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622
한제는 아주 오래 전 이곳에서 법보와 선수(仙獸)를 타고 온 선인들이 각자 필요한 것을 사고파는 모습을 상상했다. 당시 그들은 언젠가 이 선계가 무너질 것이라고는 예상조차 하지 못했으리라.
속으로 한숨을 내쉰 한제는 우의 선계에서 보았던 거대한 손자국을 떠올렸다. 한 번에 대지를 쩍쩍 갈라버릴 만큼 강력한 신통력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원은 우의 선계에 가보지 못했지. 그였다면 심금을 통해 그 손바닥 모양의 신통술을 역으로 추론할 수 있었을 텐데…’
숨겨진 동굴
시간은 천천히 흘러갔고 이원의 얼굴은 점점 창백해졌다. 그의 손에서 나온 피가 진 가득 퍼져 있었으며, 점차 활기를 찾으면서 미세한 파동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원은 눈을 번득이며 왼손으로 미간을 두드렸다. 그러자 그 순간 한 줄기 검은 선이 미간에서 튀어나와 금제를 이룬 뒤 진에 떨어졌다. 이원은 재빨리 결인을 그리며 계속해서 금제를 만들어냈다.
한데 그 검은 선 모양의 금제가 진 안에 떨어진 순간, 진 전체에서 돌연 밝은 빛기둥이 분출됐다. 이 빛기둥은 순식간에 구름을 뚫고 솟아올랐다.
이원은 흠칫 놀라더니 멍한 눈으로 이를 지켜보았다. 그의 손에서 쏘아지기를 기다리던 금제는 서서히 사라져갔다.
“이럴 수가! 처음으로 열리는 것이라니⋯⋯. 처음으로⋯⋯.”
한편, 한제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그 빛기둥을 바라보았다. 조짐도 없이 갑작스럽게 나타난 빛기둥이라 그것을 저지할 수도 없었다.
“이 형!”
한제의 부름에 정신을 차린 이원이 숨을 깊게 들이마시자 빛기둥은 천천히 어두워지면서 수축했다. 금방이라도 흩어져 사라질 것 같은 모습이었다.
한제는 신식으로 빛기둥을 훑고는 어떤 실마리를 잡을 수 있었다. 억제된 선력 한 줄기가 빛기둥 안에서 발산되고 있었다.
“이 진의 정확한 방법을 따랐다면 이런 변고가 생기지는 않았을 겁니다. 어쨌든 처음으로 열린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혼을 배출한 것이지요. 진법 안의 혼이 모두 배출되어야만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원은 점점 어두워지는 빛기둥을 바라보며 말했다.
“처음이라고요?”
한제가 물었다.
“그렇습니다. 이 빛기둥이 다 흩어지고 나면 안으로 들어가 그 안에 대체 뭐가 있는지 볼 수 있겠지요.”
이원은 진법을 응시하며 입술을 핥았다.
고개를 끄덕이던 한제가 갑자기 고개를 들어 먼 곳을 내다보았다.
잠시 후, 두 개의 검광이 쉭 하고 날아들었다. 엄청난 선력의 파동을 발산하는 것으로 보아 방금 발산된 빛기둥을 보고 확인하러 오는 것 같았다.
한제는 시선을 거두고 오른손으로 땅을 움켜쥐었다. 순간 무너진 돌벽 하나가 솟아오르더니 펑 하고 갈라지면서 눈 깜짝할 사이 가루로 부서졌다.
한제가 손을 휘두르자 그 가루들은 순식간에 사방으로 미친 듯이 퍼져나갔다.
그 순간, 반경 1만 척에 있던 벽들이 먼지가 되어 고리 모양을 이룬 채 퍼져 나갔다. 외부와 내부를 단절시키는 경계선이었다.
“그 안으로 들어오는 자는 죽는다!”
한제는 느릿하게 어두워지고 있는 빛기둥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덤덤했지만 다가오던 두 사람에게는 천둥만큼이나 요란하고 무시무시하게 들렸다.
