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Michelangelo in my previous life RAW novel - Chapter 31
31
* * * *
이른 새벽.
깜깜한 집안. 안방에서 불빛과 함께 말소리가 새어나왔다. 백명희와 강현도가 출근을 준비하는 소리였다.
“·········근데 당신, 석이한테 목조각 가르쳐준 적 있어요?”
“목조각?”
양말을 신던 강현도가 고개를 저었다.
“알려준 적 없는데.”
“그럼 우리 석이가 어떻게 그렇게 목조각을 잘하는 거예요?”
재능인가. 그렇다기엔 이상하다. 화장대에 앉아 선크림을 바르던 백명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중학교 때부터 미술, 그것도 조소 학원만 꾸준히 다녀온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이제 와서 목조각에 대한 재능을 깨우쳤다는 건 이상하지 않나.
어젯밤 창고에서 조각에 필요한 공구들을 꺼내는 폼이 예사롭지 않았다는 사실 또한 의심을 불러일으켰다.
뭐가 뭐에 필요한지 속속들이 꿰뚫어보고 있는 것 같았달까. 재능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노련함이 강석에게서 엿보였었다.
하지만 재능이 아니라기엔 그 요람에 붙인 ‘보라매 새 가족’상이 설명되질 않는다.
도대체 뭘까. 백명희가 답을 찾지 못하고 침묵 속에서 궁리하는 찰나. 강현도가 깔끔하게 침묵을 가르고 들어왔다.
“석이가 1학년 때까지 불상 제작 동아리였잖아. 그때 배운 거 아니겠어?”
“아. 맞아요! 불상 제작 동아리. 석이가 불상 동아리였죠? 어머. 어머머. 내가 왜 그걸 까먹고 있었지.”
백명희가 선크림을 추가로 짜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어젯밤의 의문이 다 풀리는 것 같았다. 그거다. 불상 제작 동아리. 청화예고는 모든 수업이 수준이 높고 빡빡하기로 유명하다. 거기서 일 년간 열심히 배웠으니 웬만한 사람들보다 잘 아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지.
“그래도 우리 석이 대단한 것 같아요. 배워온다고 다 잘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렇지.”
백명희가 이제는 이제 아예 몸을 돌려 강현도를 바라보고 있었다. 예전 같으면 빨리 나가려고 한 마디 말할 시간에 움직이곤 했는데, 요즘 들어 이렇게 대화를 하는 시간이 길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백명희는, 그게 싫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번에 개학하고 석이가 3학년에 올라가면 제가 그 정병권 선생님을 만나봐야 할까 봐요.”
“정병권 선생님을? 왜?”
“왜긴 왜겠어요. 왜 좀 더 믿어주지 못했냐. 이렇게 잘하는 애한테 인문대가 말이 되냐. 우리 애가 이런 애다. 면전에 말을 딱, 해줘야죠!”
백명희는 그날을 아직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강현도는 입에 잘 대지도 않던 소주를 계속 홀짝이고, 강석은 방에서 인강을 크게 틀어놓고, 자신은 숨죽여 울던. 그날의 기억이 아직도 가슴 한편을 저미고 있었다.
정병권의 사과를 받아내지 않으면 분이 안 풀리리라. 백명희는 강단 있게 입을 꾹 다물고 강현도를 바라봤다.
강현도는 슬쩍 시선을 피했다. 강석이 지금에서야 잘하는 건 맞지만, 그 당시 미술 실기 성적이 처참하긴 했다.
“됐어. 우리가 안 찾아가도 어차피 3학년 때면 학부모 상담이 한 달마다 있을 텐데. 그때 가서 보면 되지.”
“그럴까요?”
“그렇다니까.”
얼버무린 강현도가 외투를 입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왜 좀 더 믿어주지 못했냐라. 부모인 우리도 넌 잘하게 될 거다, 어깨를 붙잡고 외쳐주지 못한 걸 누구보고 탓하랴.
강현도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때. 벌써 화를 잊어버렸는지 백명희가 강현도를 따라 외투를 입기 위해 걸어오며 흥얼거렸다.
