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struck a jackpot after a marriage RAW novel - Chapter 59
059 동해물과 백두산이
“도착했습니다.”
실장님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편하게 도착한 숙소. 도심에서 꽤 거리가 있는 곳이라 전체적으로 한적하고 안락한 느낌이었다.
우리가 머물 곳은 도심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유니크한 디자인의 2층 건물이었는데. 잘 다듬어진 정원과 깔끔한 수영장이 눈에 띄었다.
“우와아아-”
예나도 숙소가 마음에 들었던 모양인지, 건물과 정원을 번갈아 보며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솔직히 나도 예나와 비슷한 심정이었다. 이런 숙소에서 묵으려면 하룻밤에 대체 얼마나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할까.
“작은 언니의 별장이에요.”
“처형이요?”
“네. 주로 외국에서 귀빈들이 오시면 빌려드리는 곳인데. 예나랑 같이 여행을 간다니까 언니가 흔쾌히 빌려줬어요.”
어쩐지 디자인부터가 남다르더라.
강별의 손님이라면 대부분 예술에도 일가견이 있는 사람일 테니, 그만큼 숙소에도 상당히 신경 쓴 모양이다.
가족이라고 해도 선뜻 내어주지 않는 곳 같은데. 장마엘 사건에 대한 사죄를 겸한 거겠지.
“나중에 꼭 감사하다고 전해주세요.”
“응. 그럴게요.”
우리가 담소를 나누는 사이, 예나는 정원에 쭈그려 앉아 꽃밭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예나도 숙소가 마음에 든 모양.
“일단 짐부터 풀까요?”
“저희한테 맡겨주십시오.”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실장님이 말을 걸어왔다. 돌아보니 경호원들이 트렁크에서 우리 짐을 꺼내 숙소 안으로 옮기고 있었다.
조금 부담스럽다는 생각을 하던 중. 문득 실장님이 내 쪽으로 무언가를 내밀었다.
“이게 웬 무전기입니까?”
“여러분들의 휴식에 방해되지 않도록 저희 팀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대기할 겁니다. 필요한 게 있으시면 이걸로 연락을 주십시오.”
“그냥 전화로 하면 안 되나요?”
“이 주변에는 손님들의 사생활 보호를 위한 전파 차단기가 설치되어 있거든요.”
아저씨, 그거 불법이잖아요.
목 끝까지 차오른 말을 간신히 삼켰다.
어쨌든 전파 차단기 때문에 건물 내부에서는 유선전화를, 바깥에서는 특수 무전기를 사용해야 한단다.
“필요하신 물건이나 서비스, 혹은 바깥으로 나갈 일이 생기시면 언제든 연락 주십시오.”
“언제든지요?”
“네. 새벽에도 교대 근무를 서고 있으니, 마음 편히 연락 주시면 됩니다.”
“···일단 알겠습니다.”
나는 실장님으로부터 무전기를 건네받아 허리춤에 걸었다. 그러자 꾸벅 고개를 숙인 그가 다른 경호원들과 함께 시야에서 멀어졌다.
일사불란하게 흩어지는 것을 보니, 지정된 경호 포인트가 따로 존재하는 모양. 그쯤에서 나는 평범하게 생각하는 것을 포기하기로 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하던가?’
기왕 이렇게 된 거 뇌를 비우고 편하게 쉬자. 소설도 넉넉하게 예약을 걸어두고 왔으니, 지금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쉬면 된다.
“예나야, 이제 들어갈까?”
“웅.”
그렇게 나는 예나와 강바다를 데리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오후 비행기를 탄 지라 시간이 좀 애매해서, 간단하게 밥부터 챙겨먹을 생각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도련님.”
어머니뻘로 보이는 분께서 우리를 맞이해주셨다. 처음에는 이곳을 관리하시는 분인가 싶었는데, 강바다가 선뜻 앞으로 나섰다.
“이쪽은 제 유모예요. 전에 제가 이야기해드린 적 있죠? 어릴 때부터 저를 길러주신 어머니 같은 분이 계시다고.”
“아, 그분이셨군요. 처음 뵙겠습니다. 김하늘이라고 합니다.”
“김미정입니다. 아가씨에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듣던 대로 훤칠하고 멋지시네요. 아가씨께서 매일 도련님 이야기만···.”
“유모!”
강바다가 얼른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 이에 김미정은 익숙하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예나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이쪽이 예나 아가씨로군요.”
김미정의 시선을 받은 예나는 내 다리 뒤로 몸을 숨겼다. 이후 고개만 빼꼼하게 내민 채 인사를 건네는 그녀.
