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ors who see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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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국민당 지도부는 잠시 청문회를 멈추고 내부회의에 들어갔다.
몇몇 의원들은 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정혜 의원은 인상을 잔뜩 찡그렸고, 마상태 의원은 이를 박박 갈았다.
여환규 의원은 아직 분이 풀리지 않는지 대놓고 중얼거렸다.
“그놈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놔야 하는데.”
다른 의원들도 맞장구를 쳤다.
“국회의원 우습게보는 것도 정도가 있지.”
“정치권 도움 없이는 힘들 텐데, 왜 고개 숙일 생각을 안 하는 건지.”
“역시 강진후는 강진후네요.”
그 말이 정답이었다. 강진후가 아니라면, 대체 어느 기업인이 청문회에서 와서 이딴 식으로 행동하겠는가?
연나경 대표는 난감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무슨 바람이 불어서 갑자기 새만금 신도시 개발에 나섰는지 모르겠지만, 추경을 통한 예산확보와 관련 법안의 국회통과 없이는 개발에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 만큼 어느 정도 고개를 숙이고 협조를 요청해올 거라 생각했는데…… 하는 짓이 지난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원래는 당 의원들 전원이 합심해 강하게 밀어붙일 계획이었는데, 광역시와 지방시도 의원들은 이미 회유를 당한 상태. 지역구 민심을 무시한 채 반대 목소리를 내기는 쉽지 않다.
연나경 의원은 애써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새정치당 의원들은 왜 아무 말도 안 하나요? 같이 압박하기로 한 거 아니었어요?”
김명자 의원은 고개를 푹 숙였다.
“아, 아무래도 생각을 바꾼 것 같습니다.”
서울과 수도권이 지역구인 새정치당 의원들은 인구유출과 집값하락, 투자축소 문제 등에 대해 함께 대책마련을 촉구하기로 암묵적으로 약속했다.
그런데 자유국민당 의원들이 차례대로 깨지는 것을 보더니, 우려만 몇 마디 전달하고 재빨리 뒤로 빠졌다.
한 초선의원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새만금 신도시 계획은 강진후가 갑자기 시작한 게 아니다. 지난 정권과 지지난 정권에서도 계속 추진하던 일을 본격적으로 하겠다고 나섰을 뿐. 때문에 반대할 만한 명분이 마땅치 않았다.
취약점이라 생각할 만한 부분을 공격해보았지만, 큰 효과는 거두지 못했다.
OTK컴퍼니가 개발주도권을 가져가야 더 잘할 수 있다고 하질 않나,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 받은 SOC 사업에 대해서는 적자를 보전해주겠다고 하지 않나…… 하다하다 이제는 애국심까지 꺼내들었다.
애국심으로 개발한다는데 거기에 대고 뭐라고 하겠는가?
이 청문회는 자유국민당이 우겨서 연 거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아무 성과도 거두지 못하고 망신만 당하고 끝난다면, 안 하느니만 못 했다.
연나경 의원은 다른 의원들에게 말했다.
“이대로 물러나면 우리만 웃음거리가 될 겁니다. 어차피 우리 당이 협조하지 않으면, 새만금 개발은 진행될 수 없으니, 최대한 청문회를 길게 끌며 추경과 국회를 계속 보이콧 하겠습니다. 어차피 개발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아쉬운 건 저쪽이니까요.”
* * *
휴식을 위해 청문회가 잠시 중단됐다.
자유국민당 의원들이 다 같이 몰려나간 사이 나 역시 청문회장을 빠져 나왔다. 난 휴게실 자판기에서 캔커피를 하나 뽑아마셨다.
당이 충전되니 좀 살 것 같다.
내색을 안 해서 그렇지 심력소모가 장난이 아니다. 마치 혈혈단신으로 적진 한복판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말실수라도 한번 했다가는 썩은 고기 뜯어먹으려는 하이에나처럼 달려들겠지.
난 돌아가는 분위기를 대충 감지했다. 아까부터 자유국민당 의원들은 적극적인 공세를 펼치기보다 돌아가며 의미 없는 질문을 던졌다.
괜히 시비를 걸어 털리기보다는 시간만 끌겠다는 건가?
이렇게 질질 끌다가 청문회 한번으로는 부족했다며, 추경심사에 응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럼 또 다시 같은 상황이 반복되겠지.
