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Hero is an Academy Honors Student RAW novel - Chapter (615)
615.
“르왈린에서 이번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돕겠다는 서신을 보내왔습니다.”
보고를 들은 엑거슨의 눈이 꿈틀거렸다.
그의 얼굴이 불쾌감으로 물들었다.
“르왈린은 대체 제르딩거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모르겠군. 그렇지 않소? 가주?”
엑거슨의 물음에 제르딩거의 가주, 셀드의 서늘한 시선이 엑거슨에게 향했다.
순간 셀드와 눈이 마주친 엑거슨의 몸이 흠칫 떨렸다.
‘이놈이?’
엑거슨 제르딩거.
그의 검에 베인 자는 재만 남는다하여 재의 검이라는 이명을 손에 넣은 영웅.
그만한 위업을 이룬 엑거슨이지만 제르딩거의 가주인 셀드 제르딩거와 비교한다면 한 수 아래로 평가 받았다.
업화(業火) 셀드 제르딩거.
최고의 기사 명가인 제르딩거의 역대 가주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힘을 가진 것은 물론이고 검성이 숨을 거둔 이후 최강의 기사가 누구인가를 논할 때도 꼭 언급되는 것이 바로 셀드였다.
명실상부 제국 최강의 기사.
선대 가주조차도 뛰어넘은 압도적인 불꽃을 가진 남자였다.
“르왈린의 가주는 내 동생이 걱정 되어 도움을 주겠다는 서신을 보냈습니다.”
셀드의 고개가 삐뚜름해졌다.
“그것이 그리도 불쾌하십니까?”
고오오오오-
주변의 온도가 급격하게 높아졌다.
이곳에 있는 이들은 모두 제르딩거에서 검을 배운 자들.
모두가 불꽃 오러의 사용자들이다.
그런 그들조차도 순간 뜨겁다고 느낄 정도로 셀드가 내뿜는 기세는 엄청났다.
“형님.”
셀드의 옆에 앉아 있던 가주의 동생, 지스가 셀드를 불렀다.
그러자 열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회의실 내에 정적이 흘렀다.
그런 가운데 장로 한 사람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범인의 행적을 추적하는 건 마법사들이 훨씬 잘 할 것입니다. 그 부분에 관해 도움을 받는 것은 어떻습니까?”
지스의 말에 제르딩거의 요인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가운데 엑거슨은 자신을 압박한 셀드의 힘에 분노를 삼켰다.
‘이 오만방자한 놈이 감히! 아무리 가주라 하더라도 장로회의 실질적인 실권자인 나를 이따위로 취급해!’
가문의 요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창피를 당한 이 상황 때문에 엑거슨은 속에서 천불이 이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지금은 분노를 삭여야 할 때였다.
아무리 장로회의 권한이 강력하다고 해도 가주에 비할 바는 되지 못한다.
게다가 보안은 장로회가 담당하던 영역이었기에 자신의 실책이기도 했다.
정확하게는 일부러 허술하게 한 것이긴 했지만 분노한 가주가 이것을 문제 삼으면 장로회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는 안 되지.’
엑거슨은 자신이 제르딩거의 주인이 될 거라는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다.
자신의 아들, 리드도 불가능하다.
그러기에는 셀드 제르딩거는 너무 막강했다.
하지만…….
‘내 손자는 가주가 될 수 있다.’
현재 후계자인 리스에게 불의의 사고가 생겼을 때는 셀리아가 차기 가주의 자리에 앉는다.
그런 셀리아마저 문제가 생긴 다음에는 레오.
언뜻 보기에는 많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세 사람만 사라지면 가주의 자리에 앉을 자는 없다.’
가주의 동생인 지스 제르딩거에게는 딸이 하나 있다.
하지만 기사와는 거리가 먼 귀족가의 평범한 아가씨일 뿐.
‘지금은 대격변의 시대. 타르타로스가 준동하고 세계는 혼란에 빠져들고 있다.’
제르딩거는 영웅 명가다.
오랜 세월 제국의 위기.
나아가 세계의 위기에서 검을 들고 싸웠기에 지금의 명성을 손에 넣었다.
가주의 후계자들이라도 안전한 곳에 있는 건 용납할 수 없다.
‘강하다고는 해도 아직 완성되지 않은 애송이들. 불의의 사고는 얼마든지 당할 수 있지.’
그래서 최고의 사냥개를 푼 것이 아닌가?
‘아무리 가주라고 해도 이번 사건의 배후가 장로회라는 걸 알아내기란 불가능하다.’
가문의 기사단은 대부분이 셀드 제르딩거를 따른다.
하지만 제르딩거의 그림자는 대부분 장로회가 이끌고 있었다.
오랜 세월.
전장에서 나서는 기사들이 암약하는 그림자들의 뒤를 쫓기란 쉽지 않았다.
‘그놈을 알게 된 건 신이 나를 선택했다는 뜻이겠지.’
