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692
시로네는 벌써부터 불안했다.
“금지를 했으면 지켜야죠. 그렇게 쉽게 쓸 수 있는 게 무슨 금지된 술법이에요?”
“통합우주관리부가 책임져 주겠지. 내 말은 안 믿어도, 태성이 너라면 끔찍하거든. 대신 소원 거부권 세 장 줄게.”
“타협의 대상이 아니에요.”
“그래?”
미네르바는 깊숙이 연기를 빨아들였다.
“그럼 징계받지 뭐.”
재앙 마법-워킹 데드.
볼을 부풀린 그녀가 고개를 좌에서 우로 움직이면서 숨을 내쉬자 녹색 연기가 구름처럼 피어올랐다.
“도대체 사람 말을…….”
“이미 저질렀어.”
미네르바의 말에 상황 판단을 끝낸 시로네가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어어어…….”
연기를 맡은 수십 명의 마족들이 멍청하게 풀린 동공으로 잠시 서 있더니 갑자기 난폭해졌다.
하지만 그들이 공격하는 대상은 미네르바가 아니라 바로 옆에 있는 마족들이었다.
“이게 대체…….”
미네르바가 설명했다.
“동족상잔의 술법, 워킹 데드. 중독되면 오직 동족에 대한 적개심뿐이야. 의식이 없어지지만, 머리가 날아가지 않는 한 죽지도 않지.”
“워킹 데드.”
역사책에 기록되어 있는 끔찍한 재앙의 이름이었다.
“그래. 그리고 이 걸작의 진정한 무서움은…….”
미네르바가 살기를 드러내며 말했다.
“감염感染이다.”
감염자 수 : 48명.
“크르르르…… 크아아아아!”
마족에게 물린 마족이 눈을 뒤집어 까면서 옆에 있는 또 다른 마족을 물었다.
감염자 수 : 127명.
“따라와. 이대로 지도자의 궁전으로 진입한다.”
마족들이 아군을 공격하기 시작하면서 미네르바를 중심으로 공터의 간격이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 멍청아! 왜 우리를 물어뜯는 거야!”
감염자 수 : 897명.
시로네는 저절로 넓어지는 길을 따라 걸어가는 대마녀의 등을 망연하게 쳐다보았다.
‘미라크 미네르바.’
인류안전집행부의 오대성이지만 어쩌면 그녀야말로 걸어 다니는 재앙이라 할 수 있었다.
“인간의 편을 드는 놈들은 마족이 아니다!”
감염자 수 : 2,483명.
“후후, 그렇게 쉽게 될까?”
인구밀도가 높을수록 감염의 위력은 극대화된다.
“으아아아! 안 돼! 차라리 죽여!”
나네 이전에 이미 인류를 멸종 직전까지 몰고 갔던 최악의 불길이 수장궁에 번지고 있었다.
감염자 수 : 6,323명.
파멸의 군주 (2)
***
“군단장님.”
제24군단에 소속되어 있는 7사단장 베슘이 흑철 갑옷을 철컹거리며 다가왔다.
“병사들이 아군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파멸의 마라두크, 아름다운 남자는 권좌에 앉은 채 그저 옅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막을 수 있겠는가?”
베슘이 곧바로 부복했다.
“맡겨만 주십시오!”
“흐음.”
마라두크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베슘 외에 자리를 지키고 있던 3명의 사단장이 경의를 표했다.
“흥미로운 능력이군. 감염이라…….”
마라두크가 창밖으로 내려다보는 광경은 개성을 구별할 수 없는 거대한 파도였다.
“으아아! 죽어! 그냥 죽으란 말이야!”
감염자 수 : 165,843명.
워킹데드에 걸린 마족들이 동족을 학살하는 장면을 지켜보는 마라두크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실로 악마가 아닌가?”
그 아이러니를 음미하며 4명의 사단장도 창밖의 광경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감염자 수 : 325,574명.
100만 단위의 스케일에서 만들어지는 감염 경로가 거대한 파문을 일으키며 지도자 궁을 향해 밀려들고 있었다.
“치워라.”
마라두크는 단호한 결정을 했다.
