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Only One With Genius DNA RAW novel - Chapter 2
1화. 주임 연구원 류영준 (1)
===================
제약 회사 에이젠의 주임 연구원, 류영준은 힘 빠진 걸음으로 복도를 지나고 있었다.
여자친구 박소연의 전화를 받은 게 그 때였다.
-오빠, 진짜 회사에서 징계 받았어? 부서 이동이랑 정직?
그녀가 던진 첫마디였다.
“응.”
류영준은 무미건조하게 대답했다.
-정직은 얼마나?
“1개월.”
-회사 그만두진 않을 거지?
“맘 같아선 당장 때려치우고 싶지만 우리 집 경제 사정 알잖아. 나 일 그만두면 우리 부모님 거리에 나앉아.”
-휴우······.
그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잠깐 생각을 고르다가 말했다.
-오빠. 우리 관계 다시 생각해보자.
“뭐?”
-사람들이 다 지나가다가 나 볼 때마다 수군대. 이번에 사고 쳤다는 류 박사랑 사귀는 여자가 쟤냐고.
“아니, 잠깐만. 내가 잘못한 게 아니잖아? 난 연구 윤리를 지키려고 했을 뿐이야. 진심이야?”
-진심이야.
류영준이 할 말을 잃었다.
너무 예상 밖에 충격적인 말을 들었더니 머리가 물리적으로 울리는 듯했다.
“······. 진짜 믿을 수가 없다. 어떻게 네가 날······. 소연아. 나 지금 얼마나 힘든지 알잖아? 이럴 때 날 떠난다고? 위로해주는 게 아니라?”
-나도 믿어지지가 않아. 사내 커플이고 같은 연구소에서 층만 다르고 부서만 다른 사이에, 오빠가 연구 소장님을 들이받아 버리면 난 얼마나 곤란해질 것 같아? 그 정도도 내 생각을 못해줘?
“그 소장이랑 경영진이 무슨 짓을 했는지 너도 알잖아! 그런 비열한 짓을 못 본 척 하는 게 과학자야?”
-그런 비열한 짓을 못 본 척 하는 게 사회인이야.
박소연이 말했다.
“······.”
-그 동안 여러 번 얘기했던 것 같은데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말해줄게. 오빠 성질 좀 죽여······. 이제 오빠 학생도 아니고 20대도 아냐.
“······.”
-미안. 끊을게. 그 동안 고마웠어. 이제 연락하지 마.
뚝.
전화가 끊겼다.
휴대폰을 꽉 쥔 류영준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관자놀이가 지끈거린다.
‘연구소장 김현택.’
전부 그 쓰레기 같은 새끼 때문이다.
“아아아악!”
류영준은 소리를 빽 질렀다.
휴대폰을 번쩍 들어 벽에다 내다 꽂아버리려다 직전에 멈추었다.
이 와중에도 휴대폰 액정 값이 아깝다.
없는 놈은 화도 쉽게 못 낸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그래.
이렇게 잘 알고 있는데 왜 김현택한테 덤벼들었을까.
‘이 엿 같은 세상에선 화를 내는 것도, 꿈을 좇는 것도, 윤리를 지키는 것도 모두 유료인데.’
류영준은 복도 벽에 기대어 스르르 주저앉았다.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소리 죽여 흐느꼈다.
***
초대형 국제 제약회사 에이젠.
연구소만 해도 전국에 여섯 개, 세계 곳곳에 총합 10개가 있으며 수많은 신약의 권리를 갖고 있다.
화장품부터 헬스 케어 제품, 합성 신약과 바이오 의약품, 유전자 합성과 유전자 서열 분석까지 온갖 사업을 벌이고 있는 제약 공룡이다.
스물아홉의 젊은 엘리트 박사 류영준은 항암 신약 연구부서의 주임 연구원으로 입사했다.
‘대리’에 해당하는 연구직이다.
입사한 후 초반에 류영준은 꽤 잘 나갔다.
업무에 능하고 열정도 있었으며 똑똑했다. 게다가 명문대 출신 덕택에 학연 줄까지 튼튼했다.
선배들은 매일같이 술자리와 회식을 만들고 그를 불렀고, 류영준은 꼬박꼬박 나가서 분위기를 맞춰주었다.
입사 동기이자 모바일 진단기기 개발 부서의 비주얼 담당이라 불리던 박소연과 사귀게 되었다.
류영준은 많은 사랑을 받는 연구자였다.
그리고 항암신약 부서에서 일한지 1년이 되어갈 무렵에 일이 터졌다.
류영준이 상부에 리포트 하나를 올렸다.
‘셀리큐어’라는 제품명으로 연구되고 있는 초기 간암 치료제였다.
문제는 에이젠도 초기 간암 치료제인 ‘일로아’를 팔고 있다는 것.
셀리큐어가 더 효능이 좋다면 일로아의 지분을 상당 부분 빼앗길 게 뻔했다.
“류 박사님!”
