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Leveling: Murim RAW novel - Chapter 57
57화 – 22. 적성면접 (1)
드디어 밝아온, 적성면접 당일 날 아침.
뭐, 다른 애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적성면접 때까지 편하게 그간의 정리시간을 가졌다.
오리걸음으로 곡내를 이리저리 전력질주하거나, 물구나무선 채 팔굽혀 펴기를 하고 목검과 손도끼를 휘두르며 무림대학관 안을 누비거나.
이게 어떻게 편한 거고 정리하는 거냐고?
몰라, 나도.
이렇게 하고 있으면 오히려 마음만큼은 편해지는 걸 어쩌나. 땀을 흘리고, 스스로 몸을 혹사시키는 만큼 심적으로 여유가 생기는데.
아무래도 환생하면서, 변태성 한 가지가 더 추가된 모양이다.
피를 보면 침착해지고, 땀을 철철 흘리면 마음이 안정되고.
내 안에 또 무슨 변태성이 숨었는지는 아직 모른다.
쉰 살을 넘고는 나 자신에 대해 완벽히 파악했다고 여겼는데, 돌아와서 보니 스스로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몰랐다는 걸 깨달았다.
지난 삶 동안 정말 할 수 있는 한계치만큼 노력했다고 생각했던 것도 지금 돌이켜보면 ‘아니올시다’였다.
비록 여러 가지 기연의 도움이 있었다지만, 오리걸음으로 중원을 횡단하고 헤엄쳐서 바다를 건너고 도끼와 검만 가지고 산을 까고…….
과연 전생의 부정적인 나였다면 끝까지 해낼 수 있었을까?
각설하고, 적성면접장으로 떠나기 바로 직전 마지막으로 천라궁장에 들렀다.
제법 익숙해진 거뜬히 1만평은 될 널찍한 공간.
그러나 사시사철 한산하기 이를 데 없는 곳.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나 또한 지난 생에서는 잠깐 구경차 들렀을 뿐이지, 두 번 다시 찾지는 않은 장소였다.
활은 군문(軍門)에서는 아주 중요한 전략전술적 무기이지만, 무가에서는 홀대받는 대표적인 병기였으니까.
가끔 대평위 같은 별종들이 궁술을 연마하는 경우가 있지만, 아주 드물었다. 그리고 그 대평위 같은 경우에도 정작 주력병기는 검이었다.
검을 쓰기 전에 멀리서 활로 적의 힘을 빼놓거나 수를 줄인 뒤에, 검으로 마무리하는 전투방식.
‘뭐, 나도 궁술을 본격적으로 해보자고 이곳을 찾았던 건 아니었지.’
나는 [창고] 한 구석에서 썩은 듯, 나뒹굴고 있는 [귀궁]을 끄집어냈다.
“귀신의 활이라니. 이름만 봐서는 아주 살벌한 능력이 있을 것 같았는데. 젬병이라니.”
그 이름답게 활의 정탈목(활시위를 묶는 지점의 아래 굽은 부분)과 줌통(활 가운데 부분)에 주먹만 한 귀신의 머리가 달려 있는, 귀궁.
보통은 줌통에 가죽을 덧대놓아서 부드럽게 화살이 날아가게 해두는데, 이건 귀신머리의 입과 뒤통수 부위에 구멍이 뚫려있어 그 구멍을 통해서 화살이 통과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7일차때였나?
그래도 얻긴 얻었으니 확인이나 해보자고, 쏴봤었는데…….
“끼야아아아아아-!”
그 순간 천라궁장 내부에 울려 퍼지는 귀신 호곡성.
깜짝 놀라, 다시 [창고]에 집어넣었었다.
궁이 암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명색이 원거리 무기가 아닌가?
그런 무기가 ‘나 여기 날아가고 있소’하면서 발사되면 어쩌라는 건지?
혹시나 다른 비밀이 있나, 요리 보고 저리 봐도 도무지 그런 건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소득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띠링-.
[영구지속 무공 : 활(궁, 석궁, 노 등으로 분류되는 모든 무구를 포함) 숙련도]가 활성화되었습니다.
