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308
교랑의경 308화
정 이부인의 손에 이끌려 온 정칠랑은 계속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바보를 보고 놀랄까 봐 겁이 나서였다. 그리고 이렇게라도 해야 그 바보 때문에 주위 사람들이 보내는 창피한 시선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주위의 소란은 곧 잠잠해졌고, 모두 숨을 참는 듯 고요해졌다.
무슨 일이지?
“무슨 일인데 그래? 무슨 일이야?”
고요함 속에서 사내의 외침이 구경꾼들 뒤쪽으로 전해져왔다. 한 손에 깃발을 쥔 그가 구경꾼들 사이를 아무렇게나 비집고 앞으로 나왔다. 앞쪽에 있던 사람은 하마터면 그에게 떠밀려 강가로 떨어질 뻔했다.
“뭐 하는 거요!”
젊은 사내가 사람들에게 뭇매를 맞고 난 뒤에야 강가도 다시 조용해졌다.
“다들 뭘 보는 거요?”
젊은 사내는 맞은 것은 전혀 개의치 않는 듯 물었다. 그는 강가의 건너편을 내다보더니 눈을 크게 뜨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
“우와! 엄청난 미인이잖아!”
정칠랑은 남몰래 얼굴을 가리고 있던 손 틈을 조금 벌려보았다.
정칠랑의 눈앞에 천천히 걸어오는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가 한 걸음을 걸을 때마다 짙은 치맛자락이 살랑거렸고, 그 아래로 하얀 버선과 나막신을 신은 발이 드러났다.
사람이 걷는 게 저렇게 예쁠 수가 있구나.
정칠랑이 저도 모르게 얼굴을 가리고 있던 손 틈을 더욱 크게 벌리자, 정육랑보다 키가 큰 여인이 보였다.
정육랑보다 머릿결이 까맣고, 정육랑보다 눈이 더 크고, 정육랑보다 피부가 더 흰. 정육랑보다 훨씬 예쁘고, 아니, 내가 아는 그 누구보다도 훨씬 예쁜.
저 미인은 누구지?
정칠랑이 앞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누구······.”
정 대부인이 자신의 앞에 걸음을 멈춘 여인을 보며 홀린 듯 물었다.
“정교랑이 백모님을 뵈옵니다.”
정교랑이 몸을 낮춰 예를 올렸다.
정교랑······.
정교랑!
정 대부인의 눈앞에 또 다른 여인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밤하늘 아래, 등불에 비친 한 여인이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너울을 들어 올린 채 지금과 똑같은 모습으로 예를 올렸었다.
“네가 정교랑이라고?”
왕 부인이 앞으로 한 걸음 다가서서 넋을 놓고 있는 정 대부인을 옆으로 살짝 밀쳤다. 그녀는 기쁜 얼굴로 서슴없이 정교랑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어쩐지, 어쩐지.
“그림보다 더 예쁘구나.”
왕 부인이 웃으면서 말했다.
역시 우리 아들의 안목은 남다르다니까. 저 눈빛을 봐, 저게 어딜 봐서 바보라는 거야! 역시 다 나은 거겠지? 조금이 아니라 아예 다 나은 것 같아!
“잘 돌아왔으니 됐다. 밖이 추우니 어서 들어가자꾸나.”
왕 부인이 길을 안내하며 정교랑을 반겼다. 정교랑은 다시 한번 예를 표하고는 걸음을 옮겼다.
손님과 손아랫사람이 나란히 자신을 제쳐두고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본 정 대부인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두 사람의 뒤를 따라갔다.
정칠랑은 모친이 잡아끌기도 전에 먼저 앞으로 뛰어가 왕 부인과 나란히 걷고 있는 여인을 쳐다보았다.
한편, 소식을 듣고 마당으로 달려 나오던 정씨 자매들이 걸음을 멈췄다.
“이리 와, 여기 와서 봐.”
정사랑이 말했다. 그녀는 이제 막 꽃봉오리가 피기 시작한 겨울 매화 사이 한쪽 귀퉁이에서 마당을 내다보았다.
왕 부인과 정 대부인이 여인의 좌우에서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여인의 짙은 남색 두봉이 바람에 따라 나풀거렸다.
정씨 자매들은 사람의 걸음걸이가 저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에 감탄했다. 여인의 얼굴을 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매들은 저 여인이 분명 미인일 거라 단정했다.
여인이 더 가까워지자, 자매들은 여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정말로 미인이네.
“저 사람은 누구야?”
정육랑이 매화 가지를 잡고 놀란 얼굴로 물었다.
“내 언니야.”
치맛자락을 든 채 쪼르르 달려오던 정칠랑이 우쭐한 목소리로 외쳤다.
언니?
