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728
교랑의경 728화
하지만 방백종은 욕실 안에 가만히 서 있었다.
정방은 스스로 치마저고리를 벗고, 치마를 풀고, 몸을 둘러싼 겹겹의 옷들을 하나하나 벗으며 새하얀 내의 한 장만 남겨두었다. 정방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하얀 내의를 어깨 아래로 내렸다.
내의를 내리자, 가슴을 겨우 가리는 붉은 배두렁이(肚兜: 고대 중국 여인들이 입는 등과 어깨가 완전히 노출되어 있고, 목에 끈을 묶어 가슴과 배만 가리는 붉은 천)와 새하얀 어깨, 그리고 정방의 가녀린 쇄골이 드러났다. 실내는 어둑했지만, 붉은빛의 배두렁이는 단연 돋보였다.
방백종의 얼굴이 순식간에 홍당무처럼 빨개졌다.
방백종이 정방의 몸을 처음 보는 것은 아니었다. 정방이 혼수상태에 빠진 뒤, 방백종은 손수 정방의 몸을 씻기면서 옷을 갈아입혔고, 정방의 몸에 자상이 생겼던 곳에 직접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아주었다. 어떻게 보면, 볼 꼴 못 볼 꼴을 모두 지켜본 셈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눈앞에 있는 여인의 몸은 자신이 돌봤던 그 몸이 아닌 듯했다.
정방의 몸은 마치 거대한 불덩이 같았다. 방백종은 갑자기 눈가가 뜨겁게 달아오르는 느낌에, 황급히 시선을 피하고 허둥대면서 정교랑의 어깨에 걸쳐져 있던 상의를 여며 주었다.
“추, 추워요. 장난치지 마요.”
방백종이 말했다.
“방백종, 잘 좀 봐요.”
정방이 옷을 여미는 방백종의 손 위로 자신의 손을 얹고, 상의를 더 아래로 끌어내려 아예 바닥으로 떨구었다. 그리고는 두 팔을 벌리고 방백종의 앞에서 한 바퀴 빙글 돌았다.
광채가 느껴질 정도로 매끈한 어깨와 새하얀 피부가 창문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노을빛에 빛나고, 붉은 천 아래로 솟은 봉긋한 가슴이 정방의 몸짓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렸다. 잘록한 허리와 일자로 쭉 펴진 쇄골을 보던 방백종은 갑자기 극심한 갈증을 느꼈다. 호흡이 가빠오던 방백종은 결국 침을 꿀꺽 삼켰다.
“이거 봐요. 상처가 다 나았어요.”
한 바퀴를 다 돈 정방이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아, 맞다. 상처!
방백종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가서 정방의 몸을 자세히 살폈다. 곳곳에 생겼던 자상이 이제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물어 있었다.
며칠 전에 약을 바꿀 때까지만 해도, 울퉁불퉁한 흉터가 남아있었는데.
하긴, 이렇게 아무는 게 오히려 정상이겠지. 주복을 봐. 그렇게 심했던 상처도 반나절 사이에 거의 아물었으니까. 아주 놀라 까무러칠 정도로 빠른 속도였어.
그를 치료할 수도 있었으니까, 정방은 당연히 자기 자신의 상처도 치료할 수 있겠지.
정방은 방백종의 표정을 빤히 바라보면서 그의 생각을 읽기라도 했는지,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아니에요. 당신이 나를 살린 거예요.”
흠칫 놀란 방백종이 정방을 바라보았다.
“내가 쓴 건, 무왕축(巫王祝)이라는 주술이에요. 난 왕이 아니라 왕축을 쓰면 안 됐는데, 다른 방도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무왕축을 썼어요. 결국 왕축의 저주에 갇혀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죠.”
방백종이 정방을 쳐다보았다. 죽어갔다는 말을 들은 방백종은 숨이 턱 막히는 듯했다.
정말로 죽을 수도 있었구나. 정말로 죽음의 문턱 앞까지 갔던 거였어.
“그런데 방백종, 당신이 나를 책봉했어요. 당신이 나를 황후로 책봉해 줘서, 내가 왕이 되었기 때문에 나는 깨어난 거예요.”
정방이 웃음기 서린 얼굴로 방백종을 바라보면서 손을 내밀었다.
“방백종.”
그렇게 된 거였구나. 그렇게 된 거였어.
그는 목구멍 깊은 곳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쏟아져 나오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정방이 내민 손을 아랑곳하지 않고, 갈라진 목소리로 탓하듯이 말했다.
“왜 그런 걸 미리 알려 주지 않았어요. 일찍이 말했으면 좋았잖아요.”
그깟 황후가 무슨 대수라고. 황후로 책봉하는 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이런 건 줄 알았으면, 이렇게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됐을 텐데.
당신을 이렇게 오래 기다리게 하지도 않았을 텐데!
“나도 무왕축을 쓰게 될 줄은 정말 몰랐어요.”
