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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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경계
“네?”
테스트야 그렇다 치더라도, 죽을 수도 있다니? 갑자기 이게 무슨 마른하늘의 날벼락이란 말인가.
당황한 프리츠는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쳤다. 설마 보스는 자신과 싸우기라도 할 셈인가.
“무, 무립니다. 전 별로 격투기 같은 걸 해본 적도 없고 싸움 같은 건 더더욱 해본 적이 없습니다. 게다가 그… 벼락같은 걸 맞으면 저 같은 사람은 한순간에 죽어 버릴 겁니다.”
그 말을 들은 형진은 피식 웃어 버렸다.
“그건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아, 이 모습을 하고 있어서 그러시나 보군요. 걱정 마십시오. 베커씨와 싸우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니까.”
“그럼…”
“자세한 얘기는 일단 가면서 하죠.”
순간 형진의 몸에서 뭉클거리는 검은 기운이 솟아나더니 거대한 환수의 모습을 갖추었다. 꼬리가 아홉 개 달린 강대한 환수, 흑요호의 형상이 만들어진 것이다.
“헉!”
이건. 이건!
보는 순간 딱 알아차렸다. 이건 바로 자신이 어제 죽네 사네 하며 맞붙었던 바로 그 진 보스다. 이게 어째서 여기에!
하지만 당황도 잠시 프리츠는 대번에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이것과 어제의 경험을 종합해 한 가지 결론을 도출했다.
“설마… 보스께서 바로 그 진정한 보스였습니까?”
뭔가 말이 이상하지만, 의미는 통한다. 게다가 한국어도 아닌 이상 진 보스에서 형진의 이름을 떠올리기 보다는 진정한을 의미하는 트루나 리얼 같은 단어로 받아들였을 터. 비록 언어의 장벽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허물어 버린 채 대화를 나누고 있다고는 해도 이해 자체는 자신이 주로 사용하는 언어를 기반으로 하게 되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제야 눈치 채신 겁니까? 죽음의 천사 어쩌고 하실 때 이미 눈치 채신 줄 알았습니다만.”
“컥…”
맙소사. 어찌 이런 일이.
잠시 아무 말도 못한 채 입만 뻐끔거리던 프리츠는 다시 질문했다.
“그럼… 그 이벤트는…”
눈앞의 보스가 게임 상에 등장했던 바로 그 진정한 보스였다면, 그렇다면 그 이벤트를 만들고 진행하고 있는 것은…
그런 생각을 떠올리는 프리츠의 표정을 읽은 것인지 형진은 별 것 아니라는 듯 설명해 주었다.
“아, 그러고 보니 그걸 미처 설명 드리지 않았군요. 허세와 망상에게서 엘리시온을 탈취한 것은 바로 공포와 죽음이십니다. 제가 이벤트에 참여하게 된 건 공포와 죽음의 지시에 의한 것이고요.”
“그럼 회사를 인수하시려는 것도…”
“엘리시온이라는 이름의 거짓된 천국을 겉도 속도 완벽하게 공포와 죽음께서 소유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허…”
그렇게 된 거였나.
프리츠는 어쩐지 허탈한 기분마저 들었다. 결국 자신은 물론이고 회사의 다른 이들도 신들의 일에 휘말려 이런 상황에 처했다는 뜻이니 어찌 허탈하지 않겠는가.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이니 그렇다 치고…”
중요하지 않다니! 그렇다 치고 라니! 엄청 중요한 일입니다만? 그거 땜에 요 얼마간 머리가 얼마나 빠졌는지 알기나 하십니까? 가뜩이나 나이 먹어가면서 숱이 옅어져서 고민인데!
물론 그것은 프리츠의 마음속에서만 울려 퍼지는 메아리일 뿐이었다. 프리츠 베커. 알고 보면 조금 소심한 남자다.
“아무튼 지금 중요한 것은 베커씨가 한 가지 테스트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일단 시간이 촉박하니 가면서 얘기하도록 하죠.”
“흐억!”
무언가 뭉클한 검은 기운이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던 베커를 휙하고 감아올리더니, 어느 틈엔가 거대한 흑요호의 등 위에 올라탄 형국이 되어 버렸다.
“꽉 잡으십시오.”
“히이익!”
미처 뭐라도 대답할 틈도 없이, 크고 검은 무언가는 어두운 황야를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안전벨트는커녕 무엇 하나 지지할 것 없는 거대한 무언가의 등판에 매달린 프리츠는 눈을 질끈 감은 채 이 악몽 같은 상황이 어서 끝나기만을 기원했다.
“공포와 죽음께서는 본디 자비로운 신이시지만, 명예를 소중히 하는 분이시기도 합니다. 일단 구체적인 계율에 대해서는 정식으로 성도가 되신 후에 알려드리겠습니다만, 분명한 것은 저희가 모시게 될 분의 이름이 공포와 죽음이라는 점입니다.”
