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ors who see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277)
미국은 자신들의 패권에 도전하는 나라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한때 미국과 세계를 양분했던 소비에트연방은 해체돼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경제적으로 미국을 허리까지 추격했던 일본은 플라자 합의(사실상 미국의 일방통보)로 인해 20년 동안 장기불황에 빠졌다.
그리고 이번 타깃은 중국이었다. 때문에 중국은 이번 일을 제 2의 플라자 합의로 여기며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이 패권국이라 해도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나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행동은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번 일에 대해서만큼은 대다수의 나라들이 지지했다. 그동안 중국기업들의 무분별한 특허침해로 인해 고통 받은 것은 모든 나라들이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여태 중국의 힘이 눌려 참아왔지만, 미국이 먼저 나서자 다들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한때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던 NATO 동맹이 이렇게 굳건하다.
반면 중국 쪽은 아군이 그리 많지 않았다. 주변국들은 중국의 일방적인 확장정책에 의해 반중감정이 높아진 상태고, 중국의 패권행보에 대한 위기감 역시 깔려 있었다.
그리고 원래 싸움이 벌어지면 이기는 쪽에 붙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누가 봐도 미국이 이길 것처럼 보이지 않나?
중국이 이길 거라고 말하는 건 중국 국영언론밖에는 없다.
왕이창 부회장은 한숨을 내쉬듯 말했다.
“중국에서는 죽어서도 체면을 차리기 위해 고생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백도어를 통해 기술을 훔친 것을 인정하면, 자기들 체면이 뭐가 되냐는 뜻이겠지.
체면을 중시하는 게 동양의 문화긴 하지만, 그중에서도 중국은 유독 심한 편이다. 오죽하면 ‘덩샤오핑은 중국인을 먹고 살게 해주었지만, 마오쩌둥은 중국인의 체면을 살려주었다’라고 말할 정도다. 먹고 사는 것 이상으로 체면을 차리는 게 중요하다는 뜻이다.
택규는 눈을 껌뻑이며 중얼거렸다.
“아니, 그렇게 체면이 중요한 사람들이 왜 남의 걸 훔쳤데?”
통역을 통해 말을 전해들은 리쑤웨이 상무부장과 왕이창 부회장은 인상을 구겼지만, 딱히 반박은 하지 못했다.
리쑤웨이 상무부장은 설득하듯 말했다.
“우리도 입장이라는 게 있지 않겠습니까? 강 선생이 좀 이해해줬으면 합니다. 중한 관계를 생각해서라도 좋게 마무리 지었으면 합니다.”
왕이창 부회장이 이어서 말했다.
“물론 저우차 쪽에서도 충분한 성의를 보이겠습니다.”
다른 명목으로 배상금은 지불할 수 있어도, 기술탈취는 인정할 수 없다는 건가?
그는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중국정부의 비호를 받아 중국최대 자동차기업으로 성정한 저우차는 미래차를 개발하고, 수출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거액을 들여 볼보와 로터스, 다임러AG 등을 인수하고 지분을 사들인 것은 유럽진출을 위한 포석이었다. 그런데 이번 제재 대상에 포함되며, 수출 길이 전부 막혔다.
피인수기업들은 기술유출을 우려해 본사와 거리를 두려는 움직임을 보였고, EU도 자체 제재를 검토 중이다.
카로스와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투자와 수출 모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우려는 계속해서 주가를 끌어내렸다.
난 웃으며 말했다.
“체면이란 잘못한 일을 인정하고 사과할 때 바로 선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떠한 협상도 없습니다.”
* * *
저우차는 사과문을 발표했다.
일부 기술진들이 카로스의 자율주행기술을 탈취한 사실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저우차는 관련자들을 전부 해고하고 사법기관에 수사를 의뢰하는 한편, JW8의 출시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중국 대기업이 특허침해 사실을 인정한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직전까지만 해도 저우차는 기술탈취는 결코 없다고 주장하며, JW8은 중국의 자체기술로 만든 자율주행차라는 점을 강조했었다.
그런데 이 말이 뒤집히자 중국인들은 큰 충격에 휩싸였다.
-뭐야? 정말로 저우차가 카로스 기술을 베낀 거였어?
-말도 안 돼! 그럴 리 없어!
-제발 누가 거짓이라고 말해줘!
-이게 대륙의 품격이냐?
-내가 다 쪽팔리다.
-국가 체면에 먹칠을 하다니. 같은 중국인이라는 것이 부끄럽다.