엑거스는 히어로 슬레이어를 떠올리며 속으로 웃었다.
어떻게 현세에 모습을 드러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오래전 영웅들을 학살했던 히어로 슬레이어는 말 그대로 이번 일에 특화된 사냥개라고 할 수 있었다.
회의가 끝난 후.
엘더의 회랑에 도착한 엑거슨은 곧 바로 자신의 집무실로 향했다.
그 뒤로 장로들이 따르고 있었다.
“가주가 배후를 알아내지는 못하겠지요?”
한 장로가 불안한 얼굴로 물었다.
그에 다른 장로가 피식 웃었다.
“제르딩거의 그림자는 장로회의 밑에 있습니다. 아무리 셀드라고 해도 그림자를 휘하에 두지 않는 이상 우리가 배후라는 건 알아내지 못할 겁니다.”
그 말에 다른 장로가 말했다.
“르왈린의 그림자를 끌어들이면요?”
엑거슨이 피식- 웃었다.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짙은 법. 제르딩거의 그림자를 잡아먹을 수 있는 세력은 대륙 서부에는 없지.”
르왈린의 그림자들이 뒤를 파헤친다고 해도 결국에는 제르딩거의 영역에서는 한계가 있다.
엘더의 회랑의 문을 열며 엑거슨이 말했다.
“그 누구도 비밀에 도달 할 수 없소. 그 누구도.”
끼익-!
엘더의 회랑의 문이 열린 순간.
엑거슨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고 말았다.
엑거슨 뿐만이 아니었다.
엘더의 회랑의 내부를 본 모든 이들은 경악하고 말았다.
곳곳에 제르딩거의 그림자들이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엘더의 회랑 자체를 뒤진 듯.
무수히 많은 자료들이 바닥에 흩날려 있었다.
“이, 이게 무슨!”
장로들이 경악성을 내지를 때였다.
얼굴을 굳힌 엑거슨은 성큼성큼, 한쪽에서 숨이 붙어 있는 그림자에게 다가가 그의 멱살을 쥐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누가 이런 것이냐!”
그 말에 그림자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그들이…… 그들이 왔습니다. 쿨럭!”
“그들이라니!”
피를 토하는 그림자를 다그치자 제르딩거의 그림자는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그림자…… 군주가…… 세계의 어둠을 지배하는 자가…… 왔습니다…….”
엑거슨의 눈이 부릅떠졌다.
그림자 군주.
그들의 존재에 대해서는 엑거슨도 들은 바가 있었다.
그림자의 제국.
샨 제국을 필두로 각 종족의 어둠을 지배하는 존재들.
“그들이 왜 제르딩거를 노리는 것이냐! 대체 왜!”
“우리가 노리는 건 제르딩거가 아니야.”
그때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스릉-
그 말에 장로들이 일제히 검을 뽑았다.
그들 모두 영웅이거나 영웅에 준하는 자들.
그들이 내뿜는 살기는 노출 되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베고도 남았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여인은 그 살기에도 눈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수인?”
엑거슨이 인상을 찡그렸다.
남부 그림자 군주, 키린은 나른한 어조로 말했다.
“우리가 노린 건 히어로 슬레이어와 내통한 세계의 배반자.”
키린이 눈을 게슴츠레 떴다.
“제르딩거의 장로회야.”
그 말에 엑거슨이 코웃음을 쳤다.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는군.”
“어머나? 억지가 아닌걸요?”
키린의 옆에서 후드를 뒤집어 쓴 아냐스가 걸어 나왔다.
양손을 모은 그녀의 손 위에는 수정구가 있었다.
그걸 본 엑거슨의 얼굴이 일순간 굳었다.
하지만 이내 평온을 되찾았다.
저 수정구는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수정구였다.
“이 은밀의 수정. 오래전, 엘프 영웅 만물의 연금술사의 마력만으로만 만들 수 있었던 아티펙트죠.”
“그게 어쨌다는 거지?”
엑거슨의 말에 아냐스가 빙긋 웃었다.
“만물의 연금술사가 만들었던 대부분의 아티펙트는 만물의 연금술사의 마력이 있기에 구현 가능했던 물건들이랍니다. 그리고 그의 사후 마력이 다한 아티팩트는 잡동사니로 변했죠.”
아냐스는 손 위의 수정구를 이리저리 굴려보았다.
“만물의 연금술사는 히어로 슬레이어에게 마력을 강탈당해 살해되었답니다. 그리고 만물의 연금술사의 마력을 영웅의 세계의 공략 보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 공식적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이 아티팩트를 만들기 위해서는 만물의 연금술사 본인의 마력이 필요하죠.”
“…….”
“이 수정구. 아무리 봐도 최근에 만들어진 물건이에요.”
아냐스가 수정구를 톡톡 건드렸다.
마법이 발동되며 수정구 표면에 선명한 핏자국이 생겨났다.
수정구를 발동하기 위한 재료는 등록된 사용자의 피였다.