“정말, 누굴 닮아서 그렇게 잘하나 몰라. 당신. 석이한테 비결 좀 알려달라 그러지 그래요?”
백명희의 말에 강현도가 따라 웃었다.
“이미 비법을 전수받았지.”
“정말요?”
백명희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어봤다. 강채영의 토끼 같은 눈이 어디에서 왔나 싶었더니, 백명희였나 보다.
백명희의 보름달처럼 커다란 눈을 들여다보며 강현도가 비법을 속삭였다.
“석이가 말하기를······”
강현도는 서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조각을 하던 날 밤의 대화를 떠올렸다.
– ‘석아. 어떻게 그렇게 손이 망설임 없이 움직여. 응?’
– ‘어어······그냥 보이길 기다렸다가, 보이면. 그것 외에는 전부 깎아내 버리면 돼요.’
.
.
.
까가가각!
톱질을 하는 소리가 연신 작업실을 울렸다.
워낙 크기가 크고, 톱을 앞뒤로 움직이는 손길 역시 강하고 빠르기에 소리가 날카롭게 찢어졌다. 조각의 외형이 될 부분 외, 귀퉁이들을 빠르게 제거하기 위해서였다.
소리가 울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마지막 귀퉁이가 툭, 소리와 함께 떨어져 나갔다.
나무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사람이 봤다면 조심스럽게 경력을 물어봤을 정도로 경이롭게 깔끔한 절단이었으나, 강석의 표정은 무덤덤했다.
강석은 그저 거친 숨을 한 번 내리 쉬었다.
방금은 그저 불필요한 여덟 귀퉁이를 잘라내었을 뿐이었다. 연필로 그려놓은 외형의 선과 대각선으로 잘린 귀퉁이들 사이에는 틈과 굴곡이 가득했다.
강석은 작업대로 걸어가 자귀를 움켜잡았다. 자귀. 목재를 내리찍는 방식으로 깎아내는 연장의 한 종류였다.
얼핏 보기에는 도끼와 비슷해 보이나 자루와 평행하게 날이 박힌 도끼와 달리, 자귀는 자루의 직각 방향으로 날이 박혀 있었다. 얼핏 보면 망치나 호미가 떠오르는 형태였다.
강석이 자귀를 고쳐잡았다. 그리고 그어놓은 연필의 선을 바라보며 자귀를 내리찍었다.
콱! 콰아악!
그와 동시에 무언가 커다란 것이 이빨을 박아넣는 소리가 작렬했다.
내리찍음에 망설임이 없으면서도, 자신의 몸 방향으로 오지 않게 주의를 하는 기계적인 몸짓이었다. 잘못 내리찍다간 제 몸을 내리찍게 될 수도 있어서였다.
강석은 눈에 불을 켜고 자귀를 휘둘렀다.
콰드득!
손 휘두름 한 번에 쩍 갈라져 망할 수도 있는 대리석보다야 난이도가 낮았지만. 조각은 무릇 유화처럼 덧칠할 수도, 소묘처럼 지우개로 지울 수도 없었다.
한 치의 과오도 용납되지 않는 예술.
그게 조각이었다.
콱! 콰악!
강석은 자귀를 들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나무를 찍었다.
조각도로 다듬기에는 한세월이 걸리는 부분을 미리 쳐내기 위해서였다.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거침없는 강석의 손길에 의해 조각용 나무가 다듬어지기 시작했다.
앞에서 보면 역삼각형, 뒤에서 보면 역사다리꼴 모양을 띠기 시작한 조각용 나무는 기가 막히게 잡은 균형 덕에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제자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강석이 자귀로 역삼각형 아랫부분을 거칠게 내리찍었다. 콰아아악!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나무 일부가 우두둑 뜯어져 나갔다.
몇십, 몇백 번을 반복했을까.
어느새 많은 것들이 떨어져 나가고, 무언가를 연상할 수 있을 만한 둔한 형태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있었다.
“후우.”
