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Michelangelo in my previous life RAW novel - Chapter 92
92
* * * *
1494년 10월 13일.
아마디오는 동생 하드리아누스에게 쓴 편지 내용 중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정원의 조각가 미켈란젤로가 피에트로에게 아무 말도 없이 베네치아로 떠났어.”
* * * *
리셀.
제한된 수량만 판매하는 한정판이나 기간 한정 콜라보 제품 등 인기 있는 상품을 구매한 뒤 비싸게 되파는 행위.
그것이 리셀이다.
주로 의류나 운동화 등이 리셀의 대상이 되곤 하지만, 여기에는 다양한 제품군들이 포함될 수 있다.
한정 굿즈라거나 만년필 한정판 상품이라거나 일반적인 중고거래와는 달리 값이 올라가는 것들도 이에 해당할 수 있단 소리다.
어찌되었든 이런 것들을 사들여 전문적으로 리셀을 하는 사람들을 향해 우린 리셀러라 부른다.
요근래 젊은이들의 재태크 방식으로 활용되는 이 리셀은, 재판매할 경우···심하게는 원래 가격의 수십 배에 달하는 웃돈을 붙여 막대한 시세차익을 낼 수 있기 때문에 MZ 세대는 이를 두고 리셀 테크라 명명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 아트바젤 마이애미비치에 리셀 테크를 노리고 강석의 판매대 앞에서 대기를 타고 있는 한재웅 또한 리셀러였다.
‘이거 어쩐다······.’
그는 마이애미에 놀러온 상태에서 한국에서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강석이 아트페어에 참여한다는 소식을 들었고, 겸사겸사 구경이나 가보자는 가벼운 마음에 일정을 경유해 여기로 온 참이었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강석이 수제 쉬머펄 잉크와 수제 글라스 딥펜을 100개 수량 한정으로 굿즈 판매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걸 알게되던 그 순간까지는···예약 키오스크를 통해 구매 대기 순번을 받을 때까지는···, 한재웅 본인은 철저히 리셀러로서 대박을 쳤다고 생각했다.
강석의 제품은 사고 싶어도 살 수 없다.
그리고 살 수 있다 해도 대부분은 비싸서 사지 못한다.
그런 상황에서 절대 싼 값은 아니지만 강석이 수제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면 거기에 한정판이라는 사실까지 더한다면 꽤 합리적인 가격인 쉬머펄 잉크와 수제 글라스 딥펜은, 당연히 대박 품목이었다.
때문에 한재웅도 처음에는 신이 났었다.
‘······처음에는 말이지.’
초조하게 다음 순번을 기다리는 한재웅의 표정은 일그러졌다. 아니, 울상에 가까웠다.
이유는 간단했다.
강석의 굿즈를 되팔고 싶은 마음이 점점 사라져가는 탓이었다. 전문 리셀러로선 단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던 한재웅으로서는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여기에다 점 하나 찍어보실래요?)”
“(점 말이죠. 후후. 네. 찍어야죠. 전 말이에요. 아주아주 큰 점을 그릴 생각이랍니다.)”
“(기대되는데요.)”
“(그렇죠?)”
이제 제법 입에 붙은 영어로 손님을 응대하는 강석을 바라보며 한재웅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자신도 자신이 왜 이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잉크 뚜껑 한 번 안 열고, 사용 한 번 하지 않는 것으로 벌어들일 수 있는 차익이 얼마인데 왜 한재웅은 저 딥펜과 잉크를 써볼 생각에 심장이 두근거리는가.
‘내가 어린애도 아니고······아, 진짜.’
순서는 계속해서 다가오기만 했다. 왜 이렇게 순서가 다가오는 시간이 빠른 것 같지. 그런 생각을 하며 한재웅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주변의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대부분은 언제 자신의 순서가 되나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몇몇은 현재 몇명째인지 확인하고 다시 작품을 보거나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며 무리를 이탈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 사이로 한재웅과 똑같이 초조한 낯을 하고 키오스크를 지켜보는 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몇 안되는 사람들이지만, 한재웅은 그들이 누구인지 통성명없이도 알 것 같았다.
‘나와 같은 리셀러구나.’
판매를 시작한지 하루도 안 지났는데 어디서 듣고 왔는지 리셀러가 꽤 북적였다. 대부분은 한국인들이었다.
‘다들 나처럼 고민중이구나.’
분명했다.
대화 한 번 나눠보지 않았는데 심리상태를 공유하는 것마냥 생생하게 느껴졌다.
