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287
홍접은 두 눈에서 서늘한 빛을 번득이며 예쁜 손으로 허공을 한 번 두드렸다. 순간, 춤을 추듯 이리저리 휘날리던 장미 꽃잎에 변화가 일어났다.
그 장미 꽃잎에 순간 가닥가닥 얇은 실이 나타나더니 마치 거대한 그물처럼 요동치며 한제를 감싸려 달려들었다.
한제는 손에 쥔 금번을 내던졌다. 그러자 검은 막 하나가 사방에 나타났다. 동시에 한제는 저물대에서 선검을 꺼내 매섭게 휘둘렀다.
선검은 검은 막을 뚫고 곧장 그 꽃잎을 내리쳤다.
펑!
꽃잎에 금이 갔지만 깨지지는 않았다. 무수히 많은 얇은 실들은 꽃잎을 따라 하늘을 뒤덮을 듯한 기세로 한제를 향해 빠르게 달려들었다.
홍접은 곧바로 꽃잎을 하나 더 떼어 앞으로 내던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왼손으로 결인을 해 고운 손가락으로 꽃잎을 두드렸다. 그러자 그 꽃잎은 갑자기 거대해지더니 허공으로 날아가 한제를 감싸려 했다.
홍접은 또 꽃잎을 하나 떼었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혀끝을 깨물어 피를 꽃잎에 뿌렸다. 그러자 순간 꽃잎에 핏자국이 나타나면서 번쩍이더니 아홉 자루의 붉은 검이 되었다. 그 선검들은 검광을 번득이면서 미친 듯이 한제에게 달려들었다.
“세 개의 꽃잎이다, 천우. 네 죽음을 똑똑히 볼 것이다.”
싸늘하게 내뱉은 홍접이 살짝 두드리자 거인이 포효하며 발을 내딛었다. 이어 오른손을 휘둘러 바람을 일으킨 거인은 비검을 바짝 뒤쫓으며 한제를 향해 내달렸다.
거인이 발을 내딛을 때마다 지면에 움푹 움푹 깊은 구덩이가 패였고 수많은 나무들이 꺾였으며, 쿵쿵 소리와 함께 땅에 거대한 균열이 일었다.
한제의 눈이 번득였다. 여태 살아오면서 치렀던 전투를 통틀어 이번이 가장 위험한 것 같았다. 그러나 사신차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는 결투인 만큼 모든 것을 내보여서 좋을 것은 없었다.
하늘을 뒤덮을 듯한 붉은 실들을 보며 한제는 선검을 휘둘렀다. 몇 줄기 검광이 쏟아져 나와 그 붉은 실들과 충돌하면서 틈이 났다. 그 틈을 통해 빠져나옴과 동시에 입을 벌려 한 줄기 검은 빛을 토해냈다. 그 검은 빛은 커다란 도장이 되어 달려들고 있는 거대한 꽃잎을 막아섰다.
하지만 검은 도장은 한 번 부르르 떨었고 꽃잎은 곧장 그 도장을 감싸버렸다. 그리고 잠시 후 검은 도장은 사라졌고 한 움큼의 검은 물이 아래로 흘러내렸다.
한제는 창백해진 얼굴로 검은 도장이 꽃잎을 막아선 틈에 순간이동을 하여 1천 척 밖으로 이동했다.
그때, 아홉 자루의 붉은 검이 달려들었다. 번개 같은 속도에 한제는 곧장 저물대에서 두 개의 방울을 꺼내 서로 부딪쳐 음파를 일으켰다.
아홉 자루의 붉은 검은 그 음파에 속도가 약간 줄어들기는 했지만 곧 다시 질주하여 달려들었다. 허나 검들의 속도가 살짝 느려진 틈에 두 개의 방울은 잘게 깨지더니 한제의 몸을 감싸 갑주를 이루었다.
한제는 홍접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가 다가오자 얼음 거인이 주먹을 휘둘렀다. 그 속도는 이전보다 훨씬 빨라서 순식간에 한제에게로 엄습해왔다.
