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132
교랑의경 132화
“뭐라고?”
주 부인의 방 안.
눈앞에 꿇어앉은 주육낭을 보며 주 부인은 마시던 차를 뿜을 뻔했다. 주 부인은 믿을 수 없다는 눈길로 주육낭을 쳐다봤다. 주육낭은 다부진 표정에 흐트러짐 없는 자세였다.
“소자 올해로 열여섯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도 혼사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셨습니까. 혼인하겠습니다.”
주 부인이 기침을 두어 번 했다. 옆에 있던 여종은 웃음을 참으며 주 부인의 등을 쓸어 주었다.
“부인, 공자님도 어린 나이는 아니시죠.”
여종이 나지막이 말했다.
남녀가 열네다섯이 되면 혼인을 하고, 스물이 되면 늦었다고들 하는 때였다. 물론 만혼이 많은 것도 사실이었다. 서생은 과거 급제를, 무인은 공명을 가정 꾸리는 일보다 중시했다.
주 부인은 아들을 쳐다봤다. 여인이자 어머니로서 아들이 그저 혼인을 하고 싶어 이야기를 꺼낸 게 아니라는 사실쯤은 알고 있었다.
“육낭, 어느 집 규수를 마음에 뒀느냐?”
주 부인이 불쑥 물었다. 대놓고 물으니 예상대로 아들의 얼굴에 난처하고 쑥스러운 기색이 드러났다.
“저는…….”
주육낭은 머뭇거렸다. 이런 남녀 간의 문제를 입에 담기는 껄끄러웠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사촌 누이와 혼인하겠습니다.”
주 부인과 여종은 너무 놀라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뭐라고?”
주 부인이 몸을 앞으로 내밀며 다시 물었다.
“정교랑과 혼인하겠습니다.”
주육낭은 눈을 크게 뜨고 힘주어 말했다. 주 부인이 놀란 표정으로 아들을 쳐다봤다.
“아이고, 야단났네!”
주 부인은 버럭 소리를 지르더니 손으로 가슴을 움켜쥐며 뒤로 넘어갔다.
“썩 내쫓아라!”
“부인!”
여종이 놀라 비명을 지질렀다. 방 안이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주 노야가 집으로 급히 돌아왔다. 의원도 함께 모셔 갔다는 집사의 귀띔이 아니었다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의원을 모셔 갔다는 말은 주 부인에게 빨리 가 봐야 함을 의미했다. 온 경성 사람이 부러워하는 신의가 집에 있건만 하루가 멀다고 밖에서 의원을 모셔 가니 우스운 노릇이었다.
“주 형, 나 대신 뭐 하나만 알아봐 주시오.”
동료 하나가 주 노야의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그래요, 우리도 궁금합니다.”
다른 이들도 간절히 부탁했다.
“효과만 있다면 돈은 얼마든 상관없소.”
“금석보다 비싸답니까?”
다른 이가 덧붙여 물었다.
“금석만큼 비싸도 금석보다 훨씬 좋을 겁니다. 잊지 마시오. 이 진인은 도조(道祖)가 아니십니까.”
몸을 튼튼히 하고 수명을 늘려 준다고 하여 요즘 사대부와 부잣집에서 떠받드는 금석은 도사들이 만든 단약이었다. 도교의 창시자인 이 진인이 남긴 비술이라면 가장 정통일 수밖에 없었다.
말이 다소 두루뭉술했지만 주 노야는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똑똑히 알았다.
금석을 먹고 목숨을 잃을 뻔한 동 내한은 이미 몸을 회복하여 사람들을 만났다. 죽었다 살아났다는 신기함 외에도 동 내한에게는 놀라운 일이 또 있었다. 안색과 용모였다.
동 내한이 금석을 먹은 것은 몸이 안 좋고 다리에 힘이 없어서였다. 그런데 염라대왕 앞에 한번 다녀오더니 기력이 몰라보게 좋아졌다. 얼굴의 혈색이 좋아지고 길을 걸을 때도 다리에 힘이 들어갔으며 듣기론 집에 있는 아내와 첩실들도 퍽 만족한다고 했다. 더욱 기이한 것은 본디 하얗게 셌던 귀밑머리가 다시 검어졌다는 사실이었다. 죽었다 살아난 정도가 아니라 젊음을 되찾고 회춘까지 하다니!
주 노야는 껄껄 웃으며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집사가 초조해 죽겠다는 얼굴로 잡아끌며 재촉하지 않았다면 좀 더 자리를 지키며 그 열광적인 분위기를 즐겼을 터였다.
“대체 무슨 일인데?”
마차에 오른 주 노야가 심기 불편한 얼굴로 물었다. 집사는 무언가를 말하려다 말을 삼켰다.