“저는 피의 마법이 주특기랍니다. 이렇게 핏자국을 재생할 수 있죠.”
“그게 어쨌다는 거냐?”
아냐스가 빙긋 웃었다.
“모든 마법 아티팩트에는 마력의 잔향이 남습니다. 그리고 마법 통신구는 목소리의 형태로 남죠.”
엑거슨의 얼굴이 굳었다.
“아무리 위대한 마법사가 만든 복잡한 마법 아티팩트라도 후대에는 결국 아티팩트의 작동 원리가 해석 됩니다. 만드는 건 불가능해도 구조를 알고 있는 만큼 여러 가지를 할 수 있게 되죠. 그러면 이런 것도 가능해진답니다.”
“리스 제르딩거는 어찌 되었소?”
“아직 살아 있지.”
“분명 기회를 만들어 주면 리스를 없애주겠다 하지 않았소?”
수정구에서 정체불명의 목소리와 엑거슨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걸 보고 엑거슨이 소리치려는 순간 아냐스가 말했다.
“조작했다고는 하지 마세요. 뛰어난 마법사라면 누구나 간단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니까요. 의심되면 르왈린에 감정을 맡겨도 되고 마탑에 감정을 맡겨도 된답니다?”
그 말에 엑거슨의 얼굴이 구겨졌다.
그런 엑거슨을 보며 아냐스가 쿡쿡 비웃음을 날렸다.
“체크메이트네요. 세계를 배반한 것치고는 꽤 허술하게 일을 하셨네요?”
허술하지 않았다.
그저 상상도 할 수 없는 재앙이 일어난 것뿐이었다.
제르딩거의 그림자가 아무리 깊고 어둡다고 해도.
세계의 그림자만큼 깊고 어두울 수는 없다.
그리고 세계의 세력이 여러 형태로 분열되어 있듯.
그림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세계의 어둠 전체가 단 한 사람만을 따른다는 것을.
그리고 그 어둠을 지배하는 자가 자신들이 목숨을 노린 자라는 것을.
반나절도 되지 않아 턱 끝까지 치고 올라올 것이라는 건.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엑거슨이 입을 열었다.
“제르딩거는 결코 약하지 않다. 여기서 너희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면 그만이다.”
“남부 군주님. 우리를 모두 죽인다는데요?”
“어차피 비천한 그림자 따위. 제르딩거의 검을 버틸 수 있을 리 만무하지.”
엑거슨의 몸에서 불꽃의 오러가 뿜어져 나왔다.
그 모습을 보며 키린이 시큰둥하게 말했다.
“당장에 그 혓바닥을 잘라 헛소리를 못 하게 해주고 싶지만. 애석하게도 그분께서 직접 너희를 처단한다고 하셨다.”
“그분?”
엑거슨이 얼굴을 찡그리는 순간.
번쩍- 콰가가가가가가가강! 화르르륵-!
엘더의 회랑 입구에 불꽃이 치솟았다.
그걸 본 엑거슨의 얼굴이 굳었다.
“제르딩거의 불꽃?”
***
화르르르륵-!
불바다가 된 엘더의 회랑 입구.
그곳으로 레오가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터벅- 터벅-
주변에 레오를 가로막았던 기사들이 신음성을 흘리고 있었다.
“증거를 생각보다 빨리 찾았군.”
“설마하니 그림자 군주들이 자신들의 뒤를 캘거리고는 상상을 못 했을 테니까요.”
알그렌이 덤덤하게 말할 때였다.
“이게 무슨 짓거리냐! 레오 플로브!”
“리드 제르딩거.”
장로회의 실권자, 엑거슨의 아들을 본 레오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우리 어머니 어디 있는 줄 알아?”
“뭐라?”
“히어로 슬레이어에게 납치 당했다고 들었는데.”
그 말에 리드의 안색이 굳었다.
‘이놈이 어떻게 거기까지 알아 낸 거지?’
“너희 장로회와 관련 있다고 알아냈거든.”
“이놈이! 어디서 생떼를 부리는……!”
콰앙-!
화르르륵-!
리드는 눈을 부릅 뜨고 가까스로 막은 레오의 검을 바라보았다.
“너희 때문에 옛날 성격 나오기 직전이거든.”
‘이 어린놈이 어떻게 이런 살기를…….’
“선택지를 주지. 말하고 곱게 죽을래? 아니면 고통스럽게 죽을래?”
고오오오-!
“오만한 놈이! 어린 나이에 영웅의 자리에 올랐다고 눈에 보이는 게 없나 보구나! 영웅이라도 다 같은 영웅인…….”
콱-!
철퍽-
“이상하게 너희 같은 놈들은 곱게 죽는 선택은 하지 않더라고.”
“끄아아아아악!”
리드가 자신의 오른팔을 붙잡고 비명을 질렀다.
검을 들어 올리며 레오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다음은 어딜 잘라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