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Michelangelo in my previous life RAW novel - Chapter 44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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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보아라.
미켈란젤로가 처음 시체를 해부한 것은 17세의 일이었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시체 해부에 대한 기록은 1553년이다. 만약 그가 그때까지만 시체를 해부했다고 따지더라도 그 기간은 결코 짧지 않다.
우리는 미켈란젤로가 1564년, 89세에 사망했음을 떠올려야 한다.
굳이 숫자로 따져보자면, 그가 처음 시체를 해부한 날로부터 마지막으로 시체를 해부했다 기록된 날까지의 기간만 무려 61년이다.
조르조 바사리의 기록을 읽고 있노라면 완벽주의자였던 미켈란젤로는 더욱 완벽하게 해부학을 공부하기 위해, 한 번 해부를 시작하면 뼈를 바를 기세로 해부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는 해부할 때면 근육, 힘줄, 혈관, 뼈의 원리와 인체의 다양한 움직임과 표정을 찾아내기 위해 인간의 피부까지 벗겨가며 그 구조와 모습을 기록했다.
그 모든 것이 작품을 더욱 완벽하게 표현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완벽을 향한 그의 집착이 얼마나 집요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래서 더욱 안타깝다.
미켈란젤로가 그 모든 기록을 스스로 불태우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의 지식이 얼마만큼 대단한지 속살을 열어볼 수 있었을 테니.
생각해봐라.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남긴 1,800점의 해부도를 보고 현대 해부학자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는데 그것보다 긴긴 기간을 해부에 매달린 미켈란젤로의 해부도가 남아있었다면?
우리는 새로운 신세계를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 우리에게 남은 건, 그가 남긴 작품들밖에 없다.
– 한양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박지엽 교수와 이지혜 기자의 인터뷰 내용 중 일부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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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오빠는 무슨 얼굴 보기가 그렇게 어렵니.”
윤유란이 체리에이드를 빨대로 쭉 빨아 마셨다. 앞에 있던 강채영이 난처하다는 듯 웃으며 블루레몬에이드를 들이켰다.
“그러게. 나도 요즘은 보기가 어려워서······.”
“그 정도로 바빠?”
윤유란이 놀란 눈으로 강채영을 바라봤다. 그러다 윤유란의 시선이 쭉 내려갔다. 자신이 보고 있던 핸드폰 액정을 향해서였다.
액정 안에는 조금 전 작약갤러리에서 찍은 이 화면을 꽉 채우고 있었다. 이번 고두한 작가님의 개인전이 끝나면 시공을 해서 온 사방이 유리막으로 막을 거라 했던가.
개인전이 끝날 때까지 훼손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작품 앞을 지키고 서 있던 사람이 떠올라 윤유란은 한숨을 푹 내쉬어야만 했다.
“하긴. 이 정도로 대단한 작품을 만드는데 당연히 그렇겠지.”
도 그렇고, 도 그렇고, 처음 를 봤을 때에도 생각했지만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의 작품을 보면 가슴이 빨라지고 황홀감을 느끼게 되곤 하는데 스탕달 신드롬이 따로 없었다.
자신은 감수성이 예민하지 않은 편인데도 그랬다. 그만큼 엄청난 작품이라는 뜻이겠지. 고등학생이 어쩜 그런가. 분명 성공할 거다. 제 예상보다 훨씬 더.
“채영아. 역시 지금이라도 팬카페를 만드는 게 좋을까.”
빨대 끝을 잘근잘근 씹은 윤유란이 자꾸만 나오는 한숨을 삼켰다. 더 유명해졌으면 좋겠는데 나만 알고 싶었다.
“역시 만들지 않는 게 좋을까.”
“무슨 작가가 팬카페야.”
강채영이 말도 안 된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그런가아. 근데 웹툰 작가들은 막 팬카페도 생기기도 하고 그러잖아. 우리 오빠라고 못할 게 뭐야···!”
“그건 웹툰이라서 그런 거 아니고? 그리고 내 오빠거든.”
“웹툰이라서 생긴 걸까나아.”
제 오빠라고 주장하는 강채영의 말은 사뿐히 지르밟은 윤유란이 체리에이드를 마저 쪽쪽 빨아 마셨다. 어느새 체리에이드도 다 마셔가는 중이었다.
윤유란이 아쉽다는 듯 턱을 괴었다.
“거기 카페가 열렸으면 좋았을 텐데.”
“어디?”