한참을 허리를 숙인 채, 기계적인 동작만 반복하던 강석이 조각을 발로 대충 치워내며 허리를 폈다.
허리가 기립하며 투두둑 소리를 냈다. 운동에너지를 최대한 이용하기 위해 조각용 나무를 바닥에 두고 작업을 했더니, 여간 찌뿌둥한 게 아니었다.
‘조만간 헬스장에라도 등록해야지. 아니지. 헬스는 너무 비싸니까 차라리 달리기를 할까.’
헬스든 달리기든 뭐든 운동을 시작해야만 했다. 돌과 나무 등. 거친 재료를 다루는 조각은 힘과 지구력이 필수였다.
요즘은 전동 드릴처럼 조각 작업을 도와줄 기계들이 한가득 쌓여있대도 마찬가지였다.
‘기계는 한계가 명확해. 그것만을 사용해서는 섬세하고 부드러운 결이 나오지 못해. 그러니 이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대형작들을 만들어내려면 결국은 힘과 지구력이 필요하다.’
작품의 크기가 크면 클수록 작품은 위대해지는 법 아니겠는가.
언젠가 전생에 다루었던 것보다 배는 큰 대리석에 올라타 망치와 끌을 휘두를 자신을 상상하며, 강석은 자귀를 책상에 내려놓았다.
곧장 다음 작업을 시작하고 싶지만, 이제는 학교에 가야만 했다.
강석이 미련이 남은 눈으로 나무를 바라보다가 등을 돌렸다.
가야할 시간이었다. 강석이 가방을 챙겼다. 땀을 흘리며 떠오르는 태양을 보고 있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좋다.
이게 사는 거지.
땀으로 흠뻑 젖은 등을 느끼며 강석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희열이었다. 보라매 새들을 조각할 때만 해도 땀이 나지 않아 영 미적지근했는데 이제야 좀 만족스러웠다.
어쨌든 가보실까.
강석이 가구점을 나서기 위해 발을 내디뎠다.
오늘은, 드디어 12일간의 여정을 마무리하는 날이었다.
* * * *
까악, 까악!
하얀 아침. 까마귀 한 마리가 고두한의 작업실 정원을 날아올랐다.
힐긋 시선을 주었던 고두한이 고개를 바로 했다. 작업실 의자들은 텅 비어있었다.
그럼에도 곧 전시회를 앞두고 모두가 밤낮없이 박차를 가해서 그런지 1층에는 연필 특유의 나무와 흑연 냄새가 훅하고, 코를 파고들었다.
고두한이 익숙한 냄새를 맡으며 소나무 분재에 물을 칙, 뿌리는 그 순간. 앞에 있던 여인이 슬쩍 옷깃으로 코를 가렸다.
“오랜만에 맡는 냄새네요. 정겨워라.”
눈앞에 여인, 설여진의 말에 고두한이 코웃음을 터트렸다.
“오랜만은 무슨. 불과 3개월 전에도 여기 와선 그 말을 똑같이 해놓고는.”
“그것밖에 안 되었어요?”
“그래. 그러니까 작작 좀 들려. 내 밑에 사람 또 빼갈까 봐 신경 쓰이니까.”
붓을 들며 고두한이 중얼거렸다.
“내가 뭘 얼마나 빼갔다고. 가만 보면 스승님은 항상 사람을 섭섭하게 만들더라.”
설여진이 고개를 못 말리겠다는 듯 내저었다.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내저어야 할 사람은 자신인데. 고두한이 붓을 들며 참을 인을 제 속에 그려넣었다.
작약갤러리 관장 설여진.
이 여인은 부잣집 고명딸로 태어나 예중예고미대 절차를 밟아 온 부족함 없이 온실 속 화초처럼 자라온 아가씨로, 원래. 고두한 사단의 창립멤버였다.
좀 더 정확하게는 고두한이 거의 처음으로 들인 제자 중 하나였다.
부잣집에서 설거지 한 번 안 하며 살아온 아가씨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눈치가 빠르고, 말귀도 잘 알아먹고, 사회생활을 다방면으로 잘해 모든 동기와 후배에게 사랑을 받던 제자.