정씨 가문 사람들이 모두 저택 안으로 들어가자, 문 앞에서 넋을 놓고 있던 사람들도 정신을 차렸다. 문 앞은 다시 사람들의 잡담 소리로 시끌벅적해졌다.
“저 미인 좀 봐.”
“누구래?”
“모르겠어.”
조 집사는 문 앞의 광경을 보면서 득의양양한 모습으로 웃음을 지었다.
“집사 어른, 어젯밤에 분명 도착할 수 있었을 텐데, 기어이 객잔에서 하룻밤을 묵고 가야 한다고 하신 이유가 이것이었군요. 깨끗하게 씻고 새 옷으로 갈아입으니 확실히 기분이 좋네요.”
두 시종이 웃으면서 조용히 말을 건넸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 우리 아씨께서 집으로 돌아오시는 건데, 위풍당당하게 돌아와야 하지 않겠나.”
여유롭게 마른기침까지 한 조 집사가 그들을 공손히 맞이하러 나온 정씨 가문의 문지기를 슥 쳐다보았다. 그는 뒤에 서 있던 시종들을 향해 안쪽으로 들어가자는 손짓을 하고는 먼저 걸음을 옮겼다.
정씨 저택의 대문 앞이 다시 조용해졌다. 양쪽 강가에 있던 구경꾼들은 아직 흩어지지 않고 웅성대며 서 있었다.
좀 전의 젊은 사내가 코끝을 문지르고는 시선을 거두었다. 그는 주위에 잔뜩 모여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더니, 눈빛을 반짝이면서 손에 쥐고 있던 깃발을 펼쳤다.
사내는 망설임 없이 큰 소리로 외쳤다.
“점괘 볼 사람 있어요? 일 전이면 됩니다. 공짜로 화를 면하세요.”
정 대부인이 있는 마당에는 여종과 몸종들이 가득 모여 있었고, 더 많은 여종과 몸종들이 이곳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멀리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아랫사람들도 다들 무슨 일이냐고 수군거렸다.
“뭔 일이래?”
“그 바보 아씨가 돌아왔다잖아, 우리도 구경하러 가자.”
“바보 아씨를 봐서 뭐에다 쓰게? 재수 없게.”
“바보가 아니라 미인이래!”
“아니, 도대체 바보 아씨가 온 거야, 미인이 온 거야?”
정씨 저택 안은 시끌벅적한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물론 정 대부인의 마당에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의 목소리는 점차 작아졌다.
정 대부인의 마당 안에 있는 여종과 몸종들은 숨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히 서 있었고, 대청 안에 자리한 사람들 또한 조용히 앉아 있었다. 모두의 이목은 정 대부인의 왼쪽 아래에 앉아 있는 한 여인에게 집중되었다.
여인은 한 손으로 소매를 잡고 한 손으로 찻잔을 들어 마시려 했다.
아, 차는 안 되는데.
몸종들이 차를 올리자, 여인의 뒤에 있던 시녀가 미소를 지으며 몸종들에게 일렀다.
“우리 아씨는 차를 안 마시니, 물로 바꿔 와.”
시녀는 여유롭게 미소를 지으며 무척이나 편안한 듯 행동했다. 낯선 곳에 온 듯한 어색함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아, 참. 저 시녀한테는 이곳이 낯설지 않겠군. 예전에도 여길 온 적 있으니까.
정 이부인의 옆에 서 있던 두 여종은 반근을 한참 쳐다보더니, 옛날에 뺨을 맞고 억울해하며 눈물을 보이던 몸종을 떠올렸다.
저 계집이 기어코 여길 또 왔네.
여인이 두봉을 풀었다. 그녀는 다른 무늬 없이 소매에 선을 두른, 두봉만큼이나 어두운색의 옷과 짙은 색상의 치마를 입고 있었다. 하나로 올려 묶은 머리카락에 꽂은 조그마한 은색 비녀 외에는 아무런 장식품도 지니고 있지 않았다.
물을 마시느라 높이 들린 소매가 여인의 얼굴 반쪽을 가렸다. 아래로 떨어지는 폭 넓은 소매도 그 여인의 행동처럼 자연스러워 보였다.
여인의 소매는 다시 무릎 위로 내려오고, 찻잔도 한쪽으로 치워졌다. 여인이 물을 마시는 것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숨죽여 지켜보던 대청 안의 사람들은 그제야 입을 열었다.
“정말 다 나은 거니?”
왕 부인이 가장 처음으로 한 질문이었다. 정교랑이 문턱을 넘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왕 부인은 한시도 놓치지 않고 정교랑을 주시했다.
“몸은 괜찮은 것 같아요.”
정교랑이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대답했다. 왕 부인이 잠시 머뭇거리더니 정교랑 앞에 손가락을 펼쳐 보았다.
“이게, 몇 개로 보여?”