“르네상스 8층.”
“아아.”
강채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르네상스 쇼핑몰 8층. 제 오빠가 그린 벽화 가 있는 카페였다. 원래 작약갤러리 개인전을 끝내고 거기에 갈까 했었는데 근처 카페로 틀게 된 이유는 확장 공사였다.
“아니 무슨 확장 공사를 그렇게 오래 해?”
르네상스 쇼핑몰. 정확하게는 쇼핑몰에 그려진 가 핫플레이스가 되면서 지나치게 찾는 사람이 많아지고 난 뒤.
쇼핑몰은 기존 8층 카페를 옥상정원까지 확장할 수 있게 공사를 한다며 너른 양해를 부탁드린다는 말과 함께 8층 문을 닫아버렸다.
괘씸했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란 소리 모르나. 윤유란이 입을 삐죽이며 투덜거렸다.
“핫플레이스는 무슨 핫플레이스. 이렇게 공사 늦게 끝내다가는 쿨플레이스 되겠어.”
“···풉. 쿨플레이스?”
그건 또 무슨 해괴망측한 콩글리위시인가. 강채영이 고개를 저었다.
“아마 쿨플레이스는 안 될 것 같은데···찾아보니까 해외에서도 커다란 를 바로 앞에서 천천히 구경할 수 있다는 말에 반응이 엄청 좋아. 공사 끝나면 한국까지 놀러 오겠다는 사람도 있을 정도던걸?”
“뭐?”
윤유란이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벌써 우리 오빠가 해외에도 소문났어?”
“아니아니. 그 정도는 아니고 그냥 해외에 몇 명이 를 그렸다니까 놀러 온다 정도지. 이게 의외로 진짜 미켈란젤로가 그린 것처럼 똑같다면서···막 난리더라고.”
똑같이 그리면 다 똑같은 거 아닌가. 강채영이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역시 팬카페를 만드는 게 나을지도.”
강채영이 이번에는 말없이 블루레몬에이드만 마셨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눈동자는 소식 없는 핸드폰으로 향했다. 미간이 살짝 좁은 것이 누가 봐도 걱정이 서려 있었다.
아침에 약속 잊지 않았냐고 보낸 코코아톡에 강석은 아직도 대답이 없었다.
2월 25일.
약속한 날인데 까먹은 건 아니겠지?
“오빠는 뭐하려나···”
* * * *
연파랑 하늘.
출판작업으로 수염을 다듬지도 못한 고두한이 조금 껄끄럽다는 표정으로 앞을 바라봤다. 차고처럼 생긴 문 앞에는 [이테룸 유리공방]이라는 간판이 세워져 있었다.
전시회 때 받은 명함으로 강석의 아버님께 연락을 직접 넣어 확인한 장소였다. 여기에 석이가 있다고. 유리공예 작업을 했던 곳에서 작업을 이어가는 모양이었다.
고두한이 턱을 쓰다듬었다. 꺼끌한 수염이 지문을 타고 따라왔다.
내가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됐냐. 고두한이 한숨을 팍 내쉬었다.
– ‘한 번만 가줘. 내가 직접 움직일 수 없어서 그래. 부탁한다.’
– ‘······누군 시간이 넘쳐나냐’
– ‘사흘째다. 사흘 다 합쳐서 4시간도 못 잤어. 그래도 시간이 안 나. 좀 다녀와 줘. 지금 강석 학생만 일주일 넘게 작업 결과가 하나도 없다니까. 원래 손이 빠른 사람인데 통 소식이 없으니까 이상하잖아. 걱정도 되고.’
– ‘그건···그렇지.’
– ‘부탁 좀 한다.’
젠장.
그때 더 강력하게 거절을 해야 했는데. 고두한은 짠해 보이는 박지엽의 목소리에 결국 수락하고 말았다. 물론, 짠한 박지엽의 목소리보다도 신경 쓰였던 건 강석의 부재였다.
강석은 정말 엄청나게 빠른 손을 가지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빠른 손보다는, 자신을 혹사시키는 게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로 자신을 스스로 몰아붙이니 속도가 빠른 거지만.
어찌되었든 그렇게 작업 속도도 빠르고 성실한 녀석이 일주일째 작업에 대한 중간과정도 없이 연락도 잘 안 된다는 건, 충분히 걱정될만한 일이었다.
곧 개학도 앞둔 시점이니 더더욱 그랬다.