···만약 저들이 팔지 않는 쪽으로 추를 기울이면, 파는 자는 더 많은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을 터였다.
기왕이면 가장 많은 시세차익을 거두는 사람은 자신이 되고 싶었다······되고 싶었지만, 과연 그게 가능할까? 한재웅은 초조한 낯을 감추지 못하고 사람들을 바라봤다. 마치 거울을 바라보는 기분이었다.
그때였다.
“(다음 손님.)”
강석의 차분한 목소리와 함께 핸드폰이 진동음을 토했다. 자신의 주머니에서 울리는 핸드폰을 한재웅이 더듬더듬 만졌다.
제 차례였다.
차분하게 사람이 오기를 기다리는 강석을 바라보며 한재웅이 천천히 걸음을 떼었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사놓기나 하자. 그렇게 대충 결론을 내리며 한재웅이 강석의 앞자리로 가서 털썩 주저앉았다.
.
.
.
그래서는 안 되었다.
한재웅은 완성된 그림이 말라가는 걸 바라보며 넋을 잃은 표정을 지었다.
엽서의 흰 면에는 한재웅이 가장 좋아하는 바다가 그려져 있었다. 노을을 삼킨 바다는 아름답고 잔잔하게 흘러가는 채였다.
이걸 내가 그린 거라니.
한재웅이 놀랍다는 눈으로 바다를 바라보았다.
평생에 그림과는 연이 없는 줄 알았는데···이렇게 보고 있자니 여태까지 투자를 하지 않았을 뿐. 꽤 감각이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분명했다. 난 꽤 그림에 재능이 있다.
이 참에 잉크나 한 번 모아볼까.
꼭 그림이 아니어도 일기나 글쓰기에 좋을 것 같은데···그러고 보니 요즘 한정판 만년필이라고 나오는 것들도 많던데···나도 하나쯤은 사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말라붙는 그림을 바라보는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한재웅의 손에는 어느새 파란색 유리 인간이 달린 딥펜과 잉크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 파란색. 한재웅이 가장 좋아하는 색깔이었다.
보통 리셀을 계획했다면, 피렌체의 노을의 전체적인 색감과 가장 합이 맞는 붉은색 계열을 택했을 터였다.
아.
망했다.
내가 왜 파란색을 골랐지.
강석의 굿즈는 무조건 1인당 1번만 구매가 가능했다.
한 번에 여러 개를 구매하는 것도 불가, 다시 구매하는 것도 불가, 교환도 불가였다. 계산하기 전에 지금이라도 붉은색 계열로 바꾸어야···바꾸어야···하는데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솔직하게 파란색, 갖고 싶었다.
한재웅은 빠르게 뇌와 합의를 하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그래.
생각해보면 리셀러라고 해서 놀러온 곳에서 우연히 발견한 작가의 작품까지 리셀해야 할 필요가 있나? 리셀러도 잠깐 해먹고 사는 거지, 이걸 평생 직업으로 생각하고 있는 건도 아닌데 너무 직업정신 투철한 거 아니냐고. 그래. 오늘은 그냥 개인용품으로 사고, 다른 제품이나 리셀하자. 뭐···이번에 연예인하고 콜라보해서 또 운동화 커스텀 나온다더만 그거나 팔면 되지. 응.
그렇게 하자.
한재웅이 마음의 결단을 내리는 순간.
강석이 고개를 들며 물어봤다.
“가격 부분 설명드릴게요. 세트 판매가는 최소 397달러, 한화로는 약 52만원이고요. 최소 397달러부터 상한선없이 자유롭게 결제 가능합니다. 편하게 방금 경험하셨던 체험비 포함해서 결제 해주시면 됩니다.”
강석의 설명을 들으며 한재웅은 생각했다.
실물 대면은 처음인데 선명한 적갈색 눈동자가 꽤 특이했다.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꼭 오래된 붉은 나무를 보는 기분이랄까. 아. 이럴 때가 아니지.
물끄러미 자신을 바라보는 강석에게 한재웅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네. 알겠습니다.”
“예. 여기 종이요.”
강석은 직접 금액을 작성하라는 듯 정품 인증서와 계약서 밑에 금액 구간을 밀었다.
금액은 진짜 알아서 하라는 듯 강석은 잉크펜 뚜껑을 닫는 시늉을 하며 시선을 돌렸다.
자신은 신경쓰지 말고, 적고 싶은대로 적으라는 배려 같았다.
