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Leveling: Murim RAW novel - Chapter 200
200화 – 62. 번천(飜天) (2)
● ● ●
예선이 끝난 며칠 뒤.
나는 사천과 섬서의 경계 영강(寧强)에 당도했다.
성도와 서안의 중간 지점이자, 잠시 쉬어가는 곳.
그리고 내 입장에서 말하면,
‘여기구만.’
지정된 접선 장소.
‘영강의 저자 한구석에 있는 여각, 등선정(登仙亭)이라고 했으니.’
맞다.
신선이 오르는 정자라는 이름답지 않게 편액은 한쪽으로 기울었고, 건물 자체도 허름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하지만 등선정이라는 세 글자와 [중원전도]의 빨간 점이 나를 이곳으로 인도하고 있었다.
삐이걱.
낡은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섰다, 하오문 섬서 제 3지부로.
성도의 주루나 객잔과 마찬가지로 이 허름한 곳도 그득그득 들어차 있었다.
서안으로 향하는 무림인들 또는 평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구경거리를 보러 가는 객들인, 그들의 관심사는 오롯이 한 가지.
“태삼대전 예선이 벌써 다 끝났다면서?”
“그렇다더군.”
“듣기론 대부분 지역에서 엄청 싱겁게 끝났다더라.”
“싱겁게?”
“이전에 우승후보로 꼽히던 자들이 당연한 듯 지역예선에서 우승을 차지했다던데?”
“응? 소문엔 옆동네 사천에선 전혀 의외의 인물들이 우승하고 준우승을 차지했다던데?”
녹색창과 제갈선아 같은 기자들 덕분일까.
소식은 이미 이 멀리까지 다 퍼진 모양이다.
그 관련 정보에 대해 이미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있는 무림인들을 지나쳐 2층으로 향했다.
‘2층 3번 탁자.’
그렇게 2층을 오르는 층계참을 지나다가 슬쩍 들려오는 소리.
“어허이~ 소식들이 늦네그려들?”
“뭐가?”
“지금 태삼대전이 문제가 아닐세. 자네들 그거 아직 못 읽었나? 무림신문이라는 거.”
“무림신문? 그게 뭔가?”
.
그게 벌써 나왔나 보다.
제갈선아가 귀에 딱지가 앉도록 얘기했던 건데.
지금도 그거 관련해서 기사를 작성하고 있을 그녀의 모습이 잠시 떠오른다. 나는 가볍게 웃음을 흘리고는 2층에 올랐다.
2층 3번 탁자는 의외로 바로 창가 쪽에 있었고 그 자리를 차지한 이가 바로 인사를 건네왔다.
“왔는가.”
이젠 하오문의 부문주가 된 곤붕이 뿔테 애채를 고쳐 쓰며 나를 향해 활짝 웃고 있었다.
● ● ●
등선루 내의 밀실.
우리 둘은 마주 앉았다.
“부문주가 참 한가롭구만. 고작 일개 정보원이 연락한다고 며칠만에 예까지 행차하시다니.”
“하하, 너무 잘못된 말이라 어디서부터 짚어줘야 할지 모르겠네그려.”
“…….”
“첫째, 사천지역 1차 태삼대전 우승자인 자네가 일개 정보원? 이게 말이 되는가? 둘째, 연락한 지는 며칠 밖에 안 되었지만, 아미산의 화산이 폭발한 지는 꽤 되었지.”
역시 곤붕인가.
화산이 폭발하자마자 이리로 오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사천지역 예선 일정에 맞춰 내가 이동할 경로를 미리 파악해서 움직였다는 건가.
“그리고 셋째, 자네 입에서 부문주가 한가롭다는 말이 나온다는 게 정말…….”
곤붕이 콧잔등에 얹힌 애채를 잠시 들썩이며 말을 이었다.
“자네 덕분에 황실과 상계, 사도제일련, 무림맹, 새외 등을 넘나드느라 나하고 윤 낭자가 얼마나 힘들었는데.”
