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struck a jackpot after a marriage RAW novel - Chapter 69
069 천만장자
프랑스 파리 중심가의 어느 집.
나이 지긋한 노인이 입을 열었다.
노인은 코에 비스듬히 걸쳐져 있던 안경을 밀어 올리며 눈을 빛냈다.
그동안 강별과 교류한 시간이 결코 적지 않다. 자신이 유치한 장난을 싫어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터.
그렇기에 더욱 흥미로웠다. 그녀가 이토록 자신만만하게 동화책을 보낸 것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테니까.
[이리 가져오게.]호오-
비서로부터 책을 넘겨받은 그는 표지를 살피며 눈을 빛냈다. 삽화가의 실력이 제법 뛰어났기 때문이다.
다채로운 색상의 활용은 물론이고, 주인공으로 생각되는 여우의 표현도 생동감 있었다.
물론 자신에게 보내는 견본이라서 양산형보다는 신경을 더 썼겠지만, 그래 봤자 프린트물일 텐데.
‘다음 장이 궁금해지는군.’
노인은 표지를 충분히 감상한 후 책을 넘겼고, 그는 금세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사락- 사락-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노인의 눈은 점점 더 크게 떠졌으며, 의자에 기대고 있던 그의 허리 역시 똑바로 세워지기 시작했다.
좀처럼 볼 수 없는 노인의 모습에,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비서 역시 동화책의 내용물이 궁금해질 정도였다.
[···허어]노인은 마지막 장까지 쉼 없이 넘긴 후에야 겨우 밀린 숨을 몰아쉬었다. 중간부터는 호흡하는 것조차 잊을 정도로 몰입했다.
온몸에 힘이 빠진 노인은 의자에 몸을 기댔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탈력감이었다.
[어떠셨습니까?]결국 참지 못한 비서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럼에도 노인은 지그시 눈을 감은 채 차오르는 감정을 음미할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천천히 눈을 뜬 노인이 말했다.
노인은 입에 곰방대를 물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가 숨을 내쉴 때마다 짙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나 또한 잊고 살았네. 허나 이 동화책을 보는 순간 70년도 더 된 그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어. 어머니께서 나를 품에 안고 동화를 들려주셨을 때의 추억들이.] [···그 정도입니까?] [아니, 그 정도가 아닐세.]스읍- 후우-
노인은 좀처럼 말을 잊지 못한 채 뜸을 들였다. 점점 안달이 난 비서가 그를 재촉하기 직전에야 겨우 입을 열었다.
비서가 두 눈을 크게 떴다. 수십 년간 노인의 옆자리를 지켜왔으나, 지금처럼 크게 웃는 그의 모습은 처음 봤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더욱 안달이 났다. 노인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듯,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금 말을 이었다.
그 뒤로 노인은 동화책에 대한 칭찬을 아낌없이 꺼냈다. 삽화에 대한 극찬이 이어졌고, 그 이야기만 거의 10분을 넘어갔다.
그동안 비서도 동화책을 읽어볼 수 있었고. 그 역시도 노인과 비슷한 감정에 빠져 즐거운 토론을 나누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말 대단한 건 이야기의 구성이라네.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퀄리티의 삽화가 눈을 끌었지만, 사실 우리를 몰입하게 만드는 것은 어디까지나 스토리니까.] [확실히 듣기 전까지는 몰랐지만, 글 작가의 솜씨도 대단하네요. 동화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이 정도의 표현력이라니···.] [그래, 딸랑 삽화만 있었다면 그저 잘 그린 그림에 지나지 않았겠지. 허나 이 중심 스토리가 모든 것을 이어주고 있어. 너무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가히 ‘마에스트로’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군.] [저도 동의하는 바입니다.]두 사람은 동화책을 들여다보며 연신 감탄을 토했고, 동화책과 함께 들어있던 강별의 편지를 읽은 후로는 헛웃음을 터트리기에 이른다.
[이걸 정말 20살도 안 된 애들이 그렸다고? 심지어 그중 한 명은 유치원생이고?] [···농담이 심하네요.] [허나 진실이라면.]두 사람의 눈이 동시에 빛났다.
마침내 노인은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고, 그의 마음을 읽은 비서 역시 옷을 챙겼다.
비서의 말에 노인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고개를 좌우로 내저으며 말했다.
[서로의 입장이 바뀌었어. 이제는 제발 내 이름을 넣어달라고 빌어야 할 판이네. 새로운 역사에 이름 한 줄 새기고 싶다면 응당 그래야겠지.] [저도 데려가 주실 거죠?] [···노력해봄세.]노인, ‘패트릭 미도노아’의 말에 비서가 울상을 지었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그의 영향력으로 불가능하다면, 견학은 사실상 물 건너간 셈이니까.
이와 비슷한 일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강별로부터 동화책 건네받은 사람들은 대부분 패트릭과 비슷한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당장 한국행 티켓부터 끊어.] [어떻게든 유통권을 따내야 해.] [비단 이 동화책만이 문제가 아니야. 작가의 나이를 고려하면 이건 단순한 시작일지도 몰라.]세계의 거장들이 한국으로 모여들었다. 그 중심에는 김하늘이 있었다.
* * *
“···몇 개국이요?”
“당장 계약이 끝난 건 프랑스, 독일, 그리스 등을 포함한 유럽 쪽 30개국. 추가로 미국하고 일본, 호주도 승인받았어.”
강별의 설명에 나와 강바다의 입이 떡 벌어졌다. 어느 정도 먹힐 거라는 확신은 있었다만, 이렇게 순조롭게 풀릴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일단 동화책이다 보니 그림이 가장 먼저 눈에 띄기도 하고. 번역하는데도 시간이 크게 필요하지 않으니까.”