-차라리 죽어라! 목숨을 끊어서 모든 중국인들에게 사죄해라!
그러나 그런 글들은 금방 자취를 감췄다.
대신 마치 짜기라도 한 것처럼 다른 내용의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게 다 미국의 무역보복 때문입니다.
-저우차 내부자에게 들었는데, 국가를 지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함.
-시작은 카로스가 제기한 저우차의 기술탈취 문제였습니다. 그걸 증명하기 위해 강진후가 스파이칩 문제를 꺼내들었지만, 그건 중국기관의 조사에 의해 조작된 증거라는 게 다 밝혀졌습니다!
-크윽! 분하고 억울하다! 조작된 증거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하다니!
-하긴, 국제적으로 이렇게 난리를 쳐놨는데, 사실이 아닌 걸로 밝혀지면 할 말이 없을 테니.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한 선택이었으니, 존중합니다.
-지록위마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해도 사슴은 사슴이다!
-이게 통킹만 사건과 다를 게 뭐냐?
-앞으로 이런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우리 중국이 힘을 더 길러야 합니다.
-중화민족의 부흥을 위해 다 같이 노력하자!
-저우차 힘내라!
-외제차 타지말자. 저우차 타서 응원하자!
웨이보에는 저우차 로고와 오성홍기를 함께 올리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다. 저우차 역시 애국과 민족을 강조하는 이미지 광고를 내보냈다.
환구시보와 인민일보 역시 제재를 풀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며, 저우차를 옹호했다.
일부 지식인들은 이에 대해 우려를 표했지만, 대놓고 말할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이 와중에 한 중국 유명배우가 ‘기술을 훔친 건 맞지 않냐’는 글을 올렸다가 매국노냐는 비난을 받고 사죄해야 했다.
이런 중국 분위기에 대해 다른 나라들은 어이없다는 반응이었다.
난 중국 내의 반응을 전하는 기사를 보며 감탄했다.
“루쉰이 괜히 대단한 작가가 아니었구나.”
“루쉰이 누구야?”
“중국 소설가. 아Q정전이라는 소설 알아?”
택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거 모르는 사람도 있어?”
난 적잖이 놀랐다.
“읽어봤어?”
“제대로 읽어보진 않았지만, 거기 주인공이 키보드 배틀러, 아가리 파이터, 방구석 여포들의 조상이라는 건 알지.”
“…….”
맞는 말이다.
아Q정전의 주인공 아Q는 어디서 시비 걸다가 두드려 맞으면, 자신의 손으로 뺨을 때린 다음 ‘내가 나를 때렸으니, 내가 이긴 것이다’라는 식으로 매사 정신승리를 일삼았다.
당시 루쉰은 세상물정 모르고 자기 생각에 빠져 사는 중국인들을 비꼬기 위해 썼다고 하는데…… 이런 걸 보면, 그때 이후로도 딱히 변한 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어쨌거나 돈이나 최대한 받아내야지.”
택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진정한 사과는 돈으로 이뤄지는 것 아니겠어?”
배상금 액수는 10억 달러 선에서 협상 중이다.
저우차 입장에서는 차 한 대 팔지 못했는데 약 1조 원을 뱉어내야 하는 셈이다. 또한 비슷한 일이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미국 행정부와 협조해 조치가 취해질 예정이다.
* * *
G2의 강대강으로 치닫던 무역전쟁은 일단 저우차의 사과문 발표와 함께 조금 누그러졌다. 사실상 중국이 한 발 물러선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로날드 대통령과 장핑화 주석은 뉴욕에서 정상회담을 하기로 합의했다.
전 세계의 이목이 뉴욕으로 쏠렸고, 나도 택규와 함께 뉴욕으로 향했다.
정상회담이 열리기 몇 시간 전.
우리는 동양인 경호원들이 에워싼 호텔 안으로 들어섰다. 입구에서부터 철저한 몸수색이 이어졌다.
여러 단계의 검문검색을 거치고 안으로 들어서자 그곳에는 한 남자가 있었다.
큰 키와 떡 벌어진 어깨. 적당히 살이 붙은 얼굴. 나이는 60대 중반이나, 그보다 훨씬 젊어 보였다.
이 사람이 바로 15억 인구와 거대한 대륙을 이끌어가는 지도자, 장핑화 주석이다.
살면서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게 될 거라고는 생각 못했다. 그동안 TV와 신문 통해 숱하게 접해서 그런지 처음 만남인데도 별로 어색한 느낌은 아니었다.