며칠 후 경영 본부에서 대리 직급의 윤보현이란 남자가 내려와서 류영준을 찾았다.
“박사님, 혹시 그 약 소량만 좀 구매해서 우리 약이랑 비교 실험 한 번 해주실 수 있을까요?”
“좋아요.”
과학자는 자사 제품과 경쟁 제품을 비교하는 것을 피하지 않는다.
류영준은 벤처 회사에 직접 연락해서 학술 목적으로 신약을 30밀리그램만큼 구매했다.
그리고 직접 세포 실험을 수행한 결과.
경쟁약의 효과가 월등했다.
그 사실을 리포트하고 약 세 달이 흘렀을 때, 류영준은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되었다.
“류 박사. 그거 알아요? 우리 회사 경영진이 셀리큐어를 샀대.”
선임 연구원 김형석이 알려준 정보에 류영준은 화들짝 놀랐다.
“뭐라고요!”
“말 그대로야. 100억을 주고 사왔대.”
“그거 임상 1상까지밖에 안 한 거잖아요?”
“그렇지.”
“그럼 임상 2상부터 제품화까지는 우리가 하겠네요?”
류영준의 얼굴이 환하게 피어났다. 김형석이 빙긋 미소 지었다.
류영준이 한껏 고조된 목소리로 말했다.
“와아. 정말 우리 경영진이 웬일이죠? 그렇게 좋은 걸 다 사오고.”
“근데 셀리큐어가 우리 것보다 훨씬 좋아?”
“1상 결과는 그래요. 일로아는 환자들한테 피부 발진 같은 부작용도 있고 투여 기간도 길고 문제가 많았잖아요? 셀리큐어는 그런 거 하나도 없어요.”
“오. 그래?”
김형석은 껄껄 웃으면서 류영준의 어깨를 두들겼다.
“출근했습니다.”
현미주 책임 연구원이 연구소 문을 열고 들어섰다.
류영준이 벌떡 일어났다.
“현 책임님! 그거 알아요? 우리 회사가 셀리큐어 샀대요!”
“어, 정말?”
현미주 책임은 환하게 웃었다.
“네! 그거 오면 우리가 완성시켜서 내놓죠.”
“아하하, 그래. 벤처 회사 입장에선 신약 개발 완주 경험을 잃는 셈이니 좀 아쉬울 수도 있겠지만, 좋은 약 샀다니 잘 됐네.”
“맞아요. 환자들한테도 더 좋죠. 제가 임상 더 빨리 마칠 자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생산 파이프라인도 좋으니까요!”
철컥.
“좋은 아침입니다. 안녕하세요.”
박연서 주임 연구원이 들어왔다.
“박주임! 그거 알아요?”
류영준이 뛰쳐나가며 외쳤다.
“쟤 하루 종일 저러겠네.”
현미주가 김형석에게 말하며 웃었다.
“젊은 과학자의 패기와 열정이죠, 뭐. 보기 좋네요.”
김형석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날 저녁.
류영준은 서울 근교의 봉안당을 찾았다.
274번 함에는 조그만 은색 유골 단지가 들어 있었다.
단지 뒤에 작은 명패와 아홉 살 남짓한 소녀의 사진이 있었다.
류영준은 사진을 지그시 쳐다보았다.
“새이야. 오빠 왔다.”
류영준이 나지막이 말했다.
“그거 알아? 오빠가 조금만 있으면 네 복수 할 수 있어. 대단하지? 오빠 이런 사람이야~.”
그가 빙긋 웃었다.
“벤처 회사에서 좋은 약을 하나 만들었어. 그걸 우리 회사가 샀는데 내가 완성시킬 거야.”
류영준은 유골 단지를 쓰다듬었다.
그의 가족은 총 다섯이었다. 아버지, 어머니. 첫째 장남 류영준과 둘째 류지원. 그리고 막내 류새이.
동생들하고는 나이차가 많이 나는 편이다. 이제 대학교에 들어가는 류지원과는 열 살 차이. 류새이하고는 열네 살 차이였다.
특히 류영준이 중학생 때 태어난 막내는 동생이라기보다 딸 같았다. 실제로 류영준이 거의 키웠다.
7년 전에 이례적으로 드문 ‘소아 간암’으로 죽기 전까지는.
“오빠가 꼭, 암으로, 최소한 간암으로는 죽는 사람 없게 만들어줄게.”
과학의 진보는 언제나 옳다.
과학의 진보가 문제점을 만들었다면, 그것은 항암 치료 중 오는 탈모 같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혹은 기존에 이미 존재했던 문제를 수면 위로 드러낸 것일 뿐이다.
잘못된 과학은 진보하지 않은 과학뿐이다.
‘과학은 항상 진보해야 한다.’
진보하지 않는 것은 정체하는 게 아니라 퇴보하는 것이다.
정체해있는 동안 이 사회는 류새이 같은, 다정하고 꿈 많은 아이를 잃을 수 있기 때문에.
***
3주가 지났다.
연구는 아직 진행되지 않았다.
