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17th century, he became the king of Taiwan RAW novel - Chapter 73
073화
“설마 그런 식으로 결혼을 청할 줄은 몰랐네. 그것이 조선의 문화인가?”
아슬라미에는 마치 요한을 놀리듯 짓궂은 표정을 지으며 그리 말하였다.
하지만 요한은 전혀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상대, 타히라가 만족한 프러포즈니 그로선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었다.
먼 훗날을 생각하면 오히려 자랑스러워할 일이었다.
그럴 일은 거의 없겠지만, 머나먼 미래의 그가 아내들에게 잡혀 살게 될지 누구도 모르는 일 아닌가?
하지만 적어도 타히라는 공개 프러포즈를 받았으니, 미래에 힘없는 남자가 되었을지도 모를 요한을 괴롭힐 일은 없을 것이다.
“조선은 여러모로 선진적인 나라지.”
“···선진적인 나라라서 나이가 한참 많은 노인에게 그런 말투를 사용하는 모양이군.”
“뭘 또 새삼스럽게.”
요한의 시큰둥한 반응에 아슬라미에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런데 이제 뭘 하며 지낼 거지?”
“걱정하지 않아도 되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조용히 지낼 것이야.”
왕위를 넘겨주었으나, 아슬라미에의 존재감은 여전하였다.
그가 요한의 반대파를 모으고자 한다면 상당한 세력이 만들어질 것이 분명하였다.
하여 아슬라미에는 아무런 존재감을 내비치지 않고 은인자중할 계획이었다.
“겨우 그 나이에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조용히 지내겠다고? 너무 무책임한 거 아닌가?”
아슬라미에는 그 같은 말을 듣는 순간 가장 먼저 황당한 기분을 느꼈다.
그의 나이는 60대였다.
이 시대에 60대면 상당히 장수했다고 봐야 했다.
괜히 환갑잔치라는 게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
그런데 요한은 마치 그의 나이가 그리 많지 않다는 식으로 말하였다.
“무책임하다니. 나는 이제 태양왕이 아니야. 그냥 평범한 노인인 내가 뭘 할 수 있겠는가.”
“지금은 왕이 아니어도 한때는 왕이었지. 왕이었던 사람으로서 책임감을 보여야 하지 않겠어?”
처음엔 그저 농담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아슬라미에는 진심으로 자신이 쓸모를 다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요한이 거듭해서 이와 같이 말하니, 요한에게 다른 의도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나에게 무슨 역할을 기대하는 건 아니겠지?”
“내 고문이 되어줘. 대두국을 원활하게 통치하기 위해서는 아슬라미에, 당신의 연륜과 경험이 필요하다.”
“······.”
이는 대단히 놀라운 이야기였다.
요한과 그가 부자 관계나 하다못해 혈육 관계라면, 상왕이 정치력을 행사하는 것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와 요한은 혈육 관계는커녕 아예 출신이 달랐다.
사실상 힘의 논리에 의해 왕위를 넘겨준 셈이었으니, 아슬라미에는 상왕이 된 이후에도 대두국에 어떤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었다.
오히려 쥐 죽은 듯 조용히 지내야 하는 게 맞았다.
조금이라도 국정에 개입하는 모습을 보였다간, 요한이 그를 정적으로 인식하게 될 테니까.
그래서 아슬라미에도 요한에게 왕위를 넘겨준 뒤에 조용히 지내려고 하였다.
그런데 요한은 이런 아슬라미에를 오히려 말려 세웠다.
무책임하다는 말도 안 되는 논리까지 펼치면서 아슬라미에의 도움을 요구하였던 것.
‘이걸 대범하다고 해야 하나···. 나로선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군. 이게 영웅의 그릇인 건가.’
가장 정적이 될 가능성이 큰 이에게 명분을 실어주는 셈이었다.
요한이 그동안 꾸준하게 실력을 보여주지 않았다면 그가 어리숙하다고 여겼을 터.
하지만 요한의 실력을 안 상태에서 저 같은 말을 듣자, 오히려 대범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범인이라면 아슬라미에를 죽일 생각부터 하지, 중히 쓸 생각은 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어떻게 할 거지? 나도 노인을 막 부려 먹을 생각은 없다. 그저 한 달에 몇 번씩 찾아와서 국정과 관련된 일을 조언해주면 충분해.”
“···내 잔소리를 듣고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나?”
“쓸데없는 말을 지껄인다면 당연히 들어주지 않을 거야. 하지만 꼭 필요한 조언이라면 짜증 부리지 않고 경청할 테니, 걱정하지 마.”