픽, 녀석의 우스갯소리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내 부탁을 정말 충실히 이행하고 있었다는 게 느껴져서.
정계, 상계, 무림, 새외까지.
강하고 믿을 수 있는, 뒤를, 배후를 맡길 수 있는.
최대한 많은 아군을, [맹원]을 확보해놓으라는 나의 무리한 부탁을, 무려 5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수행해 왔으니.
“고맙다, 친구.”
지금 여긴 없지만, 윤란에게도 너무나 고맙고.
“아무튼 다행일세.”
“뭐가?”
“좋아 보여서. 자네의 확신대로 만년화리의 내단을 먹고 불가해가 해결되어서 말일세.”
“해결이라…….”
“왜, 아닌가?”
상태이상 : 불가사의(不可思議)
이걸 안다면 저런 말은 못하겠지.
뭐, 굳이 알 필요도 없고.
“아냐. 해결됐어.”
“역시 자네는 미친 인간일세. 처음에 내가 자네에게 백만 분의 하나라고 했었는데, 그 확률을 뚫고 망가진 단전을 복구하다니.”
엄밀히는 복구한 것은 아닌데…….
어찌 되었건, 그 이후 우리는 긴 이야기를 나눴다.
1년간 천하의 흐름과 변화에 대해.
얘기를 듣고 있자니…… 역시나.
내가 화산에 있는 사이에도 천하는 아주 분주했구나 싶다.
도저히 개인이 다 처리하지 못할, 많은 일들이 있었다.
나는 불필요한 건 그저 머릿속에 욱여넣다가 필요하다 싶은 것만 질문을 했다. 개중에서도 귀를 자극하는 정보가 하나 있었다.
북리 약쟁이가 결국 사도제일련주 후계자 자리를 선점했다는 것. 그리고 녀석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
일간 한번 녀석과도 만나봐야겠지.
뭐, 그건 그렇다 치고 내가 진짜로 궁금했던 건, 사도제일련 쪽이 아니었다.
“혹시 마교 측 태삼대전 참가자는 다 파악됐어?”
곤붕이 고개를 저었다.
“아닐세, 허나 어차피 십패와 마교주의 제자들이 참가할 것이니, 그 명단은 여기 있다네.”
곤붕이 품에서 종이 한 묶음을 꺼내 건네왔다.
나는 그걸 받아 곧장 읽어내렸다.
천붕마(天崩魔) 광혼, 광마뇌(狂魔腦) 하재허, 천궁혈백(天弓血伯) 채양, 철혈마마검(鐵血魔魔劍) 구우위,…….
[속독법]으로 단숨에 내리 읽은 후 곤붕을 바라보았다.
“이게 다야?”
“그렇다네. 그들이 십패와 마교주의 아홉 제자들일세. 왜 무슨 문제 있나?”
“문제가 없는 게 문제지.”
모든 이름이 익숙하다.
광혼, 하재허, 채양, 구우위 등은 전생의 경험이나 기억, 혹은 현생의 에서 보거나 소문으로 들은 적이 있었다.
내가 찾는 자는 금시초문이어야 한다. 최소한 아직까지는.
여잔지 남잔지, 어린지 늙은지. 전혀 모르는, 그런.
그때 나를 보며 곤붕이 씩 웃는다.
“뭔가 더 있구만.”
“있긴 하지. 십패나 마교주의 제자 얘긴 아니지만. 귀 있는 자 모두가 귀를 의심할 소식.”
“얼른 줘봐.”
그에 곤붕이 다시 종이 한 장을 더 꺼냈다.
“자네가 알지 모르겠지만, 이번에 녹색창에서 야심 차게 간행하기 시작한 출판물일세.”
“무림신문?”
“알고 있다니, 굳이 더 설명은 필요없겠네그려.”
활자판으로 찍은 게 확실한 듯 반듯한 글씨가 찍힌 회색빛 종이.
