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ectious Disease Survival RAW novel - Chapter 243
242화 고성으로 (2)
느닷없이 고물상 앞에 멈춰 선 낯선 SUV 한 대.
고물상 컨테이너 안에서 밥을 먹으려던 북극이와 나는 잔뜩 긴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스윽- 틱- 다다닥-
나는 조심스레 활시위에 화살을 건 뒤, 컨테이너 창가에 붙어 창밖을 살피기 시작했다.
철컥- 터엉-! 저벅- 저벅- 저벅-
곧이어 누군가 SUV에서 내리는 기척과 함께 고물상 안으로 걸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드르륵- 구구구구국-
컨테이너 창문을 살짝 연 후, 한껏 당긴 활시위로 고물상 출입구를 조준했다.
저벅- 저벅- 저벅-
점점 더 가까워지는 발걸음 소리.
이윽고 모습을 드러낸 이는 불과 3~40분 전쯤에 만났던 생존자 남성이었다.
“…….”
일순간 이 남성이 나를 찾아온 이유에 대한 수많은 추측이 머릿속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다만, 남성의 손에 무기가 들려 있지 않은 걸 보니, 불순한 이유로 찾아온 건 아닌 것만은 분명했다.
“저기……. 계십니까? 누구 안 계세요?”
나는 한껏 당긴 시위를 서서히 놓은 후, 컨테이너 철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철컥- 끼이익-
저벅- 저벅- 저벅-
“아! 거기 계셨군요. 아까 이쪽으로 들어오시는 걸 봐서…….”
딱히 관계가 나쁘지 않다고는 해도, 지금 같은 시기엔 예고 없이 찾아온 손님이 당연히 반가울 리가 없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남성 또한 그걸 알기에 상당히 조심스럽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은인께서 괜찮으시다면, 저희가 인제까지 모셔다드리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인제요?”
“예. 저희랑 목적지가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저흴 구해 주신 분께 아무런 보답도 없이 가기가 마음에 걸려서 그렇습니다.”
춘천에서 고성으로 가는 가장 효율적인 경로는 46번 국도를 따라 양구군으로 이동한 뒤, 31번 국도를 따라 인제로 넘어가고, 또다시 46번 국도를 따라 고성으로 이동하는 것이었다.
물론 고성에서도 7번 국도를 따라 DMZ까지 올라가야만 했지만, 일단 고성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4일가량 쉬지 않고 걸어가야만 했다.
차량을 얻어 타고 인제까지만 갈 수 있어도 4~5일의 일정 중에 이틀은 줄일 수 있었다.
지금 이 순간, 눈앞의 남성은 더 이상 반갑지 않은 손님이 아니었다.
“아……. 그렇습니까? 그러면, 저야 감사하죠. 근데, 제가 개를 데리고 다녀서…….”
“상관없습니다. 차 안이 제법 넓어서 데리고 타셔도 문제없습니다.”
“오, 그렇다면 신세 좀 지겠습니다.”
“목숨을 구해 주신 거에 비하면, 신세라고 할 것도 없습니다. 어서 준비해서 나오시죠.”
“옙, 알겠습니다.”
남성과의 대화를 마치자마자, 서둘러 컨테이너 안에 웅크리고 있는 북극이와 배낭을 챙겨서 나왔다.
그리고는 남성을 따라 SUV에 다가가니, 아까 보았던 사람들이 북극이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통성명도 안 했군요. 저는 강지훈이라고 합니다. 여기는 제 와이프 김지연이고, 제 아들 강현웅, 이쪽은 제 조카 강지수입니다.”
“넵, 반갑습니다. 저는 김태경이라고 합니다.”
그러자 강지훈의 아내가 앞으로 나서며 감사를 표해왔다.
“아까는 얼마나 감사했는지 몰라요. 그대로 감염자들한테 잡아 먹히는 줄 알고 얼마나 무서웠는지 몰라요….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어려운 시기를 사는 사람들끼리는 당연히 도와야죠. 네 분이 다 멀쩡하셔서 저도 뿌듯합니다.”
“아니에요. 진짜 너무너무 감사드려요. 자리는 편하게 앞자리에 타시면 됩니다. 저랑 아이들이 뒷자리에 타면 되거든요. 어맛, 강아지가 있었네요? 아고, 귀여워라.”
“자자, 계속 이렇게 있을 수는 없으니까, 다들 얼른 탑시다. 당신이 현웅이랑 지수 데리고 뒷자리로 가요. 태경 씨는 얼른 앞자리에 타시고요.”
