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160
* * *
기간토마키아가 끝난 이후.
사실상 종전(終戰)이나 다름없는 상황에, 거인과 인간은 한 가지를 약속했다.
“한 달의 반은 인간이, 그리고 남은 반은 거인이.”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말 것. 약속하지.”
거인들의 왕, 기간테스.
올림포스의 왕, 제우스.
두 사람의 약속에 38층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기간토마키아.
탑의 역사에 남을 거대한 전쟁이 끝나고 천 년.
지금 이곳에, 아직 홀로 전쟁을 끝내지 못한 사람이 남아 있었다.
* * *
구구구구-.
땅이 흔들리고, 쩍쩍 갈라진다.
헤라클레스의 집이 있는 오두막의 주위로, 용암 같은 열기가 펄펄 끓어올랐다.
세상이 개벽을 시작했다.
“벌써 시간이 된 건가.”
덤덤히 그 현상을 지켜보던 헤라클레스는 유원을 휙 돌아보았다.
“돌아가지 않은 걸 후회할 거다. 여긴 네가 아는 다른 층과는 많이 다를 테니까.”
38층의 세계는 한 달의 절반을 인간이, 다른 절반을 거인이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것은 이 세계를 살아가는 존재들 간의 약속.
그리고 이 숲은 거인들에게 있어, 인간들의 ‘도시’나 다름없는 밀집 지역이었다.
유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라.”
펄펄 끓어오르며, 검붉게 변하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후회할 일 없을 거니까.”
겉으로만 요란할 뿐, 지금 이 현상은 어디까지나 세계의 주인이 바뀌는 일상적인 풍경에 지나지 않는다.
‘기간토마키아에 비하면, 뭐…….’
첫 번째 기간토마키아에 비해 몇 배나 거대한 전쟁.
당시 막 하이랭커가 되었던 유원은, 그 전쟁에서 참여한 적이 있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현상은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물론, 그 사실을 모르는 헤라클레스의 눈에 유원은 죽을 걸 모르고서 달려드는 불나방에 지나지 않았지만.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저벅-.
헤라클레스는 갈라진 땅을 향해 다가갔다.
개벽은 시작됐고, 이제 거의 마무리되고 있었다.
땅속에서 끓어오르는 용암.
유원은 그 열기를 느끼며 헤라클레스의 뒤를 따라붙었다.
‘이 열기와 마나…….’
뒤집어진 땅속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은 평범한 마나와는 달랐다.
친숙한 느낌이었다.
마나와 마기가 뒤섞인, 혼란스러운 기운.
이런 종류의 힘을 지닌 종족은 이 탑에 하나뿐이었다.
‘악마족 거인들의 구역인가.’
콱-.
아니나 다를까.
갈라진 땅을 짚고, 절벽 아래에서 손 하나가 올라왔다.
[16일이 시작됩니다.] [‘거인과 인간의 약속’이 이행됩니다.] [세계의 주인이 뒤바뀝니다.] [해당 구역 내에서 지정되지 않은 종족의 패널티가 강해집니다.] [세계의 주인은 ‘거인족’입니다.]아니.
하나가 아니었다.
콱, 콱, 콱-.
쿠웅-.
하나둘씩 올라오기 시작한 비대한 몸집의 거인들.
하나같이 새카만 피부에 살점이 떨어진 채, 피 대신 용암이 몸에 들끓는 족속들이었다.
덩치는 모두 제각각이었다.
부아르, 뉘아르 남매처럼 비교적 작은 녀석도 있었고 작은 산처럼 거대한 녀석도 있었다.
‘여기가 아니었군.’
인간들 가운데에서도 여러 파벌이 나뉘는 것처럼 거인들 가운데에서도 변질된 자들이 존재하기 마련이었다.
악마와 손을 잡고, 그들의 피를 수혈 받아 악마가 된 거인의 후손.
이곳은 거인의 땅임과 동시에 악마들의 땅이기도 했다.
“거기 꼼짝 말고 있어라.”
스윽-.
헤라클레스가 한쪽에 세워 둔, 벌목한 나무들을 번쩍 주워 들었다.
그는 그것을 마치 작은 나무 몽둥이라도 휘두르듯 가볍에 한 손으로 움직였다.
“……휘말리기 싫으면 말이지.”
부우웅-.
느릿하게 휘둘러진 나무.
쩌엉-!
그것이 허공에 떠 있는 무언가를 때렸다.
그 순간.
쩍, 쩌저저-.
투화아악-!