정방이 말하고는, 방백종을 쳐다보면서 다시 손을 내밀었다.
“방백종.”
방백종이 정방의 시선을 피하려 고개를 돌렸다.
“몰랐다고요? 당신이 몰랐던 게 있기는 해요? 거짓말쟁이. 듣기 좋은 말로 사람을 달랠 줄만 알지. 이제 난 절대 당신 안 믿어요.”
그가 미리 알고 있었더라면, 오래 기다리지 않았을 것이다. 절대로 오래 기다리지 않고,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사람을 모조리 쓸어 버렸으리라. 깨끗하게 쓸어 버리고, 그녀를 황후로 책봉했을 것이다. 그게 얼마나 어렵고, 얼마나 추악한 수단을 필요로 하는 일이든 무슨 상관이랴.
그래서였다. 그래서 그녀는 말해 주지 않은 것이다.
사람의 도리를 따르게 하기 위해서.
그가 그녀를 위해 사람의 도리를 내던지고 그 자리를 쟁취할까 봐, 그가 올바른 명분 없이 황위에 올라 세상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을까 봐, 그가 역사서에 추한 이름으로 기록될까 봐, 그녀는 말하지 않았다. 절대로 말해 줄 수 없었다. 그러느니 차라리 기다리는 편이 나았다.
그녀는 그를 믿고 있었다. 언제나 그를 믿었다.
“방백종.”
정방이 또 그의 이름을 불렀다. 방백종은 그제야 정방을 쳐다보면서 정방이 내민 손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또.”
정방이 초승달처럼 눈이 휘어지게 웃으며 방백종의 손등 위로 자신의 손을 얹은 뒤, 심장이 뛰는 가슴 위로 그의 손바닥을 가져다 댔다.
“여기도 만져 봐요.”
얇은 천 위로, 따뜻하고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졌다. 정방의 가슴께는 더 이상 딱딱하고 차갑지 않았다. 정방의 가슴에서는 쿵쾅대는 심장 박동과 따스한 사람의 온기가 느껴졌다.
온기!
방백종이 퍼뜩 고개를 들어 정방을 바라보았다. 그가 다시 고개를 숙여 걸리적거리는 붉은 천을 황급히 걷어내고는 아예 두 손으로 정방의 가슴을 매만졌다.
방백종은 한 손을 정방의 가슴에 올려둔 채, 다른 한 손으로 자신의 옷을 풀어헤치고 자신의 가슴팍에 손을 올렸다.
정말이야. 정말로 나와 똑같은 온기가 느껴져!
“이게 돌아왔어요.”
남에게 빼앗기고, 구속되고, 도려내진 심장이 다시 내게 돌아왔어요.
“방백종, 당신이 날 도와 찾아준 거예요.”
정방이 말했다.
방백종은 정방이 무슨 말을 하는지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금 이 순간이 마냥 기쁘기만 했다. 정방의 표정이, 지금 그녀가 얼마나 기쁜지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런데 방백종의 손이 워낙 크다 보니, 정방의 심장 위에 놓았던 손안에는 다른 것도 들어와 있었다. 그것은 정방이 숨을 쉴 때마다, 그의 손안에서 위아래로 부드럽게 움직였다.
방백종이 저도 모르게 손바닥을 천천히 움직였다. 눈처럼 하얀 피부는 두부처럼 매끄러웠다. 한 손으로는 다 잡히지 않는 정방의 풍만한 가슴을 만지던 방백종이 갑자기 다른 손으로 자신의 옷을 급하게 벗어 던졌다.
“정방.”
방백종이 목소리를 낮추고 정방을 불렀다. 그의 목소리는 몸속에서 용솟음치는 무언가를 막으려는 듯 떨렸고, 동시에 다급하기도 했다.
“당신도 봐요, 나를.”
정방이 잠깐 멈칫하더니,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정방이 그의 손을 몸에서 떼어내려고 그의 손 위로 자신의 손을 올렸다.
“내가 당신의 몸을 봐서 뭐해요. 당신 몸에 상처가 났던 것도 아닌데. 별로 걱정되지도 않아요.”
정방이 태연하게 말하던 그때, 방백종이 정방에게 바짝 다가갔다. 머리 위에서 뜨거운 숨이 느껴졌다. 방백종이 고개를 숙이고 정방의 귓가에 입술을 대고 속삭였다.
“그래도 한번 봐요. 나도 당신의 몸을 봤으니까, 당신도 내 몸을 보는 거죠. 그래야 공평하지 않겠어요?”
정방이 피식 웃고는 몸을 돌리고 자리를 떠나려 했다.
그 순간, 갑자기 정방의 몸이 허공에 붕 떠오르며 뒤에서 정방을 들어 올린 방백종의 품에 폭 안겼다. 무언가에 부딪히는 소리가 침전에 울려 퍼지고, 곧이어 방백종의 낮은 신음이 들려왔다.