지훈이라는 사내의 말대로 이렇게 오래 서 있을 수는 없었기에, 서둘러 차에 오르기 시작했다.
철컥- 끼이익- 터엉-!
철컥- 끼이익- 텅-!
.
.
이윽고 모두를 태운 SUV가 힘차게 도로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부아아아앙-! 부아아앙-!
창문 너머로 빠르게 지나쳐 가는 바깥 풍경.
운전대를 잡은 강지훈이라는 사내는 강원도 지리를 빠삭하게 알고 있는 모양인지, 지도나 내비게이션이 없음에도 익숙하게 산길을 따라 달렸다.
언제 어디서 감염자가 튀어나오거나, 도로가 막혀 있는 상황을 마주할지 몰랐기에 묘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이윽고 차 안에 가득 찬 적막을 깬 것은 북극이였다.
헥- 헥- 헥-
킁- 킁- 킁-
이제야 비로소 긴장이 풀린 모양인지, 외투 속에서 고개를 빼꼼 내민 채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그러자, 북극이의 행동에 반응을 보인 것은 뒷자리에 앉은 아이들이었다.
“엄마, 강아지가 나왔어.”
“그래, 강아지 귀엽지?”
“응, 우리도 강아지 키우면 좋겠다.”
“지수 누나네 집에 강아지 있을걸? 맞지, 지수야?”
“네, 저희 집에는 누렁이 있어요. 누렁이도 현웅이 좋아할걸요?”
“오, 예! 완전 좋아.”
뒷자리에서 들려오는 세 사람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다 보니, 운전대를 잡고 있던 강지훈 씨가 말을 걸기 시작했다.
“제 고향이 강원도 양양입니다. 제 형님이 부모님을 모시고 살고 계시고, 지수가 형님의 딸이거든요. 형님댁이 워낙 산골짜기에 있어서, 저희는 그곳으로 가는 중입니다.”
“아, 그러시군요.”
“태경 씨는 고성엔 왜 가시는 겁니까? 보아하니, 지방 사람은 아니신 거 같은데…….”
“저는 고성에 계신 어머니를 뵈러 가는 길입니다.”
“그러시군요. 그럼 고향이 고성이신가 보죠?”
“고성은 아니고, 강원도 정선입니다.”
“아! 정선! 같은 강원도민이셨군요. 반갑습니다.”
.
.
강지훈 씨의 가족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이동하다 보니, 순식간에 인제군 내로 들어가는 31번 국도의 끄트머리에 도착했다.
부아아앙- 끼이익- 끼익-!
“도착했습니다. 태경 씨.”
“감사합니다. 덕분에 인제까지 금방 왔네요.”
춘천 외곽에서 출발하여 이곳까지 오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2시간이었다.
운이 좋게도 구불구불한 강원도 산길을 따라 달리는 동안 감염자를 마주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오는 길에 길이 막힌 곳이 있어, 우회해 오느라 시간이 살짝 지체되었지만 말이다.
“마음 같아서는 고성까지 모셔다드리면 좋겠는데…….”
“에이, 여기까지 태워다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다들 부모님 댁에 무사히 도착하시길 바랍니다.”
“별말씀을요. 태경 씨도 무사히 어머님을 만나 뵙길 기원할게요.”
“북극아, 잘 가! 다음에 또 보자!”
“다시 한번 고마워요, 태경 씨. 조심히 가세요.”
“안녕히 가세요.”
부아아아앙- 부아아아앙-
곧이어 나를 내려 준 강지훈 씨의 SUV는 구불구불한 산길 사이로 모습을 감췄다.
감염병이 번지기 전, 자동차 정비소를 운영하던 강지훈 씨 덕에 상당한 거리를 편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게다가 강원도는 서울이나 경기도와는 다르게 감염자의 숫자가 극도로 적었기에 남은 거리를 이동하는 데도 별다른 문제가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북극아, 가자. 더 어두워지기 전에 잠잘 델 찾아야 해.”
헥- 헥- 헥-
어느새 붉게 노을이 지기 시작한 하늘.
노숙을 피하기 위해서는 서둘러 잠잘 곳을 찾아야만 했다.
* * *
스윽- 스윽- 스윽-
까칠까칠한 무언가가 내 뺨을 문지르는 느낌에 놀라 잠에서 깬 순간.
내 뺨을 거침없이 핥아 대는 북극이가 시야에 들어왔다.
“…….”
헥- 헥- 헥-
아무리 봐도 나를 깨울 의도로 핥은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높은 확률로 밥을 달라고 깨운 게 확실했다.