“부인의 불안증이 도지셨습니다. 속히 가 보시지요.”
집사의 말은 모호했다.
“불안증이 도지면 뭐? 교교가 집에 있지 않은가.”
주 노야는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바로 그 교교 때문에 도지신 건데요……. 집사는 속으로 투덜거리면서도 고개를 숙인 채 잠자코 길을 재촉했다.
주 노야가 대청에 들어섰을 무렵, 의원은 이미 문진을 마치고 밖에서 약을 짓고 있었다. 빙 둘러앉은 집안 여인들은 불안한 표정이었다. 여인들의 시선은 수시로 주육낭을 향했다.
주육낭은 대청 입구에 꼿꼿하게 앉아 있으면서 굳은 얼굴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침상에 누운 주 부인은 눈물을 흘리고 곁에는 여종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부인, 우시면 안 돼요. 의원이 말했잖아요. 계속 조급해하시면…….”
“맞아요. 마음을 조급히 가지시면 안 돼요.”
주 노야가 안으로 들어왔다.
“대체 무슨 일이오?”
주 노야가 들어오는 모습을 본 주 부인은 눈물을 흘리며 가슴을 움켜쥐었다.
“노야, 난 이제 못 살아요.”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오?”
주 노야는 인상을 찌푸리며 자리에 앉았다.
“당신의 그 잘난 외조카한테 물어봐요!”
주 부인은 앙칼지게 소리치고는 손수건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흐느꼈다. 주 노야는 미간을 찌푸린 채 잠자코 있는데 밖에 있던 주육낭이 입을 열었다.
“그 애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소자 홀로 결정한 겁니다.”
주 부인은 기가 막혀 몸을 바깥으로 내밀었다.
“그 불여우한테 눈이 멀었구나. 어디서 그 애 편을 들어!”
매섭게 소리친 주 부인이 숨을 헐떡이자 여종들이 황급히 달래 주었다. 밖에 있는 자식들도 주육낭을 에워쌌다.
“오라버니, 말을 가려서 해요!”
“오라버니, 어머니 돌아가시는 꼴을 보려고 이래요?”
주 노야는 안팎에서 오가는 말에 더욱 어리둥절하여 탁자를 내리쳤다.
“다들 입 다물어라. 대체 무슨 일이야?”
“아버지, 여섯째 오라버니가 정교랑을 아내로 맞이하겠대요.”
어린 딸은 모친이 숨을 헐떡이자 못 참고 일어나 소리쳤다. 주 노야는 깜짝 놀랐다.
“뭐라고?”
주 노야는 잘못 들은 줄 알고 다시 물었다.
“아버지, 소자는 정교랑을 아내로 맞이하겠습니다.”
주육낭 본인이 입을 열었다. 주 노야는 멈칫하며 아들을 쳐다봤다. 순간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는 눈치였다.
“그 천것을 내쫓아요! 당장 내쫓아!”
주 부인은 얼굴을 가리고 통곡했다.
“그 계집한테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걸 진작 알았어요. 내 아들을 꾀다니!”
“그 애는 무관한 일입니다. 제 결정이라고요.”
주육낭이 다시 말했다.
“왜 그 애와 혼인하겠단 게냐?”
주 노야는 놀란 표정으로 아들을 주시했다. 아들도 여색에 홀릴 나이가 되었던가? 여색? 그 아이의 용모가 뛰어났었나?
주육낭은 굳은 얼굴로 무릎 위에 올려둔 손을 움켜쥐었다.
“매일 같이 들어오고 같이 나가더니, 오라버니를 유혹하는 건 줄 누가 알았겠어요.”
주씨 가문의 어린 낭자 하나가 앙칼지게 소리쳤다.
“입 다물어!”
주육낭이 고개를 돌리고 호통쳤다. 주 낭자는 겁먹기는커녕 더욱 눈을 치켜떴다.
“아직 뭘 어찌한 것도 아닌데 우린 말도 못 한단 거예요? 오라버니, 며칠 사이에 아주 정신이 홀렸나 봐요!”
안에서는 주 부인이 흐느껴 우는 소리가, 밖에서는 자식들이 다투는 소리가 주 노야의 귀에 웅웅거렸다.
“모두 입 다물어라.”
주 노야가 탁자를 내리치며 소리쳤다. 삽시간에 안팎이 조용해졌다. 다들 조용히 주 노야를 쳐다보며 결단을 기다렸다. 주 노야는 또다시 머리가 지끈거렸다.
“다들 물러가라. 가문의 명예가 걸린 일이다. 그 누구도 입을 함부로 놀리지 마라.”