“그래도 놀랍긴 하네요.”
“이 정도로 뭘. 이미 손님들 사이에서 소문이 자자해. 영미권 전역으로 퍼지는 것도 순식간이겠지. 그 외 다양한 언어로도 번역하는 중이고.”
“고마워, 언니!”
강바다의 솔직한 반응에 강별이 살짝 미소를 머금었다. 그녀는 느긋하게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다시금 말을 이었다.
“감사는 김서방한테 해야지.”
“응?”
“솔직히 말하자면 난 예나의 삽화만 보고 있었어. 근데 우편함에 가득 쌓인 서평을 보며 그게 아니란 걸 깨달았지. 내 시야가 너무 좁았던 거야.”
“서평이 어땠길래?”
강바다가 흥미로운 표정으로 몸을 기울였고, 이에 강별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흠잡을 데 없는 플롯과 구성. 명료하고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생각이 깊어지는 문장. 김서방을 한국의 안데르센이라고 부르더라.”
“에이, 그건 번역가분이 잘하신 거죠.”
“그 번역가도 똑같은 말을 하던데?”
“하늘 씨, 대단해요-!!”
아하하-
대놓고 얼굴에 금칠을 해주니까 뭐라고 반응을 해야 할지 몰라서 어색하게 웃었다. 그러자 강별이 미소를 머금으며 말을 이었다.
“아무튼 현지 반응이 워낙 뜨거워서, 우리도 거기에 발맞춰 화끈한 증쇄를 하기로 했어.”
“얼마나요?”
척-
강별이 대답 대신 손가락 다섯 개를 펼쳐 보였다. 그 의미를 어렵지 않게 이해한 나와 강바다는 입이 떡 벌어졌다.
“50만 부라고요!?”
“언니, 그건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초판 10만 부도 많다고 생각했는데···.”
“너희들 지금 무슨 소리 하니?”
“네?”
저도 모르게 바보 같은 소리가 나왔다. 그를 보며 즐겁다는 듯 다시금 커피를 마시는 강별.
그사이 계산을 마친 나와 강바다는 눈빛을 주고받으며 어이없는 웃음을 흘렸다. 도무지 머리로 이해가 안 됐기 때문이다.
“오백만 부를 초판으로 낸다고요?”
“그래.”
“···그만큼 팔릴까요?”
“그건 해봐야 알지.”
비록 대답은 그렇게 했으나 강별의 덤덤한 표정을 보아하니, 어느 정도 확신하고 있는 듯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런 과감한 투자를 할 리가 없지.
‘초판으로 5백만이라니.’
물론 이 발매 후 24시간 만에 1100만 부를 팔아치운 전적이 있기는 하다만. 그건 시리즈 물이지 않나.
세상 사람들은 ‘예나’라는 이름을 전혀 모를뿐더러, 앞서 유명했던 작품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홍보가 어려울 텐데.
강바다도 나와 비슷한 걱정을 했는지 이와 관련된 질문을 잔뜩 늘어놨고, 강별은 예상했다는 듯 차분히 답변했다.
“그쪽은 걱정할 필요 없어. 이미 SNS를 통해 널리 퍼져나가고 있거든. 실제로 예약 구매가 열릴 때마다 완판이 반복돼서 여기까지 온 거야.”
“그 말씀은 설마···.”
“적어도 4백만 부는 이미 판매됐다는 소리지.”
나는 머릿속으로 빠르게 계산기를 굴렸다. 동화책의 원가와 수익 비율 등등을 고려했을 때 나에게 떨어지는 수익은.
“김서방에게 확정된 몫만 약 100억. 앞으로 늘어날 판매량에 따라서 더 추가되겠지.”
“허허.”
스케일을 한참 벗어나는 액수에 절로 헛웃음이 나왔다. 아직 강산이 제시한 목표치에는 못 미치는 수치지만, 크게 한 걸음 나아간 것은 분명하다.
강별이 수익 배분을 업계 최고로 쳐준 것도 있고, 현지 쪽도 ‘전시회 초청권’ 때문에 거의 공짜나 다름없는 비율을 부른 덕분이겠지.
‘내가 받는 액수도 충분히 대단하지만···.’
우리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돌아갔다. 그곳에는 방안을 돌아다니며 벽에 걸린 그림을 감상하고 있는 예나가 서 있었다.
“예나도 문제없는 거죠?”
“뭐···. 문제가 아주 없는 건 아닌데. 원장님을 후견인으로 해서 어떻게든 해뒀어. 예나의 몫은 고스란히 돌아갈 거야.”
“다행이네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세상 순진한 표정으로 그림을 보고 있는 예나.
동화책을 제작할 때 예나의 비율을 가장 높게 책정했다. 애초에 그녀에게 줄 선물로 시작한 거였으니까.
그 결과.
예나는 7살에 천만장자가 되었다.
“···예나가 나보다 부자네.”
푸흡-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넋두리에 두 사람의 웃음보가 터졌다.
딱히 할 말이 없어서 나도 따라 웃었다. 허탈하다거나 그런 건 아니고, 그저 앞으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니까.
“그러고 보니 이 말을 깜박했네. 고객님들께서 김서방의 다른 작품에도 관심이 생긴 모양이야.”
“다른 작품이라고 하시면···?”
“웹소설 말이야.”
강별의 말을 듣는 순간 마음속에서 한 줄기 희망이 피어올랐다. 당초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기회가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