“쓸모없는 것들이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었고 감염자 수가 100만을 넘어서면 그때부터는 사단장도 피곤해진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전장의 한복판을 거니는 시로네와 미네르바는 저 멀리 보이는 지도자 궁을 눈에 담았다.
“자결해라! 물리는 즉시 자결해!”
지옥의 여단장들이 엄포를 놓았으나 이미 지휘 계통이 먹힐 상황이 아니었다.
몇몇 마족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나 통계는 언제나 평균에 수렴하고, 기회를 놓친 마족들이 다시 주위를 공격하면서 감염은 스노볼처럼 커져 갔다.
감염자 수 : 653,329명.
시로네는 지옥의 군대가 열어 주는 길을 따라 걸어가며 침을 꿀꺽 삼켰다.
‘끝났어. 무시무시한 마법이다.’
인구밀도가 높은 덕을 보기도 했지만 설령 분산되어 있더라도 전멸은 시간문제였을 것이다.
그래서 마음이 아팠다.
‘동족상잔의 마법.’
미네르바가 처음 이 마법을 세상에 공개했을 때, 인류는 멸종 위기를 맞았다.
‘원래는 인간을 없애기 위해.’
얼마나 끔찍한 인간 혐오가 깃들어야 이런 마법이 세상에 구현될 수 있는 것일까?
“너무 그러지 마.”
담배 연기를 뿜어내는 미네르바가 씩 하고 입꼬리를 찢으며 말했다.
“그렇게 칭찬하면 부끄럽잖아.”
“…….”
시로네가 생각에 잠긴 그때, 지도자 궁에서 쿵 하고 폭발이 일어났다.
“저쪽도 이제야 엉덩이에 불이 붙은 걸 알았나 보네.”
미네르바가 곰방대로 가리킨 곳에 눈에 보일 정도로 선명한 보랏빛 기운을 뿜어내는 4명이 있었다.
“사단장이야.”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흑철 갑옷을 입은 마족이 한 걸음 내디디면서 검을 휘둘렀다.
“한심한 것들.”
잔상으로 끝나야 하는 검의 궤적이 여전히 공간에 남아 꿈틀거리더니 거대한 파문을 일으키며 퍼져 나갔다.
“으아아아!”
일검에 베인 마족의 숫자는 300명이 넘었고, 다른 사단장들도 아군을 없애기 시작했다.
“맞불 작전이군요.”
감염 대상자를 미리 제거하면 최소한 마족들이 지도자 궁으로 밀려드는 것은 막을 수 있다.
“마족다운 판단. 하지만 어차피 못 막아.”
이미 감염자 수가 비감염자 수를 초월한 상태였다.
“시간은 벌 수 있겠지. 저기를 봐.”
지도자 궁의 꼭대기를 가리키자 제24군단장 마라두크가 언짢은 얼굴로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잘생겼네.”
미네르바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강하겠어.”
반론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마의 기운이 불길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군단장은 내가 맡을게. 너는 여기를 정리해.”
시로네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이건 제 일이에요. 제가 군단장을 해치울 테니 사단장 쪽을 맡아 주세요.”
미네르바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너, 군단장하고 싸워 본 적 있어?”
없었다.
“사단장이 얼마나 강한지는 알고 있겠지. 하지만 군단장은 그런 수준이 아니야. 마魔의 응집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최고의 걸작.”
라둠에서 공포의 군주 이고르가 ‘통속의 뇌’로 용병대를 괴롭혔던 기억이 떠올랐다.
“마魔라는 원료에 사탄의 개성이 녹아들어 태어난 것이 지옥의 군대. 특히 사단장급 이상부터는 개성의 기괴함이 상식을 벗어나지. 나네의 옳음과는 다른 문제야.”
사탄은 율법에서 벗어나 있는 존재였다.
“나네의 설법이 강력한 이유는 결국 그것이 옳기 때문이지. 그의 혀는 진리의 검이 되어 세상을 찌른다. 반면에 너의 야훼가 강력한 이유는, 틀린 것도 틀리지 않게 만들기 때문.”
모든 율법이 시로네를 사랑하고 있다.
“그게 무한의 마법사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야훼의 빛을 통해 구현된다. 그렇다면 신인가?”