손목을 들어 시계를 보니, 시계가 6시 43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시계가 있으니 편하군……. 역시 양아치 트리오랑 거래하길 잘했어.’
머리에 베고 있던 배낭에서 전투 식량 하나를 꺼낸 뒤, 포장지를 뜯고 내부에 있는 발열팩을 터트렸다.
부스럭- 부스럭- 찌이익-
꽈악- 툭-!
곧이어 발열팩에서 뜨거운 스팀을 뿜어내며, 전투 식량이 따듯하게 데워지기 시작했다.
스스스스슥- 스스스슥- 취이이이- 취이이-
“조금만 기다려, 금방 밥 줄게.”
헥- 헥- 헥-
“왜? 한 개 더 데울까?”
헥- 헥- 헥-
“그래, 알겠어.”
부스럭- 부스럭- 찌이익-
꽈악- 툭-!
나는 북극이의 요청에 따라 전투 식량을 하나 더 꺼낸 뒤, 앞서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포장지를 뜯고 발열팩을 터트렸다.
강지훈 씨 덕에 이동해야 할 거리가 확실하게 줄어든 만큼, 고성에 도착할 때까지 소비해야 할 식량에 제법 여유가 생겼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식량에 여유가 생겨서 가장 좋은 점은 북극이에게 양껏 밥을 먹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잠시 후.
북극이와 나는 침낭에서 기어 나와, 따듯하게 데워진 전투 식량을 나눠 먹기 시작했다.
염분이 있는 음식들을 골라낸 뒤 남은 음식들을 종이 그릇에 담아 내밀자, 북극이는 정신없이 음식들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스윽- 터업- 으적- 으적- 으적-
이윽고 북극이에게 주고 남은 음식들은 내가 먹기 시작했다.
푸욱- 우적- 우적- 우적-
군 복무 시절 훈련 죽에 먹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맛이었다.
“뭐야? 왜 이리 맛있어졌어? 그새 전투 식량이 바뀌기라도 한 건가?”
물론 전투 식량이 바뀌었을 리가 없었다.
그저 먹을 게 귀해진 지금 이 상황이 뭘 먹어도 맛있을 수밖에 없도록 만든 것일 뿐…….
북극이와 나는 순식간에 아침 식사를 해치운 뒤, 또다시 길을 떠날 준비를 했다.
이제 목적지인 고성까지 남은 거리는 대략 70km 안팎.
이틀 정도만 부지런히 걸으면, 애타게 보고 싶었던 어머니를 볼 수 있었다.
“북극아 가자.”
헥- 헥- 헥-
우리는 지난밤 밤이슬을 피하게 해 준 조립식 농막에서 빠져나와, 인제군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저벅- 저벅- 저벅-
토도독- 토독- 토독-
저벅- 저벅- 저벅-
토도독- 토독- 토독-
.
.
도로를 따라 정처 없이 걷다 보니, 사람들이 생활하는 민가가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윽고 인제군을 관통하는 ‘북천(北川)’에 다다르자, 군내를 배회하는 감염자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크르르르륵- 저벅- 저벅- 저벅-
키아아아악- 절뚝- 절뚝- 절뚝-
역시 민가 주변에는 감염자들이 모여 있기 마련이고, 감염자들이 모여 있는 곳에는 변종이 있을 확률이 높았다.
“북극아, 좀 돌아가더라도 이 근방을 우회해서 가야겠다.”
헥- 헥- 헥-
주머니에 넣어 뒀던 전국교통도로지도 책자를 꺼내, 인제군 근방의 도로를 찾기 시작했다.
스윽- 파라락- 팔락-
“지도를 보니까, 이쪽 길로 쭉 가다가 한계 교차로라는 곳에서 왼쪽으로 빠지면 46번 도로래. 이쪽으로 가자.”
헥- 헥- 헥-
북천(北川)을 건너 44번 국도와 나란하게 뻗은 도로를 걷다 보니, 주변에 널따란 논이 보였고.
논에서는 참새들이 지난해 추수하지 못한 볍씨를 쪼아 먹느라 바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여유롭고 한적한 시골 도로를 걷다 보니, 마음에도 제법 여유가 생기기 시작한 것 같았다.
“북극아, 엄마랑 훈이 아저씨 만나고 나면, 내가 좋은 집 만들어 줄게.”
헥- 헥- 헥-
“내일모레는 따듯한 집에서 자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자.”
헥- 헥- 헥-
“근데, 너 원래 털이 회색이었나?”
헥- 헥- 헥-
“아니지, 흰색이었지. 너는 가서 목욕부터 해야겠다.”
끼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