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ors who see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283)
현진해운 파산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현재 세계적으로 해운경기가 좋지 않다. 그리고 해운경기가 좋지 않다는 것은 조선업도 좋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후조선은 그동안 정치권에서 낙하산 타고 사장이 내려와서 경영했다. 사외이사나 상임고문 같은 자리도 전부 정치인들로 채워졌다.
이러다 보니 정권이 바뀔 때마다 경영진도 바뀌었다. 박시형 때는 자유국민당 정치인들이, 지금은 새정치당 쪽 정치인들이.
이런 걸 보면 보수든 진보든 자기 사람 챙기는 건 똑같다.
비상경영을 해도 부족할 판에 이런 식으로 정권 입맛에 맞게 운영하니, 회사가 제대로 돌아갈 리 없다.
“좀 있으면 채권 만기일인데, 상환금액도 간당간당합니다.”
“롤오버는요?”
롤오버(Roll Over)란 만기연장을 뜻한다.
“이미 한 차례 했습니다. 어쨌거나 부채보다는 자산이 많으니 못 갚을 일은 없겠지만, 채권자들 입장에서는 금리라도 더 주기를 바라겠죠.”
난 고개를 끄덕였다.
“추가로 공적자산을 투입하자니 국민들 눈치가 보여 다시 매각을 추진한 모양이네요.”
업황만 좋다면 재벌그룹들도 관심을 보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 가져가봐야 애물단지다.
이런 상황에서 새정치당을 중심으로 서성중공업과 합병을 추진하자는 얘기가 나왔다. 말이 좋아 합병이지 사실상 억지로 떠넘기는 셈이다.
“지금 대후조선 시총이 얼마죠?”
“2조 조금 안 됩니다.”
이중 산업은행 지분율은 58퍼센트.
“지분매각은 당연히 블록딜로 이뤄질 테고. 억지로 떠넘기는 거면 좀 할인해주지 않겠어요?”
대량매매인 블록딜은 매수자와 매도자의 힘겨루기에 따라 가격이 결정된다. 사는 쪽이 아쉬우면 시중가에 웃돈을 더 얹기도 하고, 파는 쪽이 아쉬우면 반대로 가격을 깎아준다.
1조 정도면 충분히 인수가 가능할 것이다.
“산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니까요. 그나마 컨테이너선이나 LNG선 등은 기존 사업과 시너지가 있지만, 해양 플랜트 부문은 아닙니다.”
한국은 한때 조선업계 세계 1위였다. 그러나 기술력을 쌓은 중국 조선사들이 저가수주로 전 세계 물량을 싹쓸이하며 큰 어려움에 처했다.
이에 국내 조선사들은 고부가가치산업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중 하나가 바로 해양 플랜트다. 해양 플랜트는 해저의 자원을 채굴하기 위해 바다 위에 설치한 구조물이다.
선진국 조선업체들이 차지한 이 시장에 대후조선 및 국내조선사들은 야심차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는 엄청난 손실로 돌아왔다.
제작 경험이 없었던 데다가 핵심설계는 전부 외국에 의존한 것도 문제지만, 가장 큰 원인은 저가수주다.
이렇게 되자 기왕 노하우를 쌓았으니 계속 추진을 하자는 쪽과 더 큰 손실을 볼 수도 있으니 발을 빼자는 쪽으로 의견이 갈렸다.
그런데 이후 저유가가 이어지며 발주 자체가 줄어들었고, 해양 플랜트 부문은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만약 업황이 개선되지 않으면, 괜히 인수했다가 추가 손실을 떠안게 될 것이다.
택규가 말했다.
“그럼 인수를 안 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임진용 회장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기에는 정치권 눈치도 보이고, 나쁜 매물도 아니라서요.”
일명 어른들의 사정인가?
어느 정권이 집권하든 재벌들…… 특히 서성그룹은 각종 특혜를 받아왔다. 그런 만큼 정치권의 의사를 무시할 수는 없겠지.
그리고 중공업을 아예 접는다면 모를까 계속 할 생각인 이상 이번 기회에 덩치를 불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테고.