대기가 유리처럼 갈라지며 나무에서 뿜어진 충격이 거인들의 몸을 풍선처럼 터뜨렸다.
우우우웅-.
한 번의 휘두름에 하늘이 흔들린다. 구름이 터지며 산산이 부서지고, 시야에 보이는 세상의 풍경이 달라졌다.
그렇게 평범한 나무 하나를 들고, 사자의 가죽을 머리 위에 뒤집어쓴 헤라클레스가 싸울 준비를 마쳤다.
거인 학살자의 시작이었다.
* * *
퍼억-!
콰드드드, 펑-!
나무에 얻어맞은 거인의 머리가 터져 나갔다.
수십, 수백에 달하는 거인들 속을 휘저으며 헤라클레스는 나무와 주먹을 번갈아 휘둘렀다.
쾅-!
쩌저저저저, 투확-!
주먹으로 허공을 후려치자, 몇 마리에 달하는 거인들이 날아갔다.
특별한 스킬이나 대단히 많은 마력을 사용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있는 그대로, 육체의 힘을 뿜어 낸 것에 지나지 않았다.
‘섬뜩하군.’
사자의 가죽에 가려져 눈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유원은 헤라클레스가 싸우는 모습에서 지금껏 느껴 보지 못한 광기를 느꼈다.
겉으로 보기에는 똑같이 싸우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똑같은 행동이라 해도 시작부터가 달랐다.
“무기와 주먹을 휘두를 땐 반드시 분명한 목적이 있어야 한다.”
적어도 지금 눈앞에 있는 헤라클레스는 유원이 알던 그와는 달랐다.
“목적 없는 싸움은 살인에 불과하니까.”
‘목적이라…….’
힘을 휘두르는 데 있어, 지금의 헤라클레스는 목적이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있긴 있을지도 모른다.
‘상대를 죽이는 것 자체가 목적인 걸지도.’
살인, 그 자체가 목적인 싸움.
그런 걸 스사노오도 아닌 헤라클레스가 하고 있다니, 보면서도 믿기 어려웠다.
콰직-!
마지막 남아 있던 거인의 머리통이 으깨졌다.
분명 죽은 걸 알고 있을 텐데도 헤라클레스는 무기를 휘두르는 걸 멈추지 않았다.
쾅, 쾅, 쾅, 쾅, 쾅-!
다져지는 거인의 몸뚱이.
작은 산처럼 거대한 몸이건만 그것이 반죽처럼 다져지는 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분이 풀리지 않는 것인지 헤라클레스는 몸이 뜨겁게 달아오른 채 무기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파지직, 파직-.
그 사이 헤라클레스의 몸에 상당한 양의 패널티가 흘렀다.
저 정도면 어지간한 랭커들도 소멸할 정도의 패널티였다. 그 말은 즉, 상대 거인들 중에 아직 랭커가 되지 못한 거인들도 다수 섞여 있었다는 뜻이었다.
더군다나 지금부터 보름 동안은 거인족이 아닌 헤라클레스에게 더 큰 패널티가 주어질 터.
‘몸 튼튼한 건 알아줘야겠군.’
강한 힘을 뿜어내기 위해서는 그만큼 단단한 몸이 필요한 법.
헤라클레스는, 지금 패널티 따위는 모두 무시한 채 무작정 무기를 휘두르고 있었다.
“후우-.”
헤라클레스는 참고 있던 숨을 길게 뱉었다.
지치거나 숨이 차서가 아니었다.
지나치게 고조된 감정 탓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불과 몇 분 만에 주위에 나타난 거인들을 모두 정리한 헤라클레스가 유원을 돌아보았다.
“이 주위는 이제 안전할 거다.”
새빨갛게 충혈된 눈동자.
“살고 싶으면 안전한 곳으로 가든, 아니면 꼼짝 말고 집 안에 붙어 있든 해라.”
저벅-.
그렇게 한 번 유원에게 충고를 남긴 헤라클레스는 곧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아마, 또 다른 거인족을 죽이기 위해서일 터.
‘정신이 나갔군.’
마음 같아서는 저렇게 된 헤라클레스를 막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자신에겐 그럴만한 능력이 없었다. 헤라클레스를 막기 위해서는 제천대성의 본체라도 직접 와야 할 것이다.
‘기간토마키아 이후, 계속 이렇게 살았던 건가.’
거인 학살자.
그 칭호는 단지 기간토마키아에서만 만들어진 게 아니었다.
