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092
점점 많은 푸른 빛이 사방에서 달려들었으나, 한제의 신식은 요령껏 피해 더 깊은 곳으로 향했다. 푸른 빛은 늘어나더니 결국 하나로 연결돼 달려들었다.
한제의 신식은 급속도로 수축하더니 바늘처럼 날카로운 형태로 푸른 빛에 달려들었다.
콰쾅!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진 순간, 여인의 정수리에 오른손을 올린 채 두 눈을 감은 한제의 안색이 순간 창백해졌다. 입에서는 피까지 흘렀다. 허나 그 와중에도 그는 끝끝내 두 눈만은 뜨지 않았다.
여인의 의식 속으로 들여보낸 신식의 절반가량을 잃은 후에야 한제는 푸른 빛에 틈을 하나 낼 수 있었다. 이어서 한제의 신식은 그 틈으로 빠져나가 의식의 가장 깊숙한 곳으로 곧장 돌진했다.
수많은 푸른 빛이 따라붙었지만 한제의 신식은 겹겹이 싸인 장애물을 뚫고 푸른 안개의 가장 안쪽에 이르렀다.
한데 그 순간, 한제는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짙은 푸른색 안개 가장 깊은 곳, 한 사람이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일곱 색깔의 도포를 입은 중년인이 일곱 색채의 빛에 휩싸여 있었다. 원신도 아니고 그렇다고 실체를 갖춘 것도 아닌, 한 줄기의 봉인이었다.
동굴 속. 한제는 큰 충격에 휩싸인 채 두 눈을 번쩍 떴다. 비록 여인의 기억을 찾아내지는 못했지만 수확은 결코 작지 않았다.
‘아까 그자는 조각상에 새겨진 그자가 분명하다!’
한제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또다시 칠채인가?’
그 인영을 본 순간 한제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장존이었다. 하지만 이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장존은 강하긴 하지만 조각상 하나로 한제를 놀라게 할 정도는 아니었다. 또한 세 번째 단계의 수련자들를 여럿 본 한제로서는 그들의 실력을 가늠해볼 수 있었는데 남몽도존만 해도 장존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칠채라⋯⋯. 난 평생 칠채를 여러 번 마주했다. 천운자는 물론 장존도 칠채를 가지고 있었지. 심지어 그들은 신통술에도 칠채가 포함되어 있었어. 게다가 칠채계와 칠채신공정도 빼놓을 수 없지!’
한제는 칠채에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아까의 그 푸른 기운과 빛이 혹시 칠채 중 하나일까?’
한제는 한참이나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가 긴 한숨을 내쉬며 은색 옷의 여인을 저물공간에 집어넣었다.
‘어차피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으니 더 이상 생각해봐야 소용없다. 일단은 탐랑의 법보를 제련해 화작족의 본원을 손에 넣을 힘을 마련하자!’
결정을 내린 한제는 탐랑으로부터 얻은 법보를 하나하나 꺼내 제련과 연구를 시작했다.
‘아흔아홉 자루의 부양검! 탐랑은 이것을 어느 고요의 머리 앞에서 구했다고 했지. 허나 그의 기억에서 본 그 머리의 눈에는 반점이 없었고 피에 적셔진 아흔아홉 자루의 검이 검진을 이루고 있었다.’
똑같이 생긴 아흔아홉 자루의 검이 한제의 주위를 맴돌았다. 각각의 검에서는 음산한 한기가 짙게 풍겼다.
한제는 눈을 번득이며 신식을 펼쳐 모든 검을 세심하게 훑었다.
‘분명 고요족의 보물은 맞다. 짙은 요기가 느껴져! 내 손에서는 모든 위력을 발휘할 수 없을지 몰라도 내 두 번째 분신이라면 제대로 사용할 수 있을 터!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남겨둘까, 아니면 제련할까?’
한제는 잠시 고민하다가 아흔아홉 자루의 검에 낙인과 금제를 남긴 뒤 저물공간에 집어넣었다.
‘제련한다면 요기를 낭비하게 될 터. 차라리 남겨뒀다가 계내로 돌아간 뒤 두 번째 분신에 흡수시키는 편이 낫다. 봉계의 진 때문에 두 번째 분신과의 연계가 끊어진 것이 안타깝군. 한데 두 번째 분신은 잘 지내고 있을지⋯⋯.’
한제는 잠시 상념에 잠겨 있다가 이윽고 두 번째 법보인 호골비를 집어 들었다.
아홉 개의 비석은 그의 주위를 맴돌며 익숙한 기운을 뿜어냈다. 바로 고신의 기운이었다.
한제는 그중 하나의 비석을 문질렀다.
탐랑의 기억에서 본 호골비는 어느 바위 조각 위에 있던 고신의 머리 근처에서 얻은 것이었다. 그 머리의 주인인 고신은 아직 성년이 되지 않은 듯 어려 보였고 두 눈에는 원수를 보는 듯한 분노가 어려 있었다.
‘이 비석은 고신의 뼈로 만들어진 것이다. 허나 악의적으로 제련된 게 아니라 죽은 선조의 뼈를 후손이 제련해 비석으로 만든 듯하다. 그러지 않았다면 매우 짙은 원한이 어려 있었을 테니까.’