“혹시 조선 분야에는 관심 없습니까?”
아무래도 이걸 물어보고 싶어서 찾아온 모양이다.
별 관심 없다고 대답하려는데, 그 순간 눈앞에 뭔가 떠올랐다.
* * *
임진용 회장이 돌아가자마자 택규가 물었다.
“이번엔 뭐가 보였어?”
난 아까 본 대로 말해주었다.
택규는 깜짝 놀라며 물었다.
“북해면 영국 옆이지?”
“응.”
북해는 유럽대륙의 위, 영국의 오른쪽에 위치한 바다다.
이곳이 유명해진 것은 60년대에 유전이 발견됐기 때문. 뽑아낸 원유는 황 함유량이 적은 양질의 경질유로, 바로 세계3대 원유 중 하나인 북해산 브랜트유다.
북해유전은 주변국들에게 엄청난 부를 가져다주었다.
그 덕분에 영국, 노르웨이, 네덜란드 등은 산유국 반열에 올라섰다. 그러나 이게 반드시 좋은 일만은 아니었다.
그 이후 네덜란드는 네덜란드병이라 불릴 정도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그리고 이는 다른 자원부국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를 자원의 저주라 하는데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먼저 자원 채굴은 고용유발효과가 적다. 결국 소수의 기업과 소수의 인재들만 자원채굴과 판매로 먹고 살고, 나머지 국민들은 일자리가 없어서 놀게 된다.
경제가 좋지 않으면 화폐가치가 떨어져 수출이 늘어야 정상이지만, 이런 나라들은 자원을 팔아 들어오는 달러가 끊이지 않으니, 경기부침에 상관없이 화폐가치가 고공행진한다.
당연히 제조업경쟁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막대한 자원을 가진 국가들이 정작 제조업에서는 큰 부진을 겪는 것이다.
어쨌거나 이런 식으로라도 경제가 굴러가면 다행이지만, 특정자원에만 의존하는 경제구조는 가격이 급락하거나, 고갈되기라도 하면 국가 전체가 무너지게 된다.
나우루 공화국과 베네수엘라가 대표적인 예다. 이 정도는 아니지만, 유가하락으로 고통 받는 건 러시아, 브루나이, 사우디아라비아 등도 마찬가지고.
“물론 자원을 가진 모든 나라가 이러한 저주에 빠지는 것은 아니고, 드물지만 저주를 벗어난 나라들도 있지.”
미국은 엄청난 양의 셰일오일과 셰일가스를 생산하고, 그 외에도 수많은 자원이 나지만, 이는 미국경제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하다. 그리고 그렇게 생산한 자원을 전부 내수로 소비할 수 있기 때문에 자원의 저주에 걸릴 이유가 없다.
애초에 미국 정도 경제규모가 되면 일반적인 이론은 그냥 뛰어넘기 마련이다.
그리고 북해유전을 끼고 있는 영국, 네덜란드, 노르웨이도 원유와 가스를 판매한 돈으로 국부펀드를 만들고, 고부가가치산업을 육성하는 등의 노력을 해온 덕분에 극복할 수 있었다.
이런 나라들은 자원으로 인한 수익을 합리적으로 배분할 만한 민주적 의사결정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때문에 오히려 자원을 발판 삼아 성장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나라들은 극심한 갈등에 시달리거나, 심한 경우 자원 소유권을 놓고 내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어찌 보면 한국 제조업이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 역시 별다른 자원이 없었기 때문이겠지.
난 택규와 함께 관련 영상을 찾아보았다.
허리케인에 휘말리는 순간 집이고 차고 할 것 없이 산산조각 나며 하늘로 솟구쳤다. 그렇게 휩쓸고 지나간 자리는 완전히 폐허가 됐다.
택규는 입을 쩍 벌렸다.
“천조국은 태풍 스케일도 다르네.”
태풍, 허리케인, 사이클론.
발생지역에 따라 부르는 명칭은 차이가 나지만, 전부 동일한 열대성저기압이다.
매년 이맘때쯤 미국은 허리케인의 위협에 시달린다. 미국에서 허리케인이나 토네이도가 휩쓰는 모습을 보면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한다.