“듣던 대로 수줍음이 많은 분이시네요. 혹시 배고프지는 않으세요? 예나 아가씨께서 돈가스를 좋아하신다고 들어서 따로 준비해뒀는데.”
“돈가스!?”
“아가씨를 위해 제가 특별히 준비한 특별 돈가스예요. 치즈가 듬뿍 들어가서 쭉쭉 늘어난답니다?”
“···치즈!”
과연 육아 경력이 어디로 가지 않는지, 아이를 다루는 능력이 수준급이다. 벌써 예나의 경계심이 수그러들고 있다.
“두 분도 먼 길 오느라 배고프실 텐데, 간단한 식사부터 하시겠습니까?”
“응. 안 그래도 배고팠어요.”
“저도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럼 일단 거실로 가실까요?”
우리는 김미정의 뒤를 따라 식탁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결코 ‘간단’이라고 표현할 수 없을 만큼의 음식이 늘어져 있었다.
각종 입가심용 과일부터 시작해서, 싱싱한 해물 파스타나 피자 등이 식탁을 가득 채웠다.
‘우리가 오는 시간에 맞춰서 만들어놓으셨군.’
음식의 온기가 눈으로 느껴졌다. 아마 장실장을 통해 실시간으로 우리의 위치를 전해들으며 조리하신 모양.
그 세심함 덕분에 우리는 한창 따뜻하고 맛있을 때의 음식을 맛보게 되었다.
“편하신 대로 앉으세요. 잠깐 기다리시면 오늘의 메인 음식인 돈가스를 내오겠습니다.”
“돈가스. 돈가스!”
예나의 기대에 부응하듯 김미정이 돈가스를 들고 식탁으로 왔다. 나는 그 익숙한 비주얼에 잠시 멈칫하고 말았다.
“이건 설마···.”
“요리에 일가견이 있으시다고 들었는데, 역시 도련님께서는 바로 알아보시는군요. 맞습니다. ‘얀돈 돈가스’입니다.”
얀돈 돈가스.
박주부가 운영하는 어떤 TV 프로그램에서 나온 돈가스다. 100화 넘게 칭찬 한번 하지 않던 박주부가 처음으로 극찬한 음식.
가게에 사람이 너무 몰려서, 밤새워 줄을 서야만 먹을 수 있는 전설의 요리가 되어버렸는데. 이걸 여기서 볼 줄이야.
“이 가게 사장님 철학이 워낙 확고해서, 따로 요리해주는 경우는 없다고 들었는데요?”
“도련님 말씀대로입니다. 그래서 제가 직접 얀돈 사장님께 요리법을 배워왔습니다.”
“예?”
“이런저런 조건이 많이 붙기는 했지만, 결과론적으로는 레시피를 얻어냈습니다. 물론 불법적인 과정은 일절 없었으니 편하게 드셔도 됩니다.”
“···그렇군요.”
하기야 국내에서는 대한 그룹이 맘먹고 하지 못할 일이 손에 꼽을 테지. 아마 일반인은 알 수 없는 복잡한 거래가 오갔으리라.
무엇보다 우리에게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기 위해 직접 제주도까지 와서 요리를 배운, 김미정의 정성이 실로 대단하다고 느꼈다.
“조리법은 동일하지만, 판매용이 아닌 만큼 재료는 전부 최고급으로 맞췄습니다. 아마 본점에서 드시는 것보다 풍미가 더 뛰어나실 겁니다.”
“덕분에 귀한 걸 먹어보네요.”
자부심이 느껴지는 김미정의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저런 자신감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다.
최고의 재료와 레시피. 그리고 요리사의 노력까지. 이 삼박자가 고루 갖춰졌을 때만 나올 수 있는 자신감이다.
“먹어도 돼요?”
“그럼. 뜨거우니까 조심하고.”
“응!”
아까부터 침을 줄줄 흘리고 있던 예나가 얼른 포크를 집어 들었다. 그녀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돈가스를 푹 찍었다.
잠시 후 돈가스를 입에 밀어 넣은 예나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그녀는 충격받은 듯한 표정으로 열심히 입을 오물거렸다.
“어때 예나야, 맛있어?”
“······.”
예나는 대답하는 것조차 잊은 채 오롯이 먹는 것에만 집중했다. 그 엄청난 리액션에 나도 얼른 돈가스를 집어 들었다.
‘치즈 돈가스는 일단 눈으로 즐겨야지.’