허나 탐랑은 이 법보를 방어용으로만 썼을 뿐, 그 안에 숨겨진 고신의 신통력까지 사용하지는 못했다.
일어난 바람
한제가 손을 휘두르자 아홉 개의 비석은 고신의 기운을 품은 밝은 빛을 뿜어내며 그를 중심으로 빠르게 돌았다. 그러다가 급속도로 축소돼 한제의 오른팔로 다가오더니 뼈처럼 회백색을 띤 팔뚝 보호대로 변했다.
팔뚝 보호대를 착용한 한제의 주먹은 전보다 배로 커져 있었다. 보호대는 다섯 손가락까지 꼼꼼히 보호해주고 있어 주먹을 쥐었다 펼 때마다 뼈가 새로 맞춰지는 듯 뚜둑 소리가 났다.
보호대에는 수많은 상흔이 있었다. 검에 베인 흔적도 갈라진 틈도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 어린 고신이 이 팔뚝 보호대와 함께 수많은 전투를 치러왔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고신의 보물에는 고신의 신통술이 숨겨져 있지. 청광순에 숨겨져 있던, 원고 시대로 돌아간 듯한 꿈을 꾸게 하는 신통술처럼 목숨을 구해줄 수 있는 구명 신통술이. 허나 구명 신통술이 고신의 생명까지 보호해주지는 못한 거야.’
한제는 생각에 잠긴 채 고신의 힘을 팔뚝 보호대에 불어넣었다.
‘팔성급 고신의 신통술인 조상의 보우! 서사의 기억 속에도 없던 법술이다!’
한제는 팔뚝 보호대에 숨겨진 신통술을 발견하고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 신통술을 광영순과 함께 쓴다면 엄청난 위력을 발휘할 수 있겠어!’
한제의 심장이 쿵쾅댔다. 팔뚝 보호대는 곧 몸으로 스며들어 모습을 감췄다.
뒤이어 한제는 세 번째 법보인 천황로를 꺼냈다.
한제는 이 천황로를 처음 본 순간 익숙한 느낌을 받은 바 있었다. 오직 고신의 법보만이 가질 수 있는 이 느낌은 왕족 고신만이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탐랑이 왕족 고신의 법기를 손에 넣었을 줄이야! 전승받은 것이 아니라 후대 사람이 제련해낸 것이지만 어쨌든 왕족 고신의 법기다!’
한제가 광기 어린 눈으로 천황로를 바라보던 그때, 미간에서 고신의 반점이 빠른 속도로 회전하며 빛을 발산했다.
이 빛에 닿은 천황로는 눈부시게 반짝이면서 회전하기 시작하더니, 잠시 후 한제의 미간을 향해 한 줄기 빛을 뿜어냈다. 동시에 급속도로 줄어들어 한제의 여섯 반점 중 첫 번째 것과 융합됐다.
탁삼이 세 번째 단계에 이른 수련자를 반점에 녹여낸 것과 달리 한제는 법보를 녹여낸 셈이다. 서로 다른 길을 택한 두 사람의 미래 역시 자연스레 달라질 터였다.
한제는 몸을 바르르 떨었다. 체내에서 고신의 힘이 펑 소리를 낼 만큼 급속도로 증폭했기 때문이다. 이 소리는 한참 뒤에야 점차 잦아들었다.
‘붉은 검과 봉계의 진에 있는 진짜 개천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이건 서사의 멸신모와 비슷한 수준이다. 완전히 제련할 수만 있다면 엄청난 위력을 발휘할 수 있겠지.’
한제의 눈이 희열로 빛났다.
이어서 그는 네 번째 법보이자 실체와 허상을 오가고 있는 무마창을 꺼냈다. 그 순간, 마기가 동굴을 가득 채웠다.
‘고마의 법보로군. 고마 형태의 분신이 있었더라면 최대의 위력을 발휘하게 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게도 내게는 고마의 분신이 없지. 만약 세 종류의 고족을 하나로 융합한다면 그들이 살았던 당시의 힘을 발휘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데…’
한제는 기이한 눈으로 손에 쥔 무마창을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고신은 내 스스로의 수련으로 창조했고 고요는 십삼을 포함한 그들 부족의 숭배를 받은 잔혼으로 만들었다. 향불과 비슷한 그 힘이 고요가 스스로를 나로 믿게 했지. 이후 녀석은 나의 분신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고마⋯⋯. 어쩌면 고마도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지. 물론 고마를 잡을 수 있다면 훨씬 수월하겠지만…’
생각에 잠겨 있던 한제는 허공을 움켜쥐어 마혼병을 끌어들였다.
마혼병이 나타나자 동굴 안의 마기가 증폭되기 시작했고 뒤이어 셀 수 없이 많은 마영이 모습을 드러내며 퍼져 나갔다. 그러자 마기가 밀물처럼 수련성 전역을 향해 밀려들었다.
