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Michelangelo in my previous life RAW novel - Chapter 218
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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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레차투라sprezzatura.
이탈리아말로 원래 스프레차투라는 경멸하다, 경시하다, 무시하다를 표현할 때 쓰는 단어이다.
그러나 16세기.
르네상스의 3대 거장 중 한 명인 라파엘로의 절친, 발다사레 카스틸리오네 백작이 교양 지침서 【궁정론】을 집필한 뒤. 스프레차투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받아들여졌다.
스프레차투라(sprezzatura, 경멸경시하다)가 스프레차투라(sprezzatura, 어려운 일을 편안하면서도 우아하게 해내는 천재의 방식)로 쓰이기 시작한 거다.
어려운 일을 쉬운 일인 것처럼, 세련되고 우아하게 다루는 능력. 그런 능력을 가진 이를 두고 르네상스인들은 스프레차투라sprezzatura, 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 * * *
강석은 아슈라 왕자를 데리고 집을 향해 걸어갔다. 강석은 피곤하다는 듯 미간을 문질렀다. 기자들 때문은 아니었다.
기자들보다는, 기자들을 쫓아낸 것은 고마우나 도대체 언제까지 따라오려는 것인지 모르겠는 아슈라 왕자의 경호인력 때문이었다. 강석이 슬쩍 뒤를 돌아봤다.
‘청동오리 떼도 아니고···’
엄마 청동오리 뒤를 따르는 오리떼마냥 수행원들이 걸어오는 걸 바라보며 강석이 뒷목을 긁적였다. 오는 건 상관없지만 저들을 다 집에서 재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집이 넓어서 머물수야 있겠지만 그러면 어머니가 너무 힘들어진다.
‘어머니 성격대로면 몇 명이 오던 다 대접하려고 하실 테니.’
어머니가 보시기 전에 아슈라 왕자의 뒤를 따르는 오리떼를 떨어트려놔야만 했다. 애초에 아슈라 왕자가 친구 집에 놀러가고 싶다고 떼를 쓰건 말건, 본래라면 호텔에 어떻게든 쑤셔넣고 편한 마음으로 집으로 향했을 거다.
그랬을 테지만···강석이 눈을 가늘게 떴다. 저 멀리 보이는 성북동 저택을 바라보며 공항에 막 도착했을 때의 대화를 떠올렸다.
– ‘(친구 집에 놀러가는 건, 원래 당연한 일이잖아? 내가 다 배워 놓았다!)’
– ‘(죄송하지만 모든 집안이 친구를 초대하진 않습니다.)’
– ‘(···휴지도 샀는데? 그냥 휴지도 아니야! 3겹 키친타월로 샀어! 어머니가 좋아하실거다!)’
– ‘(휴지를 사오는 건 친구 집이 아니라, 집들이 문화입니다.)’
– ‘(그럴 수가! 포트럭 파티를 위해서 도치찜과 도치알탕이라는 것도 주문해주려고 했는데!)’
– ‘(그건 미국 문화 아닙니까? 그리고 포트럭 파티는 초대받은 사람이 준비해오는 거고요. 제가 아슈라 왕자님을 언제 초대했습니까.)’
평소 과묵한 편인 강석마저 아슈라 왕자의 속성으로 배운 한국식문화에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고 잔소리를 시전했더랬지.
강석은 그때까지만 해도 집에 가서 잠이나 자고 싶은 마음에 아슈라 왕자를 호텔로 데려가라고 수행원들에게 떠밀려고 했었다. 판을 뒤집은 건, 그 다음으로 이어진 아슈라 왕자의 필사적인 어필이었다.
– ‘(······그, 그럴리가 없는데! 아! 한국의 어머니들은 그리고 똥코타이 같아보이던 아들이 친구를 데려오면 좋아한다고 했어. 석이 어머니는 내가 가면 무척 좋아할거다. 날 데려가.)’
– ‘(···똥코타이?)’
– ‘(외톨이!)’
– ‘(설마 독고다이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왕자님. 도대체 뭘 보고 한국문화를 배운 겁니···)’
질타하려던 강석이 말을 멈춘 것도 그때였다.
– ‘아드을. 친구들하고는 잘 놀지?’
가만 생각해보니 어머니 소원이 아슈라 왕자가 말하는 그 엇비슷한 것이긴 했다.
좁아터진 집에 친구를 데려오라는 것이 상처일까, 친구를 집에 데려오란 소리도 못하고 어머니는 항상 강석의 친구를 궁금해했다. 그러니까 친구의 존재유무를 확인받고 싶어하셨다.