“천천히 가요. 나 혼자서도 걸어갈 수 있어요.”
정방이 말했다. 방백종은 정방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무언가 웅얼거리듯 읊조렸다.
이리저리 부딪히면서 겨우 침상까지 간 두 남녀는 그 위로 쓰러지듯이 함께 엎어졌다. 방백종이 손을 뻗어 아무렇게나 휘장을 치고 창가를 통해 스며드는 노을을 가렸다.
거친 숨소리가 휘장 밖으로 새어 나왔다.
“밤에 해요.”
정방이 담담하게 말했다.
“밤에 할 건, 밤에 또 하는 거고.”
방백종이 평소와는 다른 거친 말투로 성급하게 대꾸했다.
이불이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두 사람의 거친 숨소리가 쉼 없이 들려왔다.
그런데 흔들리던 휘장이 갑자기 젖혀지더니, 방백종이 나체로 침상에서 내려와 민망한 표정으로 탁자를 향해 달려갔다.
그가 다급하게 서랍을 뒤적거렸다.
“어디 뒀지?”
그가 중얼거리면서 미간을 찌푸렸다. 방 안으로 새어 들어오는 노을빛이 그의 건장하고 탄탄한 몸을 훤하게 비췄다. 볼이 벌겋게 상기되고,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힌 그의 모습은 묘한 매력이 있었다.
“뭘 찾아요?”
정방이 휘장을 걷으며 옆으로 돌아눕고 방백종을 향해 물었다. 정방의 몸 위로 반쯤 덮여 있는 비단 이불이 팔로 머리를 받치고 있는 정방의 굴곡진 몸매를 드러냈다.
“그거······.”
방백종이 말을 하다 말고 아예 서랍을 통째로 뽑아 안에 들어 있던 것을 바닥으로 쏟아 버렸다.
그가 혼례를 치렀던 당시에는 몸 상태가 워낙 좋지 않았다 보니, 사람들은 그가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터라 따로 그에게 남녀 간의 일을 알려 주지 않았다.
나중에 몸이 나아진 방백종은 남몰래 은밀히 춘화 서적을 몇 권 구해 서랍 속에 숨겼다. 그러나 그 후로 춘화를 볼 상황이 오지 않았기도 했고, 혹여라도 남에게 들킬까 봐 걱정되었던 방백종은 그 춘화 서적들을 자기도 모르는 곳에 꼭꼭 숨겨 두었었다.
이를 어쩐다. 나는 아직, 할 줄 모르는데!
귓가를 간지럽히는 웃음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오자, 그는 더욱 긴장되어 온몸에서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내가 알아요.”
정방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그걸 어디에 뒀는지 알고 있다고요?”
방백종이 재빨리 고개를 돌리고 물었다.
침상 위에 옆으로 돌려 누운 정방이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를 향해 가까이 오라는 손짓을 했다.
“이리 와요.”
비단 이불을 덮고 있던 손을 올리자, 이불이 아래로 스르륵 떨어지면서 정방의 나체가 훤히 드러났다.
성큼성큼 다가온 방백종이 침을 꿀꺽 삼키고 물었다.
“어디 있어요?”
정방이 손을 뻗어 가까이 다가온 방백종의 허리를 껴안고 자기 쪽으로 힘을 주어 당겼다. 방백종이 구르듯이 침상 위로 엎어지자, 푸른 휘장이 내려지면서 위아래로 몸이 밀착된 두 사람의 모습을 가렸다.
정방이 나지막이 무슨 말을 하자, 방백종이 깜짝 놀라며 큰소리로 물었다.
“당신이 할 줄 안다고요? 당신이 왜 할 줄 알죠?”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방백종의 모습에 정방이 풉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이 세상에서 내가 할 줄 모르는 일은, 시를 쓰는 것밖에 없어요.”
하, 하지만, 이건, 이건······.
“누가 가르쳐 준 거예요? 아니, 이런 걸 누가 당신에게 가르쳐 주죠? 당, 당신, 읍······.”
중얼거리던 방백종의 입이 무언가에 막힌 듯, 말소리가 뚝 하고 끊겼다.
방 안에 울리는 숨소리는 점점 더 빠르고 거칠어졌다. 흔들리는 푸른 휘장이 창가로 스며드는 노을빛을 더욱 흐드러지게 만들었다.
어둠이 내린 후에도 천자의 침궁 안은 여전히 조용했다.
마당 밖에 서 있던 경 공공이 한숨을 쉬고 몸을 돌렸다. 그가 기대에 찬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반근과 소심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만 가서 쉬거라. 오늘 우리가 폐하와 마마를 보긴 글렀구나.”
경 공공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반근과 소심은 얼굴이 빨개진 채로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다.
경 공공이 고개를 돌리고 침전을 바라보았다.
“정말이지. 예전에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으시더니, 이제는 상황도 가리지 않으시네. 내일이 무슨 날인지 잊으신 건가. 길시를 놓치면 안 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