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238)
제238화
238화. 마족의 피가 흐르지만 악마는 아닙니다(8)
빠직- 빠지직-.
“크윽…….”
루나의 몸에서 황금빛 전기가 흘러나왔다.
특히, 검을 쥐고 있는 손은 시꺼멓게 변한 지 오래였다.
그럼에도 루나는 끝까지 검을 놓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아도니스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극심한 고통에도 검을 놓지 않는다니. 대단한 뚝심이로구나.”
“자꾸 네가 한 수 위인 것처럼 말하지 말아 줄래? 아직 싸움 안 끝났거든?”
루나가 아도니스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아도니스는 이미 공격 사거리에서 벗어난 상태였다.
아까부터 이런 식이다. 어찌나 움직임이 빠른지, 검 한번 맞대기도 힘들었다.
후웅-!
창의 이점 중 하나. 긴 사거리.
크게 휘둘러진 창이 루나의 팔을 두들겼다.
타격과 동시에 황금빛 번개가 내리쳤다.
“커억!”
루나가 벽에 몸을 의지한 채 헐떡였다.
전기를 머금은 마나라니. 완전 사기다.
‘인정하긴 싫지만…… 강해.’
처음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었지만 막상 싸워보니 상상 이상이었다.
제로는 이런 아이와 어떻게 싸울 수 있던 건지. 신기할 정도였다.
‘이미 승패는 명확해.’
하지만 여기서 물러날 수는 없었다.
더 강해져야 하니까.
가문의 복수를 해야 하니까.
친구들을 지켜내야 하니까.
아도니스의 공격을 너무 많이 허용한 탓일까.
손이 덜덜 떨렸다. 검은 든 손에서 점점 힘이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손수건을 꺼내든 루나가 검을 쥔 손을 단단히 묶었다.
검과 손을 강제로 묶어버린 거다.
“물어 죽인다.”
이를 이용해 손수건의 매듭을 마무리 지은 루나의 모습.
그 모습을 바라보던 아도니스는 또 한 번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단순한 싸움광은 아니군. 친구…… 그 이상의 어떤 이유가 있는 것 같은데.’
그 이유가 뭘까?
호기심이라는 놈이 머리를 치켜들었다.
하지만 아도니스가 루나를 상대해 주고 있는 건 단순한 호기심. 그것 하나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 전격을 수십 발이나 먹고도 뛰어다닐 수 있다니. 원체 튼튼한 몸이기도 하지만…… 마나의 성질이 비슷한 탓이 더 큰 것 같군.’
마나에는 ‘성질’이라는 게 존재한다. 그리고 이건 가문의 내력을 따라갈 때가 많았다.
루시드 가의 경우에는 ‘바람’, 로운터 가문은 ‘화염’, 그리고 아도니스의 가문인 카셀 가는 ‘전기’.
‘으음…… 전기의 내력을 가진 가문이 어디 어디더라?’
무엇보다 루나가 품고 있는 마나는 어디선가 느껴본 적이 있는 마나였다.
아도니스가 골똘히 생각하던 때였다.
루나가 검을 집어넣었다. 그러더니 어떤 자세를 취했다.
아도니스는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지금 루나가 취한 자세는.
‘……발도술?’
검을 검집에 넣고, 다리와 허리를 살짝 숙인.
발도술을 위한 자세였다.
그 순간, 아도니스는 자신도 모르게 한 사람을 떠올렸다.
‘레니아?’
레스터 가문의 가주이자, 당대 최강자로 손꼽히던.
레니아 드 레스터의 모습을.
‘그러고 보니 레니아와 같은 연분홍빛 머리칼이군. 설마 레스터 가문의 생존자인가?’
생존자가 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 카론이 직접 나섰다고 들었으니까.
카론의 일 처리 솜씨는 두말하면 입 아플 정도 아닌가.
하지만.
‘처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었지.’
제국의 기둥 중 하나인 레스터 가문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것도 그렇지만.
나름대로 친분이 있는 카론이 레니아의 목을 진상한 것부터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었다.
성국에서 저 소식들을 전해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카론과 레니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딸을 살려달라는 부탁을 받은 거라면?’
카론이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레니아의 딸을 살렸다.
그 아이가 자라 앤우드 아카데미에 입학했다.
그리고 그걸 제로가 주웠다(?).
‘카론의 말에 의하면 제로는 레스터 가문의 시궁쥐를 꿈꾸던 아이라고 했으니까.’
아귀가 무서울 정도로 딱딱 들어맞는다. 물론, 아직 추측에 불과했다.