기업이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공장, 오피스, 백화점, 마트, 공연장, 아파트 등은 기업이 얼마든지 돈을 투자해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도시가 성공할 수는 없다.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를 키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대학이 있어야 한다. 실리콘밸리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캘리포니아에 칼텍을 비롯한 유수의 대학들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 뛰어난 인재들이 그 대학에 몰리고, 대학을 졸업한 뒤 상당수는 그곳에 남아 취직하거나 창업을 한다. 그렇게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
또한 외국에 있는 인재들을 불러들이기 위해서는 자녀들이 다닐 수 있는 국제학교를 설립해야 한다. 여기에 대형병원, 외국인 카지노 등 국회의 승인을 거쳐야 하는 사업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때마다 발목 붙잡기 시작하면 끝도 없다. 그래서 내가 나올 필요도 없는 청문회에 굳이 나와서 이러고 있는 거고.
이제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난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고, 부대표는 기다렸다는 듯이 전화를 받았다.
택규는 흡족해하며 말했다.
[좋아! 아주 잘하고 있어. 지금 이대로 쭉 가면 돼.]누가 들으면 골을 넣은 선수를 칭찬하는 감독인 줄.
[국회방송 시청률도 25퍼센트 넘었어. 방송 시작한 이후 사상최대래.]“……응?”
인기 드라마 시청률도 10퍼센트를 넘기 힘든 세상이다. 그런데 뭔 청문회 시청률이 25퍼센트를 넘어?
이는 국민들이 새만금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 이라기보다는, 보수는 내가 깨지는 걸, 진보는 자유국민당이 깨지는 걸 보고 싶어서가 아닐까?
“그건 됐고, 오기 전 내가 얘기한 거 바로 실행해.”
택규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말했다.
[후후, 역시 그걸 쓰는 수밖에 없는 건가? 그럼 계속 고생하도록.]난 다 마신 캔을 찌그러뜨린 다음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 * *
방송3사는 정규방송을 미루고 관련내용을 편성해 내보냈고, 인터넷 언론사들은 강진후의 발언을 속보로 쏟아냈다.
외신의 관심도 지대했고, 외국인들도 스트리밍 사이트 등을 통해 실시간으로 한국 국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경제청문회를 지켜보았다.
그런데 청문회가 진행될수록 사람들은 한 가지 큰 의문을 느꼈다.
-이 청문회를 왜 하는 건지, 나만 이해가 안 되나?
-말로는 추경을 면밀하게 살펴보겠다더니, 왜 강진후한테만 저래?
-새만금 개발을 하라는 건가요, 말라는 건가요?
-세상에 수천억 달러를 투자하겠다는 기업인에게 저러는 나라가 있나?
-다른 나라들은 10억 달러만 투자해도 VIP로 대접해줄 텐데.
-그 돈 우리 베트남에 투자해주지. 그럼 응우엔민 총리까지 달려가서 환영해 줌.
-전 세계에 투자받고 싶어 하는 나라들이 일렬종대로 운동장 세 바퀴~
-대체 이거 언제 끝나?
* * *
청문회가 재개됐고, 의미 없는 질의가 이어졌다.
아까부터 계속 같은 얘기가 반복됐고, 입을 열기도 귀찮아 건성으로 대답하자, 연나경 대표는 말꼬투리를 잡고 늘어졌다.
“한국을 성장시켰던 전통 산업이 한계에 부딪쳤다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관련 업종에 노동자들을 무시하는 발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그 산업들은 한국경제를 지탱하는 뿌리입니다. 강진후 대표의 말씀은 전통 산업을 다 버리자는 건가요?”
“기존에 잘하던 산업을 왜 버립니까? 그건 그거대로 성장시키면서 신산업을 육성하자는 거죠. 기존 자동차가 자율주행과 배터리 기술과 결합해 자율주행전기차가 되었듯, 신산업의 성장은 기존 산업에도 도움이 됩니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기 위해서 새만금을 개발하자는 겁니다.”
“그게 왜 새만금이야 합니까? 국민들은 세금낭비와 기업특혜에 대한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어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국민들 의견으로 포장하는 것은 정치인이라는 종족의 특성.
난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일자리가 사라지며 전북을 떠나는 청년이 큰 폭으로 늘고 있습니다. 산업이 붕괴되고 청년들이 다 떠나면 전북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걱정입니다. 전북이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려면 새만금 개발이 조속히 추진되어야 합니다. 새만금은 금융, 제조업, 소재산업,바이오산업 등이 어우러진 경제지역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전북 경제와 새만금 발전을 위해 정부가 힘을 아껴서는 안 됩니다.”