한재웅은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의 손에는 아직 잉크가 남아있는 비매품 딥펜이 들려있었다.
종이를 잡아 제 앞자리로 끌고 왔다.
한재웅은 아까부터 여기서 지켜봐왔기에 모두가 이 얘기를 영어로든 한국어로든 번역어플을 통해서든 듣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걸 지켜보며 한재웅은 ‘참 이상하게도 말한다. 당연히 52만원이지, 거기서 뭘 더 결제할 것이 있나?’ 그렇게 생각했었다. 당연히 52만원을 결제할 생각이었다.
근데···모르겠다.
한재웅의 손가락이 휘리릭 종이 위를 자유롭게도 움직였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진짜.’
마치 유모차를 사러 갔다가 아이를 위해서라는 말에 가장 좋은 하이엔드 유모차를 결제하고 홀린듯 나오는 가장처럼.
한재웅은 당당하게도 1,588달러를 적어넣었다.
무려 한국 돈으로 208만원 돈이었다.
강석은 끝까지 배려 넘치는 무표정으로 계산을 해주고, 정품인증서와 계약서 영수증 그리고 블룸에서 준비해준 고급스러운 종이 쇼핑백에 포장된 잉크와 딥펜을 담아주었다.
배웅을 하는 그를 보며 한재웅은 꾸벅꾸벅 고개를 숙이며 부스를 빠져나왔다.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앞으로 걷던 한재웅은 확신했다.
리셀? 재판매?
아무도 못하리라. 아무도 이 제품을 판매한다고 나서지 않으리라. 이건 거의 예언에 가까운 직감이었다.
“(다음 손님.)”
무심한 얼굴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다음 손님을 부르는 강석을 바라보며 한재웅은 뒤늦게 깨달았다.
‘아. 사인이라도 해달라고 할 걸.’
대박 상품을 놓친 한재웅은 뜨거워지는 귓불을 매만지며 생각했다. 마이애미가 한국보다 덥긴 덥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한재웅이 엽서를 꾹 잡았다.
어쩐지, 새로운 취미가 생길 것 같았다.
* * * *
“그럼 가보겠습니다.”
늦은 오후.
마이애미 비치에는 노을이 지고, 해변가 근처 건물들이 네온으로 몸을 치장하기 시작하는 시각.
강석은 텅 비어버린 판매대에서 일어섰다.
그의 손에는 비매품 잉크와 유리 딥펜 몇 개를 넣어놓은 종이 쇼핑백이 들려 있었다. 판매용은 잉크와 딥펜은 아무데도 없었다.
즉, 아트페어가 개막한 지 하루만에 그 굿즈를 다 팔아버렸단 뜻이었다.
진도욱 관장과 진유미는 비어버린 판매대를 향해 묘하게 아쉬운 눈길을 보냈다. 내일부터 굿즈를 보느라 반복적으로 블룸 부스를 회전문 돌듯 움직이는 관람객들이 없을 거란 생각에서였다.
“저···앞으로 일정은 어떻게 되세요? 숙소로 제가 바래다 드릴까요?”
“아. 혹시 숙소 말고 작업실로 데려다주실 수 있나요?”
작업실.
여기서 말하는 작업실은 블룸이 구해주었던 그 임시 작업실 말고, 강석이 시모네 카사니로부터 사들인 하얀 건물을 말함이었다.
진유미가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작가가 개인으로 참여한 게 아니라면 아트페어 현장 부스를 돌아다니는 것도 드문 일이었다.
애초에 강석은 작품을 판매할 생각도 아니었으니 있을 필요가 없었는데 굿즈까지 판매해주기까지 했으니···블룸 입장에서는 그가 부스 흥행까지 도와준 것이나 다름 없었다.
‘이렇게 얻어먹기만 해서야 나중에 프레스코 건물 안에 굿즈샵을 내겠다는 말을 창피해서라도 못하지.’
진유미가 뭐라도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진도욱 관장에게서 차키를 뺏듯이 손에 쥔 뒤. 강석을 이끌고 주차장 쪽으로 달려가듯 걸어갔다.
강석이 걷는 길목마다 블룸 부스의 경이로운 흥행을 목격한 갤러리 관계자들이 눈을 빛냈다.
아침에야 몰랐지만, 지금은 모두가 알았다.
블룸 부스가 그렇게 사람들을 이끌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저 앳되고 부드러운 얼굴의 작은 거인이 어떤 사람인지. 지나가는 모두가 강석을 알아보았다.
