해 대기를 하는 사람들로 시스티나 카페가 부쩍였다.
‘이게 제 아들놈하고 같은 나이에 먹을 수 있는 건물이던가.’
허. 이철원이 가벼운 헛바람을 삼켰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제 아들의 친구라는 놈은 이렇게 거물이 되어가는데 이 녀석은···거기까지 생각하던 이철원은 한숨을 삼켰다.
어차피 대한민국에 태어난 사내라면 이런 특별한 방법 없이는 군대를 가야 한다. 이영훈이의 친구라는 강석이라는 놈은 고아도 아니고, 뒷배도 없고, 이런 인맥도 없는데다 별다른 이상도 없으니 현역이 분명했다.
‘여태까지 지인으로 지내는 할아버지한테 성북동 저택과 맞바꾼 말고는 판매 사례가 없는 천재 작가······’
개인 소유로 풀린 작품이, 열 작품이 안 되는 미켈란젤로하고 이 부분도 통한다고 낄낄거리던 한국미술협회 이사장의 말이 떠올랐다.
– ‘지금 국방부에서 눈에 불을 켜고 기다리는 중이라던데, 뭐···그 인사 한 번 없는 천재놈이 그렇게 자존심 한 번 밟히는 거지.’
군대 가서 작품 만들라는 소리에 안 만들수 있간. 차광손이 국가에 보탬 되는 일을 열심히 하고 나오게 생겼다며 가래 끓는 소리와 함께 침을 휴지에 뱉어냈다.
– ‘뭐. 나야 강석이 미술대전 나와주면 화제 되고 좋지만서도···’
그 말을 뱉듯이 내뱉은 차광손이 노란 치아에 덜 닦인 침을 자랑스레 내보이며 은근한 눈짓을 했었다. 성의를 더 보여달라는 소리였다. 그 게걸스러운 이사장 놈이 요구했던 성의표시를 떠올리며 이철원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렇게 해서 끝난 얘기였다.
얘기를 끝내기 위해 오고 간 돈다발은 세는 게 의미가 없을 정도였다.
비구상 부문, 구상 부문, 디자인 부문, 공예 부문, 서예 부문, 부문별로 대상들을 하나씩 매년 뽑아서 병역특례자를 만들어내는 공장 주제에.
이철원이 잇몸을 부술 기세로 이를 딱 깨물며 앞을 바라보았다. 이철원의 기분이 안 좋은 것을 눈치 챈 이영훈은 이미 잔뜩 몸을 좁게 구긴 채였다.
그렇게 해서 마련한 자리인데.
오늘 이영훈이 이 작품 의뢰 하나로 건물까지 선물받는 놈에게 입을 털었다가는 모든 게 어그러진다.
그렇게 지폐다발을 꽂아넣어도 약속할 수 없는 비눗방울 같은 자리였다.
“네가 그렇게 멍청하진 않겠지만···”
거기까지 말한 이철원의 눈은 꽤 건조했다. 입에서 나오는 말과 반대로 한 줌의 신뢰도 느껴지지 않는 눈이 제 아들을 향했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놈이었다.
– ‘강석 그놈이 고두한 선생한테 돈, 돈 먹여서 A반으로 간 거예요. 그 새끼 원래 여태까지 내내 D반에 있던 놈이라고요. 아버지. 아부지. 악! 아파요! 살려주세요! 진짜예요···!’
– ‘영훈이 아버지! 그만하세요! 이러다 영훈이 죽어요! 아니! 그리고 영훈이가 떨어지고 싶어서 떨어졌어요?! 비리라잖아요! 비리! 내일 제가 학교 선생한테 전화를 걸어서 이것들을!’
– ‘그만!’
첫째를 닮아 일머리가 좋은 것도 아니고, 둘째를 닮아 공부머리가 좋은 것도 아닌 셋째는 어릴 때부터 미술을 시켰다.
돈이란 걸로 재능은 사지 못할지언정, 재능이 있는 것처럼 포장해줄 순 있었다. 셋째는 그렇게 키웠다. 적어도 전공이 아니고 기본소양이나 다름 없는 소묘만 10년 이상 돈을 발라서 가르쳤으면 상위 20명 안에는 들어야만 했다.