한제는 곧장 뒤쪽으로 몸을 물렸다. 그 순간 아홉 자루의 검이 미친 듯이 찔러들어왔고 동시에 하늘에 떠 있던 거대한 꽃잎이 곧장 그를 완벽하게 감쌌다. 조금의 틈도 없었다.
홍접은 살기 어린 눈을 번득이며 외쳤다.
“죽어라!”
그녀가 결인을 한 왼손을 두드리자 한제를 감싼 채 공중에 떠 있던 꽃잎 안쪽에서 펑펑 하는 소리가 여러 번 들려왔다.
한데 바로 그때, 갑자기 한 줄기 검은 빛이 그 안에서 분출되더니 한제를 감싸고 있던 꽃잎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홍접의 얼굴이 굳어진 그 찰나, 하늘을 가를 듯한 엄청난 기세의 검광이 그 안에서 번쩍였다. 그 검광에 꽃잎은 반으로 갈라졌고 한제가 그 안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한제의 머리카락을 묶고 있던 끈은 이미 끊어져 그의 검은 머리칼은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렸고 두 눈은 하늘을 뒤덮을 듯한 서늘함으로 번득였다. 홍접은 마치 죽은 사람을 본 듯한 눈으로 한제를 바라보았다.
한제의 몸을 감싼 방울 갑주에는 여기저기 균열이 나 있었다. 허나 그를 공격한 아홉 자루의 붉은 검은 모두 부서져 있었다.
“홍접, 이제 시작이다.”
한제의 여유로운 목소리에 홍접은 아랫입술을 깨물더니 여섯 개의 꽃잎이 남은 장미를 가리키며 다시 술법을 부리려 했다.
“이게 무엇 같으냐?”
한제는 입가에 사악한 웃음을 띤 채 손에 쥔 뭔가를 들어보였다. 고치처럼 생긴 돌조각 위에서 하나하나의 부호들이 번득이고 있었다. 한제가 손으로 두드리자 그 위의 부호들이 더욱 밝게 번득였다.
순간 안색이 변한 홍접의 미간에서 검은 기운이 용솟음쳤다.
“바로 누군가의 오른팔이지!”
순간 그 고치 모양의 돌에 균열이 일더니 그 안에서 마른 나뭇가지처럼 시커먼 팔 하나가 나타났다.
그 팔을 손에 쥔 한제는 표정이 변한 홍접을 바라보며 사악하게 웃었다.
“어때, 이제 알아보겠나?”
홍접은 몸을 부르르 떨며 그 팔을 주시하다가 이내 한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 눈에 담긴 서늘한 빛은 이미 극한까지 치달아 있었다.
“천우, 이 비천하고 졸렬한 자식!”
한제는 하하 하고 크게 웃다가 뚝 웃음을 그친 채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비천하고 졸렬한가? 아무런 원한도 없던 나를 다짜고짜 공격해 몇 차례나 사지로 몰아간 네가 내게 졸렬하다 하는가? 너는 이유 없이 나를 죽여도 되고 나는 그런 너를 죽여서는 안 된다 말하는 것이냐!”
홍접은 대꾸하는 대신 고운 손으로 장미를 두드렸다. 그러자 남아 있던 여섯 개의 꽃잎이 하나하나 떨어져 나왔다.
한제는 피식 웃더니 저물대에서 검은 깃발을 하나 꺼냈다. 하나의 금제만 걸면 천벌을 일으킬 수 있는 그 갈라진 금번이었다.
한제가 왼손을 앞으로 뻗어 흔들자 하나의 금제가 만들어져 그 금번에 찍혔다. 순간, 금번이 진동을 일으키더니 그 위에서 눈부신 빛이 터져 나왔다.
얼굴이 크게 변한 홍접은 빠르게 결인을 그리면서 복잡한 주문을 외웠다. 순간 그 여섯 개의 꽃잎이 빠른 속도로 휘날리며 펑펑 소리와 함께 각각 붉은 옷을 입은 여인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한데 그때, 금번에서 강렬한 힘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꽃잎으로 만들어진 여섯 여인은 그 힘에 밀려 앞으로 나서지 못했다. 한제 역시 뒤로 밀려나면서 손을 펼쳐 그 금번을 하늘로 던졌다.
