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94
“전부 꺼져. 죽여 버리기 전에.”
맞불 작전도 당연한 수순이라 예상했는지 아미라는 태연하게 받아쳤다.
“떼쓴다고 될 일이 아니야. 그리고 선배에게 죽여 버린다고? 어디서 배워 먹은 말버릇이야?”
학교도, 선배도, 알페아스의 과거도 네이드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시로네가 죽었는지 눈으로 봐야겠다고? 그렇다면 들어가. 대신 목숨은 보장할 수 없다.”
네이드의 머리 위로 볼트가 떠오르더니 주위에 강력한 낙뢰가 뿌려졌다.
전격 마법 라이트닝.
하지만 그보다 놀라운 것은 네이드에게서 피어오르는 플라즈마였다.
아미라의 태연한 표정이 깨졌다.
‘말도 안 돼.’
플라즈마 마법을 시전하려면 초고온의 전지를 구축하거나 가상의 초고온을 전능으로 느껴야 한다.
전자의 방식은 개발되지 않았기에 모든 플라즈마 마법사들은 후자에 속하는데, 이론으로 배울 수 있는 게 아니기에 프로들도 어려운 경지였다.
“어떻게 고급반이 플라즈마를…….”
다른 학생들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 네이드라면 고작해야 클래스 파이브의 중위권이 아니던가?
3층에서 지켜보던 이루키가 혀를 찼다.
‘멍청한 놈.’
5년 전의 네이드가 지금과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여태까지 잘 참아 놓고…….’
그 사건 이후, 네이드는 자신의 진짜 얼굴을 절대로 드러내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런 그가 시로네를 지키기 위해 가면을 벗어던진 것이다.
‘이러면 내가 좀 미안해지잖아.’
이루키는 씁쓸하게 몸을 돌렸다. 그리고 원래부터 없었던 사람처럼 의무실을 빠져나갔다.
한편 시위대는 사뭇 당황스러웠다.
졸업반에도 일렉트릭 몬스터라고 불리는 라이컨이 있기에 플라즈마가 얼마나 강력한지는 알고 있었다.
네이드가 아미라를 노려보며 말했다.
“마지막으로 경고한다. 꺼져.”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이미 죽은 친구를 지키는 게 너에게 무슨 의미야?”
“시로네는 죽지 않았어.”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고 말한다. 심지어 친구인 이루키조차.
그 서러운 감정이 북받친 네이드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너희들이 뭘 알아? 시로네에 대해 뭘 안다고 함부로 지껄이는 거야?”
그 눈물에서 아미라는 진심을 느꼈지만, 뜻을 굽힐 생각은 없었다.
“실력 행사를 원하는 거라면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누군가 피해를 입기 전에 너를 제압하겠다.”
회백색의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며 아미라의 주위를 맴돌았다.
기후 마법 클라우드였다.
“너도 알겠지. 전기하고는 극상성인 마법이야. 네가 아무리 전격을 날려 봤자 나에게는 통하지 않아.”
네이드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얼마든지.”
사방을 휘젓는 전격이 엄청난 밝기로 타오르는 그때 현관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하여튼. 그러게 감당도 안 되는 짓을 왜 해?”
이루키가 나오자 네이드의 인상이 구겨졌다. 또 무슨 딴죽을 걸려고 나타난 것일까?
“방해하지 마. 이건 내 싸움이야.”
“하지만 이제부터는 내 싸움이기도 하지.”
“너는 저쪽 편 아니었냐?”
여전히 둘은 친구지만, 시로네가 죽었다고 판단하는 이루키가 전투에 끼어들 이유는 없었다.
“애도 아니고 편 가르는 거냐? 나도 진심이야. 저놈들이 시로네를 데려가는 건 싫으니까.”
아미라는 황당할 따름이었다.
뛰어난 학생이라는 건 알지만 기껏해야 고급반.
졸업반 선배들 앞에서 당당하게 내뱉을 수 있는 말은 아니었다.
금강승(5)
“오냐오냐해 주니까 너희들이 진짜로 대단한 줄 알아? 우리를 상대하겠다고?”
아미라의 뒤를 이어 시위대 전원이 스피릿 존으로 들어가자 엄청난 수준의 정신력이 네이드와 이루키의 공감각을 통해 밀려들었다.
‘크크크크.’
그들의 대치를 지켜보던 페르미는 남몰래 어깨를 들썩였다. 지금 상황이 우스워 죽을 지경이었다.
‘그래. 싸워라, 싸워.’
혼란과 충돌에서 이윤이 창출된다고 믿는 페르미에게 전쟁은 최고의 블루 오션이었다.
‘슬퍼해라. 분노해라. 자신만 옳다고 소리쳐라. 그렇게 판을 키우는 거야.’
물론 판돈은 전부 페르미가 먹는다.
냉정한 소수가 감정적인 다수를 착취하는 것만이 이 세계에서 부를 축적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니까.