“호남에만 투자가 너무 쏠리면,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큰 틀이 무너질 수 있다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난 피식 웃었다.
“기억 안 나십니까? 제가 한 말이 아니라, 새만금에서 최고위원회를 열었을 때 연나경 대표님께서 하셨던 발언인데.”
내 말에 연나경 대표는 당황하는 표정을 지었다.
기억 안 나는 게 당연하겠지. 어느 지역을 가나 똑같은 소리를 했을 테니까.
“그런데 막상 개발을 하겠다니, 대체 왜 반대를 하시는 겁니까?”
연나경 대표는 표정을 고치며 말했다.
“반대라니요? 그게 아니라 올바른 방향으로 개발이 진행될 수 있도록 면밀하게 들여다보겠다는 겁니다.”
“뭐, 그러시겠죠.”
그러자 진행을 맡은 마상태 의원이 소리쳤다.
“강진후 대표! 청문회장에서 예의를 지키세요! 자세도 똑바로 하시구요!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 순간, 갑자기 의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너도나도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들었고, 한 의원이 연나경 대표에게 다가와 귓속말을 했다.
나 역시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인터넷을 켰다.
속보가 주르륵 떠있었다.
[(속보) 월트 디즈니 컴퍼니 자회사, 새만금 디즈니랜드 건립 계획 보류] [새만금 유니버설 스튜디오 투자 취소 공표] [서성전자, SSK닉스, 반도체 클러스터 계획 재검토] [바이오 클러스터 좌초 위기] [실론호텔, 복합리조트 추진 안 해] [새만금 투자기업들, 대체 투자처로 외국 물색] [골든게이트, 새만금 한국의 정치적 리스크로 인해 성공 힘들어, 투자기업들에게 주의요망……]마상태 의원이 소리치듯 물었다.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설마 대표께서 지시한 겁니까?”
난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이게 무슨……?”
“현재까지 확정된 기업의 투자금액은 500조 원으로, 이는 한국 GDP의 30퍼센트에 해당하는 액수입니다. 모두가 새만금 신도시를 개발하겠다는 정부의 말을 믿고 투자를 결정했고, 저 역시 그렇게 기업들을 설득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청문회를 겪으며 정치권이 새만금 개발에 대한 의지가 전혀 없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대신 이 금액을 다른 나라에 투자하려고 합니다. 정말이지 안타까운 일입니다. 예정대로 개발이 됐다면, 50만 개 이상의 일자리와 매년 수백조 원의 경제적 효과가 발생했을 텐데요.”
여환규 의원이 말했다.
“수백조 원의 경제적 효과라니. 너무 과장된 것 아닙니까?”
난 그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현재 한국 GDP가 1700조 원입니다. 이중 새만금 신도시에서 10퍼센트만 추가로 발생시켜도 170조 원입니다. 정말 제 말이 과장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크흠, 그건 뭐…….”
사실은 과장한 게 맞다. 원래 투자를 시작할 때 유리한 건 부풀리고, 불리한 축소하기 마련이니.
난 다시 연나경 대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제까지 여야는 앞다투어 새만금 개발 공약을 내세웠습니다. 그리고 저를 비롯한 다른 기업들은 그것을 믿고 투자를 결정했습니다. 새만금을 한국의 금융과 첨단산업을 이끌어갈 국제적 도시로 만들기 위해서는 짧게는 10년, 길게는 수십 년이 걸립니다. 이는 정치권의 압도적인 지지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모두가 지지해주신다면, 저는 새만금을 향후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나갈 도시로 만들겠습니다. 하지만 어느 당이든반대한다면, 모든 개발 계획을 취소하고 앞으로 한국에 어떠한 투자도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이 자리에서 각 당의 입장을 분명하게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연나경 대표는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지, 지금 협박하는 겁니까?”
“협박이 아니라 사실을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전 세계 어느 나라가 투자하겠다는 기업인을 이런 식으로 대합니까? 착각하시나 본데, 저는 부탁이 아니라 기회를 드리는 겁니다. 투자를 원하는 나라는 한국 말고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난 청문회장에 앉아있는 국회의원들을 둘러보며 마지막으로 발언했다.
“기업은 환영받지 못하는 곳에 투자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