학년 전체 상위 20명도 아니고, 같은 학년에 같은 미술과 80명 정도 하는 녀석들 중에서 상위 20명도 못 드는 실력이 비리 때문이라.
그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이철원은 더 들을 것도 없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그냥 손목 시계를 풀었다. 그리고 이영훈은 그날 죽다 살았다.
복에 겨운 멍청한 놈.
이영훈을 바라보는 이철원의 눈에 분노와 짜증이 서렸다. 이게 제 아들이라 내칠 수도 없었다. 그래도 이철원이의 아들이었다.
부글부글 속이 끓어 뒷말을 내뱉지 못하고 이영훈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기어코는 있던 눈치마저 밥 말아먹은 이영훈이 냉큼 입을 열었다.
“···미, 미술대전 얘기는 꺼내지도 않을게요!”
“말 끊지마.”
이철원이 씹어먹을 것 같은 얼굴로 이영훈을 노려봤다.
“죄, 죄송합니다.”
“조용히 하라고 한 게 방금 전인데. 네 놈한테 내가 큰 거를 바라나?”
이철원이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를 손바닥으로 툭툭 건드리며 이영훈을 응시했다. 몸에 학습된 것은 있는지 어깨가 좁은 골목길 사이에 구겨넣은 것처럼 좁아졌다. 움츠린 것이 뒤에서봐도 겁을 먹었다는 게 느껴졌다.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길게 바라볼 것은 되지 못했다.
여기는 바깥이었다.
사람의 눈과 귀는 어디에나 달려있었다.
요즘까지 기계까지 동원해 보고 듣는 세상에서는 더욱 그랬다. 이철원은 표정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며 짖씹듯 내뱉었다.
“하여튼 쓸모 없는 놈.”
회초리 같은 말이었다. 매를 맞은 것처럼 이영훈이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그런 이영훈을 바라보며 이철원은 천천히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오후에 중요한 거래처와 만남이 약속되어 있었다.
강석하고 직접 만나지 못하는 게 아쉽긴 했지만 기회는 많았다. 어찌되었든 그런 놈하고 사귀라고 학교를 보내놓았더니 그거 하나는 말을 잘 들어 다행이었다.
“강석하고 잘 붙어다녀.”
이철원이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더 볼 것도 없다는 듯 뒤를 돌아 나갔다.
나갈 때까지 그의 시선은 한 번도 사람에게 향하지를 않았다.
* * * *
이영훈은 아버지가 나가는 것을 지켜보다가 그대로 테이블에 머리를 박았다. 쿵. 꽤 커다란 소리가 들렸다. 꽃다발을 소중하게 든 이영훈은 북을 두드리듯 제 이마로 테이블을 찍어댔다.
쿵. 쿵. 쿵. 쿵.
작은 소리가 반복해서 울려왔다.
옆 테이블에 있는 사람들이 힐긋힐긋 바라보는 것도 신경쓰지 않고 이영훈의 행동은 반복되었다.
– ‘아니. 생각해 봐. 강석 그 자식이 어디 앉아 있었어? 뒤통수였다고. 비너스 뒤통수.’
– ‘외우지 않았어봐. 비너스 뒤통수를 보고 앉은 놈이 어떻게 비너스 반우측면을 떡하니 그리냐고. 걔 시험 내내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았어.’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제가 강석하고 친구일 리가 있겠습니까. 이영훈은 강석하고 친구가 아니었다.
강석 그 새끼가 학교에서 난다긴다 할 때부터 아버지가 강석하고 친해지지 않으면 죽일 기세로 몰아붙이니까 친구라고 거짓말을 쳤을 뿐이었다.
이영훈은 꽃다발을 어떻게 처리해야하나 고민하며 이마를 쿵쿵 찍었다. 그러면서도 손은 착실하게 진동을 울리는 핸드폰으로 향했다.
“뭔데. 누군데.”
ㅡ 이영훈.
“···············허.”
이영훈이 고개를 들었다. 액정에는 [받지마]라고 적혀있었다. 고등학교 다닐 적까지만 해도 친하게 지냈던 놈이자, 강석과 이영훈이 친해질 수 없는 이유. 김동휘였다.
“내가 씨발, 연락하지 말랬지.”