비싼 학교에 보내놓았는데 TV에서 나오는 것처럼 평수나 살림살이 따져가며 아들을 따돌리면 어쩌나, 걱정하시면서도 또 그걸 앞에서 티는 내지 못하시고 뒤에서 전전긍긍 하셨다.
눈치 좋은 아들이 그걸 다 눈치챌 줄도 모르고 어머니는 그저 숨을 죽인 채,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얇은 벽 너머로 새어 나갈까 뜨거운 숨만 소리없이 내뱉는 한숨에 축 쳐지는 어깨를 다 지켜보면서도 강석은, 끝끝내 친구를 데려오지 않았다. 정확하게는 못했다. 친구가 없었다. 그 당시에는 친구를 사귀고 싶지도 않았고, 친구가 생기지도 않았다.
강석이 그때를 떠올리며 눈을 가늘게 뜨고 아슈라 왕자를 바라보았다. 키가 작고 강석과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긴 했지만, 그래도 강석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친구 1호 아슈라 왕자가 보였다.
– ‘아들.’
걱정을 감춘 채, 인자한 미소만 지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어머니가 떠올랐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 ‘(왕자님. 갑시다.)’
– ‘(응? 가? 어딜? ·········설마 석이 집에?)’
강석은 아슈라 왕자를 끌고 성북동으로 향했다. 아슈라 왕자는 오는 내내 진짜 데려가주냐는 거냐며 감동의 눈빛을 발사해댔다.
···그렇게 해서 지금에 이르렀다.
그러니 아슈라 왕자는 데려간다. 어머니가 아들이 친구 한 번 데려오는 게 소원만 아니었어도 아슈라 왕자가 달라붙건 말건 호텔로 쫓아냈겠지만. 어머니의 소원을 들어줄 수 있는 기회였다.
“(아슈라 왕자님.)”
“(응, 나의 친구야. 말하라.)”
“(저희 집이 나름대로 넓긴 하지만 수행원들을 다 재울 정도로 으리으리하진 않습니다.)”
“(으음. 그렇다면 내가 한국에 머물 때마다 묵을 별장을 하나 마련해줄까?)”
“(전 저희집이 좋습니다.)”
내 능력으로 내가 얻어낸 집. 주택 빌라에 살던 자신에게 성북동 저택은 최고의 자부심이었다. 그런 성북동 저택을 두고, 아슈라 왕자가 올 때마다 별장에서 묵을 수는 없었다.
“(음······)”
“(그리고 어머니와 아버지와 강채영도 수행원들이 너무 많으면 불편할 겁니다.)”
다는 정리하라고 하지 않을테니 적당히 숫자 좀 줄여봐라. 강석이 뒷말을 다 내뱉기는 귀찮아 눈빛을 쏘아붙였다. 그리고 이제는 강석과 눈빛으로 대화하는 지경에 이르른 아슈라 왕자가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친구의 뜻은 잘 알았어. 내가 해결하지.)”
아슈라 왕자가 근엄이 서린 눈으로 뒤를 돌았다.
강석은 그런 아슈라 왕자를 응시하다 고개를 바로했다.
그리고 미간을 좁혔다.
‘문제 하나가 해결되는가 싶더니 새로운 문제로군.’
강석이 눈을 가늘게 떴다. 짜증이 서린 적갈색 눈동자에 한 명의 인영이 잡혔다. 저만큼이나 짜증이 서린 낯이 불안으로 떨리고 있었다.
이영훈이었다.
‘우리 집은 어떻게 알고···아.’
요즘 대한민국에서 뜨거운 감자 취급인 강석의 집은 마음만 먹으면 찾기 쉬웠다. 강석이 으로 성북동 저택을 맞바꿔먹은 것은 유명한 일화였다.
‘그것 때문에 서울 목공소와 나무공방이 한동안 수강생이 밀물처럼 들어왔다고 했지, 참.’
그때 바이럴이 엄청나게 되었었다고 들었다.
기자들이 성북동 저택에 적당히 거리를 두고 공항이나 다른 곳에 출몰하는 이유는 단순히 강석이 어차피 작업에 들어가면 다른 데에는 눈도 안 돌리는 데다가 인터뷰 요청을 줄기차게 거절하는 편도 아니어서였다.
기자들이 달라붙건 말건 무관심하여, 짜증을 내는 일도 없었기에 기자들은 굳이 강석의 집까지 찾아가 진을 펼치는 일을 벌이지 않았다.
