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 Loser RAW novel - Chapter 243
“됐다, 됐어!”
이 상황에서 가장 신이 난 건 말할 것도 없이 마구니 동맹 마라 파피야스의 분신들이었다. 특히 이 상황을 끌어낸 300번대 분신들이 주역이었다.
“이게 이렇게 대박을 치게 될 줄이야!”
최악의 상황까지 각오했던 마구니 동맹으로선 그야말로 판을 뒤엎는 역전이었다.
에르메스를 이용해 만신전에 건 최후의 모략이 맞아떨어지고, 그걸 기반으로 천계에 건 술수가 제대로 먹혔다.
“이걸 이진혁이 이길 수 있진 않겠지.”
“그래, 혼자 힘으로 어떻게 될 일이 아니니 말이야.”
“그랑 란츠는 이진혁을 제외하면 나약한 인류종뿐이야.”
“이겼다······. 이번에야말로 이겼다!”
서로가 마라 파피야스 본신임을 주장하면서 무게를 잡던 평소의 모습은 간 곳 없었다. 그저 기쁨에 겨워 날뛰는 마구니들만이 거기에 있을 뿐이었다.
“게다가 이 승리는 이거 하나로 끝나는 게 아니지.”
“지금 천계의 방어막이 숭숭 뚫렸으니······.”
“천계를 완전히 장악하는 건 일도 아니야.”
박수가 나왔다. 한 명의 박수로 끝나지 않았다. 환호성이 튀어나왔고 다 함께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이런 걸 두고 일석이조라 부르는 거지!!”
“하핫! 그저 이진혁을 치우려고 둔 수였는데, 이렇게 신의 한 수가 될 줄이야!”
“이 공은 결코 작지 않아. 빨리 상급 회의에 상신해야겠어.”
“이제 우리가 상급 회의가 될지도 몰라!”
소리를 지르는 자, 노래를 부르는 자, 춤을 추는 자까지 나왔다. 회의장은 문자 그대로 축제 분위기였다.
그만큼이나 마구니들은 자신들의 승리를 의심치 않았다.
***
잭 제이콥스에게서 연락이 왔다.
만신전의 총력전에 이어, 천계마저도 지금까지의 병력 이상의 대병력을 그랑 란츠에 투사하겠다는 소식이었다.
이 상황이 녹록하지 않음은 지금 와서 두 번 말할 것도 없다. 당장 직감이 내게 위험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대국적인 위기 상황인지라 직감이 멈추지 않고 반응해,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 개입하겠습니다.
잭 제이콥스는 단정적으로 말했다. 어지간하면 내가 경험치 다 먹겠다고 거절할 발언이나, 이런 상황에서까지 호기를 부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오히려 잭 제이콥스가 단호히 말해줘서 안도하는 나 자신까지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래, 염치없지만 부탁해야겠군.”
결국 나는 잭 제이콥스의 지원 약속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나마 교단의 지원을 받을 수 있어서, 그 지원 병력이 한쪽을 틀어막아 줘서 다행이다 싶다. 가능한 한 도움을 받고 싶지 않았지만, 그것도 목숨을 건지고서야 할 말이다. 나 혼자의 목숨만 달린 게 아니라 이 세계 모든 인류종들의 목숨이 걸린 문제니 말이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의회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출처를 통해 얻은 데이터를 통해 왜 군대를 전개해야 하는지 설명해야 하는데 이래서는 투입 타이밍이 늦는다. 그래서 총통 직할의 부대를 우선 투입하고 의회에는 사후 인준을 받는 식으로 우회가 가능하다고 한다.
물론 이는 편법이고 잭 제이콥스의 정치적 행보에 별로 좋은 영향을 끼치지는 못하리라. 총통 연임마저 불투명해질 수도 있다.
아무리 이런 긴급 상황을 위해 존재하는 총통 직할의 부대라지만, 어디까지나 외부인인 나와 변방 세계인 그랑 란츠를 지키기 위해 교단의 젊은이들을 희생시킨다는 프레임에 갇히면 빠져나오기 힘들 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그랑 란츠를 위해 희생해 주는 잭 제이콥스에겐 아무리 감사의 말을 해도 부족하다.
= 무슨 말씀을. 저와 제 부하들, 나아가 교단 전체를 구해주신 폐하의 은혜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고작 이것으로 폐하께 입은 은덕을 다 갚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말이라도 고맙군.”