‘마체(魔體)는 만들어낼 수 없겠지만 마혼이라면 만들어낼 수 있지. 마혼을 이용해 고마의 법보를 통제하게 한다면 더 큰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터. 기회가 된다면 마혼을 이용해 고마의 육체를 빼앗아 나의 세 번째 분신으로 삼는 거야. 물론 그렇게 될 가능성은 높지 않겠지만.’
잠시 후, 한제는 굳건한 얼굴로 손을 들어 허공의 마혼병을 가리켰다. 그러자 마혼병에서 날카로운 고함이 터져 나왔다. 고막을 찢을 듯 우렁찬 소리는 매우 날카로워 한제의 심신에까지 곧장 쳐들어왔다.
“저항할 셈이냐!”
한제의 차디찬 코웃음 소리가 마혼병에서 터져 나온 고함과 충돌하면서 펑, 펑 소리를 냈다.
뒤이어 마혼병에서는 검은 안개가 솟았고 그 속에서 고마의 혼들이 포효하며 나타나 곧장 한제에게 달려들었다.
한제는 두 손을 맹렬하게 휘둘러 광풍을 불러냈다. 그러자 광풍에 휩쓸린 마혼들이 그대로 한제의 손에 붙잡혔다.
“융합!”
한제는 덤덤했지만 한기가 어린 목소리로 외쳤고 동시에 두 눈을 기이하게 번득였다.
남몽도존의 융합 도술을 발휘한 순간, 동굴에서는 펑, 펑 소리가 울려 퍼졌고 한데 융합된 수많은 마혼들은 도망치려 했지만 아무 소용 없었다.
한제는 눈을 감고 온 힘을 도술에 집중했다. 수많은 마혼이 끊임없이 융합되기 시작했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일곱째 날, 한제의 두 손에 사로잡힌 마혼들은 이미 한 덩어리로 뭉쳐져 있었다. 한데 그 덩어리에서 어스름한 빛이 나타나 점점 밝아지더니 순식간에 동굴 안을 환하게 밝혔다. 동시에 거친 기운과 함께 수많은 마혼의 목소리가 한데 합쳐진 듯한 고함이 터져 나왔다.
“고마족을 제련하려 하다니, 절대 안 된다!”
“피의 제련!”
한제는 그 목소리를 무시한 채 혀끝을 깨물어 한 움큼의 피를 손에 쥔 덩어리에 뿌렸다. 본원의 힘을 가진 고신의 피였다.
“크아악!”
피가 뿌려진 순간, 덩어리는 찢어질 듯한 비명을 내질렀다.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 그 안의 어스름한 빛 역시 핏빛으로 바뀌었다.
핏빛은 이내 덩어리를 완전히 뒤덮었고 잠시 후 이 덩어리는 완전한 붉은색으로 변해버렸다.
한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마혼병을 손에 움켜쥐었다. 이어서 원력을 토해내자 수많은 마혼을 품은 대량의 검은 연기가 마혼병에서 솟구쳐 나왔다. 이 마혼들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한제의 손에 들린 붉은색 덩어리에 의해 흡수됐다.
“이 고마의 법보에는 고마 3천 마리의 혼이 들어 있다. 이 3천 개의 혼을 융합한다면 고신의 분신의 혼으로 삼을 수 있을 터!”
한제는 소매를 휘둘러서 안개를 뭉게뭉게 일으켜 자신의 몸을 감쌌다.
★ ★ ★
시간은 또다시 빠르게 흘러 어느새 한 달이 지났다. 타락의 땅에서 펼쳐질 낙생회 장로 선발 대회까지는 이제 한 달도 남지 않았고 한제가 암갈족 수련성에서 폐관수련을 시작한 지 두 달이 넘은 셈이었다.
이 두 달여 동안 타락의 땅에서는 엄청난 사건이 벌어졌다.
타락의 땅 가장자리의 폐허가 된 한 수련성에서 어느 날 짙은 화염이 폭발하듯 뿜어져 나온 것이다. 이 남색 화염은 곧장 황량한 수련성을 감쌌다. 허나 이 화염은 오래가지 않았고 단 1각 만에 꺼져버렸다.
그러나 그 짧은 시간 동안 타락의 땅 전역의 화염 수련자들은 심신이 요동쳤다. 이 황량한 수련성에서 화염이 폭발한 순간, 그들 체내에서는 화염의 힘이 통제를 잃고 이글이글 타오르며 빠져나오려 했다. 마치 화염을 뿜어낸 그 수련성으로부터 소환이라도 받은 듯한 모습이었다.
특히 화작족 수련자들은 더욱 큰 충격을 받았다. 이전에 한제와 거래를 했던 화작족 장로는 좌선을 하던 중 돌연 온몸에서 일어난 화염이 한 마리 불새가 되어 날개를 퍼덕이는 바람에 표정이 급변했다.
그는 다급하게 폐관수련을 마치고 몇몇 부족원과 함께 그 황량한 수련성으로 향했다. 허나 그곳에서도 아무런 단서도 얻지 못했다. 그곳에서는 그저 당시 그가 한제에게서 얻은 혼단에 들어 있던 본원의 기운과 매우 비슷한 기운만 느껴졌을 뿐이다.
그리고 얼마 후, 태고 성신 내 화작족에서도 부족 고위층을 충격에 빠뜨린 사건이 발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