필요하다 하면 강석은 응한다. 그게 기자들 머리에 학습이 되어있었다. 그래서 기자들이 다소 적게 찾아올 뿐. 집을 몰라서 안 찾아오는 게 아니란 사실을 강석은 다시금 되새겼다.
‘그래도 앞으로 저런 녀석도 쉽게 찾아올 수는 없게끔 소금은 쳐야겠네.’
자신이야 상관없지만 강채영과 부모님이 불편을 겪어서는 안 되었다. 성북동 저택은 우리 가족 모두의 보금자리였다. 단 한 명도 이곳을 불편해해서는 안 된다.
강석이 제 보금자리에 접근한 이영훈을 향해 신경을 곤두세웠다. 이영훈이 여기까지 찾아온 이유는 강석도 모르지 않았다.
오는 길에 대한민국 미술대전 구상부문 대상이 강석의 것으로 확정되었다는 기사는 읽었다. 그리고 이영훈은, 뒷돈을 찔러넣었음에도 대상을 가지지 못하게 되었다.
그게 이영훈이 여기에 찾아온 이유일 터.
강석이 머리를 대충 긁적이며 이영훈 앞에 일부러 기척을 내며 접근했다.
그러자 불안한 표정으로 연신 주변을 둘러보던 이영훈이 얼마가지 않아 강석을 발견했다. 그는 숨을 흡, 하고 들이켰다가 모자를 눌러쓰며 강석을 향해 걸어왔다.
“야. 강석.”
“어. 왜.”
“야, 나 좀 도와줘라.”
“뭘.”
강석이 가늠을 하듯 이영훈을 바라보았다. 이영훈은 모른다. 르네상스 쇼핑몰에서 이영훈이 병역특례를 받겠다고 공모(共謀)하던 걸 강석이 목격했다는 걸.
그리고 이영훈이 강석과 친구라고 제 아버지에게 거짓 주장하고 있다는 것을 강석이 안다는 사실도 모른다.
아무것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영훈은 앞뒤를 생략하고 머리를 벅벅 긁으며 말했다. 그의 얼굴에는 왜 자신이 이래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불만이 서려있었다.
진짜 이건 군대가면 큰일날 지도 모르겠군. 강석이 자신과는 멀어진 것을 감상하며 말해보라는 듯 턱짓했다. 아슈라 왕자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수행원을 누구 누구 남길지 아랍어로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는 와중이었다.
“야, 강석. 너도 알고 지원한 거잖아.”
“뭘.”
“대한민국 미술대전. 거기에 보면 대상자는 병역특례 추천이라고 적혀있잖아. 너도 그거 보고 지원한 거잖아. 맞지.”
“······.”
“야, 강석. 나 좀 도와줘.”
이영훈이 덥썩, 강석의 두 양팔을 붙잡으려고 움직이는 순간. 강석이 슬쩍 몸을 피했다. 강석의 두 손과 두 팔은 무엇과도 맞바꿀 수 없는 천금같은 재산이었다.
그걸 믿지도 않는 사람이 덜컥 만지게 둘 수는 없었다.
강석은 두 번 볼 것도 없이 몸을 뺐다. 그리고 이영훈은 허공을 허우적하는 꼴이 되었다. 민망한 정적이 흐르는가 싶더니 이영훈이 본인의 손을 스스로 깍지끼듯 맞잡았다.
“······그래. 내가 너무 갑자기 만지려고 했지. 야. 강석아. 아이씨. 그래. 내가 너랑 학창시절에는 조금 서먹했지. 그래서 모를 수도 있는데, 내가···그러니까 나도 사실 미술대전에 나갔었거든. 구상부문으로.”
“어.”
근데. 어쩌라고. 강석이 무심하게 이영훈을 바라보았다. 오랜 비행을 끝내고 온 참이었다. 강석은 시차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인물은 아니었지만 이영훈과 오래 대거리를 하고 있을 생각이 없었다.
“······하하. 과묵하기는. 옛날이랑 똑같네. 아니. 그니까 내 말은······하하, 그니까 내가 사실은 너만큼이나 자신이 있었거든. 이게···내 입으로 말하기 조금 그런데 아마 너만 아니었으면 내가 대상을 탔을거야.”
뒷돈을 찔렀다는 건 죽어도 말하지 않을 생각인가보군. 강석이 계속해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영훈은 제가 말하고도 민망한지 뒷머리를 손바닥으로 쓱쓱 쓸며 이어서 말했다.