“그럼…”
“죄라는 이름의 가치에 대한 가책과 두려움이 형상화된 것이 곧 공포이며, 죽음은 이러한 공포를 해소하는 가장 빠르고 적절한 수단으로 정의됩니다. 그러한 신을 모시는 성도로서, 우리들은 이와 같은 가치를 이해하고 그것이 현실에서 적절한 의미를 가지도록 노력해야만 합니다.”
“…”
솔직히 말해서 뭔소린지 모르겠다. 프리츠 베커라는 남자는 뼛속까지 이공계라서 이런 형이상학적인 측면의 논담 같은 것에 심취해 본 일조차 없다.
형진은 그런 프리츠를 보며 빙긋 웃더니, 다시 이렇게 간단하게 정리해 주었다.
“뭐… 복잡하게 얘기하면 그런 거고, 간단하게 말하면 이런 겁니다. 용서 받지 못할 자들에게 죽음이라는 형벌을 내리는 암살자. 대충 그런 거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암살자…”
“우리들에게 있어 암살이란 일반적으로 죄를 집행하기 어려운 사안이나 인물에 대한 신의 심판으로 인정됩니다. 때문에 무조건 의뢰가 들어온다고 그것을 수행하지도 않을뿐더러, 명예롭지 않은 의뢰를 한 자는 오히려 신의 노여움을 받아 가장 끔찍하고 처참한 죽음에 이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 살인마처럼 말인가요?”
필사적으로 흑요호의 등에 매달린 상태에서도 그렇게 질문을 하는 프리츠의 모습에 형진은 빙긋 웃어 버렸다.
“살인마… 그 녀석은 애초에 저희들과 같은 성도조차 아닙니다. 허세와 망상이 끌어들인 졸개1 정도의 위치라고 보면 되겠군요. 하지만 말씀하신 것이 성도로서 명예롭지 못한 일을 한 자에 대한 형벌을 묻고자 하신다면, 그렇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물론 무작정 때려잡는 것이 아니라 개선의 여지를 충분히 고려해주시기는 하지만 그건 지금 상황에서 따로 언급할 필요는 없는 일이다. 어쨌든 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맞이한 집행자가 길을 잘못 드는 것을 막기 위해서도 어느 정도의 억지력은 분명히 존재할 필요가 있다.
“그럼… 테스트라는 건…”
“암살입니다.”
“…”
그런 흐름인건가.
암살이란 건 결국 누군가를 죽여야 한다는 의미다. 물론 얘기의 흐름으로 보면 이번 타겟이 신의 분노를 살 정도로 극악한 범죄자겠지만, 역시나 사회에서 정한 법이 아닌 임의의 가치기준을 통해 누군가를 죽여 없애야 한다는 것에 프리츠는 거부감을 느꼈다.
“거절하셔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그자는 또다른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힐 수도 있겠지요.”
“…”
형진의 말은 그것으로 끝이었지만, 프리츠는 어쩐지 뒤이어 생길지도 모르는 그 희생자가, 당신의 친지나 가족이나 지인이 아닐 거라고 확신할 수 있느냐는 말로 들렸다.
“저는… 누군가를 죽일 능력이 없습니다.”
게다가 큰 문제가 있었다. 건강을 생각해서 조깅 정도는 하고 있지만, 앞서도 말했다시피 그는 싸움 같은 걸 실제로 해본 일 자체가 없다.
“저희도 불가능한 일을 맡기지는 않습니다. 더구나, 베커씨의 능력은 이미 평소보다 증폭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네? 그게 무슨…”
“앞서의 만찬, 그건 단순한 환영회 같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느끼셨을 텐데요. 힘이 북돋아지는 감각.”
“아…”
맙소사. 그럼 처음부터 다 계획되어 있었던 건가. 만찬을 연 것부터 시작해서, 와인을 권한 것까지.
“게다가 베커씨는 이미 엘리시온에서 수많은 전투를 거쳐왔습니다. 그때의 경험과 감각을 살린다면 별로 어려울 것도 없는 일입니다. 사실 일부러 만찬을 열어 힘을 북돋아드린 것도 최대한 게임에서의 감각을 일깨워 드리려는 의도였습니다.”
“…”
이제는 더 이상 놀랄 수도 없다. 프리츠는 자신이 이제 도저히 빠져 나갈 수 없는 덫에 갇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 의미에서.”
형진은 프리츠를 돌아보며 말했다.
“원하는 무기가 있으시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어지간한 건 다 맞춰드릴 수 있습니다.”
“무기…”
무기라는 말을 들으니 더욱 급격하게 이 모든 일이 현실로 와닿는다. 공포와 죽음이라는 신이 자신을 선택했으며, 그러한 선택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죽여야 한다.
“상대는… 정말로 죽어 마땅한 자입니까?”
프리츠의 질문에 형진은 이렇게 답했다.
“힘없는 어린 아이를 유괴해 죽인 것이 벌써 9번.”