몇 번이나 리포트를 올렸지만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대체 왜 그렇게 비싼 돈 주고 사온 약을 갖고 아무런 연구를 안 하는 거야?”
류영준의 답답한 마음이 한계에 이르렀을 무렵.
김현택 연구 소장이 그를 불렀다.
“류 박사. 왜 자꾸 그 간암 신약에 집착하나?”
연구 소장 사무실에서 그가 물었다.
“네? 그야 당연히 그 약이 더 좋은 약이니까 그렇죠.”
“어떤 면에서 더 좋은 약인데?”
“임상 완치율이 더 높잖아요? 부작용도 낮고······.”
“그럼 어떤 면에서 더 안 좋은 약인데?”
“······.”
류영준의 말문이 막혔다.
생산 단가는 더 싸고 약효는 더 좋다. 부작용이 없고 치료 기간이 더 짧다.
더 안 좋을 수가 있나?
혼란스러운 표정을 한 류영준에게 김현택은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알려주지. 그 약은 완치까지 걸리는 시간이 2년이야. 우리 제품 일로아는 5년이고.”
“잘······. 이해 못했습니다. 그게 뭐가 문제죠?”
“어차피 환자 입장에선 일로아나 그 신약 둘 중 하나를 먹어야 해. 회사 매출을 생각할 땐 뭐가 더 낫겠어?”
“······.”
류영준의 얼굴이 시체처럼 싸늘하게 굳었다.
사람의 ‘말’이 두개골을 깨고 들어와 뇌를 흔들어놓을 수 있다는 걸 그 때 처음 알았다.
살면서 믿어온 모든 신념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처음······. 처음부터······.”
류영준이 말을 더듬거리자 김현택이 대신 말해주었다.
“처음부터 그런 목적으로 산거야. 이제 한눈 그만 팔고 가서 시킨 일이나 하게. 그 신약은 잊어버리고.”
“······.”
류영준이 마른 침을 삼켰다.
그가 입술을 몇 번 달싹였다.
이를 꽉 깨물었다.
“다른, 다른······. 선배들도 알고 있습니까?”
“당연하지. 자네처럼 무식하고 고지식한 사람이 우리 회사에 설마 둘이나 있겠나? 자네가 들떠있는데 찬물 끼얹기 미안해서 알려주진 않은 모양이지만. 이보게. 류 박사.”
김현택이 안경을 벗으며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과학에는 돈이 들어.”
“······.”
“자네 월급 주는 데도 돈이 들고. 자네가 연구하는 데 쓰는 시약을 사는 데도 돈이 들어. 무슨 말인지 알겠어? 여기는 대학이 아냐. 이익을 추구하는 ‘회사’지.”
류영준의 어깨가 파르르 떨렸다.
‘가짜다.’
이 사람은 과학자가 아니다.
다른 선배들도 알고 있었다고? 김형석도 현미주도 박연서도?
김주연 수석, 황찬미 책임, 박시준 책임, 그리고 선임 아래의 과학자들 수십 명.
항암신약 연구부서의 모두가 알고 있었으면서 그 누구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항암제를 개발한다는 과학자들이 항암제를 없애버리고는 모른 척 한 것이다.
전부 가짜들이다.
“사기······꾼들······.”
류영준이 중얼거렸다.
“뭐라고?”
심장이 쿵쿵 박동할 때마다 배신감이 혈관을 타고 흘러서 대뇌에 직접 꽂히는 기분이다.
토할 것 같은 역겨움과 분노.
손이 달달 떨리는 억울함과 경멸감.
여태까지 존경하고 믿고 따랐던 선배들이, 세계 최고의 제약 회사라는 에이젠이 모두 가짜였다.
이곳에서 한다는 과학은 그저 정치질과 다를 바 없다.
그 벤처 회사는 대체 무슨 죄인가?
그 약 하나를 시중에 내놓기 위해 10년 이상을 분투해왔을 텐데.
에이젠을 믿고 그 약을 팔았을 텐데!
이 장사꾼들의 속물적인 돈 장난이 더 진보한 신약을 없애버렸다.
‘과학을 후퇴시켰다.’
더 분한 것은 처음 신약을 리포트하고 일을 진행했던 류영준 자신이 이 사건에 일조해버렸다는 것이다.
“이봐, 류 박사?”
류영준의 초점 없는 눈앞에 김현택이 손을 흔들어보였다.
쾅!
별안간 류영준이 김현택의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찍었다.
“소장님은······. 당신은 아주 좆같은 쓰레기에요.”
류영준이 몇 번 삼킨 분노가 결국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어디 가서 과학자라고 하지 마십쇼.”
류영준이 떨리는 손으로 소장실의 문을 열고 나갔다.
항암신약 부서의 수많은 과학자들이 류영준을 힐끔 쳐다보고는 전부 모니터로 고개를 돌렸다.
류영준은 힘없이 사무실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 사건으로부터 나흘 후.
류영준은 한 달의 정직과 함께 부서이동 명령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