좌아악-
나는 돈가스 속에 있는 치즈를 젓가락을 집어 쭉 잡아당겼다. 한 번의 끊김도 없이 눈앞까지 늘어나는 치즈.
후루룩-!
라면을 먹듯 빨아당기자, 고소한 치즈의 풍미가 입안 전체로 퍼져 나갔다.
‘···기가 막히는 맛이군.’
고작 치즈만 먹었을 뿐인데도, 벌써 뇌의 절반이 행복으로 가득 찼다. 남은 절반은 얼른 껍질을 먹어보라며 아우성이었고.
그 욕망을 차마 이겨내지 못한 나는. 다른 사람의 시선조차 잊어버린 채 돈가스를 통째로 입안에 밀어 넣었다.
바삭-
부드러운 치즈와 대비되는 바삭한 튀김. 특히 빵가루 특유의 식감이 내 혀를 100% 만족시켰다.
“아···.”
저도 모르게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내가 지금껏 먹어본 돈까스 중에서는 가히 최고라고 자부할 만한 맛이었다.
꿀꺽-!
시식을 미뤄둔 채 내 표정을 지켜보던 강바다가 마른 침을 삼켰다. 그녀의 눈이 호기심으로 물들어가는 것이 보일 정도.
“하늘 씨, 어때요? 맛있어요?”
“···직접 먹어보세요. 이건 말로 설명 못 해요.”
내 말에 강바다 역시 돈가스를 집어 들었고, 잠시 후 나와 똑같은 표정이 되었다. 김미정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입맛에 맞으시는 것 같아서 다행이네요.”
“혹시 저도 배울 수 있을까요?”
“안 그래도 요리를 좋아하신다고 해서 준비해뒀습니다. 혹 다른 분께 전수하시거나, 따로 음식점을 내지만 않으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집에서 만들어 먹기에는 요리 과정이 꽤나 번거롭지만. 집에 계신 부모님께도 이 맛을 꼭 선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예나, 그림 그리고 싶어.”
“응?”
“돈가스 먹으니까 삘이 왔어!”
···그 정도의 맛이었구나.
어느새 그릇을 깔끔하게 비워낸 예나가 눈을 빛냈다. 그러자 김미정이 예나를 조심스럽게 안아서 바닥에 내려줬다.
“혹시 이런 일이 있을까 싶어서 미리 화실을 준비해뒀습니다. 제가 예나 아가씨와 함께 다녀오겠습니다.”
“그럼 저희도···.”
“아닙니다.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닌걸요. 두 분은 식사부터 마저 하세요. 아참, 밖에 수영장도 준비를 해뒀으니 편하게 이용하시면 됩니다.”
“빨리이-”
예나는 돈가스 하나로 김미정을 완전히 인정해버린 듯했다. 혹여 ‘삘’이 사라질까, 흔치 않게 보채는 모습.
이에 김미정은 우리에게 고개를 숙여 양해를 구한 후, 예나와 함께 화실로 향했다.
갑자기 둘만 남자 분위기가 조금 어색해졌다. 우리는 차마 서로를 마주 보지 못한 채 볼만 긁적였다.
“그···. 식사는 다 하셨나요?”
“네, 네! 우린 이제 뭐할까요?”
“예나는 한번 펜을 잡으면 몇 시간씩 작업하니까, 밖에 나가는 건 내일로 미뤄야겠죠.”
“그렇겠네요.”
늦은 비행기라 벌써 해가 기울고 있었다. 예나의 작업이 끝나면 보나 마나 저녁이 훌쩍 넘어갈 테니, 오늘은 집안에서 보내는 수밖에.
“유모님 말씀대로 수영장 구경이나 할까요?”
“그래요. 그럼 일단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
우리는 짜기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수영복’이라는 단어가 가져다주는 무게감이 생각 이상으로 묵직했기 때문이다.
– 비키니는 그냥 방수되는 속옷이잖아!
순간 머릿속으로 어떤 유교 BJ의 통렬한 외침이 스쳐 지나가면서. 저도 모르게 비키니를 입은 강바다를 상상하게 됐다.
“큼- 바다 씨 먼저 가서 준비하세요. 여기는 제가 간단하게 정리 좀 하고 갈게요.”
“같이 정리해요.”
“아녜요. 먼저 들어가세요.”
“······?”
강바다가 의문 섞인 눈으로 나를 바라봤으나, 당분간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게 된 나는 철저한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강바다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결국 먼저 일어나 방으로 들어갔다. 그 뒷모습을 보며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나는 애국가를 통해 애써 마음을 다독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쩌면 오늘이 내 인생 중 가장 위험한 순간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