이번에 전화로 듣기로는 집에도 두문불출하고, 집에 들러도 죽은 듯이 잠만 자거나 씻고 옷만 갈아입고 나간다 들었다. 아직 성장판도 안 닫힌 것 같은데 벌써부터 그렇게 불규칙한 생활을 하면 어떻게 하려고.
고두한이 혀를 차며 팔짱을 꼈다.
그래도 막상 도착해서 들어가려니까 괜히 방해를 하는 건 아닐까 싶어 걱정스러웠다. 이걸 어떻게 하나. 지금이라도 정병권 선생에게 연락을 넣어봐야 하나.
고두한이 주변을 서성이며 고민하는 그때.
“누구쇼?”
남자 하나가 공방 밖으로 나왔다. 고두한의 모자 아래 그늘진 눈이 가늘어졌다.
“공방 주인 되십니까?”
“그렇습니다만. 혹시 손님?”
“아뇨. 그···석이라고 혹시, 강석이라고 고등학교 2학년 아니, 이제 3학년 올라가는 녀석이 있는데. 내가 그 학생이 재학 중인 학교의 소묘 선생님인데···”
아. 이걸 뭐라고 설명하지. 고두한이 멋쩍어 관자놀이를 긁적였다. 이렇게 자신에 대해 길게 설명하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보통 미술계 인사들을 만날 때면 고두한을 먼저 알아봐 대화가 편했는데 눈앞에 사내는 영 그런 기색이 없으니. 그래도 어떻게든 이 웃긴 상황을 설명해보자.
고두한이 한숨을 삼키며 다시 말을 이어가려는 그 순간.
“강석 선생님을 만나러 오신 거요?”
사내의 입에서 선생님이라는 단어가 툭, 하고 튀어나왔다.
동명이인의 가능성도 있건만. 오히려 고두한은 직감적으로 지금 이 자가 말하고 있는 스승님이 강석임을 알아차렸다.
자신이 아는 강석은, 강석의 곱절은 되어 보이는 사내가 선생님이라고 불러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녀석이었다.
“맞는 것 같은데 좀 볼 수 있겠습니까?”
“으음. 학교 선생님이라니까 당연히 안내해 드릴 순 있는데······지금 영 말을 걸기가 쉬운 상황은 아니라서 말입죠. 일단 따라와 보시겠어요?”
조동범이 머릴 벅벅 긁으며 유리 공방 차고 쪽으로 들어갔다. 뒤이어 따라들어간 고두한이 숨을 흡 참았다. 뜨거운 열이 자신을 덮쳐올 것을 예상하여 한 일이었다.
그러나 아무런 뜨거움도 느껴지지 않았다. 가마의 불을 꺼둔 모양이었다. 바깥보다 조금 따뜻한 정도인 게 이 정도면 가마를 식힌 지 오래되었을 터.
왜 공방에 불까지 꺼둔 거지?
고두한이 의아해하는데 저 멀리 공방 안쪽에 사무실 같은 곳에서 종이에 파묻힌 인영이 눈에 밟혔다. 고두한은 자기도 모르게 천천히 다가갔다. 본능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인영의 이목구비가 뚜렷해지는 순간. 고두한은 한숨 같은 탄성을 내질렀다.
“허.”
강석이었다.
강석이 온갖 종이와 그림이 그려진 책에 파묻혀 붉어진 눈으로 무언가를 읽고 있었다. 고두한이 눈을 가늘게 떴다. 해부학책이었다. 종이들 사이로 쌓인 책에는 헨리 그레이가 집필한 그레이 해부학이라는 이름도 있었다.
세계 최초의 해부학 서적이자 의대생들이 공부할 때 쓰이는 거였다.
‘······인체 해부학 프로젝트 때문이 읽는 건가.’
그것밖에 없었다. 강석의 해부학 지식은 소묘나 예술을 하기에 전혀 모자람이 없었다. 그럼에도 파고든다면 작품을 위한 것일 테고, 현재 인체와 관련된 작업은 인체 해부학 프로젝트밖에 없을 터였으니.
‘그런데 저런 것까지 읽어야 할 필요가 있나?’
어디까지나 이번 프로젝트는 인체 해부학 프로젝트로서, 미대생이 만든 입체적인 해부학 자료를 제공한다는 것에 의의를 두는 걸로 알고 있었다.