주 노야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자식들은 밖에서 허리를 굽히며 네 하고 대답한 후 우르르 빠져나갔다. 주육낭이 머뭇거렸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시는 꼴을 봐야 속이 시원하겠느냐? 할 말이 있거든 다음에 해.”
형 하나가 나지막이 말했다. 주육낭은 숨을 크게 들이마신 후에야 형제들을 따라 밖으로 나갔다. 여종들도 따라 나간지라 안에는 주 노야 부부 두 사람만 남았다.
주 부인은 침상에 누운 채 손수건을 들고 흐느껴 울었다. 주 노야는 옷매무새를 정돈하고 자세를 고쳐 앉으며 부인을 쳐다봤다.
“부인, 사실…….”
주 노야가 주저하며 입을 열려는데 주 부인이 벌떡 일어나 앉았다.
“꿈도 꾸지 마요!”
주 부인은 빽 소리를 지르며 주 노야의 말을 끊고는 대성통곡을 시작했다.
“우리 육낭은 팔자도 참 박복하죠. 제 맏형처럼 음보로 순탄하게 벼슬길에 나가지 못하니 저 스스로 공을 세워야 하잖아요. 어릴 때부터 당신을 따라 고된 훈련을 받았고 앞으로도 외지의 군영을 떠돌아야 해요. 그런데 힘을 실어줄 장인을 찾아줄 생각은 못 할망정 그 바보랑 엮어 줄 생각을 해요? 아니, 당신, 차라리 우리 모자를 죽여요!”
“내가 먼저 마음을 먹은 것도 아니잖소.”
머쓱해진 주 노야가 중얼거렸다.
“아무튼 그 애는 이 집에 못 둬요.”
주 부인은 눈물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기껏 좋게 마음먹고 평생 데리고 살려 했더니, 돌아온 거라곤 그런 악랄한 마음뿐이네요. 감히 내 아들을 넘보다니. 당신이 말 안 하면 내가 못된 외숙모 노릇을 하는 수밖에요. 직접 가서 내쫓을게요.”
주 부인이 아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자 주 노야가 얼른 붙잡았다.
“아직 몸도 성치 않으면서 뭘 서두르시오. 뭐라 말해야 할지 생각을 좀 해 봅시다. 이렇게 경솔하게 굴다가 말이라도 새어 나가면 우리 육낭도 명성이 떨어지잖소.”
주 부인은 분통을 터뜨리며 자리에 앉았다. 생각할수록 화가 나 또다시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주씨 저택 전체에 기이한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시녀가 고개를 돌리자 여종 둘이 얼른 시선을 피하며 총총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시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시선을 거뒀다.
“뭐지? 하룻밤 사이에 다들 이상하네.”
시녀는 중얼거리며 문안으로 들어섰다. 벌써 회랑 아래로 나와 서 있는 정교랑의 모습이 보였다.
“아씨, 나가시려고요?”
정교랑이 고개를 끄덕였다.
밖으로 나가는 길에 시녀는 저도 모르게 다시 주변을 살폈다.
“아씨, 집안사람들이 좀 이상한 거 안 느껴지세요?”
시녀가 방금 지나간 두 몸종을 쳐다보며 물었다. 두 몸종은 가시에 찔리기라도 한 듯 황급히 시선을 거두고 바짝 붙어 뭐라 시시덕거리며 지나갔다.
“신경 쓸 필요 없어.”
정교랑이 말했다.
중문 앞으로 마차 두 대가 다가왔다. 막 마차에 오르려던 주 낭자는 정교랑과 시녀를 보고 표정이 굳어졌다.
“우리 마차는요? 이번 마부는 누구죠? 육공자께서 마부를 해 주시려나?”
시녀가 여종을 보고 웃으며 물었다.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저쪽에 있던 주 낭자가 성을 벌컥 냈다.
주육낭이 정교랑의 마부 노릇을 하는 건 집안에서 신기할 일도 아니었다. 바보가 도망치지 못하게 주육낭이 감시하는 것임을 모두가 알았다. 다른 사람은 못 막아도 주육낭은 막을 수 있으니까.
예전이었다면 주 낭자 역시 그런 말을 들어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겠지만, 하필 어제 주육낭이 그런 소동을 벌인지라 그 말에 울화가 치밀었다. 저 바보가 작정하고 오라버니를 유혹한 건가?
“퉤, 정말 뻔뻔하네!”
깜짝 놀랐던 시녀는 곧 눈을 치켜떴다.
“그래요. 남의 걸 빼앗는 건 참 뻔뻔한 짓이죠!”
시녀는 손을 허리에 대고 앞으로 나서며 소리쳤다.
“잘 욕하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