그게 설여진이었다.
“네가 섭섭할 게 뭐가 있어.”
말을 하면서도 고두한은 화병이 나, 붓을 내동댕이칠 뻔했다.
그 옛날. 새싹처럼 여린 눈으로 연필을 깎는 설여진을, 고두한은 정말 어여쁜 제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설여진은 점점 실력이 커져 가는 동기들을 바라보며 인생 처음으로 절망했고, 좌절을 맛본 적 없던 아가씨는 스스로 연필을 꺾고 고두한 밑에서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 ‘어차피 안 될 거라면, 다른 길을 가겠어요.’
문제는 그냥 박차고 나간 게 아니란 점이었다. 설여진은 고두한이 애지중지하던 제자 몇 명에게 달큼한 말을 속삭여 손에 손을 잡고 나가버렸다.
“썩을 거.”
“아니. 왜 또 욕을 하고 그러실까나?”
고두한의 밑천을 몇 마디 말로 탈탈 털어버린 거다.
그날부터 고두한은 설여진을 마녀라 불렀다. 헨젤과 그레텔에 나오는 마귀 할망구처럼 달콤한 과자 집으로 제자들을 꼬여낸 마녀.
“몰라서 묻냐?”
“오늘은 욕먹을 짓을 한 기억이 없는데요. 스승님.”
잘도 스승이라 부르지. 고두한이 복잡한 눈으로 설여진을 바라봤다. 마냥 미워하는 눈은 아니었다.
재능 없는 자를 이해하니까.
그 좌절의 벽이 얼마나 두껍고 견고해 보였으면 스스로 연필을 꺾어겠나.
그렇게 극심한 절망을 겪고도 결국 미술판을 벗어나지 못해 관훈동에 작약갤러리를 둥지 삼아 자리를 튼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꺾여버린 날개로 허우적거리는 옛 제자를 보고 있자니 안쓰러웠다.
끝내 절망을 딛고 일어서지 못한 제자가 딱하고 동시에 다른 제자들의 날개마저 꺾어버린 녀석이 원망스럽고, 소묘를 그리 쉽게 포기하고 다른 길을 선택한 제자 때문에 슬프고 안타까웠다.
단어 하나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설여진이 운영하는 갤러리에 개인전을 꼬박꼬박 열어주는 저 또한, 미련한 스승이었다.
‘미운 정도 정이라고.’
그러고 보면, 고두한이 박지엽과 달리 진흙 속 진주와 같이 평범한 것 중에 비범하고 특별한 사람. 한마디로 재능있는 사람을 좋아하게 된 것은 눈앞에 있는 설여진 탓이 컸다.
좌절을 맛볼 필요가 없는 사람.
좌절을 맛보더라도 포기하지 않을만한 비범한 재능을 가진 자.
그 능력을 가꾸면 결국은 꽃 피워낼 가망이 있는 사람.
전부 설여진과는 반대되는 인물상이었다.
마치 강석처럼.
고두한이 입을 꾹 다물었다. 상처 내고 할퀼 말은 여러 개였으나, 오늘도 고두한은 삼키는 걸 선택했다.
그리고는 못내 못마땅하여 불퉁하게 물었다.
“그래서 왜 왔어.”
“또, 또, 본론만 화법.”
“말 안 할 거면 가던가.”
“아아. 정말 스승님이랑 저는 안 맞아요.”
설여진이 사탕을 빼물었다. 온실 속 화초는 설탕물에 절여져 썩어버린 지 오래였다. 매일 사탕을 몇 개를 먹는 건지, 저래서야 치아가 남아나겠나.
고두한이 혀를 차며 소나무를 마저 닦았다.
가뜩이나 오늘 학교에 나갔다가 오면 한동안 강석을 볼 수 없어 심기가 불편한데, 설여진이 찾아와 끝내 속을 버려 놓는 구나. 고두한이 미간을 좁혔다.
꼬리가 있다면 팩팩 사납게 흔들거릴 정도로 화가 난 얼굴이었다.