가장 대표적인 허리케인으로는 2005년 뉴올리언스를 덮쳤던 카트리나를 들 수 있다. 미국 남부를 덮친 이 허리케인으로 인해 도시전체가 수몰되고 2천 명 가까운 사망자와, 5만 명이 넘는 이재민이 발생했다.
“이제까지 유럽에 이 정도 초대형 허리케인이 상륙한 적은 없지 않나?”
허리케인은 보통 미국 남부를 휩쓴다. 그러나 드물게 바람의 방향의 따라 유럽 쪽으로 이동하는 일도 없지는 않다.
“모한 교수의 책에 이런 내용도 있었지.”
빅원은 21세기는 물론 20세기까지 통틀어도 가장 큰 규모의 지진이다. 이는 자연히 환경과 생태계에도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모한 교수는 이것이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 모르니, 해저지형과 지열의 변화를 면밀히 살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전까지는 학계의 이단아였을지 모르지만, 현재는 권위자가 된 만큼 그의 의견은 즉각 받아들여져 예산과 인력이 집행됐다.
브라질에서 나비의 날갯짓이 미국을 강타하는 토네이도가 될 수 있듯, 여러 상황을 봤을 때 허리케인이 북해유전을 덮치지 말라는 법은 없을 것이다.
이런 근거를 떠나 가장 중요한 것은 예지가 보였다는 거고.
“그 허리케인이 언제 오는데?”
“이제 알아봐야지.”
태풍이나 허리케인의 이름은 이미 정해진 명단에서 순서대로 붙인다. 따라서 이름을 알면 언제쯤 올지도 예상이 가능하다.
“허리케인이 북해유전을 강타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데?”
“일단 유가가 오르지 않겠어?”
몇 년 전, 허리케인이 멕시코만 연안을 휩쓸었을 때, 그 지역 원유와 천연가스 생산량이 30퍼센트 이상 감소하며 유가가 치솟았다.
만약 이번 허리케인으로 북해유전 설비가 파괴되기라도 한다면, 고유가는 꽤 오래 이어지게 될 것이다.
그럼 해양 플랜트도 다시 각광받게 되지 않을까?
우리 투자금 규모가 큰 만큼 웬만한 시장에서는 감당이 안 되지만, 원유시장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또다시 돈 벌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이번 기회에 공짜로 지분이나 챙겨볼까?”
* * *
난 임진용 회장에게 연락했다.
“대후조선 인수에 OTK컴퍼니도 자금을 투자할게요.”
내 말에 그는 반색했다.
[정말입니까?]“산업은행 지분 절반을 우리가 인수하고, 경영권은 서성그룹에 넘길게요.”
협상 끝에 대후조선 매각가는 종가에서 20퍼센트 할인한 가격으로 정해졌다.
미리 계약을 체결한 대로 산업은행 보유 지분 절반을 OTK컴퍼니가 인수했고, 이 지분은 대후조선과 서성중공업이 합병하며 서성중공업 주식으로 바뀌었다.
OTK컴퍼니는 서성중공업 2대 주주로 올라섰고, 경영권은 서성중공업이 가져갔다.
계약이 체결되자 산업은행은 9천700억 원의 공적자금을 회수하는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날이 지날수록 폭염은 점점 심해졌다.
이게 우리나라 일만은 아닌지라, 유럽에서는 사망자가 점점 늘었고, 물고기가 집단 폐사하는 일도 심심치 않게 벌어졌다. 캘리포니아에서는 산불이 보름째 잡히지 않고 타오르며 주거지역마저 위협했다.
상엽 선배가 말했다.
“지시한 대로 원유 선물과 현물, 관련주식에 적정하게 나눠서 베팅했어.”
“잘했어요.”
“그런데 정말로 유가가 오르는 거야?”
“아니면, 몇 억 달러 손실 보고 마는 거죠.”
“어차피 암호화폐 팔아서 크게 챙겼으니, 좀 손실 봐도 상관없긴 한데.”
물론 말은 이렇게 해도 손해 볼 생각이 없기는 나나 상엽 선배나 마찬가지다.