고두한이 미간을 세모꼴로 좁혔다. 단순하게 그레이 해부학을 읽으니까는 아니었다. 입체 자료를 만드니까 필요할 수 있었다. 자료를 만들기 위해선 가장 정확한 자료를 찾아봐야 할 테니까.
해부학에 대해서 알고 싶었을 때. 고두한도 떠들어본 적이 있던 책이었다. 근데 강석은 그 정도가 아니었다. 그레이 해부학도, 책들 사이에 있었을 뿐이었다.
수많은 자료가 사무실 책상 위에 쌓여서 얼굴을 가릴 수준인 걸 바라보며 고두한이 고개를 기울였다. 바닥에도 종이랑 책이 한가득이었다. 일주일 내내 책을 읽는다고 읽어지는 양이 아닐 정도로, 많았다.
읽는 시간만 따져도 석 달은 족히 걸릴 양 같은데 강석은 빠른 속도로 종이를 넘기고 있었다. 입 모양이 한시도 가만히 머무르지 못하는 걸 바라보니 중얼거리는 중이었고, 동공은 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냥 넘기는 게 아니라 진짜 다 읽는 중이란 소리였다.
‘대체···저렇게까지 읽어서 만들려는 자료가 대체 뭐야.’
도저히 연상되지 않았다.
“석이가 며칠째 저러고 있는 겁니까?”
당연히 하루 이틀 저러고 있었을 리 없다.
고두한이 조동범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 말에 오히려 조동범이 놀라서 고두한을 쳐다봤다. 강석에 대해서 의외로 잘 알아서였다.
“······벌써 일주일째입니다.”
“일주···뭐요? 일주일?”
그러나 고두한도 일주일 내내 저러고 있었을 거라, 생각하진 않았었다. 일주일이면 오리엔테이션 다음날부터 내내 저러고 있었단 소리였다.
이번에는 고두한이 놀라 조동범을 쳐다봤다. 그런데 조동범이 거기서 한 술 더 떴다.
“지금 10분만 더 앉아있다가는 책상에 앉아서 글만 읽은 지 벌써 19시간째입니다. 화장실만 가고 계속 저기에 앉아서 딴짓도 안 하고 쉬지도 않고 저렇게 읽고만 있으세요.”
이제 보니 빈 그릇들이 종이들 위에 몇 개가 얹어져 있었다. 자리에 앉아서 먹으면서 읽은 모양이었다. 인간의 집중력은 40분에서 50분이라고 누가 그러던데. 저걸 보니 할 말이 없었다.
집중력이야 그렇다 치고 어떻게 저렇게 계속 앉아있지. 건강에도 좋을 리가 없었다. 고두한이 저걸 강제로라도 쉬게 해야 하나, 걱정스러운 눈으로 유리 너머를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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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은 무아지경으로 종이를 넘겼다.
강석은 전생을 떠올리기 전에도 성실한 학생이었다. 실기력이 안 좋아, 그 노력이 겉으로 태가 나는 일이 없어서 그렇지. 본격적으로 미대생들과 강석의 노력을 비교하자면, 그는 결코 노력이 부족하지 않았다.
물론 전생을 떠올린 강석의 입장에서 스스로 노력을 했다 하는 것도 민망해했지만.
겨우 고등학생의 나이로 그레이 해부학책을 읽어가며 그걸 또 공부하고, 해부학 관련 자료는 물론, 미술사 등도 꼼꼼히 읽는 노력은 보통의 노력이 아니었다. 게다가 강석은 수능 공부를 하는 것보다 더 열심히 했었다.
그야말로 이거라도 잘 알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머릿속에 욱여넣었었다. 머리에 하도 넣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김동휘의 틀린 지식을 지적한 적이 있을 정도로. 달달달 외우고 살았다.
분명 그랬는데.
분명 그랬을 텐데.
달랐다.
완전히 달랐다.
시원하게 종이를 넘기는데도 단순한 활자가 아니라 이론이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그림을 보면 전생의 기억과 겹쳐져 새로운 이론이 정립되어갔다.
400년보다는 길고, 500년보다는 짧은 시간 전에 확립한 지식이 날뛰었다. 물론, 실제로 해부에 참관한다거나 카데바를 통해 시체로 수술 시연을 하는 걸 보고 싶기도 했지만. 미성년자에겐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니.
그럴 필요가 없기도 했다.
모든 게 읽을 때마다 머리에 흡수되고 있었으니까. 강석의 동공이 빠르게 흔들렸다.