고두한의 기분이 점점 저조해지고 있다는 걸 빠르게 눈치챈 설여진이 냉큼 종이를 내밀었다.
역시, 눈치 하나는 꼬리 아홉 개 달린 여우보다 빠른 아이다. 고두한이 미간을 좁힌 상태로 종이를 받아들었다.
“이게 뭔데.”
설여진은 머리를 검지로 꼬며 사근사근하게 읊조렸다.
“강석씨한테 전해주세요. 제가 전해주고 싶은데 이른 아침부터 집을 방문하기는 좀 그렇고, 학교에 찾아가는 것도 부담스러워 할 것 같고. 작가님을 통해서 전달하는 게 적절할 것 같더라고요.”
이번엔 또 작가님이란다.
고두한이 요사스러운 여우를 바라보다가 종이로 시선을 돌렸다.
종이를 읽어내리던 고두한의 동공이 점점 커져 갔다.
“야. 이건······!”
벽화 작업 제안서.
종이의 정체는 작약갤러리가 강석 개인에게 벽화 작업을 의뢰하고 싶다는 제안서였다. 한마디로 설여진의 러브콜이었다.
“어제 그렇게 전시권 계약 뺏기고 강석씨에 대해서 뒤늦게 좀 알아봤어요.”
막대사탕이 위아래로 흔들거렸다. 까드득. 설여진의 어금니가 사탕을 깨물었다. 사탕을 깨무는 어금니에는 차분한 분노가 담겨 있었다. 진귀한 것을 몰라본 자신을 향한 분노였다.
“엄청난 작업을 했더라고요.”
“···엄청난 작업?”
그게 뭐야. 고두한이 기억을 더듬었다. 강석이 그런 작업을 했었나. 그 순간 설여진이 알면서 왜 이러냐는 듯, 단어를 던졌다.
“.”
“아.”
아담의 창조. 강석이 르네상스 쇼핑몰 8층에다가 직접 작업한 벽화를 말함이었다.
그건 엄청났지. 고두한은 시간을 내서 가끔 그 벽화를 보러 르네상스 쇼핑몰에 가고 있다.
미술계 사람들 사이에서도 알음알음 소문이 퍼져서 그곳의 인지도가 점점 올라가고 있다더니. 설여진이 어젯밤 그걸 알아낸 모양이었다.
“알았으면 그렇게 안 놓쳤을 거예요. 박지엽 교수님이나 스승님처럼 저도 끈을 대 놓았을 거라고요. 치사하셔라. 아니, 어떻게 저같이 예쁜 제자한테 그런 말씀도 안 해주셨을까아.”
설여진이 주먹을 말아쥐어 허벅지를 퉁퉁 쳐댔다. 원통하다는 몸짓이었다. 까득, 까득. 딸기맛 사탕이 설여진의 어금니에게 잘근잘근 짖씹혀댔다.
“어쨌든. 그거 꼭 전해주세요.”
더 커지기 전에, 지금이라도 어떻게든 끈을 마련하겠다는 갈급함이 담긴 손짓에 고두한이 고개를 내렸다.
고두한의 눈빛은 회의적이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강석이 요즘 꽤나 바쁘다는 걸 알고 있어서였다.
어찌된 영문인지는 몰라도 조각상 제작 의뢰도 맡았다고 들었고, 박지엽 놈하고는 인체 해부학 프로젝트도 같이 하기로 한 상황이었다. 과연 강석이 이걸 진행할 시간이 있으려나.
전해달라면 전해주겠지만 기대는 하지 마라, 그 말을 내뱉기 위해 고개를 드는데 문장 하나가 고두한의 발목을 붙잡았다.
벽화 제작비 지급 항목에 적혀있는 숫자 때문이었다.
[20,000,000원 + α]2천만 원하고도 플러스알파.
벽화 사업을 제안하는 것도 아니고, 갤러리 입구 근처에 벽화 하나 그리는 일이었다.
그거 하나에 태우는 금액이 이천만 원에 플러스알파?
“너 미쳤냐?”
32. 아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