신이 아니다.
“신의 능력을 구사할 뿐, 너는 인간이야. 신은 상상 따위 하지 않아. 자기가 만든 것이 전부니까.”
정말로 신이었다면 제이시도 세상을 고통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잘난 척 떠벌리고는 있지만, 너는 강해. 분명 나네의 거대한 옳음을 막을 수 있는 건 너의 무한밖에 없지. 하지만 그것도 확장성의 대결이야. 깊이만을 놓고 보자면…….”
단호한 목소리였다.
“너의 경지가 미로나 베론보다 깊다고 생각하지 않아. 적어도 아직은 말이야.”
그것 또한 사실.
“너는 이제 스무 살이야. 너의 판단에 따른 것은 가능성을 봤기 때문이지, 지금 당장 전체를 구할 수 있다고 믿어서가 아니야. 제이시의 일도 그렇잖아?”
소수의 지휘관을 제외한 모든 마족들이 감염된 가운데 미네르바가 걸음을 옮겼다.
“나에게 맡겨. 뒤를 부탁할게.”
시로네가 미네르바의 어깨를 짚었다.
“제가 하게 해 주세요.”
“……이건 내기가 아니야. 네가 죽으면 인류는 끝장이야. 나야 상관없는 일이지만.”
“죽지 않아요. 죽음으로 구원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미네르바가 혀를 차며 몸을 돌렸다.
“마음대로 해라. 어차피 네가 구한 세상, 죽을 끓이든 독을 타든…….”
“걱정하지 마세요. 천국에서는 대천사를 상대로도 살아남았으니까요.”
미네르바는 쓴웃음을 지었다.
“파계(시스템 디스트럭션)할 수 없는 천사들 따위…….”
“파계?”
“앙케 라는 시스템의 주인이야. 자신의 집에 불을 지르는 것을 허락하는 주인은 없다는 거지.”
“이해가 안 되는데요.”
“자세한 건 태성에게 들어. 어째서 앙케 라가 이미르를 봉인할 수밖에 없었는지…….”
제트를 휘돌린 미네르바가 하체를 구부리며 튀어 나갈 자세를 취했다.
“하겠다면 말리지는 않겠지만,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군단장은 야훼를 버틴다.”
미네르바가 제트를 타고 무섭게 돌진하자 시로네도 일단은 의문을 접어 두고 몸을 날렸다.
‘군단장을 해치우면 전쟁은 끝난다.’
광익을 펄럭이자 순식간에 마라두크가 있는 지도자 궁의 첨탑에 도착했다.
미네르바가 있는 곳에서 폭음성이 터졌으나 돌아볼 겨를도 없이 마라두크가 날아올랐다.
“야훼인가?”
군단장의 검이 수직으로 세워지고, 손잡이를 타고 검은 기운이 칼날을 뒤덮었다.
‘위험하다.’
마라두크가 휘두른 검이 풍경을 양분하자 지평선 끝까지 두께 10미터의 선이 뻗어 나갔다.
“저건 뭐야?”
시폭감을 이용해 자리를 벗어난 시로네는 건너편 첨탑에 올라 지상을 관찰했다.
소리도, 충격도 없었다.
자로 대고 그은 것처럼 똑바로 뻗어 있는 선은 깊이를 짐작할 수 없는 깊은 고랑이었다.
‘얼마나 깊지?’
1킬로미터, 10킬로미터, 어쩌면 그 이상.
“벌써부터 놀라면 곤란하지.”
시로네가 천천히 고개를 돌린 곳에 마라두크가 오른손 위에 검은 구체를 띄우고 있었다.
“파멸의 마魔.”
기름처럼 물컹거리는 구체가 추락하면서 지도자 궁의 천장을 뚫고 들어갔다.
“…….”
궁전의 내부를 스피릿 존으로 확인하자 연속으로 층을 관통한 구체가 땅을 뚫고 들어갔다.
‘계속 떨어지고 있어.’
물리적으로는 일어날 수 없는 현상이었다.
“걱정하지 마. 별을 뚫지는 못한다.”
시로네는 마라두크를 돌아보았다.
“그저…… 조금 아플 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