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917
‘하지만 알고 있는가, 시대의 메시아여? 부처의 공이 애를 넘지 못한 이유는…….’
어쩌면 세상의 악이 완전히 태동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물론 선의 힘이다.’
미로가 악을 막아 내고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일까? 만약 세상이 지금보다 혼탁해진다면, 부처도 마음을 지우게 될 것.’
행성을 지켜보는 나네의 눈빛이 슬픔에 잠겼다.
‘세상 속으로 스며드는 박애여, 공은 이곳에서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과연…….’
우리가 존재할 가치가 있는지를.
***
연합군의 간부들은 시로네의 말에 따랐다.
‘정말로 하고 싶은 것.’
가족을 만나러 가도 좋고, 죽는 것이 두려우면 전쟁을 포기해도 좋다.
시로네는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이 울티마 시스템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렇게 생긴 모두의 의지는 박애에 스며들어 선악공애를 회전시킬 터였다.
“그럼, 가 보겠습니다.”
놀랍게도, 하나의 기치를 세우고 모인 자들의 상당수가 전장을 이탈했다.
미로가 씁쓸하게 말했다.
“인간이란 확실히 다양하네.”
“울티마는 모든 개성을 인정하는 고차원적인 정신이에요. 옳음, 즉 통합은 그다음이죠. 자신의 마음을 모르는 사람이 남의 마음을 이해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렇게 대답한 시로네가 물었다.
“미로 씨는 남을 건가요?”
“당연히 남아야지. 어쩌니 해도 여기가 전장의 중심이니까. 그럼 어디, 이곳에 남은 사람들은…….”
리안과 네이드, 에이미와 테스는 당연히 시로네가 있는 곳에 남았고, 12사도 중에는 초룡 에이트라와 뇌룡 블리츠가 자리를 지켰다.
아르민과 쿠안은 떠났고, 세인이 미로를 보좌했다.
‘단테와 리리아, 에덴은 마족의 잔당을 추적하기로 했고, 가르시아와 연합군은 바슈카의 성벽을 보수 중.’
그리고 가장 중요한 부분은.
“그 모든 곳에 시로네, 네가 있다는 거지.”
“네. 관찰자의 영역을 어디까지 설정하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일단 바슈카 시내 정도는 양자 전송 없이 스피릿 존으로 커버가 될 것 같아요.”
“흐음, 그렇군. 공간 이동도 쉬울 테고. 울티마 시스템, 확실히 효과적이야.”
“헤헤, 그럼 나도 시로네 하나만 주면 안 돼?”
모두 황당한 표정으로 테스를 돌아보자, 그녀가 쩔쩔매며 말을 이었다.
“왜, 왜 그래? 웃기잖아! 상상해 봐.”
“…….”
침묵이 길어질수록 초조함이 더해졌다.
“아니, 그런 상상이 아니라! 정말 웃자고 한 얘기라니까? 진짜야!”
정직한 테스이기에 할 수 있는 농담이었으나, 너무 정직한 게 문제였다.
시로네는 그런 테스가 좋았다.
“하하, 그래. 믿어 줄게.”
이제야 친구들에게 돌아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 곧 이루키가…….”
시로네의 얼굴이 갑자기 굳어졌다.
“왜 그래, 시로네?”
“……아니, 아니야.”
다시 웃음기를 되찾은 시로네였으나, 조금 전과 달리 눈빛은 가라앉아 있었다.
미로는 짐작했다.
‘이곳의 사건이 아니야.’
어쩌면 아주 먼 곳에서, 시로네에게 슬픈 상황이 닥친 것인지도 모른다.
***
“크으으으!”
수많은 천사들이 이길 수 없는 관성에 이를 악물었다.
핸드 오브 갓에 담긴 시로네의 마음은 ‘제발 멀리 날아가라.’였다.
그 심리로 추정하건대, 핸드 오브 갓의 힘이 가장 강력하게 작용한 것은 천국의 군대의 최강자들일 것이다.
‘가공할 위력이구나.’
어느새 중부 대륙을 지나 북부 대륙에 진입한 이카엘은 빠르게 흐르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
시로네, 헥사, 핸드 오브 갓. 거핀. 앙케 라의 소멸. 천사장의 직위.
“천사장님.”
헥사의 힘에서 벗어난 3명의 대천사와 마라들이 이카엘에게 모여들었다.
“그래. 보고하라.”
“군대는 아슈르가 재소집하고 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이미르와 거인 부대는 독단적으로 행동할 것 같습니다.”
유리엘이 물었다.
“막을까요?”
“아니, 내버려 두어라. 내가 직접 처리하겠다.”
사티엘이 나섰다.
“천사장님,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어찌하여 나서지 않으셨는지요?”
바슈카에 처음 도착해 이미르가 공격의 포문을 열었을 때에도, 이카엘은 공격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혹시 기억을 되찾으신 게 아닙니까?”
이카엘이 침묵하자 사티엘의 질문이 조금 더 치명적으로 바뀌었다.
“저에게도 약간의 느낌은 남아 있습니다. 만약 천사장의 직무를…….”
파공음을 내며 이카엘이 우뚝 멈추자, 멀어졌던 대천사들이 황급히 되돌아왔다.
“사티엘.”
차가운 목소리에, 사티엘의 성광체가 흔들렸다.
“네, 이카엘 님!”
“내가 어떤 판단을 하든 그것은 천사장의 사유다. 네가 나의 위에 있느냐?”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대천사를 얼게 할 정도로 차갑게 쏘아붙였으니 당분간 이 안건을 올리는 일은 없을 터.
하지만 공교롭게도.
“이카엘.”