새로운 [무공] 하나가 추가되었으니까.
그 이후, 어제까지 [귀궁]이 아닌 다른 활로 열심히 쏜 결과물이 이거다.
[영구지속 무공 : 활(궁, 석궁, 노 등으로 분류되는 모든 무구를 포함) 숙련도]
Lv. 2 : 숙련도 1%
[활을 쥐셨을 때, 명중률이 5% 상승합니다.]
명중률?
언뜻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능력치.
명중시키면 명중시키는 거고, 빗나가면 빗나가는 거지.
거기에 확률이라니?
사실 이곳을 마지막으로 찾은 이유도, 이것 때문이었다.
[귀궁]을 다시 한 번 살펴보고 나서는, 다른 활로 몇 번 과녁을 맞혀보지만, 여전히 명중률에 대해서는 오리무중.
그러다가 실수로 시위를 잘못 메겨서 과녁이 아닌 엉뚱한 곳으로 쐈는데…….
‘어!?’
살짝 휘어지는 화살.
어느 쪽으로?
과녁 쪽으로.
그렇게 나는 적성면접 직전에 또 하나의 소득을 얻었다.
● ● ●
[귀궁]을 [창고]에 넣으면서, 전병자세로 자고 있는 주주의 옆에 술 한 동이를 꺼내두고는 천라궁장을 나섰다.
다음은?
뭐, 별 거 있나?
척, 입구 옆 나뭇가지에 걸쳐두었던 와룡제복을 대충 어깨에 걸쳤다.
그리곤 그대로 면접장으로 향했다.
“그럼 어디 한 번 가보실까?”
“여기 계셨습니다? 나님도 같이 갑니다.”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 알라봉대가 헤헤거리며 내 옆에 따라붙었다. 그리고,
“여, 똘마니. 이제 가냐?”
기후 녀석도 다가온다.
녀석들, 기다리고 있었으면서 우연인 척하는 게 귀엽구만.
“뭐, 그러시든가들.”
왁자지껄, 적성면접장에 가까워질수록 옆에서 걷는 신입관생들이 늘어난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지는 또 한 명.
“사매 넌 이미 적성면접 치렀다며?”
“내가 왜 가겠니?”
“하긴 사괴해가 같이 다녀야 사괴해지. 안 그래?”
“제발 난 빼주라.”
“안 돼. 너라도 있어야 우리 쪽수가 맞거든.”
내가 씩 웃으며 천소소의 합류와 함께 추가된 사내무리를 쭉 훑었다. 하나같이 눈빛으로 내게 살기를 보내는 녀석들.
어찌나 살벌한지 살이 다 떨릴 지경.
“하하. 저 정도면 무림이 멸망할 때가 되어도 너 하나 정도는 지켜줄 수 있겠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그런 게 있어.”
“또, 또 그런다.”
그래, 그 마음들 변치 마라. 혹, 내가 실패하더라도 당신들이 얘라도 좀 건사해줘.
우리는, 이내 다른 신입관생들 틈에 섞여 적성면접장에 들어섰다.
그리고 곧, 적성면접에 포함된 각종 검사와 시험들이 시작되었고…….
십팔반병기술(十八班兵器術).
기초체력 검정.
공력에 관한 세부검사.
의약, 독술 및 연단술에 대한 구술시험.
산학(算學, 수학), 기관진식 필기시험.
등등.
우리는 그걸 충실히 수행해냈다.
그곳의 그 누구보다도.
● ● ●
4시진 뒤.
와룡곡 입구에 마련된 특설 연무장.
본래 규정대로라면, 적성면접의 마지막 과정인 분반접견은 와룡상호각에서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금번 분반접견은 급작스레 특설 연무장에서 실시된다고 한다.
사실, 여기 오는 동안에도 몰랐다.
모든 검사와 시험 등을 마친 뒤 안내무관이 곡 입구로 데리고 가길래, 당연히 와룡상호각으로 가는 줄 알았는데…….
스물스물 엄습하는 불안한 느낌.