“···그러니까 그···강석아. 사실 너도 알잖아. 너는 대상 같은 쉽게 쉽게 만들어낼 수 있지만 나는 그런 게 아니라는 거.”
이영훈의 얼굴에 어색한 미소가 걸렸다. 강석은 가만히 이영훈을 바라볼 뿐이었다.
“나는 이번 같은 작품 다시는 만들 수 없을 것 같거든. 근데 내년에 공모전에는 똑같은 작품도 제출도 못하고, 나는 군대가 이리저리 조금 순서가 꼬여서···넌 몰라도 난 이번에 꼭 무조건 대상 받아서 병역특례 받아야 하거든.”
누가 보면 대상을 맡겨놓았다.
“그러니까······그러니까 이번엔 네가 그냥 양보 좀 해줘라. 어? 넌 이런거 그냥 며칠만에 뚝딱뚝딱 만들잖아. 너 씨엘로 갤러리 오픈하자마자 미술대전 나온 거잖아. 야. 그게 일반인 같으면 쉬운 일이냐. 너같은 천재는 내년에도 대상 확실하잖아. 그냥 이번엔 네가 양보해서 포기하고, 올해는 내가 대상, 내년에는 네가 대상···”
“이영훈.”
“······어.”
“쉬워 보여?”
“············어?”
강석이 가만히 이영훈을 응시했다.
그래. 이영훈의 눈에는 내가 현대판 스프레차투라 정도로 보이는 모양이었다.
스프레차투라가 있다면 데코로(decoro, 우아하게 보이기 위한 끝없는 노력)도 있는 법이거늘. 강석이 무미건조한 웃음을 입에 걸었다. 목석같은 그의 근육은 그 웃음조차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이영훈의 눈에 닿은 것은 무서울 정도로 경직된 무표정이었다.
강석은 가만히 입을 열었다.
천재라···날 천재라고 생각하고 있었나.
“그냥 외워서 그리는 녀석이라 생각하던 건 아니였고?”
“어, 어···?”
이영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강석의 말에 9월 중순에 접어든 가을이 순식간에 작년 12월로 되돌아갔다.
이영훈이 꼴찌에서 갑자기 1등이 되버린 존재 때문에 소묘 A반에서 B반으로 떨어진 날을 닮은 추위가 주변으로 불어닥쳤다.
– ‘···외워서 그린 것 같은데.’
– ‘아니. 생각해 봐. 강석 그 자식이 어디 앉아 있었어? 뒤통수였다고. 비너스 뒤통수.’
– ‘외우지 않았어봐. 비너스 뒤통수를 보고 앉은 놈이 어떻게 비너스 반우측면을 떡하니 그리냐고. 걔 시험 내내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았어.’
이영훈은 입을 막았다.
그리고는 황급히 고개를 들어 강석을 살폈다.
자신이 비너스 석고상을 그린 강석을 두고 소묘실 앞에서 했던 말이 순간 쏟아진 줄 알 정도로,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라서였다.
이영훈과 강석이 절대로 친구가 될 수 없는 이유.
이영훈이 강석을 모함했고, 박혜연 덕분에 그 일은 무마되었으나 강석 또한 그것을 듣고 있었다.
그리고 강석은···무심하고 고요하나 뒤끝이, 꽤 길다.
“이영훈.”
강석이 눈을 가늘게 떴다.
무표정한 얼굴에 눈만 살짝 휘니 그게 더 무서웠다. 강석은 이영훈을 똑바로 직시하며 말했다. 적갈색 눈동자에 맺힌 것은 스프레차투라sprezzatura였다.
어디 감히 신성한 미술에 거짓을 칠하는가.
“너는 안 돼. 올해도,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이영훈이 나간다면 강석도 대한민국 미술대전에 나갈 거다.
구상부문. 구상부문을 피한다면 비구상부문. 비구상부문을 피해서 디자인부문에 나간다면 디자인부문으로. 뭣하면 공예부문까지도. 이영훈과 이영훈의 아버지가 얼마를 쏟아붓든 몇 번이고. 강석은 식후에 커피 한 잔 땡기듯 나갈 수 있었고, 나가서 대상을 거머쥘 자신이 있었다.
“···············야, 강석아···.”
강석은 그렇게 할 수 있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강석은 손쉽게 해낼 수 있었다.
이건 확신이 아니라 예언에 가까웠다.
누가 보아도 세련되고 우아한 방식으로.
그것이 르네상스를 살아온 천재의 방식이었다.
219. 나의 작품은 나의 자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