“그런…”
“그리고, 지금 놈의 집 지하실에는 10번째 희생자가 감금되어 있죠. 아마 오늘밤 녀석은 기념할 만한 열 번째 희생의 의식을 치르려 할 겁니다.”
“…”
아까 말한, 또 다른 누군가가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는 말의 의미는 바로 이것이었나.
프리츠는 두 아이의 아버지다. 실리콘 밸리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엔지니어들이 그렇듯, 제대로 아이의 일을 챙겨주지 못하는 그런 나쁜 아버지이긴 하지만, 그것이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그렇게 항상 충실하지 못한 자식들에 대한 미안함에 조금이라도 더 좋은 것을 챙겨주려고 노력하는 아버지다. 이번 일로 자칫 직장을 잃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가장 먼저 떠올린 것도 바로 아직 어린 자신의 자식들이었다.
순간 프리츠의 눈에서 불안과 두려움이 사라지고 분노가 불을 뿜는다. 심약한 직장인에서 분노한 아버지로 한순간 사람이 바뀌어 버린 것이다.
이것이었나.
솔직히 형진으로서도 심약해 보이는 이 남자의 과연 어떤 점을 보고 공포와 죽음이 선택을 한 것인지 다소 의문이었다. 분명히 이벤트 던전에서의 활약은 대단한 면이 있었지만, 단순히 리더십이 있고 게임을 잘한다는 측면만을 놓고 보면 그보다 더 젊고 훌륭한 인재는 얼마든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 남자는 힘을 써야 할 때와 쓰지 않아야 할 때를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판단 능력을 지녔다. 얼핏 심약해 보이지만 분노할 때는 주저하지 않으며, 분노했음에도 그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다. 누구보다도 강대한 힘을, 누구보다도 은밀하게 다뤄야만 하는 집행자에게 있어 이러한 자제심과 판단 능력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자질이 아닐 수 없다.
“검과 방패를 부탁드립니다.”
“총기 같은 것이 더 편하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런 것도 가능합니까?”
“원래는 잘 쓰지 않는 편입니다만, 환경이 바뀌면 도구도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법이죠.”
검은 직접 사람을 죽이는 감각이 손끝에 전해진다. 또한 그것을 휘둘렀을 때, 피가 튀고 살이 갈라지는 것을 명확하게 인지하게 된다. 그런 면에 있어서는 확실히 총기가 부담이 적다. 물론 그것 역시 피가 튀고 살이 꿰뚫리는 건 마찬가지지만, 바로 코앞에서 죽어가는 자와 눈을 마주치는 것은 피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냥 검과 방패로 하겠습니다. 그쪽이… 역시 더 편할 테니까요.”
검과 방패라면 게임 상에서 수도 없이 다뤄보았다. 물론 현실에서도 그와 같은 감각으로 무기를 다룰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생전 다뤄본 적 없는 총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다.
“좋습니다. 그럼 잠시 손을 내주시겠습니까.”
“…”
무기를 건네주는 건가 싶어서 프리츠가 손을 내밀자, 형진은 그의 손을 잡고 손등이 위로 오게끔 하더니, 그곳에 자신의 손등을 가져다 댔다.
“읏!”
갑자기 뭔가 손등으로부터 화끈한 것이 전해지는 기분이 들어서 기겁하며 손을 끌어당긴 프리츠는 희미하게 자신의 손등에 무언가가 새겨져 있다가 서서히 사라지는 것을 깨달았다.
“공포와 죽음께서 내리시는 낙인입니다. 물론 완전한 것은 아니고, 이번 시험을 위해 임시로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있는 동안, 당신은 어떠한 상태에서도 냉정하고 침착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며, 또한 어떤 형태의 정신적 타격도 훨씬 경감된 상태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그렇군요.”
누군가를 죽인다는 것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다. 즉, 이것은 공포와 죽음이 내려주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셈이다. 거듭된 살인으로 인해 인격이 망가지거나 하지 않도록 만들어 주기 위한, 보이지 않는 방어구인 셈이다.
“필요한 무기는 임시 인벤토리에 넣어두었습니다. 또한 만약을 대비해 회복약도 얼마간 넣어두었으니, 위급한 상황에서 바로 사용하십시오. 사용 방법은 게임과 동일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바로 테스트를 시작하겠습니다.”
“컥!”
순간 프리츠는 눈에서 불똥이 번쩍 튀기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느닷없이 허공으로 곤두박질쳤다.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지를 뻔했지만, 이내 푹신한 느낌의 무언가에 부딪히며 떨어지는 것을 멈추었다.
“…”
갑자기 떨어져 버리는 바람에 잠시 정신이 없었던 프리츠는 이내 자신의 눈앞에 어떤 것이 드러나 있음을 깨달았다.
그것은 하나의 메시지였다.
[새로운 임무가 시작되었습니다] -놈의 은신처가 멀지않은 곳에 있다. 서둘러라.============================ 작품 후기 ============================
일단 한편.
나머지는 아침에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