= 진심입니다.
어라, 이상하다. 눈물이 나올 것 같네. 아무래도 내가 헛살지는 않은 것 같았다.
= 그럼 폐하, 직할대를 소집하고 출전을 준비해야 하니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그래. 부탁해. 고마워.”
나는 잭 제이콥스와의 통신을 끝내고 집무실의 푹신한 의자에 몸을 묻었다.
“어휴.”
상황이 자연스럽지 않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서로 별로 우호적이지도 않은 두 세력, 만신전과 천계가 무슨 갑자기 동맹이라도 맺은 것처럼 그랑 란츠에 협공을 걸어온다.
“뭐지, 이것들? 제국 시대의 영국, 프랑스도 아니고.”
아니, 영국과 프랑스도 이러지는 않았다. 그것들 둘도 인도차이나반도 점령하면서도 서로 완충지대 둔답시고 태국을 점령하지 않고 내버려 뒀었으니까. 그런데 만신전과 천계는 완벽하게 호흡을 맞추고 있었다.
누군가가 배후에서 두 세력의 사이를 조율하지 않는 한, 이런 상황은 나오기가 힘들다.
“······마구니 동맹.”
배후에서 상황을 조종하는 의문의 세력. 그 세력의 정체를 나도 그렇고 잭 제이콥스도 마구니 동맹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물증은 없다. 교단의 에이전트도 마구니 동맹의 흔적 비슷한 것을 찾아냈을 뿐, 확증을 거머쥔 건 아니다. 그러나 다른 용의자가 없는 이상, 그들을 의심하는 건 자연스러운 추론이었다.
“아니, 이런 생각이나 할 때가 아니지.”
확실하지도 않은 배후 세력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당면한 과제가 너무 버거워서 현실도피를 한 모양이다. 반성하자.
잭 제이콥스가 지원해 줄 수 있는 총통 직할부대는 당연히 교단이 투사할 수 있는 병력의 일부에 불과하다. 그들이 천계 병력을 소멸시켜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오히려 시간을 벌어다 주는 정도로 생각해야 한다. 이것만 해줘도 정말 큰 도움이 될 테지만 말이다.
그러니 최대한 빨리 만신전의 병력을 소멸시키고 천계 쪽으로도 대응할 수 있도록 전략을 짜야 했다. 뭐, 전략을 짠다고 해도 그냥 처음부터 최대한 화력을 집중시키고 다음으로 이동한다는 한 줄 정도가 고작이지만 말이다.
은, 엄폐물이나 지형 등의 변수가 많은 지상에서의 전투와 달리 시야가 확 트이고 숨을 곳도 없는 우주에선 기껏해야 화력전이냐 기동전이냐를 선택할 수 있을 따름이다.
적어도 나는 다른 교육을 받지 못했다. 우주전 교육을 해주는 기관이 있는지조차 의문이지만 말이다. 설령 그런 기관이 있다고 해도 지금 교육 같은 걸 받을 여유 따위가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그나마 다행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건 만신전의 병력이 예상보다 늦게 도착할 것 같다는 정보였다. 사실 그 이면의 의미를 생각하면 좋게만 받아들일 수는 없다. 양면 전쟁을 벌이기 위해 침략 타이밍을 조율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번 건 번 거다. 이 시간을 얼마나 유용하게 쓸 수 있는지에 따라 우리의 생존이 갈릴 것이다.
***
나는 후루호이에게 내 [푸른 유성]을 맡기고 개조를 부탁했다. 사실 도박적인 시도였는데, [푸른 유성]이 개조 중일 때 적 병력이 쳐들어오면 전함 없이 맞서 싸워야 할 상황에 처하게 될 위험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도박에서 이겼다.
아니, 벌써부터 승리를 입에 담을 시기가 아니지. 하지만 후루호이와 코볼트들, 드워프들, 그 외 협력자들은 적들이 쳐들어오기 전에 [푸른 유성]의 개조를 완료시켜 주었다.
여기에서 협력자들의 명단에 나도 이름을 올렸다. 어차피 [레벨 업 쿠폰]이 남으니, 몇 장 찢어서 새로운 직업의 레벨을 올렸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스킬 부여사라는 게 그 직업이었는데, 가진 스킬을 소모해서 해당 스킬의 효과를 아이템에 부여할 수 있는 직업이었다.