진유미는 최대한 티 안나게 보석 같은 강석을 가리려고 했지만, 그녀의 작은 몸으로 가린다고 가려질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강석은 생선가시처럼 길게 늘어진 전시 부스장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매달고 걸어갔다.
마치 전시장을 패션쇼 런웨이 현장으로 만들어버린 강석의 입꼬리가 아무도 모르게 씰룩, 움직였다.
매우 만족스러운 아트페어 데뷔라 할 수 있었다.
.
.
.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아트바젤 마이애미비치에서 일어난 강석의 활약은 인터넷 기사 몇 개를 쏟아내는 쾌거를 이루었다.
한국의 미술 시장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이 옅었기에 겨우 몇 개였을 뿐이지만, 좁은 국내 미술업계에서는 대단한 이슈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흘이 지났을 무렵.
블룸 미술관은 그들의 원목표대로 아트바젤 마이애미비치 최고의 부스 10에 선정되는데 성공했다.
글로벌 미술 플랫폼 아트시에서 최고의 10대 부스로 갤러리 세션내 블룸 부스를 언급하며, 이 부스의 성공 요인은 강석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미술 플랫폼 중에서는 최대 규모라 손꼽히는 아트시에서도 강석의 활약을 인정했단 뜻이었다. 뉴스를 리딩하던 진유미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작가님! 기사가 하나 올라왔는데 여기 작가님 얘기도 있어요!”
청색 하늘.
따사로운 햇볕.
시원한 바람.
부드럽게 흩날리는 머리카락.
해변가에 어울리는 하얀 원피스를 입은 진유미가 핸드폰을 들이밀며 걸어갔다. 나무 통굽으로 된 진유미의 구두가 통통 소리를 내었다.
진유미는 나무마냥 두꺼운 하얀 기둥을 손으로 끼고 반바퀴를 돌며 계단을 올랐다. 건물 안. 돌로 된 건물에서 오는 서늘한 기운과 함께 따사로운 햇볕 속에 색을 밝히는 푸르른 것들이 시야를 장악했다.
하늘보다 푸르르고, 바다보다 시원한 파랑이 건물 바닥에 즐비했다.
익숙한 광경임에도 이 문을 통과할 때면 심장이 두근거렸다. 아름다운 색색의 청색 원료들은 꼭 바다를 연상케 했다.
저 밖에 펼쳐져있는 마이애미비치보다 더욱 푸르르고 청아하여 진유미는 휴가를 받은 부스 마지막 날조차 이 건물 근처를 못 떠나고 있었다.
···근데 작가님이 어디 계시지?
진유미가 보이지 않는 강석을 찾아 고개를 돌렸다. 사방이 조용했다. 아직 바닥에는 원료가 되지 못한 돌들과 원재료들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진유미가 통통, 그 사이를 폴짝폴짝 뛰어다녀 하얀 난간 쪽으로 다가갔다. 조용한 건물 안. 위에서 도란도란 말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분명 카사니와 강작가님이었다.
카사니는 서핑을 하고 난 뒤에는 꼭 여기서 조잘조잘 강작가님과 떠들고 가곤했다.
진유미는 그들의 말소리를 쫓아 천천히 계단을 올라갔다. 목소리가 가까워져갔다. 소리는 선명해졌지만, 진유미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들은 이탈리아어로 대화했으니까.
“(여기에 붙이면 되겠어?)”
“(음. 딱 좋아.)”
진유미가 빛이 새어나오는 문틈 사이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혹시 중요한 이야기중에 방해를 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최대한 기척을 죽인 채였다.
문틈으로 고개를 내밀자 강석의 등이 보였다.
문득 부스 첫날에 보았던 강석의 등보다 넓어보인다는 생각을 한 것도 잠시. 강석의 왼손에 들린 연필이 보였다. 연필. 연필···!
진유미의 눈동자가 커졌다.
동시에 조금이라도 강석의 연필이 움직이는 방향, 그러니까 벽에 붙은 종이를 제대로 보기 위해 그녀의 몸이 기울었을 때였다.
강석의 손이 움직였다.
벽에 붙여진 종이를 향해 휘두르는 한줄기 선은 파도와 같이 시원했다.
진유미가 문 기둥을 잡고 있는 힘껏 고개를 기울였다.
그제야 등 너머로 가려져있던 종이가 눈에 들어왔다.
하얀 공간 속에서 회색의 아름다운 선이, 춤을 추듯 움직이고 있었다.
파도였다.
93. 그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