나는 그걸 받아들고 곧장 읽었다.
[금월 초하루, 1차 태삼대전이 중원 전역에서 한창 진행 중일 때, 천산에서 천하 강호의 판도를 바꿀 큰 변고가 발생했다.
신교(神敎)의 당대 교주였던 묵호가, 숨겨왔던 주화입마의 내상이 도져 급사했다.
그에게는 모두 아홉 명의 제자가 있는 걸로 알려져 왔기에, 교주 자리를 두고 심각한 권력투쟁이 발생할지도 모를 상황이었지만 의외로 신교 최고권좌의 이양은 간단히 정리가 되었다고 한다.
묵호가 교주의 재목으로 비밀리에 키워왔던 열 번째 제자가 있었던 것. 하지만 그럼에도 힘을 숭상하는 신교의 기조 탓에 아무리 절대적인 묵호의 명이라 할지라도 간단히 나머지 아홉 제자가 따르지는 않을 것 같았으나, 현재 신교에서 공식적으로 확인해준 소식에 따르면……(중략)……열 번째 제자는 단숨에 아홉 제자를 포섭 및 굴복시킨 걸로 추측된다.
그에 대해 알려진 사실은, 진설우라는 이름뿐이며…….]
“……진설우?”
“거기 적힌 대로, 우리가 파악한 정보에도 그자가 신입마교주라더군.”
“누구야, 이놈? 아는 거 있어?”
곤붕이 고개를 저었다.
“모르네.”
곤붕이 모른다라…….
“전혀 모른다네. 나도 이번에 처음 들은 이름일세. 그자만은.”
감을 믿는 건 매우 위험한 일이다.
아무리 감이 뛰어나도 할지라도 10할 확신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정도 신호에 대한 감은…….
100할도 부족하다.
[진설우가 신교의 교주가 되어 첫 번째로 한 행보는 신교의 이름을 천마신교로 바꾼 것이었고……(중략)……알려진 바로는 스스로를 천마라 칭했으며……(중략)……금번 태삼대전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교주로서의 활동을 시작할 것으로 보이며……(후략).]
나는 초간본을 탁자 위에 내렸다.
더 읽을 필요도, 따져볼 필요도 없었다.
마교가 천마신교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했다는 사실과,
[선전포고문]
투항하라. 투항하는 자는 그 어떠한 과거든 불문에 부치고, 천마님의 은총 아래 영생과 광영을 누리리라.
단, 저항한다면, 그게 누가 되었건, 천마님의 멸겁을 피할 수 없으리라.
비록 이 이란 간행물이 녹색창에서 발간한 것임에도…… 나는 알 수 있었다.
이것이 훨씬 진일보한 천마의 새로운 [선전포고문]이라는 걸.
젠장맞게도 커다란 변곡점이 발생했다는걸.
그렇다는 건!
띠링-!
[임무]
[천마를 죽이시오(제한시간 : 30년).]
[성공시 보상 : 성공 후 결정]
[실패시 불이익 : 중원 멸망]
지지지직-.
언제나 느릿느릿 내 시야의 오른쪽 하단부에 점멸하고 있던 글자가 벼락을 맞은 듯 불길하게 발광하기 시작했다.
띠띠띠-.
[20/06/35/12:22:34]
띠띠띠-.
[99/12/31/24:60:60]
띠띠띠-.
[00/00/00/00:00:00]
0부터 99까지 무자비하게 숫자가 뒤바뀌더니…….
“……하, 하하하하하핫. 빌어처먹을!”
종국에는…….
쾅, 콰르르르르르-!
갑작스러운 청천벽력과 함께 쏟아진 폭우가 변화하고 있는 숫자를 휩쓸었다.
● ● ●
쏴아아아아아-.
“마교 측 참가자들이 지금 오고 있는 거 맞지?”
“그렇다네.”
코앞을 스치는 빗물을 두고 나는 등선루 입구에 섰다.