그리고…….
이놈의 나쁜 예감은 빗나가는 법이 없다.
연무장에 오르자마자 마주한 낯익은 얼굴들, 혹은 이름들.
통상, 익숙하면 반가워야 하는데…….
‘반갑기는 개뿔.’
그 얼굴들이 면접관 석에 주르륵 앉아있는 게 되려 문제였다.
제일 왼쪽부터,
지난번 무림맹 해남지부에서 내게 떡이 되도록 대패한,
‘도란농. 저 인간은 성치 않은 몸으로 왜 저기 앉아 있는 거야?’
그 다음엔,
‘……진혼진인은 또 왜?’
그가 눈을 찡긋하는데, 하나도 반갑지 않다. 벌써 화산파 파벌경쟁에서 밀려 여기까지 온 건가?
다음은,
가운데 제일 상석이었는데, 이곳에서 유일하게 처음 보는 인물이었다.
학창의에 방건, 애채를 낀 문사풍의 미중년인.
어느 모로 보나 이 자리에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외모였지만, [삼지안]으로 그의 이름을 보는 순간, 그야말로 저 제일상석에 가장 잘 어울린다는 걸 깨달았다.
‘현 무림맹주, 제갈총!’
직접 본 건 처음이었지만, 전생에서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어본 이름이다.
충분히 여기 있을 만했다. 하지만, 내 기억이 맞는다면 그건 또 그것대로 문제였다.
‘왜 여기 나왔지?’
장기후가 무림맹주의 기명제자가 될 때에도 무림맹주가 적성면접을 직접 한 건 아니었거든. 아니, 애초에 무림맹주가 적성면접에 나왔다는 얘기를 들어본 기억이 없어.
어딘가 역사의 물줄기가 또 한 번 비틀린 게 분명하다.
더 문제는…….
아직 벽력탄 급의 두 명이 더 남아있다는 것.
내 고개가 다음 사람을 향했다.
날 보며 있는 대로 인상을 구기는, 말라깽이 노인.
‘우간대, 저 인간은 또 왜 여기 있는 거야? 저 작자는 원래 면접 같은 건 자잘한 일이라고 절대 직접참관하는 일이 없었는데?’
하긴 무램맹주도 나와서 앉아 있는데, 무림대학관주가 참석하지 않는다면 그게 더 큰 문제일지도.
한데, 진짜 문제는…….
면접장 구석에서 앉아 기묘한 표정을 짓는 자였다.
분명 처음 본 얼굴이었다.
홍안에 매부리코, 턱밑에는 커다란 혹까지 달린 흉측한 외모의 중년인.
하나,
Lv. 1 [금봉남]
121세.
힘 : 12
체력 : 17
민첩 : 9
공력 : 0년
이걸 보고도 모른다면, 내가 바보천치등신이지.
‘대체 저 영감탱이는 또 왜 저기 앉아 있는 거야? 것도 저런 꼬라지로.’
기인이라고는 짐작하고 있었으나, 무림맹 인사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심지어 금봉남은 도무지 금시초문.
내 기억을 아무리 뒤져봐도 전혀 찾을 수 없던 이름.
120살이나 먹은 무림맹 고수가 왜 기억에 없지?
금봉남이라는 이름까지 알고 있는데, 왜 내가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지? 그 이름이 생소했기에, 사실 그저 강호에 모래알처럼 존재한다는 심산유곡의 은거기인이라고만 여겼었다.
그래서 이런 데서 마주치리라고는 터럭만큼도 예상치 못했다.
게다가, 변장을 한 건지, 전설 속 무공인 변체환용술(變體換用術)이라도 쓴 건지는 잘 모르겠다만, 중년의 얼굴을 한 채 말이다.
도란농, 진혼진인, 무림맹주, 무림대학관주, 금봉남.
‘이게 말이 되는 조합이냐고! 썩을!’
내 속마음 아우성과는 상관없이, 이윽고 내 1년간의 무림대학관 생활을 결정할 분반접견이 개시되었다.
● ● ●
가장 먼저 나를 똑바로 바라보는 도란농.