“기다려 봐요. 모한 교수 얘기를 들어보니, 이상고온현상과 빅원으로 인한 지형과 지열 변화로 인해 기상이변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대요.”
* * *
북대서양 동쪽에서 허리케인 레드케이가 발생해 북유럽을 향해 이동했다.
기상전문가들은 다들 허리케인이 북대서양을 이동하는 과정에서 소멸할 것으로 예측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레드케이는 오히려 주변의 다른 저기압들을 집어삼키며 덩치를 더욱 키웠다. 이동속도 역시 점점 빨라졌고, 풍속은 시속 300킬로미터에 달했다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은 잉글랜드 기상청은 부랴부랴 최고주의보를 발령했다. 선박과 비행기의 출항이 금지됐고, 일부 학교는 휴교에 들어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허리케인은 아일랜드와 영국본토를 피해 이동하며, 우려했던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허리케인 여파로 북해유전 플랜트 대파!] [북해, 원유 유출. 주변국들 피해 우려!] [영국 석유가스국, 일부 유전 폐쇄] [노르웨이 정부, 피해상황 검토에 나서……]허리케인으로 인한 생산차질 우려로 들썩거리던 유가는 소식이 전해지기 무섭게 바로 반응했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유(WTI)는 전일 대비 22퍼센트 상승한 배럴당 92.61달러,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브랜트유 선물가격은 배럴당 112.67달러까지 치솟았다.
북해유전 설비파손과 유가폭등으로 다시금 해저유전채굴이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해양 플랜트는 물론 LNG선박 문의가 줄을 이었다.
임진용 회장은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즉시 영국으로 날아갔다.
원유와 관련 주식에 적정하게 베팅해 벌어들인 돈은 지분 인수금액의 몇 배를 상회했다.
기상전문가들은 뒤늦게 지구온난화에 따른 대폭염이 북반구 일대를 휩쓸어 생긴 이상현상이라면 뒷북을 쳐댔다.
유가폭등으로 항공과 해운주는 하락했고, 수혜를 입을 것으로 예상되는 조선, 중공업주는 일제히 상승했다.
이렇게 되자 몇몇 시민단체에서는 대후조선을 헐값에 매각해 국가에 손실을 끼쳤느니, 서성그룹과 OTK컴퍼니에 대한 특혜니 뭐니 하며, 비난을 퍼부었지만, 이미 버스는 떠난 뒤다.
그렇게 잘 알면 팔기 전에 비난을 하던지.
* * *
가장 큰 타격을 받은 나라는 역시나 영국이다.
가뜩이나 브렉시트 협상이 난항을 겪는 상황에서 북해유전이 대파되고 원유가 유출되자, 영국 금융시장은 또다시 크게 출렁거렸다.
피해복구에 반년 이상 걸릴 거라는 전망에 유럽최대 석유회사인 로열 더치 쉘의 주가는 큰 폭으로 하락했다.
대부분의 금융사와 투자자들 손실을 입는 상황에서 또다시 OTK컴퍼니가 돈을 쓸어가자 영국인들은 분통을 터트렸다.
“대체 이 자식은 영국을 몇 번이나 털어먹는 거냐?”
엄밀히 말해 강진후가 허리케인을 일으킨 것도 아니고, 영국에 직접 투자한 금액도 얼마 안 되지만, 아무래도 브렉시트 때 당한 게(?) 있다 보니 감정이 고울 리 없었다.
런던 인근 버킹엄셔의 대저택.
미모의 금발여성은 자료를 받아들었다. 거기에는 국제 금융시장에서 OTK컴퍼니의 자금흐름이 담겨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검토하며 눈을 빛냈다.
한두 번은 우연일 수도 있겠지만, 같은 일이 계속된다는 것은 우연이라는 단어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녀는 뉴욕에서 잠깐 대화를 나눴던 한 남자를 떠올렸다. 겉으로 봐서는 그냥 평범한 동양인 청년일 뿐이지만……
그레이스 로스차일드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세상에는 정말 운명으로부터 선택을 받은 사람이 존재하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