“이제 서안으로 가는 건가?”
곤붕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녀석이 다시 묻는다.
“태삼대전 우승 가능하겠는가?”
왠지 웃음이 나는 질문이다.
“생각대로 안 되면 백만에 하나?”
곤붕도 웃는다. 전에 우리 둘이 나눴던 대화가 정확히 반대로 되어서 진행되고 있었기에.
“생각대로 되면 어떤가?”
“만에 하나?”
“잘 되면?”
“한, 천에 하나?”
“하하하. 멋진 답의 연속이네.”
나는 하늘을 일별하고는 그때와 단 하나의 단어가 다른 답을 내놓았다.
“그 정도로 상대가 나쁘니까.”
그런 나를 보며 곤붕이 다시 웃었다.
“열에 하나.”
피식.
“내가 이번에도 얼굴로 박장대소하고 있나 보구만.”
“아닐세.”
곤붕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곤 웃는다.
“자네가 우승한다는 거에 전 재산을 걸었거든.”
“크크, 새끼. 돈도 없는 놈이 인생을 걸었네.”
“하하하. 그렇다네. 내 인생을 수포로 만들기 싫으니 꼭 우승하게나.”
그걸 끝으로 나는 등선루 밖으로…… 폭우 속으로 나아갔다.
몇 걸음 내딛는데, 등 뒤에서 들려온 곤붕의 외침.
“화산파 금암동 건은…….”
우뚝, 잠시 멈춘 뒤 돌아봤다.
아까 밀실에 있을 때, 제갈선아에게 했던 것과 같은 질문을 저 녀석에게 했었다.
― 중원, 아니 세상에서 식법지가 제일 많은 데가 어디냐?
곤붕의 대답도 다르지 않았다.
소림 장경각, 황궁 비궁, 화산 금암동.
그때 부탁했다.
화산 금암동에 있는 식법지를 있는 대로 구해다 줄 수 있느냐고.
처마 밑으로 줄줄 떨어지는 비를 통해 나를 바라보던 곤붕이 아까 차마 하지 못했던 대답을 지금 한다.
“한번 시도는 해보겠네. 장담은 못하지만.”
장담은 못하지만.
더 믿음이 가는 말이다. 만년화리가 있는 장소를 찾아줄 때도 녀석이 내게 건넸던 말이니까.
잠시 멈춰선 채 위를 올려다보았다.
이것 봐, 하늘놈. 진짜 나 이렇게 당신 쳐다보는 거 병신 같아서 싫어하는데. 안 쳐다볼 수가 없어.
왜냐고?
[임무]
[천마를 죽이시오(제한시간 : ??년).]
[성공시 보상 : 성공 후 결정]
[실패시 불이익 : 중원 멸망]
[??/??/??/??:??:??]
마구 난동을 부리던 숫자들이 결국 ??로 모조리 환골탈태했기에.
??.
원래처럼 30년일 수도, 어쩌면 99년이 될 수도, 또 어쩌면 당장 내일이 될 수도 있는 미지의 수.
그래서 확신했다.
드디어 나라는 인간뿐만 아니라, 지금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상황 자체가 불가사의가 되었다는걸.
아닐 미(未)에, 올 래(來).
이제야 미래가 진짜 미래가 된 거다.
툭투두둑.
빗물이 눈동자를 마구 때려댔지만, 나는 왠지…… 웃음이 났다.
잠시 그렇게 있던 나는 이내 걸음을 옮겼다.
서안으로, 최후의 결전장으로.
빗방울이 무차별적으로 쏟아졌지만…….
이라는 시대혁명을…….
훨씬 빠르게 천하 전역에 타전되는 대규모 비틀림을 막을 수는 없었다.
무한 레벨업 in 무림
지은이 : 곤붕
발행인 : 손병태
발행처 : ㈜알에스미디어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춘의테크노파크 2차 201동 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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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949-9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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