아마도 왼쪽부터 심사를 시작하는 모양.
사락, 그가 오전 오후 내내 있었던 검사와 시험결과가 적힌 서류들을 뒤적였다. 가끔은 뒤쪽에 시립해있는 무관들을 불러 뭔가를 재차 삼차 확인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한 번씩 날 노려보는 게 영 기분이 찝찝했다.
“1급 면접관 도란농이네. 물론, 자네라면 누구보다 잘 알겠지만 말일세.”
아 네, 물론입죠.
“헌데 오늘 결과를 살펴보니, 엉망진창이로군.”
엉망진창? 뭐가?
“의약, 독술 및 연단술에 대한 구술시험과 산학(算學, 수학), 기관진식 필기시험 등 거의 역대 최악이라 할 만큼 저급하단 말일세.”
……할 말이 없군. 너무도 당연한 결과라서.
“모름지기 무림대학관의 관생이라면 지덕체(智德體)를 고루 갖춰야…….”
한창 도란농이 나를 몰아붙이려 할 때였다.
“그만해.”
가운데서 도란농의 말을 싹둑 도려 먹는 목소리.
변조된 금봉남의 음성이었다.
“네놈 눈에는 부족한 지(智)만 보이고 탁월한 체(體)가 보이질 않는 게냐? 아니면 눈알이 사시인 게냐?”
“말씀을 삼가주시오! 아무리 특별참관인이시더라도 예의는 지켜…….”
“120살 넘었으면 지켜주마.”
“그, 그게 무슨!?”
“그게 아니라면 네놈부터 저 아이에게 예를 지켜라. 이곳은 죄인을 취조하는 자리가 아니라, 적성에 맞게 분반을 결정하는 자리다. 사.심.없.이.”
“…….”
속에서 폭폭 터지는 뭔가가 올라오는 기분.
그때 이어지는 금봉남의 말.
“십팔반병기 모두에 능통하고, 기초체력은…….”
말하던 중 금봉남이 잠시 쉬었다가 나를 보며 능글맞게 웃는다. 아무리 다른 얼굴로 가리고 있어도 속일 수 없는 괴소다.
“무림대학관이 생긴 이래 역대 최고점이로군. 전무후무할 만큼.”
웅성웅성.
이곳은 특별 설치되었을 뿐 아니라, 야외 연무장.
주변에 많은 무인들과 관생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기초 체력 역대 최고.
앞서 구술과 필기에서 역대 최악을 차지했다란 말은 쏙 들어갔다. 무림이란 곳에서는, 지보다 체가 월등히 중요한 곳이었기에.
으득, 분함에 도란농이 이를 악물었지만, 어찌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그게 사실이었으니까. 자기도 무림인이었고.
“……흠흠. 그럼 다시 계속하겠네. 그래, 지의 부족함은 체의 탁월함으로 메꾼다고 치고, 덕(德)은 어떨지 모르겠네.”
하지만 여전히 내게 쌓인 게 많은, 그의 표정. 어떻게든 내게 한 방을 먹이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이 자리가 인성면접이 아니라 적성면접을 위한 자리라는 걸 알지만, 반갑디반가운 얼굴을 보니 이 질문을 안 할 수가 없어 묻는 것이니 이해해주게.”
“네, 그러시죠.”
“본 면접관은 꼭 듣고 싶으니, 다시 한 번 묻지. 사파와 마도 간 전쟁이 났다고 가정해보게. 우리 정파인들의 입장에서는 이때 어떻게 해야겠는가? 그 둘이 피터지게 싸우는 걸 관망하는 겐가? 이번 참에 아예 그들의 배후를 기습타격 섬멸하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둘의 싸움을 중재해서 확전을 막는 게 나을까? 무엇이 참된 의고 협이라고 여기나? 자네 견해는?”
‘하-. 끈질기고 집요하고 찌질하다, 찌질해.’
도란농의 말대로 적성면접, 그것도 분반접견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질문.
나야 뭐, 저게 보복성 질문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다른 이들이 그걸 알 리가 없지.