루나가 레스터 가문의 생존자인가 아닌가.
그걸 확인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레스터 가문의 비기 ‘일섬’.
저 아이가 그걸 사용할 수 있다면, 간단히 증명될 문제였다.
“뽑아라.”
“…….”
“그냥 폼으로 한 거였나? 그렇다면 실망인데.”
무슨 이유에선지 루나는 검을 뽑으려 하지 않았다.
그래도 괜찮다. 누구든지…….
‘죽음 앞에서는 발버둥 치는 법이니.’
파지직-!
골목길에 번개가 내리쳤다. 빠르지만 루나가 간신히 인지할 수 있는 속도.
막기, 흘리기, 도망치기.
그런 걸로는 대처가 불가능하지만, ‘일섬’이라면 충분히 대처할 수 있는 속도.
아도니스가 그 속도로 창을 내질렀다.
하지만.
“……!”
루나는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아도니스가 내지른 창끝이 이마에 닿을 때까지도 말이다.
팅-!
루나의 이마에 작은 상처를 낸 아도니스의 창끝이 부르르 떨렸다.
자신이 9성 기사가 아니었다면 이미 루나의 머리에는 창에 꿰여 있었을 것이다.
“……왜 뽑지 않는 거냐?”
“친구랑 약속했으니까.”
루시아에게 가르침을 받은 이후, 루나의 일섬은 어느새 어엿한 일섬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제로와 카론은 루나의 일섬을 잠시 봉하기로 한 상태였다.
‘일섬을 사용했다간 제로가 곤란에 처할지도 몰라.’
그래서 루나는 일섬을 사용하지 않았다.
뭐, 자세를 취한 이후에 그 약속을 떠올리는 사소한 문제가 있긴 했지만 말이다.
“죽을 수도 있었다! 목숨이 약속보다 더 중요하단 말이냐?”
“당연한 거 아니야?”
창을 눈앞에 두고도 당당한 저 눈빛.
아도니스는 알 수 있었다. 지금 루나는 진심이라는 걸.
“전혀 안 당연하다! 두 번 다시 그런 생각 하지 말도록! 하여튼 요즘 놈들은 목숨이 귀한 줄을 모르는구나! 에잉, 쯧쯧!”
“왜 네가 화를 내는 건데? 애초에 죽일 생각을 하질 말든가!”
으르릉-!
이를 세운 루나가 달려들었지만, 아도니스의 손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그 공격을 막아냈다.
‘사나운 고양이가 따로 없군.’
레니아와는 아주 딴판인 아이였다.
‘카론은 당연히 이 아이의 존재를 알고 있었을 거고…… 제로는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지? 아니, 어쩌면 둘이 모종의 거래를 한 것일지도 모르겠군.’
레스터 가문의 후예가 살아있다.
이런 중대한 사실을 자신에게만 비밀로 하다니.
‘카론, 제로…… 참 고약한 아이들이로고.’
제로는 그렇다 쳐도, 카론까지 자신에게 정보를 숨길 줄은 몰랐다.
그것도 둘이서 미리 입을 맞춘 것처럼 자신에게 정보를 숨겼다. 아주 자연스럽게.
‘감동적이로군.’
놀랍게도 아도니스가 느끼고 있는 감정은 ‘감동’이었다.
누명을 쓴 가문의 후예를 자신들끼리만 보호해 주려고 하다니.
낭만이다, 낭만이야.
낭만에 취해 있던 아도니스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 당시 나는 성국에 가 있었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른다.’
카론에게 물어보면 자세한 내막을 알 수 있겠지만, 의도적으로 정보를 숨기려 할 수도 있었다.
레니아의 수급을 직접 취한 인물이니까.
‘우선…… 제로, 그놈을 떠봐야겠군.’
카론에게 접근하는 건 그 이후에 해도 충분했다.
그렇게 아도니스가 생각을 정리했을 때였다.
“헉헉…… 빌어먹을 꼬맹이 자식. 한 대를 안 맞아주네.”
“때리려는 게 아니라 물어뜯으려 하니 그렇지. 대체 누가 물어뜯는 걸 가만히 당해준단 말이냐?”
“제로는 잘 당해주던데. 뭐, 고통을 즐기는 변태라 그런 걸 수도 있지만.”
“……?”
아도니스가 루나의 말을 해석하는 사이, 루나가 떠날 채비를 마쳤다.
승패가 결정 난 지금, 이곳에 더 머무를 이유가 없었다.
“누님 먼저 간다. 배웅은 필요 없으니 나오지 말고.”
“잠깐, 대가는? 그것에 대한 얘기는 안 하느냐?”
