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32
* * *
유원은 몇 개의 이리 무리로부터 더 습격을 받았다.
결과는 처음과 다르지 않았다.
적게는 열 명, 많게는 서른 명 정도로 이루어진 이리 무리들은 유원의 은신을 찾아내지 못했다.
가장 실력이 뛰어났던 건 역시 처음에 만난 팟타요였다. 녀석은 아주 흐릿하게나마 유원의 은신을 쳐다라도 보았던 것이다.
하긴.
애초에 이리 무리들 중에 실력이 뛰어난 플레이어가 있다는 것부터가 이상한 일이었다.
이리라는 맹수의 이름을 칭하고 있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탑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신규 플레이어들에게나 그렇게 보일 뿐.
이리 무리는 결국 탑을 오를 자신이 없는 낙오된 자들의 집단일 뿐이었다.
몇 개의 이리 무리를 거쳐, 유원은 도시에 도착했다.
1층의 중간 지역.
그곳에는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모여 살고 있었다.
포인트를 화폐로 삼아, 플레이어들은 사회를 이루었다.
그리고 이곳.
“무림계 고기볶음이랑 화주 하나. 여기 5포인트.”
유원은 식당, 타라(Tara)에 들어왔다.
무림계의 음식들은 유원의 입맛에 맞았다. 가장 원래 세계와 닮은 음식이기도 했고, 유원은 원래부터 중식을 좋아하기도 했었다.
멸망이 다가올 무렵부터, 수십 년 동안 먹지 못했는데, 이곳에서는 이제 몇 포인트만 지불하면 흔하게 먹을 수 있었다.
“고기볶음과 화주(火酒) 한 잔 나왔습니다.”
카페의 주인이 음식과 술을 내왔다.
어린아이 손바닥만 한 크기의 작은 술병과 음식.
유원은 음식을 먹으며 식당 밖을 내다보았다.
‘맛있네.’
음식은 역시 맛있었다.
이곳 1층의 식당 타라는 유원이 오래전부터 즐겨 찾던 장소였다.
‘한 이십 년쯤 전인가에 망했었는데…….’
쪼르르르-.
화주를 따라 한 잔 마시자, 뜨거운 술기운이 몸에 퍼졌다.
술도 역시 오랜만이었다.
취한 기분은 별로 즐기지는 않지만, 식사와 함께하는 주향은 언제나 좋았다.
“잘 먹고 갑니다.”
기분이 좋아진 유원은 팁으로 식당 주인에게 5포인트를 더 지불했다.
오랜만에 받는 큼지막한 팁에 식당 주인은 함박미소를 지었다. 다음으로 유원은 카페를 찾았다.
“차 종류 아무거나랑 과일 하나.”
다음으로 들른 곳은 전망이 좋은 카페였다.
술기운은 금방 가셨다. 유원은 마나를 이용해 몸에 쌓인 취기를 흩어 버렸다.
건물의 옥상에 위치한 테라스.
나온 차는 용정차(龍井茶)였다.
그리 비싼 차는 아니었다. 이곳 탑의 카페 어디에서나 마실 수 있는 흔한 차였다.
잠시 향을 음미한 유원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정말 오랜만이었다.
이렇게 한가로운 시간과 경치는.
‘돌아오니 이런 건 좋네.’
계속된 강행군에 알게 모르게 피로가 쌓이던 차였다.
유원은 5층에 위치한 카페의 전망을 내려다보았다.
이곳 1층의 중간 지역 도시는 유원이 알고 있는 서울보다도 거대했다.
높게 솟아 있는 여러 건물들과 여러 세계의 음식들을 파는 식당, 카페, 주점과 놀이시설들.
포인트를 화폐로서 살아가는 이 세계는 참 평화롭고, 아름다워 보였다.
‘너희는 이런 거 못 보겠구나.’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돌아오길 잘했구나.
유원은 아무 생각 없이 차 한 잔을 비웠다. 그리고 차가 바닥을 드러낼 즈음, 주머니에서 퀘네에의 조각을 꺼냈다.
‘진짜 퀘네에처럼 절대 은신은 아니다. 아직 세공되지도 않았을뿐더러 사용자의 능력도 부족해서인가.’
퀘네에의 조각.
원래의 이름은 흑신석.
그것은 무한의 힘을 지니고 있다고 알려진 보석이었다. 지구의 플레이어들은 흑신석을 가리켜 영화를 떠올리며 장난처럼 인피니티 젬(Infinity gem)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만큼 막대한 마나를 지닌 물건.
하지만 그 힘을 이끌어 내는 건 어디까지나 사용자의 역량이었다.
‘한계가 어디까지일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일단은 세공이 먼전가.’
지하 세계의 권좌, 하데스.