“알았다. 자네가 내 도움이 필요하다는데, 무책임하게 집에서 쉬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안 그래도 아슬라미에는 요한에게 왕위를 물려준다는 결정을 내린 뒤, 이런저런 걱정에 시달렸다.
요한에게 왕위를 넘겨준다는 결정 자체를 후회하는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흑기군이라는 군사력 때문에라도, 왕위를 지키려고 발버둥 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었으니까.
게다가 그의 손녀가 요한과 결혼할 것이기도 했으니 후회할 이유가 없었다.
다만 그가 걱정하는 것은 요한에게 무슨 문제가 있어서라기보단, 대만의 내부 사정 때문이었다.
한족과 번족의 갈등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었다.
물론 요한이 대만에 남아있는 한, 두 세력 간의 유혈 사태가 일어날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요한은 언젠가 필리핀으로 떠날 몸이었다.
그리고 요한이 원정을 떠났을 때, 대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몰랐다.
아슬라미에가 걱정에 시달리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였다.
그런데 요한이 아슬라미에에게 고문이란 직책을 주고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한다면, 긴급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두 세력을 중재할 수 있었다.
근심을 어느 정도 내려놓을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나를 믿어줘서 고맙군.”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왕위를 넘겨줬는데, 당연히 믿어줘야지. 그리고 당신뿐만이 아니라, 다른 대두국의 인사들도 중용할 거야. 물론 당신의 조카인 말로에도 중용할 거고.”
요한이 대수롭지 않다는 목소리로 그리 말하자, 아슬라미에는 환하게 웃었다.
그는 별거 아닌 듯 말했지만, 사실 이는 엄청난 일이었다.
압도적인 힘으로 대두국의 왕위를 강탈했으면서 대두국의 지분을 인정해주는 것이었으니.
물론 요한으로선 워낙 영토를 빠르게 넓힌 탓에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상황이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왕위를 얻고 가장 먼저 무엇을 할 생각인가?”
아슬라미에가 묻자, 요한은 미리 생각하고 있었단 듯이, 즉시 답하였다.
“가장 먼저 축제부터 열어야지.”
“축제라.”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원래 권력자가 바뀔 때, 민심을 확보하기 위한 가장 쉬운 수단이 돈을 푸는 것이었다.
요한은 대두국 출신이 아닌, 외지인 출신이었으니 반드시 민심을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축제를 여는 건 좋은 선택이었다.
“축제 마지막 날에는 타하라와의 결혼식까지 할 생각이야.”
그 말을 듣고 아슬라미에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타히라와의 결혼을 언제 할지 내심 걱정하고 있었던 그다.
부족의 장로들은 요한에게 왕위를 넘긴 것에 대해 상당한 불만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선 두 사람의 결혼이 꼭 필요하였는데 축제가 끝나면 바로 결혼식을 연다고 하니 그로선 안심될 수밖에 없었다.
“마침 당신의 조언이 필요해. 대두국은 무언가를 기념할 때 어떤 축제를 열지?”
“보통은 바다의 여신인 마주를 기리는 축제를 열곤 하네.”
“바다의 여신을 기리는 축제라. 그냥 편하게 바다 축제라고 부르면 되겠어.”
마주라는 여신에 대해선 요한도 익히 알고 있었다.
대만뿐만이 아니라, 중국 남부 해안가를 대표하는 신앙이었기 때문이다.
“근데 설마 삼궤구고두례도 해야 하는 건 아니겠지?”
복주에서도 마주 신앙이 존재하였다.
그리고 복주에서 마주를 기릴 때, 마주의 여신상에 삼궤구고두례를 하고는 했다.
인신공양 같은 건 없다고 해도 특정 종교를 상징하는 동상에 절하고 싶지는 않았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대두국은 다종교 국가였다.
필리핀에서는 가톨릭, 이슬람을 비롯하여 여러 민간 신앙이 존재하였고, 대만도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이런 대두국의 수장인 그가 특정 종교를 편애하는 인상을 심어줬다고 소문이 나면 곤란하였다.
축제에 참가하는 것 정도는 상관없지만, 그 이상의 행동은 자제해야 한다는 뜻.
“그건 중국의 문화일세. 우리는 그저 북과 종을 치며 먹고 즐기는 게 다야.”
“딱 내가 원하는 축제인데?”
요한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먹고 마시며 즐기는 축제라면 종교적으로 문젯거리가 될 것이 없으리라.
“축제는 일주일 정도 할 거야.”
“일주일씩이나? 돈이 상당히 많이 들 텐데?”
“그 정도는 해야 민심을 얻을 수 있지 않겠어?”
돈으로 민심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만큼 남는 장사가 어디 있겠는가.