루나는 그제야 떠올렸다. 아도니스가 이겼을 경우, 소원을 하나 들어주기로 했다는 걸.
“뭘 원하는데?”
“흠, 지금은 딱히 없군. 나중에 말해도 되겠지?”
“맘대로 하셔. 다음엔 내가 이길 거니까 쓰지 않는 걸 추천하겠지만.”
루나가 손을 휘적거렸고, 아도니스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고 보니…… 그 아이는 같이 안 온 것이냐?”
“누구? 제로?”
“아니, 항상 같이 다니는 여자아이 말이다. 이상할 정도로 존재감이 희미한.”
“레제? 걔가 여길 왜 와. 그리고 너 있는 곳에는 절대로 안 데려올 거거든?”
“어째서냐?”
“네가 노리고 있으니까 그렇지! 우리 레제는 절대 못 내줘! 특히 너 같은 변태한테는!”
“……?”
졸지에 변태가 되어버린 아도니스.
터덜터덜 떠나는 루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흠…… 그 아이의 실력도 보고 싶었는데 말이지.”
자신조차 감지하기 힘든 희미한 존재감.
은신의 천재.
조금 소심해 보이긴 하지만, 제로가 허투루 동료로 받아들였을 리 없다.
‘엄청난 비밀을 숨기고 있는 아이겠지. 저 루나라는 아이처럼!’
사실 아도니스는 루나보다 레제라는 아이가 더 궁금한 상태였다.
그런데 같이 안 올 줄이야.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다.
“내가 직접 찾아가는 수밖에.”
그 시각, 레제가 있는 기숙사.
“에, 에취잇!”
식당용 은신 상자를 정비하던 레제가 갑자기 재채기를 내뱉었다.
재빨리 상자 속으로 몸을 숨긴 레제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으, 으으음…… 뭐지? 뭐, 뭔가 불길한 기운이이…….”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는 무시무시한 미래.
감지해 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피할 길이 없는 레제였다.
* * *
오늘 내가 알던 테르온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모르겠다.
“하하하하하하!”
어제에 이어 오늘도 테르온은 해맑았다. 흑화의 조짐이 1은커녕 0.001도 보이지 않았다.
테르온은 이미 글러 먹은 걸지도 모르겠다.
“호호호호호호!”
“오~ 호호호호!”
아니, 어쩌면 셋 모두 글러 먹은 걸지도 모른다.
테르온과 유리디아는 그렇다 치자. 빅토리아는 왜 기분이 좋은 걸까?
루나와 나를 계속 곁눈질하는 것도 그렇고. 이상한 일투성이였다.
혼돈, 파괴, 망가(?).
이 교실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누가 나한테 알려줬으면 좋겠다.
이상한 건 저 아이들뿐만이 아니었다.
루나. 얘도 이상했다.
“뭘 봐?”
온몸에 반창고를 붙이고 온 루나다. 기분도 안 좋아 보였다.
얘는 또 어디서 맞고 온 걸까?
“저…… 루나 양?”
“묻지 마. 물어 죽인다.”
역시 그렇지? 레이디에게 그런 걸 묻는 건 실례였겠지?
루나의 기분이 풀릴 때까지 얌전히 찌그러져 있어야겠다. 난 신사니까.
“그래도 위로는 해줘야지! 물려 죽고 싶어?”
“……?”
나보고 뭐 어쩌라는 거야!?
“죽어! 그냥 죽어!”
루나가 내 머리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응, 그렇구나. 그냥 나를 물어뜯으며 화를 풀고 싶었던 거구나?
진작 말을 하지 그랬어. 얌전히 머리통을 갖다 바쳤을 텐데.
“으으, 으으으으으!”
뭐가 그리 분한 것인지, 루나는 내 머리통을 잘근잘근 씹기 바빴다.
머리에서 루나의 침이 흐르는 걸 느끼며 생각에 잠겼다.
‘테르온을 흑화시키는 건 중요해. 하지만 지금의 테르온은 흑화시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괜찮다. 테르온이 흑화하게 되는 계기는 몇 개 더 존재하니까.
‘다가오는 중간고사…… 거기에서 승부를 본다.’
그때 절망에 빠진 테르온을 자극, 더욱 깊은 절망에 빠트리며 본래의 스토리로 돌려놓는 거다.
그야말로 완벽한 계획! 내 입에서 웃음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후후후후후후!”
“하하하하하하!”
“호호호호호호!”
“오~호호호호!”
교실에 들어서던 카론은 생각했다.
이번 기수는 이상한 놈들 천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