천사들의 눈앞에 빛의 연기가 뭉치더니 시로네가 모습을 드러냈다.
“너……!”
사티엘의 사법 광륜 노스탤지어가 무섭게 회전했다.
알 수 없는 분노.
그리고 지금도 미동하지 않는 이카엘의 성광체.
‘뭐야? 내가 모르는 게 도대체 뭐냐고?’
“시로네.”
이카엘이 천천히 전진했다.
“혼자 온 것입니까?”
“네. 우리는 아마도, 할 얘기가 있을 것 같아서요.”
이카엘의 시선이 후미를 살피듯 움직였다.
“나는…….”
모두의 귀가 열린 가운데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당신과 할 얘기가 없는 것 같은데요.”
시로네의 얼굴에 슬픈 감정이 떠올랐다.
‘이카엘…….’
많은 일들이 있었다.
처음 천국에서 아타락시아를 전수받았고, 두 번째 전투에서는 그녀가 자신을 막아서기도 했다.
이토록 차가운 이유는…….
‘정말로…… 모든 기억을 되찾았군요.’
어머니이기 때문에.
막연한 기대감을 품고 조심스럽게 마음을 부딪쳐 보던 감정은 더 이상 없다.
남은 건 성광체에 선명하게 각인된 끔찍한 비극과, 지금도 자신을 의심하는 천사들의 시선뿐.
‘모성이란 것이겠지만…….’
알면서도, 시로네는 당당하게 말하고 싶었다.
“이카엘, 이제 저는 약하지 않아요. 그러니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 없어요.”
이카엘의 시선은 또렷했으나, 무언가가 핑 하고 끊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버틸 수 있는 한계치일 것이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요. 나는 천사장으로서…….”
“당신의 잘못이 아니에요.”
급기야 참을 수 없게 되어 버린 이카엘의 성광체가 엄청난 강도로 흔들렸다.
“제가 죽은 건…….”
시로네가 마음을 담아 그녀에게 전했다.
“엄마의 잘못이 아니라고요.”
동시 사건(2)
이카엘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전투적인 느낌보다는, 마치 필사적으로 무언가를 붙잡고 있는 듯 보였다.
결국 참지 못한 울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흐윽.”
기적과도 같은 일일 것이다.
죽은 자식이 살아 돌아와 어머니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 주는 것은.
“이카엘 님.”
사티엘이 차갑게 물었다.
“어떻게 된 일이죠? 만약 기억을 되찾은 것이 사실이라면 그에 대한 해명을…….”
유리엘이 말을 끊었다.
“기다려.”
사티엘이 무서운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뭐야, 넌? 지금 나한테 말한 거야?”
“잃어버린 기억이 무엇이든, 이미 지나간 일이다. 아직 이카엘 님은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았어.”
“헛소리.”
사티엘이 콧방귀를 뀌었다.
“지나간 일이라고? 이카엘 님은 우리를 속였어. 모든 것을 알면서 모른 체했다고.”
“야, 너.”
시로네가 분노를 담아 말했다.
“조용히 해. 지금 내가 이야기하고 있잖아.”
이유가 있는 분노였으나, 당하는 입장인 사티엘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고작해야 인간 따위가 대천사와 맞먹으려고 들어? 지금 당장 죽여 줄까?”
이카엘이 말했다.
“사티엘, 유리엘의 말이 옳다. 내가 판단하고 내가 결정할 것이다.”
“크으으으!”
사티엘은 정신 깊숙한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거대한 모멸감을 느꼈다.
거핀과 이카엘, 시로네와 이카엘.
후자의 관계가, 잃어버린 전자의 기억을 끝없이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
‘밉다. 너무 미워.’
선명하지 않기에 더욱 미칠 것 같았고, 급기야 사티엘의 이성이 증발했다.
“닥쳐.”
이카엘의 눈매가 꿈틀했다.
천사장에게 폭언을 하는 건 천국의 역사에서도 손에 꼽는 사건이었다.
유리엘이 살기를 띠며 돌아보았으나, 이미 사티엘의 얼굴은 괴물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왜? 너희들이 뭔데?”
맥락에서 벗어난 말 같았지만, 시로네와 이카엘은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도대체 너희들이 얼마나 잘났기에 나한테 이래?”
성광체에서 순수함이 사라지고, 눈에서는 빛이 아닌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3각 마라 이오나스가 일렀다.
“사티엘 님, 고정하십시오. 타락천사의 기제를 상기하셔야 합니다.”
천사가 타락할 수 있을까?
아마도 가능한 경우라면, 순수한 정신체에 마음이 깃들었을 때일 터였다.
고통을 주는 마음.
그리고 자신을 괴롭히는 마음이란, 이미 각오했을 때에야 나오는 법이기에.
“내가 뭘 어쨌다고 무시하는 거야?”
사티엘은 멈추지 않았다.
시로네와 이카엘이 의견을 일치시킬 때마다 정신이 찢어질 것 같았다.
‘그래, 이제는 뭔지 알겠어.’
막연한 느낌이지만.
“항상 나는 들러리였다고! 너희들이 나를 망친 거야! 너희들 때문에!”
이번에는 시로네도 입을 다물었다.
거핀과 이카엘이 자식을 낳기 전까지, 그녀가 얼마나 인간을 위했는지를 알기 때문이다.
‘불쌍한 천사야.’
하지만 또한 알고 있다.
그녀가 이름조차 받지 못한 갓난아기를 끔찍한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는 사실을.
‘나를 죽였어.’
사티엘이 소리쳤다.
“말해! 내가 뭘 잘못했지? 당신은 알잖아! 천사장의 권위를 깔아뭉개기라도 했어? 아니면…….”
갑자기 말이 멈췄다.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