왕 부인의 질문에 대청 안에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경악했다.
“다섯 개요.”
정교랑은 아무렇지 않은 듯 미소지으며 말했다.
숫자를 알아보네! 이만하면 됐다.
왕 부인이 기뻐하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몸을 일으켰다.
“정말 다행이로구나.”
왕 부인은 정 대부인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그럼 난 이만 가볼게요.”
대청 안의 다른 사람들이 아직 넋을 놓고 있던 사이, 정교랑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낮춰 예를 표하며 왕 부인을 배웅했다. 정교랑이 예를 표하는 것을 본 사람들은 서둘러 정신을 차리고 왕 부인을 배웅하려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괜찮아요. 일어날 필요 없어요.”
왕 부인이 웃으면서 말하고는 곧바로 밖을 향해 걸어 나갔다.
정 대부인은 왕 부인이 줄곧 마음속으로 왕십칠을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정교랑을 꼼꼼히 살펴야 하지 않았다면 왕 부인은 일찌감치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정 대부인은 왕 부인을 굳이 붙잡지 않고 대문 앞까지 직접 배웅했다.
“좋네요. 아주 좋아요. 형님도 참. 저리 참한 아가씨인데, 억울할 게 뭐 있어요.”
왕 부인이 웃으면서 걸음을 재촉했다. 정 대부인의 표정이 복잡미묘해졌다.
“예전에는 이 정도로 좋진 않았던 것 같은데.”
정 대부인이 잠시 말을 끊었다가 하던 말을 계속했다.
“지금도 썩 좋아진 것 같지는 않아. 사람이 나아졌는지 아닌지를 외모만 보고 판단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왕 부인이 고개를 돌려서 싱긋 웃었다.
“우리 십칠은 딱 외모만 보는 아이잖아요.”
왕 부인이 손가락 하나를 세우더니 너스레를 떨었다.
“저 정도 외모인데, 더 고를 게 있나요.”
대문 앞에 선 정 대부인은 왕 부인이 서둘러 마차에 올라타고 떠나가는 모습을 보며 잠시 멍하니 있었다.
정 대부인의 뒤로 발걸음 소리와 함께 조용히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빨리 미인 구경하러 가자.”
“정말 그때 그 바보 맞아?”
정 대부인이 몸을 돌리자 허드렛일을 하는 몸종 서넛이 무리 지어 뛰어가고 있었다. 정 대부인의 안색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그녀 옆에 있던 눈치 빠른 여종이 기침 소리를 냈다.
해맑게 떠들며 걸어가고 있던 몸종들은 기침 소리를 듣고 나서야 정 대부인을 발견했다. 재빨리 정 대부인의 앞으로 달려온 몸종들은 두려움에 벌벌 떨며 무릎을 꿇고 연신 절을 올리며 사죄했다.
지금 정 대부인에게는 아랫것들을 벌줄 정신이 없었다. 이 불편한 심정이 도대체 무엇 때문인지, 그녀는 말로 정확히 표현하기 힘들었다.
지난번에 저 아이가 돌아왔을 때는, 오밤중에 대문을 두드리는 통에 이노야 내외가 한바탕 싸웠었지. 동서지간에 틈이 생기기 시작했던 것도 그때부터였고.
이번에는 당당하게 대낮에 돌아와 이 집이 아주 동네 구경거리가 됐네. 이젠 또 무슨 골칫거리를 만들지 감도 안 잡혀.
정 대부인은 관자놀이를 지그시 누르면서 안쪽으로 걸음을 돌렸다.
그런데······.
정 대부인이 걸음을 멈췄다.
정말로 다 나은 건가? 이제 바보가 아니야? 날 때부터 앓던 병도 고쳐질 수 있나? 아니면 병주에서 천 리 길을 왔던 저번처럼, 다 저 아랫것이 계획한 건가?
맞아, 그 계집. 주씨 가문으로 갔던 애가 여긴 또 뭐하러 돌아왔대?
정 대부인은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머릿속은 혼란스럽기만 했다.
정 대부인은 자신의 마당 앞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온데간데없어지고, 당직을 서는 여종과 몸종만 그 자리에 남아 수군대는 것을 보았다.
“그 애는?”
정 대부인이 놀란 모습으로 물었다. 모여 있던 여종과 몸종들이 서둘러 제자리로 돌아갔다.
“부인, 이부인께서 데리고 가셨습니다.”
한 여종이 대답했다.
이부인이 데려갔다고?
정 대부인의 얼굴이 급격히 일그러졌다. 정 대부인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이거 봐, 이거 봐. 그 아이가 바보일 때는 이 집에 들어오자마자 나한테 떠넘기더니, 다 나은 것 같으니 바로 데려가는 꼴 좀 보라고.
그 아이를 챙겨 주는 척하기는! 또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 게 분명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