말 그대로 지식을 빨아들이는 중이었다.
팔락, 팔락, 팔락, 얼마나 무아지경으로 종이를 넘겼을까. 어느새 더이상 넘길 것이 없음을 깨달았다.
아.
다 읽었다.
강석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벙진 얼굴로 고두한과 조동범이 저를 바라보고 있었다.
골방에 틀어박혀 인체 해부학 자료만 본 지 날짜로는 일주일, 연속된 시간으로는 19시간 16분이 되는 시점이었다.
“선생님이 여긴 어쩐 일이세요?”
사무실에 나온 강석이 고두한을 바라보며 물었다. 질문하는 와중에도 강석은 몸이 찌뿌둥한 지 팔과 목을 이리저리 움직여댔다. 한쪽 손에는 서류봉투를 낀 채였다.
“잠깐 들렸다. 다시 갈 거야.”
“아, 그래요? 근데 진짜 어쩐 일로 오신 거예요?”
“뭐긴 뭐야. 박지엽이가 일주일 넘게 연락이 안 된다고 오두방정을 떨어대니까 들려준 거지.”
그 말에 강석이 눈을 끔뻑였다.
“벌써 일주일이나 지났어요?”
그렇게나 지났다고?
이영혁 할아버지네의 칡부엉이상을 전달해준 다음 날부터 골방에 틀어박혀 있다보니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모르고 살았다. 해봤자 겨우 이삼일 지났겠거니 했는데.
어쩐지 집에 들를 때마다 가족들이 걱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더라. 강석이 이제야 이해가 간다는 듯 기억을 되짚었다.
“어이구. 도대체 얼마나 집중을 했던 거야?”
특유의 삐뚜름한 미소를 지은 고두한이 유리창 너머의 사무실을 힐긋 바라봤다. 다시 봐도 어마어마한 양의 책이었다. 저것들을 읽으며 골방에 틀어박혀 있었으니 시간 가는 줄 모를 만도 했다.
애초에 일주일 내내 그렇게 집중할 수가 있다는 게 가능한지 싶었지만.
“음.”
“뭐, 됐다. 네가 신기한 게 하루 이틀이냐. 그런데···석아. 대체 뭘 하려고 저렇게까지 준비를 하냐. 자료가 아니라 뭐 논문이라도 발표하려고?”
“설마요.”
고두한의 말을 강석이 전면 부정했다.
강석의 본업은 조각가였다. 강석은 한 번도 자신의 본분을 잊어본 적이 없었다.
누군가는 집념이라 표현하고 누군가는 집착이라 표현할 그의 해부학을 향한 탐구는, 오로지 작품을 위한 것이었다.
“혼을 담아보고 싶어서요.”
“혼?”
“말로는 구구절절 어렵고, 스케치라도 보실래요?”
강석이 자신감 있는 표정을 지으며 무언가를 내밀었다. 팔 한쪽에 끼어 있던 서류봉투였다. 서류인 줄 알았더니 종이를 넣어놓은 봉투였던 모양이었다.
고두한이 봉투를 받아들었다.
“이번에 만들 작품의 스케치인 거지?”
“나흘 정도 전에 만든 초안이라, 상당 부분 고쳐야 할 것 같긴 하지만요.”
일단 맞단 소리였다. 고두한이 봉투 안에서 종이를 한 뭉텅이 끌어올렸다. 상당히 많은 양이었다. 고두한이 미간을 좁히며 종이를 내려다봤다.
그리고 종이 위에 그림과 고두한의 시선이 맞닿는 순간. 고두한의 눈가가 움찔 떨렸다.
이게 뭐야.
“이건···해부도잖냐.”
해부도.
생물을 갈라 그 안에 내부 구조를 세밀하게 그려낸 그림.
인체 해부도였다. 보는 것만으로 웬만한 사람들은 흠칫 놀랄 정도로 정교하고 사실적이어서 그로데스크하기까지 한, 그런 실사에 가까운 수준의 해부도.
이렇게 사람의 원래 모습이 잘 그려질 정도의 해부도는 처음이었다. 종이를 넘기던 고두한이 놀란 것은, 단순히 내부 구조만 살핀 것이 아니라 그 겉가죽까지 그렸다는 점이었다.
사람의 시체를 가른 현장을 보는 것 같은 생생함에 웬만한 일에선 흔들리지 않는 고두한도 흠칫 시선을 돌릴 정도였다.
그것도 한 명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었다.