실제로 보니 마치 동네 아저씨처럼 푸근한 인상이다.
중국인들은 그를 장다다(장 아저씨)라는 별명으로 부르며 친근하게 여겼다. 일부러 서민적이고 소탈한 모습을 많이 강조하기도 하고.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겉모습일뿐. 그는 중국정치 체제를 완전히 바꿔놓은 인물이다.
마오쩌둥의 실패(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 이후 권력을 잡은 덩샤오핑은 1인 독재가 가진 문제점을 누구보다 심각하게 인식했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하지만 사회주의를 유지하는 한 공산당 1당 체제를 부정할 수는 없다.
때문에 덩샤오핑은 당내권력을 두고 서로 견제할 수 있도록 집단지도체제를 만들었고, 이는 얼마 전까지도 이어져 내려왔다.
여기서 나오는 것이 바로 태자당, 공청단, 상하이방으로 불리는 공산당 내의 계파다.
태자당은 대장정과 국공내전 등을 함께 한 공산당 원로의 후예들이고, 공청단은 중국공산주의청년단의 약자로 젊은 공산당원들과 유학파들이 넓게 포진해 있다. 그리고 상하이방은 그 명칭에서 알 수 있듯 상하이를 중심으로 중앙정부에 진출한 신진세력이다. 개혁개방의 수혜자이자, 경제개발을 주도하는 엘리트들이다.
이들은 서로 견제하고 협력하며 거대한 대륙을 이끌었다.
또한 돌아가며 권력을 넘겨받았다. 5대 주석 장쩌민은 상하이방 출신이고, 6대 주석 후진타오는 공청단, 그리고 그 후계자인 장핑화는 태자당이다. 대신 공청단의 보샤오위가 총리직에 앉아 서로 균형을 맞췄다.
장핑화가 주석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젊은 시절부터 딱히 튀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느 곳에서도 나서지 않았고, 적을 만들지도 않았다. 그저 묵묵히 맡은 임무를 수행할 뿐이었다.
장핑화가 후진타오에 이어 국가주석에 오르자 정치전문가들은 그가 집단지도체제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인물이고, 여러 계파들을 아우르며 안정적으로 중국을 이끌 거라 전망했다.
하지만 그건 착각에 불과했다.(이래서 전문가들 말을 믿으면 안 된다)
알게 모르게 자신의 세력을 점차 키운 장핑화는 어느 날 부패척결이라는 칼을 빼들었다.
그는 두보의 시를 인용해 말했다.
‘제멋대로 자란 대나무는 만 그루라도 잘라내야 한다.’
언론에 보도가 안 되어서 그렇지 당 고위층들의 부패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의도야 어찌됐든 이는 중국인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았다.
부패척결의 칼날에 정치인들 목이 줄줄이 잘려나갔다.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충칭시위원회 서기이자 태자당 실세인 푸청을 잡아넣은 일이다.
그가 실각하자 태자당은 완전히 장핑화 손에 들어왔고, 그 외에 공청단과 상하이방 인물들도 줄줄이 붙잡혔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부패척결의 칼날은 장핑화의 측근들에게는 전혀 미치지 않았고, 반대세력에게만 향했다.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알아서 고개를 숙이는 것뿐이다. 이렇게 되자 계파고 뭐고 다들 장핑화 쪽으로 줄을 서기 바빴다.
전문가들은 기존의 태자당, 공청단, 상하이방 외에 장핑화계를 따로 만들어 분류할 정도였다.
상하이방은 거의 빈사상태가 됐고, 공청단은 숨을 죽인 채 장핑화의 임기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국가주석 연임은 세 번까지고, 그 다음은 권력을 넘겨줘야 한다.
상하이방이 무너진 이상 다음 주석은 공청단에서 나올 게 확실시 됐다.
그런데…….
장핑화 주석은 전국인민대표회에서 헌법을 개정해 국가주석의 임기제한을 철폐했다. 이로써 종신집권도 가능해졌다.
이는 덩샤오핑 이후 거대 대륙을 이끌어온 집단지도체제가 끝나고, 장핑화의 1인 독자체제가 시작됐다는 것을 의미했다.
외국언론들은 비꼬는 의미로 그를 장황제라 불렀다. 지금 그가 중국 내에서 갖는 위상과 위치를 볼 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장핑화 주석은 인자한 미소를 띠우며 내 손을 붙잡았다.
“만나게 돼서 반갑습니다.”
난 그 손을 가볍게 맞잡았다.
“처음 뵙겠습니다. 강진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