ㅡ 야···그래도 우리가 몇년 친군데···
“알고 지낸 사이도 친구냐? 요즘 학교폭력 이슈 존나 시끄러운 거 알지? 너 끝났어. 새끼야. 지금 너하고 얽히면 될 것도 안 된다고. 어? 내가 지금 그딴 더러운 거에 엮이면 안 되는 귀한···”
아. 입조심. 입조심. 이영훈이 병역특례를 생각하며 참을 인을 이마에 그렸다.
“하여튼 몇 년 같은 반 교실에서 부대꼈던 클래스메이트야. 엮이지 말자.”
ㅡ 야!
“학교폭력 가해자 부모님이 교편 잡고 있다는 거 소문나면 정년퇴임 되게 잘하실 수 있겠다? 그치?”
ㅡ ·········!
“하루살이답게 조용히 살어. 조용히. 지금이야 강석이 지 성격대로 성실하게 작업만 한다지만 작품 어느정도 뽑아내면 네가 순수미술판에 고개나 들이밀 수 있겠냐.”
이영훈이 그 말을 끝으로 대답도 듣지 않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리고 옷매무새를 점검하고 앞머리로 붉어진 이마를 살짝 가린 뒤. 자리에서 일어섰다.
일단 강석을 만나서 꽃다발을 안기며 사과부터 해야했다.
그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쫓기듯 걸어나갔다.
* * * *
그리고 그 모든 걸 지켜보고 있던 강석이 한쪽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그러나 얼굴 근육이 섬세하지 못해 눈앞에 있는 양선구조차 그 표정이 비소임을 깨닫지 못했다.
‘그렇게 된 거구나.’
강석은 몇 가지 단편적인 대화만으로 모든 상황을 눈치챘다.
“무슨 일 있는감?”
양선구가 잠깐 쪽잠이라도 잔다고 카페로 온 강석이 잠을 청하고 있지 못하자 조심스럽게 물었다. 시끄러워서 못 잔다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아니예요.”
강석이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양선구는 그런 강석의 말에 그렇다면 되었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끄덕이는 양선구 선생님의 몸짓에서 강석이 어디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는지조차 눈치 못챘다는 게 느껴졌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관심은 보통 원래 이 정도였다.
강석 역시도 잠을 청하려고 온 게 아니었다면 방금의 대화를 듣지도 못했으리라. 이쯤 되면 신의 계시가 아닌가 싶었다.
무덤을 하나도 아니고 다섯 개 정도 만드려면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무덤도 보통 무덤이 아니었다. 그 가을. 200일은 밤낮없이 일했고, 종래엔 요새 총독을 맡아 진흙에 파묻혀 살았었다.
강석이 옆을 바라보았다.
여름 하늘 속에서 밝게 빛나는 태양의 햇볕이 창문으로 내비쳤다.
햇볕이 따갑게 다가온다 싶은 순간, 모자를 눌러쓴 사람이 다가왔다. 날카로운 눈동자에 고집스레 다물린 입술과 실내인데도 꾹 눌러쓴 모자가 다가갈 수 없는 벽이 느껴졌다.
고두한이었다.
양선구가 고두한을 보며 놀랐다는 듯 입을 뻐끔였다.
“안사람 직장에 다 오고?”
“안사람 직장에 하필 이놈 작품이 있는데 어쩌겠습니까.”
“언제 오셨어요?”
“방금.”
고두한이 그렇게 말하며 주머니에 손을 쑤셔넣었다. 뭔가 표정은 안 좋은데 기분은 좋아보였다. 그는 입이 근질거린다는 듯 턱을 쓱쓱 쓰다듬으며 푸하, 웃음을 터트렸다.
“뭐예요?”
“석아.”
“·········뭔데요?”
“선물이다.”
그가 주머니에 손을 쑥, 집어넣었다가 꺼냈다. 종이? 인식하는 순간, 고두한 선생님은 8등분으로 접어진 종이를 빠르게 펼쳤다.
커다란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제 43회 대한민국 미술대전 – 구상부문]그렇게 적혀있었다.
이쯤 되면 신의 계시가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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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행운의 덕을 입었으니
포이보스가 언덕을 모두 불태웠지만
그의 깃털은 대지 위로 나를 끌어올리고
–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소네트 중 일부 내용 발췌
188. 1523년 7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