그가 다루었던 절대 은신의 아이템 퀴네에.
그것은 아마 퀘네에의 조각이 가진 힘을 극대화한 아이템일 것이다.
‘은신만이 문제가 아니지.’
유원은 퀘네에를 머리에 쓰고 전투에 임하는 하데스를 본 적이 있었다.
‘제우스가 하늘의 권좌를 차지하고 올림포스의 왕이 될 수 있었던 건 가장 먼저 벼락의 조각을 손에 넣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의 올림포스를, 그리고 먼 훗날의 올림포스를 있게 한 물건.
‘그리고 이걸 다룰 수 있는 건…….’
찻잔을 비운 유원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휴식은 끝이었다.
‘오랜만에 보겠네. 아저씨.’
* * *
휴식을 마친 유원은 도심의 한가운데 위치한 랭킹 등록소에서 플레이어 등록을 신청했다.
플레이어 등록은 새로 들어온 신규 플레이어에게 번호를 부여해 랭킹과 번호, 그리고 기본적인 ‘플레이어 키트’를 지급하는 것이었다.
웅-.
플레이어 키트는 사용자의 마나를 주입해 사용하는 구슬이었다.
마나는 지문처럼 고유의 성질을 지니고 있었다. 랭킹 등록소에서 마나를 등록하면 그 마나의 성질에 따라 플레이어의 번호나 정보가 플레이어 키트에 떠오른다.
플레이어 키트의 용도는 말하자면 스마트폰과 비슷했다.
인터넷을 통해 탑의 여러 사건사고를 검색해 볼 수도 있었고, 등록된 번호를 통해 같은 층 내의 누군가에게 연락을 취할 수도 있었다.
플레이어 키트는 탑에서 생활하기에 반드시 필요한 필수품이었다.
“여긴가?”
기억을 더듬어 걸음을 옮기던 유원이 머리를 긁적였다.
대충 어디라고는 알고 있는데, 정말 대충이었다.
확실한 위치를 아는 것도 아니고, 여기 어딘가라고만 알고 있어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어디 물어볼 데도 없고 말이지.’
결국 무작정 걸음을 옮기며 찾는 수밖에.
유원이 찾은 곳은 도시의 가장 바깥쪽 외곽에 위치한 골목이었다.
“포, 포인트 조금만요.”
“제발…….”
“우리 애가 굶고 있어요. 아저씨, 제발…….”
도시의 중심이 밝은 대낮이라면 이곳은 밤의 세계.
온갖 거지들과 도태된 플레이어들, 그리고 그 플레이어들의 사이에서 태어난 탑의 시민들이 모여 있었다.
“가진 거 다 내노…… 억!”
“마이클!”
“젠장, 이 자식! 우리 마이클에게 감히…… 악!”
당연하게도 그들 중에서는 구걸이 아니라 약탈을 택한 쪽도 있었다.
간혹 골목으로 흘러들어오는 플레이어들을 약탈하는 녀석들.
숫자는 4~5명 정도로 그리 많지 않았다. 게다가 다음 층으로 향하거나 제대로 일 거리도 구하지 못한 녀석들이니 실력도 형편없었다.
“정 못 살겠거든 위로 올라가.”
우드득-.
“으아아악!”
“괜히 다른 사람들 해코지할 생각하지 말고.”
유원은 자신을 공격한 플레이어들의 팔과 다리를 하나씩 분질렀다.
동정할 생각은 없었다.
여기 머무르는 녀석들은 대부분 튜토리얼에 공포를 느끼고 있는 자들이었다.
어떻게든 살아남기만 해서 탑에 올라온 자들. 제 발로 스스로 시험을 극복해 위로 올라갈 자신이 없어, 타인이 가진 것을 빼앗는 길을 택한 녀석들이었다.
동정?
그런 걸 해 줄 만한 놈들은 여기 아무도 없었다.
까앙, 깡-!
익숙한 소리.
꽤 먼 거리에서 들려왔다. 골목을 돌며 내내 이 소리를 찾던 유원은 습격한 플레이어의 팔을 놓으며 걸음을 옮겼다.
깡-!
소리가 가까워졌다.
골목의 가장 깊은 곳.
후끈한 열기가 느껴지는 허름한 대장간이 있었다.
“여기 있었네.”
유원은 대장간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천으로 만들어진 문을 걷어 안으로 들어가자, 바깥보다 더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입구는 조금 더운 정도였지만, 안쪽은 그야말로 찜통이나 다름없었다.
까앙-!
규칙적인 쇳소리.
하지만 그것은 곧 다른 소리로 바뀌었다.
치이이익-.
쇳물을 물에 넣은 모양.
곧이어 망치질 소리가 들려오던 대장간의 방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전에는 작업을 해야 된다지 않았느냐?”