어차피 정지룡에게 받은 50만 냥도 아직 다 쓰지 않은 상태였다.
백성들로부터 진정한 왕으로 인정받을 수만 있다면 몇 만 냥을 써도 아깝지 않았다.
***
대두국의 모든 이가 요한을 반기는 것은 아니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요한은 외지인이었다.
다른 부족 출신이어도 거부감을 드러내는 사람은 있었을 것이다.
아예 대만에서 태어나지도 않은 요한이었으니 거부감을 드러내는 이가 없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그는 파포라 족이 아니야. 조선이란 나라에서 온 자지. 과연 그가 우리의 이익을 대변해줄까?”
“하지만 그는 우리의 말을 쓸 수 있어. 그리고 그가 섭정이 된 이후, 우리 부족은 이전보다 더 부유해졌고.”
“우리 부족의 말만 쓸 수 있는 게 아니잖아. 그의 조국이라는 조선의 말은 물론이고, 명나라의 말도 쓸 수 있고, 심지어 그 백인 놈들의 말도 사용할 수 있다지? 부족이 부유해진 것도 사실 우리 부족만 특별히 부유해진 게 아니잖아?”
대두국은 파포라 족을 중심으로 세워진 국가였다.
즉, 파포라 족은 기득권이란 뜻이었다.
그런데 요한이 대두국의 새로운 국왕이 되면서 파포라 족은 기득권을 잃을 처지에 놓였다.
그나마 요한이 아슬라미에의 손녀와 결혼할 예정이라 불만이 더 커지지 않았지만, 그것도 한시적인 일이었다.
만약 요한이 파포라 족의 이익을 대변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불만을 드러낼 게 분명하였다.
기존의 기득권 세력이었던 파포라 족의 장로들은 특히 더 그러했다.
“새로운 태양왕이 축제를 연다는군. 그것도 마주 여신을 기념하는 축제를!”
“오오, 역시 태양왕은 하얀 놈들이랑 다르구나! 우리의 종교를 존중해주다니!”
양위식이 끝나기 무섭게 안평에서 대두국 전역으로 온갖 물자가 전해졌다.
그 물자 대부분은 술과 먹을거리였다.
“이게 얼마만의 축제야! 하하하!”
“고기까지 주어지다니. 태양왕이 돈을 좀 썼겠는걸?”
“와, 이것이 말로만 듣던 조선의 음식들인가? 이렇게 맛있을 줄이야!”
파포라 족은 대두국에서 부유한 편에 속하였다.
하지만 그 부유하다는 기준도 같은 대두국의 부족과 비교해서 부유하다는 거지, 필리핀의 팡가시난 족에 비교하면 오히려 가난한 편이었다.
특히 네덜란드와의 전쟁 때 입은 피해로, 그들은 여태껏 축제 한 번 열지 못했었다.
잉여 농산물이 없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요한이 축제를 열자 대두국 사람들은 엄청난 환호를 보냈다.
심지어 역대 축제 중에 가장 먹을거리가 많은 축제였다.
“만세, 만세! 태양왕 만만세! 앞으로 태양왕을 욕하는 사람은 나의 적으로 간주하겠다!”
“흐흐, 이렇게 많은 술이라니. 오늘이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마시자~!”
축제 첫날.
요한에 아무런 감정이 없던 이들이 그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었다.
물론 요한에게 반감을 품은 이들은 여전히 반감을 품고 있었다.
“흥, 먹을 거 조금 줬다고 그자를 찬양하다니. 요즘 젊은 것들은 쯧쯧.”
“그러니까. 우리 부족의 미래가 달린 일인데, 참 생각들이 없어.”
“뭐, 그래도 일단 배는 채우자고. 그자가 내린 것으로 생각하지 말고, 마주께서 내리신 것으로 생각하고 먹는 거야.”
하지만 반감을 품은 이들이라고 공짜 음식은 거절하지 않았다.
요한에게 죄가 있어도 음식에는 죄가 없기 때문이었다.
“오늘도 축제다! 오늘도 축제라고!”
“먹고 죽자! 으하하하!”
만약 축제가 하루로 끝났다면 요한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축제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다음 날에도, 그리고 그 다음 날에도.
“도, 도대체 그자는 돈이 얼마나 많은 거야?”
“그자라니. 그래도 태양왕인데.”
“···맞아. 내가 실수했군.”
파포라 족의 장로들은 어느덧 요한을 자신들의 왕으로 인정하였다.
절대 떡볶이와 양념치킨 맛에 굴복한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요한의 재력.
엄청난 규모의 축제를 며칠씩이나 개최하는 그 압도적인 재력에 질리고 만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