물론 제한이 붙어 있다. 어떤 스킬 효과는 특정 종류의 아이템에만 붙일 수 있고, 그나마도 전부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우리는 이것을 만들어냈다.
“이름하여 하이퍼 이진혁 로봇입니다!”
“아니거든?”
나는 의기양양하게 선언한 두프르프의 선언을 잘라냈다. 이 드워프는 로봇이라는 단어를 어디서 주워들은 거야? 아, 나구나. 범인은 나였다. 괜히 말했다.
어쨌든 이 새로이 건조된 전함의 정식 명칭은 다음과 같다.
[기적적으로 축복받은 신비한 진홍 혜성]여기서 [기적]과 [축복]과 [신비]는 옵션이니, 진짜 이름은 [진홍 혜성]인 셈이다.
전작인 [푸른 유성]에 비해 다섯 배 이상 거대하지만, 스킬 부여사의 스킬로 [가속] 스킬의 효과를 부여한 덕에 그 운용 속도는 세 배 이상 빠르다. 그야말로 유성보다 빠른 혜성의 이름을 붙일 만한 결과물이다.
푸른 전함을 개조했는데 겉면이 붉어진 이유는 드워프들이 새로이 합금해 낸 [이진혁금] 덕이다. 저것들은 왜 새로운 합금 이름에 내 이름을 붙이고 난리야? 파란색인 창천금을 주재료로 썼는데 왜 빨개지지? 이런 의문은 가질 필요가 없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뭔가 열심히 설명을 해줬지만 절반 이상 알아들을 수 없었으니까.
이제 와서 새로운 합금의 이름에 내 이름을 붙였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가지는 걸 포기했다. 물어봤자 쓸데없는 이야기나 할 게 빤했기에 나는 그냥 넘어갔다. 두프르프는 설명을 하고 싶어 하는 분위기였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그냥 넘어가야 했다.
가벼우면서 튼튼하고 내부의 에너지는 잘 전달하면서 외부의 에너지는 튕겨내는 속성을 지니는 이 [이진혁금]으로 인해 [푸른 유성]보다도 거대하면서도 빠르게 움직이는 [진홍 혜성]이 완성될 수 있었다.
“그치만 주여! 이 로봇에는 [푸른 유성]보다도 강력한 [하이퍼 이진혁 모드]가 탑재되어 있나이다! 그러니 하이퍼 이진혁 로봇이라 칭하는 것에 아무런 무리도 없나이다!”
두프르프가 억울한 듯 외쳤다. 그의 말대로였다. 이 [진홍 혜성]에는 [푸른 유성] 시절의 [슈퍼 이진혁 모드]를 개량하고 강화한 [하이퍼 이진혁 모드]가 탑재되어 있었다.
그렇다. [진홍 혜성]도 인간형으로 변형한다. 더 크고 강력한 로봇 형태로 말이다.
더불어 변형 도중에 무방비해졌던 [푸른 유성] 때와 달리 변형 시에 방어막을 전개하며 바깥에는 충격파를 터뜨린다. 추가적으로 변형 시간은 불과 1초 정도로 획기적으로 줄였다. [세계를 혁명하는 힘]까지 더하면 혁명력 1짜리 순간 변형이 가능해진 셈이다.
[이진혁금]의 특성에 더불어 스킬 부여의 효과가 더해진 덕이었다. 이게 아니었다면 변형을 시도하는 순간 모든 부품이 우그러져 자폭으로 이어졌으리라.“더군다나 저 로봇의 얼굴 조형은 주의 용안을 참조하였나이다!!”
성능이랑은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누가 저 로봇의 얼굴 부위에다가 내 얼굴을 갖다가 박아놓았다. 내 참, 누가 저기다 저런 걸 만들어놓은 거야?
물론 두프르프다.
만약 이 걸작을 창조하는 데 두프르프가 큰 일조를 하지 않았다면 나는 그에게 치도곤을 내렸을 것이다.
그리고 완성한 후에나 깨달은 거지만, 이 로봇은 거대한 신상의 역할도 겸하고 있었다. 로봇 형태로 돌아다니며 신도들에게 보여주기만 해도 그들의 신앙을 끌어 올리는 효과를 보인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이것도 두프르프 덕이긴 한 거였다.
실제로 왜 전함에다 인간 형태로 변형하는 기믹을 일일이 넣느냐고 후루호이에게 물어봤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멋있잖습니까?”
후루호이도 두프르프도 별생각 없이 넣은 게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