걸걸한 목소리.
유원은 그가 밖으로 나오길 기다렸다.
잠시 후.
끼릭-.
굳게 잠긴 철문 안쪽으로 피부가 거뭇하게 탄 대장장이 남자가 걸어 나왔다.
절뚝-.
남자는 한쪽 다리를 절었다.
한 손에는 꽤 묵직해 보이는 망치를 쥔 남자는 유원을 발견하더니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응? 뭐야?”
위아래로 복장과 얼굴을 살피는 걸 보니, 길거리의 거지나 양아치들과는 달리 멀끔하게 옷을 걸친 유원이 신기해 보인 모양이었다.
“그건 불주술의 옷 아니냐? 이쪽 동네 녀석도 아닌 것 같은데, 길이라도 잃었나?”
그는 유원이 입고 있는 불주술의 옷을 알아보았다.
당연했다.
불주술의 옷은 적잖이 알려진 아이템인 데다, 1층의 플레이어가 가지기에는 꽤 가격이 나가는 아이템.
이런 빈민가에서 볼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제대로 찾아온 겁니다.”
“제대로?”
“여기, 대장간 아닙니까?”
“뭐야, 장비를 사려고?”
유원의 말에 남자는 흥미를 잃은 듯 귀를 후볐다.
그는 다른 한 손으로 벽에 걸려 있는 싸구려 물건들을 가리켰다.
“저런 것들이라도 좋다면 마음대로 해라. 네가 가진 아이템들보다 나을지는 모르겠다만.”
남자의 말에 유원은 벽에 걸려 있는 아이템 하나를 감정해 보았다.
절로 눈이 찌푸려졌다.
[조악한 칼]# 만들다 실패해 날조차 서 있지 않은 칼이다. 칼이라기보다는 둔기에 가깝다.
설명조차 볼품없는, 칼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물건.
이런 칼로는 마나를 두르지 않는 이상 사과 하나 자르지 못한다.
아마 잘려 나가기보다는 둔기처럼 부서지겠지.
“전부 망작이네요.”
유원의 신랄한 평가에 남자의 미간이 미미하게 찌푸려졌다.
아무리 사실이라지만 그래도 자신이 만든 물건을 가지고 하는 말이었다.
면전에서 망작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망가뜨리는 데에는 소질이 없나 봅니다.”
유원의 말에 남자의 표정이 달라졌다.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한 표정.
유원은 망가진 장비들에게서 시선을 떼고 남자를 바라보았다.
“불카로 아저씨, 맞죠?”
“아저씨?”
갑작스럽게 훅 들어온 친근한 호칭에 남자, 불카로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다.
역시 빈민가에서도 꽤 깊숙한, 찾아오기 어려운 장소에 있는 자신의 대장간을 방문한 건 역시 우연이 아니었다.
“어디서 온 놈이냐?”
망치를 쥔 불카로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은은한 마나가 그의 주위로 번져나갔다. 유원은 서둘러 손을 저으며 주머니에서 플레이어 키트를 꺼내 들었다.
“너무 경계하지 않아도 됩니다. 전 이제 막 1층에 올라온 신규 플레이어거든요.”
“신규 플레이어?”
불카로는 유원이 꺼낸 플레이어 키트를 바라보았다.
구슬 형태의 플레이어 키트에는 1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그것은 탑을 오르는 플레이어가 공략한 층을 의미하는 숫자였다.
1이라는 숫자.
튜토리얼에서 불주술의 옷을 얻어 낼 정도의 플레이어 가 2층을 공략하지 못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불카로의 눈에는 유원이 빈민가의 다른 플레이어들처럼 탑의 시험이 두려워 도망칠 녀석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그렇다는 건, 아직 2층에 도전하지 않은 신규 플레이어라는 뜻.
“……진짜군.”
불카로는 조금씩 위로 들어 올리던 망치를 아래로 내려뜨렸다.
유원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여기서 이야기가 잘못되어 불카로가 망치라도 내질렀다면 말 그대로 재앙이 벌어졌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저씨 성질머리는 여전하네.’
설마 불카로라는 이름 하나 불렀다고 바로 망치를 들어 올리려 할 줄이야.
‘진짜 이름을 불렀다간, 바로 날아왔겠는데.’
아무래도 당분간은 모른 척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이걸로 최소한의 경계는 푼 셈이었다.
유원은 ‘그래서 용건이 뭐냐?’고 묻는 듯한 불카로에게 손을 내밀어 보였다.
“제가 여기 온 건 장비의 구입 때문이 아니라…….”
스으으으-.
유원의 손바닥 위.
“아이템의 제작 때문입니다.”
검은 보석.
퀴네에의 조각이 검은빛을 뿜어내며 반짝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