그때, 하늘에서 갑자기 우르릉 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뒤이어 붉은 구름이 하늘을 무너뜨릴 듯 몰려들었다. 순간, 빛의 문 외부에서 줄곧 이 전투를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은 경악했다.
안쪽 고리에 앉아 있던 네 명의 백발노인 역시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들은 빛의 문 안쪽의 하늘에 나타난 붉은 구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곤극 채찍
“천벌!”
공손파의 눈이 번득였다.
“육원귀일(六元歸一)!”
홍접은 안색이 크게 변한 얼굴로 얼른 손을 뻗었다. 붉은 옷을 입은 여섯 여인은 빠르게 그녀를 향해 날아가 하나하나 그녀의 체내로 들어갔다. 순간, 홍접의 뒤에 아름답게 하늘거리는 여섯 개의 붉은 허상이 나타났다.
그 무렵, 하늘의 붉은 구름은 더욱 짙어지고 있었다.
한제는 차게 웃으며 오른손을 금번 쪽으로 뻗었다. 그러자 그 금번은 진동하며 여러 갈래의 금제를 쏘았고 그것들은 곧장 홍접을 향해 돌진했다.
바로 그때, 하늘에서 우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한데 응집되어 있던 붉은 구름들 속에서 번개 하나가 나타나 미친 듯이 아래로 돌진했다. 번개의 방향은 금제가 향하는 곳이었다.
홍접이 발을 굴러 뒤로 물러나는 순간, 그녀를 지켜보던 한제가 선검을 휘둘러 한 줄기 검광을 쏘아 보냈다. 그 검광은 홍접이 아니라 우뚝 솟아올라 돌진하고 있는 붉은색 번개와 부딪쳤다.
쾅!
거대한 소리와 함께 검광이 붕괴했고 번개는 움찔 멈췄다가 다시 돌진했다. 그 순간, 한제가 소리쳤다.
“금번, 해산!”
순간 금번이 부르르 진동하더니 더욱 많은 금제들을 쏘아 보낸 뒤 재로 변해 흩어졌다. 금번으로부터 우르르 빠져나간 금제는 눈 깜짝할 사이에 홍접을 추격해 그녀의 사방을 배회했다. 적지 않은 금제들이 얼음 거인의 체내로 뚫고 들어갔다. 그 자체로는 거인에게 별다른 위해가 되지 않았지만 천벌을 이끄는 작용을 하기에는 충분했다.
거인은 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 옮길 때마다 거인의 체내를 뚫고 들어간 금제들은 흩어졌지만 압도적으로 많은 금제들이 계속해서 그 체내를 뚫고 들어갔다.
순간이동을 하려던 홍접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천벌이 강림하면서 순간이동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한제의 두 눈에 어린 싸늘함이 극에 달한 순간, 붉은 번개가 우르릉 소리와 함께 떨어져 내렸다. 그 번개에 닿은 금제는 곧장 흩어져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번개는 막힘없이 떨어져 금제에 갇혀 있던 홍접을 내리쳤다.
이 모든 것은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홍접은 창백한 얼굴로 이를 악물었다. 번개가 내리치던 순간, 그녀의 등 뒤에 자리했던 여섯 개의 허상이 그것을 막으려는 듯 날아올랐다.
“폭발!”
홍접은 붉은색 허상 하나로 번개가 내리치던 순간 폭발을 일으켰지만 천벌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폭발! 폭발!”
홍접의 목소리가 찢어졌다.
쾅, 쾅, 쾅!
천벌의 번개는 파죽지세였다. 눈 깜짝할 사이에 여섯 개의 허상이 모두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번개의 위력도 연속적인 폭발에 다소 약해졌다. 그 틈에 홍접은 발을 굴러 얼음 거인의 체내로 들어갔다.