종이가 빠르게 넘어갔다. 형상이 뚜렷하게 구분되었다.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다. 평범한 인체 해부도라기엔 무언가 각각 특징이 있었다. 그 특징별로 종이를 넘기던 고두한은 세어낸 숫자를 자신도 모르게 혀로 굴렸다.
“일곱.”
총 일곱이었다.
“일곱 명이구나.”
“예. 죽음을 목전에 둔 일곱 명의 사람의 해부도죠. 이걸 입체로 만들 거예요.”
“이 사람들을 모형으로 만든단 소리냐?”
“모형···으음. 조금 다르긴 한데 맞아요. 죽음을 목전에 둔 일곱 명의 육체를 재현해낼 건데. 병과 공존하는 육체를 입체로 만들어보는 거죠.”
“흠.”
고두한은 조금 걱정된다는 듯 눈썹을 세모꼴로 좁혔다.
“이게 혹시 카데바(의학 연구를 위해 기증된 해부용 시체)를 모델로 한 거라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스케치만 봐서는 피부까지 표현해낼 생각인 것 같은데···어떤 식으로 표현할지는 모르겠지만, 실존하는 사람을 모델로 한 거잖냐.”
알려지면 유가족들이 들고일어날 일이었다.
심지어 이렇게 병을 몸에 담은 상태로 구현된다면, 그들의 가슴에 두 번 대못을 박는 일이 될 터. 고두한이 이건 안 된다며 고개를 내젓는 순간. 강석이 말했다.
“예? 이건 실존하지 않는 사람인데요.”
“······뭐?”
“실존하지 않는 사람의 몸에다가 수술기록지랑 논문에 기록된 대로 병을 담아본 것뿐이에요.”
실존하지 않는 일곱 사람을 그럼 창조해낸 거란 말인가.
게다가 그 일곱 사람 몸에다가 각각의 질환을 박아넣어 인체가 어떻게 변하는지까지 구현해내었고?
고두한이 할 말을 잃었다. 이걸 그저 수술기록지와 논문을 보고 만들었다고.
고두한이 입을 다물었다.
분명 저걸 강석이 혼자서 긁어모았을 리는 없다. 자료의 제공자는 박지엽이겠지.
해부학의 용어 대부분은 한국어로 번역하기보단 영어로 바로 읽는 게 더 편하지만. 강석이 이해하기 힘든 전문적인 의학용어만큼은 풀어서 쓰인 해석본을 자료로 제공했을 터였다.
즉, 전문적인 의학용어를 강석이 해석해서 그림으로 풀어낸 것은 아닐 거였다.
그러나 그래도 놀라웠다. 해석을 해봤자 수술기록지고, 해석을 해봤자 논문이었다. 해부학에 전반적인 지식이 없다면, 반절도 알아듣기 어려울 게 분명했다.
게다가 지금으로부터 나흘 전에 만들었고, 여기서 더 보강할 것도 있다고 했다.
············이게 된다고?
이게 어떻게 돼.
고두한 역시 정보의 축복 속에서 인체를 파고들어 평생을 공부한 사람이었다. 박지엽과 고두한이 인체 해부학을 위해 할애한 시간은 결단코 강석보다 길었다.
그런데 졌다.
글만 보고 이걸 구현해내다니. 고두한이 기억을 더듬었다. 생각해보면 에 그려진 수천 명의 사람도 실존하는 이가 없었다. 같은 자세로 그려진 사람 역시 없었다.
이는 마치 미켈란젤로가 그린 에 등장하는 391명이 한 명도 같은 자세로 그려지지 않은 것과 같았다. 해부학에 능통해야만 가능한 행위였다.
‘도대체 뭐지?’
강석이 수십 수백 수천의 시체를 해부한 것도 아닐 텐데 어떻게 가능한가.
아니 했다고 해도 그냥 그대로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과 없던 것을 창조해서 재현해낸 것은 다른 문제였다.
이건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단순한 노력이나 열정으로 닿을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아.
이제 알겠다.
고두한이 깨달음을 얻은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천재였다.
❝Si vous ne croyez pas au génie, ou si vous ne savez pas ce qu’est le génie, regardez Michel-Ange(천재를 믿지 않거든, 혹은 천재가 무엇인지 모르겠거든 미켈란젤로를 보라).❞
– 로맹 롤랑(1866~1944) –
45. 카라멜 시럽을 부은 것 같은 느티나무 식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