팽팽한 대치 상황에서 페르미의 입가에 걸린 미소를 보고 있는 건 시이나뿐이었다.
‘전부 네 녀석 소행이지.’
화는 나지만 페르미의 철학 또한 어설프지 않기에 비난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알페아스가 시이나 옆에 섰다.
“어쩔 수 없구먼.”
“교장 선생님.”
“여기까지인가 보네. 학생회의 요구를 받아들이게.”
에이미가 소리쳤다.
“안 돼요! 그러면 시로네는요?”
“에이미, 미안하구나.”
“어떻게 이러실 수가 있어요? 교장 선생님은 아시잖아요, 시로네가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요.”
“아니. 사실은 잘 모르겠단다.”
알페아스는 충격을 받은 채 굳어 버린 에이미의 어깨를 가만히 짚었다.
“에이미, 누구도 시로네의 상태를 알 수 없단다. 다만 믿고 있는 것뿐이지. 물론 나 또한 시로네가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믿고 있지만…….”
“그런데 어째서?”
“하지만 보렴. 시로네만큼 소중한 제자들이다. 그런 아이들이 서로를 죽이기 위해 스피릿 존을 펼치고 있어. 이제는 나도 어쩔 수가 없구나.”
“그, 그런…….”
힘이 풀린 에이미는 의자에 주저앉았다.
한 방울의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알페아스가 인정한 순간 그녀의 마음속에서도 시로네가 죽은 기분이었다.
“시로네…….”
한편 건물 앞 분위기는 폭발 일보 직전이었다.
모두 스피릿 존에 들어간 상태였고, 누구라도 선택만 하면 치명적인 마법을 구사할 수 있었다.
아미라는 다시 회의감이 들었다.
과연 이것이 옳은 길일까?
동문끼리 살인 마법을 시전하는 상황이 어떤 논리보다 앞설 수 있단 말인가?
그녀는 입술을 짓씹으며 네이드와 이루키를 번갈아 살폈다.
네이드는 이미 설득이 불가능한 상태였으나 이루키라면 혹시 모르는 일이었다.
“너, 이루키지? 서번트 능력자.”
대답은 없었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겠어? 네 친구는 감정적이지만, 너는 다를 거 아냐?”
“미안하지만 나도 지금 감정적이라서.”
“거짓말. 아니, 그렇더라도 상관없어. 알고 있잖아? 정말로 시로네가 살아 있다고 생각해? 그게 서번트로서 네가 내린 결론이라는 거야?”
“결론을 원한다면 답은 하나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이루키가 다시 아미라를 바라보며 말했다.
“시로네는 죽지 않았어.”
네이드가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으나 이루키는 여전히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아미라의 실망감은 더해졌다.
교내에서 가장 차가운 인물이라 생각했기에 기대를 걸었건만, 결국 고급반의 애송이일 뿐이었던 것이다.
“좋아. 네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우리를 설득시킬 논리도 준비되어 있는 거겠지?”
“당연하지.”
너무 쉽게 대답이 나오자 오히려 아미라는 당황했다.
“그렇다면 근거를 대. 시로네가 살아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뭐야?”
“이유라…….”
이루키가 말했다.
“지금이 4시니까, 정도로 말해 둘까?”
동시에 시계탑에서 종이 울렸다.
‘4시.’
시계를 보지 않고도 시간을 계측한 건 이루키가 서번트이기 때문이다.
방법은 간단했다.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1초에 1초씩 세면 되는 일이었다.
네이드는 언제부턴가 이루키의 말수가 급격히 줄어든 시점을 떠올렸다.
‘초를 재고 있었군. 하지만 뭘 하려고?’
시계탑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아미라가 무언가를 깨달은 듯 말했다.
“이제 알았어. 너는 그냥 미쳤어. 시간과 시로네의 죽음이 무슨 연관이 있다는 거야?”
이루키는 여전히 초를 재고 있었다.
약간의 오차는 있을 수밖에 없지만, 예상보다 훨씬 늦었다.
‘4시 7초, 8초, 9초. 대체 뭐 하는 거야?’
대답이 없자 아미라는 자신의 생각에 확신을 가졌다.
감정적인 네이드와 원래부터 미친 이루키를 상대로 대화를 하려고 했던 것 자체가 어리석은 짓이었다.
“무슨 생각인지는 몰라도, 우리는 시로네의 상태를 확인할 거야. 졸업반을 상대로 어디까지 버틸 수 있나 두고 보지.”
시위대의 스피릿 존에 의지가 담기자 네이드의 눈빛에도 살기가 차올랐다.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재밌게 놀고 있군. 나도 좀 끼워 주는 게 어때? 이런 건 내 전공인데 말이야.”
모두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목소리의 정체는 보이지 않았다.
잠시 후 건물에 드리워진 그늘에서 카니스와 아린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미라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너희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당장 구속시키겠어!”
“할 수 있으면 얼마든지.”