무림맹주를 비롯한 특별참관인이나 다른 면접관들은 아주 흥미롭다는 듯 내 입에 눈을 모은다. 심지어 조금 전 내 편을 들어주었던 금봉남 영감 또한 꼭 듣고 싶다는 얼굴로 나를 주시한다.
저 질문을 처음 받았을 때에도 그랬었지만,
‘의와 협이라.’
평생 별로 고민해본 적이 없었던 주제.
그런 건, 저 위의 높으신 분들이나 하는 고매한 일이라고 치부했었던 것 같다. 나는, 그저 나와 내 주변인만 잘 건사해도 다행이라고 여기며 살았으므로.
“…….”
도대체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쉬이 입술을 떼지 못하고 있는데, 진혼진인과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젊은 진혼진인의 얼굴에, 예전……아니, 이제는 미래가 될 그의 주름진 얼굴이 겹쳐졌다.
동시에 떠오르는, 그에게 들었던 말들.
― 명심해. 어차피 모두를 구할 수는 없어. 그저 그것 한 가지만 기억하면 돼. 하지만 최대한 여럿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 야이, 개새끼야! 천하제일인이라는 새끼가 투항하면 누가 싸워! 누가 싸우냐고! 씨발!
― 상합허도. 참 좋기도 하겠다, 이 개새끼들아.”
뒤이어, 동공이 마주친 금봉남 영감.
이번엔, 그의 가짜 얼굴에 진짜 얼굴이 덧씌워진다.
― 천하제일인은 목표가 될 수가 없느니라. 천하제일인이라는 건 수단이지 목적이 될 수는 없느니라.
― 멸망할 거라는 걸 알고 있다고? 그럼 노력해야지. 네놈 말마따나, 노력에 배신당하지 않을 만큼은 노력해봐야지. 설사 그 노력에 결국 배신당해서 중원이 멸망한다 해도 말이지.
― 잊어라. 그게 용기없는 자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노력이다. 망각은 너 혼자만이라면 언제나 피안(彼岸)이니라. 친우가, 가족이, 이 세상이 멸망한들 무엇이 대수이겠느냐?
― 될 수 있다 없다를 떠나서, 네가 만약 천하제일인이 된다면 그건 미리 생각해놓거라.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걸. 중원이 멸망하는 상황에서 천하제일인이 할 일이란 건 너무도 뻔하질 않느냐?
마지막으로,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지금 이 순간, 아버지가 내려다보는 듯하다.
― 노력하거라.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노력하고 또 노력해라. 요행을 바라지마라. 설사 요행을 바라더라도 노력해라. 요행도 열심히 노력한 자에게 더 많이 찾아올 터이니.
― 마음이 편해야 하느니라. 마음이 불편한데 노력이 다 무슨 소용이냐?
― 노력에도 왕도가 있고 정도가 있는 법이다. 이 아비는 네가 왕도와 정도를 걸었으면 싶다. 조금의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그 길을 벗어나서는 크게 되지 못하느니라.
― 위를 보고 그리로 일로정진(一路精進)하는 건 항상 옳은 일이다. 그렇다고 아래나 주변을 여유롭게 둘러보고 돌보는 것이 옳지 않은 일은 아니니라.
짧은 시간.
폭풍처럼 그들의 말들이 서로 얽히고설켜 하나의 실체를 만들어갔다.
‘그렇군. 그랬어.’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나의 가치관, 의와 협은 이 모든 것들이었다.
지금의 나를 이끌고 있는, 길라잡이.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게 아니라, 나만의 ‘의와 협’이 체화(體化)되어 있었던 것이다.
스스로 의외 협을 너무 거창하게 생각했기에, 느끼지 못하고 있었을 뿐.
그리고 내가 배우고 체득한 의와 협은, 저 질문 안에…….
“거기엔 의와 협이 없기에, 대답할 가치가 없습니다.”
……없었다.
“단 한 마디도.”
단 1냥도.
무한 레벨업 in 무림
지은이 : 곤붕
발행인 : 손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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