그녀의 몸이 사라진 순간, 번개는 곧장 그 얼음 거인의 몸에 떨어졌다.
맹렬히 고개를 들고 고통에 찬 포효를 내지르던 거인의 몸에 수많은 균열이 생겨났다. 그때, 붉은색의 얇은 실 한 가닥이 거인의 몸을 곧장 뚫고 들어갔다. 그것은 거인을 공격하지 않고 그 체내로 들어갔다가 남은 금제들을 공격했다.
한편 그 거인의 체내에서 부드러운 채찍의 허상이 나타나 이따금씩 번득였고 그때마다 한 가닥의 천벌은 조금씩 약해졌다.
“아쉽군!”
한제는 손에 쥐고 있던 선검을 앞으로 휘둘렀다. 기합을 넣으며 검을 휘두르자 한 갈래의 굵은 검광이 번득이며 빠져나와 거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곤극 채찍!”
거인은 입을 크게 벌리더니 포효하듯 한 마디를 내뱉었다. 그 목소리는 홍접의 것이었다.
순간 거인의 체내에 있던 채찍이 갑자기 번득이더니 빠르게 거인의 가슴팍으로부터 날아가 한제를 향해 퍽 하고 내리쳤다.
‘빠르다.’
도저히 그 채찍을 피할 수가 없었던 한제는 울컥 한 움큼의 피를 토해내며 땅에 떨어졌다. 한편 체외로 빠져나간 그의 원신은 먼 곳으로 튕겨 나갔다.
그 순간, 검광이 거인의 몸을 때렸다. 격렬하게 몸을 떨던 거인의 허리춤에 팔뚝만 한 상처가 나타나더니 거인의 몸을 관통했다.
채찍이 너무도 빨라 한제는 피할 정신이 없었다. 그는 바닥에 쓰러지자마자 순식간에 체내에서 튕겨 나간 원신으로부터 전해지는 고통을 느낄 수 있었다. 그 고통은 마치 뇌리에 찍힌 듯 강렬했다. 원신이 부상을 입었음을 알 수 있었다.
한제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두 손으로 결인을 해 영력을 확산시켰다. 떨어져 나가던 원신은 억지로 움직임을 멈추고 곧장 앞쪽으로 순간이동을 해 다시 육신으로 돌아왔다.
한제는 두 눈을 번쩍 뜨고 오른발로 지면을 두드렸다. 마치 유성처럼 1천 척 밖까지 날아간 한제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어려 있었다. 방금 그 거인이 한 공격은 너무나 기이했다.
“그건 무슨 채찍이지?”
한제는 1천 척 밖에 있는 거인을 주시했다.
다행히 이전에 한제가 검광을 쏘아 보내 거인의 허리를 갈라놓은 데다가 한 가닥의 천벌도 작용을 일으킨 상태였기 때문에 한제의 원신이 빠져나간 순간 다른 공격이 가해지지 않았다. 만약 미약한 공격이나마 이어졌다면 정말 위험할 뻔했다.
검광이 거인의 허리를 때린 순간, 거인의 체내에 자리한 한 가닥의 천벌은 마지막 금제까지 소멸시킨 뒤 사라져 버렸다. 하늘을 채웠던 붉은 구름도 순식간에 흩어져 하늘은 이전의 어두운 상태로 돌아왔다. 마치 아까 나타났던 붉은 구름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거인이 몸을 부르르 떨자 그의 몸에 있던 균열에 따라 얼음 조각들이 떨어져 내렸다. 허리춤의 상처는 빠르게 맞물려서 눈 깜짝할 사이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거대한 몸은 반으로 줄어 겨우 50척 정도의 높이에 그쳤다. 그러나 거인의 가슴팍에서는 채찍의 허상이 이따금씩 요사스럽게 번득였다.
한제는 몸을 돌려 달아났다. 너무도 기이한 채찍이었다. 한 번의 공격에 원신이 빠져나갈 정도이니 육신도 상당한 피해를 입은 것이 분명했다. 저 채찍이 있는 이상 이 전투에서의 승자와 패자는 너무나도 명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