콧방귀를 뀌며 응수한 카니스가 걸음을 옮기자 이루키가 미간을 찌푸렸다.
“너무 늦었잖아.”
“늦어도 4시까지 오라며?”
“27초 지났어.”
카니스는 울컥했지만 애써 분을 삼켰다.
남은 은원 관계를 청산하는 게 먼저였다.
“여기 있다, 부탁한 거.”
카니스가 건넨 서류를 낚아챈 이루키가 빠르게 페이지를 넘겼다.
그제야 심상치 않음을 깨달은 네이드가 서류를 들어다보며 물었다.
“이루키, 그건 뭐야?”
“용뢰의 소견서. 시로네의 조직 샘플을 채취해서 보냈거든.”
“뭐? 대체 언제? 아니, 그보다도 어떻게 수도에서 5일 만에 올 수가 있어?”
마차로 가도 4일은 걸리는 거리였다. 게다가 용뢰의 소견을 작성할 시간도 필요했으니 실질적인 왕복 시간을 따지자면 48시간 이내인 셈이다.
“카니스에게 부탁했어. 바슈카의 지리도 잘 아니까.”
카니스는 이를 갈았다.
겨우 시간에 맞추기는 했지만 죽음을 각오한 여정이었다.
낮에는 마차로, 밤에는 다크포트로 이동했다. 속도는 밤이 더 빨랐지만 정신력을 극한까지 소진하느라 의식을 잃은 적도 있었다.
“어쨌든 이걸로 시로네에게 진 빚은 없는 거다.”
시로네의 죽음에 특별한 감정은 없지만 아케인의 만행으로 시로네가 희생한 일에 대해서는 제자로서 일말의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루키가 서류를 덮으며 말했다.
“뭐, 사실 그건 내 알 바 아니고. 아무튼 시로네에게는 그렇게 전해 줄게.”
아미라는 점점 불안해졌다.
특히나 용뢰라면 이루키의 아버지가 수장으로 있는 왕국 최고의 조직이었다.
“무슨 수작이야? 메르코다인 가문을 앞세운다고 해서 우리가 물러설 것 같아?”
사실 위압감을 느끼고는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 모인 학생들의 가문도 결코 허접하지 않았으니 숫자로 밀어붙이면 해볼 만한 싸움이었다.
“그건 걱정하지 마. 차명을 썼으니까. 내 이름이 적히면 곤란한 건 오히려 나라고. 아버지가 무슨 장난을 칠지 모르거든. 그보다 중요한 건 여기 서류에 적힌 내용이 아닐까?”
“흥! 그게 뭐? 죽은 사람을 살리는 마법 같은 구절이라도 적혀 있다는 거야?”
이루키는 서류를 처음부터 읽어 나갔다.
“제목. 이모탈 펑션과 생체 활동 정지에 관한 소견서.”
시위대가 움찔하고, 3층 의무실에서 듣고 있는 사람들도 귀를 쫑긋 세웠다.
“피험자의 조직 세포 샘플 분석 결과. 비역학적 가사 상태. 사망 24시간 이후에 채취한 샘플에 유기체 특유의 변형이 발견되지 않음. 데이터 첨부함.”
이루키는 다음 장으로 넘어갔다.
“상기 데이터를 토대로 피험자는 생체 활동이 정지되었다고 볼 수 있으나, 그 상태를 기능의 정지, 즉 생명의 부재로 확장시키기에는 무리가 있음.”
이 부분이 중요한 대목이라는 듯 이루키가 강조했다.
“용뢰에서는 심장박동 정지에 관해 세 가지 케이스로 분류. 첫째, 심장의 기능이 완전히 정지한 상태. 둘째, 심장의 기능이 일시적으로 정지한 상태. 셋째, 심장이 정지하지 않았으나 현상적으로 정지한 것처럼 보이는 상태.”
아미라가 황당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그게 무슨 헛소리야? 첫 번째랑 두 번째 케이스는 몰라도 세 번째는 말이 안 되잖아?”
이루키는 다음 장을 넘겼다.
“용례 설명. 심장의 기능이 정지한 상태에서 생물체는 사망했다고 볼 수 있으나 이모탈 펑션에 한하여 두 가지의 새로운 케이스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음.”
정적 속에서 이루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케이스 1. 정신적 확장이 특별한 사건으로 인해 지연되고 있는 경우, 육체는 정신의 결론이 내려지기 전까지 일시적으로 기능을 정지할 가능성이 있음. 보고서 첨부.”
이루키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장을 읽었다.
“케이스 2. 정신적 확장이 끝났다고 하더라도 관찰자의 시간이 달라질 가능성이 존재함. 즉, 생명 활동은 정상이나 시공간의 장벽으로 인해 외부에서 그 활동을 관찰할 수 없는 상태를 뜻함. 보고서 첨부.”
더 이상 읽을 필요를 느끼지 못한 이루키가 페이지를 끝까지 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