기간토마키아가 끝나고, 올림포스와 거인족의 휴전 이후.
헤라클레스는 줄곧 이곳에서 거인족과의 전쟁을 이어 가고 있었다.
두 번째 기간토마키아가 끝날 때까지, 계속.
저벅-.
유원은 멀어져 가는 헤라클레스의 뒤를 따라갔다.
올림포스 부수기는 둘째 일이었다.
유원은 더 이상 헤라클레스가 망가지는 걸 두고 볼 수 없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용암이 흐르는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
* * *
화르륵-.
펑-!
지하에 흐르는 용암은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더운 걸 넘어,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타 버릴 것만 같은 열기가 지하에서 솟아올랐다.
파지, 지지지-.
헤라클레스는 그 지하를 걸어 움직였다.
그리고 그 뒤로.
“계속 따라올 거냐?”
유원이 따라붙었다.
“그래.”
“왜지?”
“어차피 갈 데도 없다. 그리고 그쪽 옆에 제일 안전할 것 같고.”
딱 달라붙어 있는 게 안전할 거라는 말.
그 말에는 헤라클레스 역시 공감했다.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다른 때와 상황이 다르지 않을 때였다.
“……넌 내가 어딜 가고 있는지 알고나 있는 거냐?”
“목적지는 몰라도, 뭘 하러 가는지는 알지.”
“안다고?”
“거인 학살자가 여기 있는 이유가 달리 뭐가 있겠어? 거인 잡으러 가는 거겠지.”
“잘 아는군.”
고개를 끄덕인 헤라클레스는 위협하듯 말했다.
“난 기간테스를 잡으러 간다.”
기간테스.
그것은 올림포스의 삼신과 마찬가지로 거인족들을 대표하는 세 명의 거인들을 칭하는 말이었다.
그는 단순히 거인들을 향해 분풀이를 하는 게 아니라, 가장 높은 곳을 보고 있었다.
“그래도 따라올 거냐?”
헤라클레스는 기간테스를 언급함으로써 말하고 있었다.
자신이 가고 있는 곳은 위험한 곳이라고.
기간테스와의 싸움이 시작되면 널 지켜 줄 수 없다고. 그러니 이쯤에서 떨어지는 게 안전할 거라고.
“그 녀석이라면 내가 어디 있는지 안다.”
“고집 한 번 대단…… 뭐?”
헤라클레스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것도 잠시, 그는 유원을 향해 성큼 걸어오더니 손을 뻗었다.
콱-.
어깨를 붙잡은 손에서 강한 악력이 느껴졌다.
조금만 더 힘을 주면 그대로 어깨가 뽑혀져 나갈 것만 같았다.
“정말이냐?”
“그래.”
“대체 어떻게?”
세 명의 기간테스는 기간토마키아 이후 잠적한 상태였다. 헤라클레스는 오랫동안 그들을 찾아 탑 곳곳을 뒤졌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있었다.
알게 된 거라고는 그들이 38층에 있다는 것뿐.
그런데 그것을 유원이 알고 있다는 것이다.
“안내해 줄까?”
유원은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헤라클레스를 보다, 자신의 어깨를 붙잡고 있는 그의 팔을 건드렸다.
“그 전에 이 손부터 좀 놓고. 부러지겠다.”
“아…… 미, 미안하다.”
“알고 싶으면 따라와라. 다행히 그리 멀지는 않으니까.”
확신에 찬 듯한 유원의 모습에 헤라클레스는 잠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만약 유원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래서 정말 기간테스를 마주치게 된다면…….
그때는 정말 함께 있는 일행의 안전을 책임질 수 없을지도 모른다.
짧지 않은 고민 후.
“길을 안다고 했지?”
헤라클레스는 유원을 향해 손을 뻗었다.
부웅-.
유원은 자신의 몸이 중력을 이기고 위로 떠오르는 걸 느꼈다.
서둘러 유원을 어깨에 둘러업은 헤라클레스가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방향은? 어느 쪽이지?”
“아래.”
유원의 대답에 헤라클레스는 시선을 따라 움직였다.
보글-.
펄펄 끓고 있는 새빨간 액체.
“용암 속? 저 속이면 나도 이미 들어가 봤다.”
새삼 정말 미치긴 했구나 싶었다.
제아무리 탑 구석구석을 뒤져 봤다지만 용암 속까지 이미 다 뒤져 봤다니.
“아니.”
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했다.
그들이 있는 곳은 보다 더 깊은 속이었으니까.
“그보다 더 아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