문정기 중기 수준인 두 수련자는 그 호령에 심신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고 그들을 받치고 있던 검광도 불안하게 흔들렸다.
두 사람은 그 경계선 바깥에 멈춘 채 감히 한 발짝도 앞으로 들어서지 못했다. 서로를 바라보던 둘은 창백해진 얼굴로 검광을 거두었고 그중 한 사람이 포권을 하며 공손하게 말했다.
“저희 두 사람은 나천성역 서역의 조가 사람들입니다. 선배님의 말씀을 받들어 절대 이 안쪽으로는 들어서지 않겠습니다.”
한편, 빛기둥은 점점 빨리 흩어져갔다. 이원은 몇 걸음 다가서서는 빛기둥이 완전히 사라지기를 기다렸다.
한편, 1만 척 밖에 멈춰 선 조가의 두 수련자는 눈이 휘둥그레진 채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둘 모두 지금과 같은 광경을 본 적은 없었지만 그 안에 엄청난 보물이 존재하리라는 것만큼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감히 그것을 빼앗을 엄두는 나지 않았지만 식견을 넓혀줄 것이 분명한 이 광경을 보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좀 전에 진법이 활성화되면서 내뿜은 혼의 영향이 지나치게 컸기 때문인지 이 조각에 있던 모든 수련자는 똑똑히 이 광경을 보게 됐다. 그리고 이 광경에 모든 수련자는 그곳에 엄청난 보물이 있으리라 여겼고 자연히 모여들게 됐다.
조가의 두 수련자가 가장 먼저 도착한 것은 단지 그들이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방에서 여러 갈래의 빛줄기가 달려들었다. 이 빛에 싸인 이들의 수준은 각기 달랐지만 음의에 이른 이는 없었다. 그러니 그들은 빛기둥으로부터 반경 1만 척을 두른 먼지 고리 앞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금방이라도 사라질 듯 어두워진 빛기둥을 보는 그들의 눈에는 탐욕의 빛이 어려 있었다. 허나 한제를 보자마자 그들의 표정은 곧장 바뀌었고 그의 몸에서 피어오른 엄청난 원력을 확인하고는 모두 뒤로 물러섰다.
한제는 그들에게 신경조차 쓰지 않았고 이원 역시 그들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잠시 후, 모두가 주목하는 가운데 빛기둥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그 순간, 땅에 새겨진 진에서 어두운 동굴 입구가 드러났다.
그곳에서 한 줄기 선력의 파동이 발산됐고 1만 척 밖에 둘러선 수련자들도 그 기운을 또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의 눈에 숨겨져 있던 탐욕의 빛은 순간 그 동굴로 집중됐다. 그들의 마음속에서도 미묘한 기운이 피어올랐다.
이 모든 것은 미지(未知)에서 비롯됐다. 어느 누구도 그 동굴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했지만 그럴수록 묘한 감정은 더욱 짙어져갔다. 만약 한제가 없었다면 이들은 곧장 달려들었을 것이다.
그 순간, 저 먼 하늘 가장자리로부터 광기 어린 검기 하나가 날아들었다. 그리고 이를 감지한, 1만 척 밖에 서 있던 수련자들의 눈빛이 변했다. 지금 달려드는 자는 두 번째 단계에 이른 수련자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검광 위에는 한 사람이 서 있었다. 품이 넉넉한 노란색 옷을 입은 그가 날아오는 동안 바람이 불어와, 꼭 그 바람을 타고 온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겉보기에는 서른 정도 되어 보였고 외모는 평범했으나 유독 두 눈이 옆으로 길게 찢어져 날카로워 보였다.
짙은 원력이 그의 체내에서 발산되는 것으로 보아 음의의 절정에 이른 듯했다.
사내가 거리를 좁혀 오자 모여 있던 수련자들은 분분히 흩어졌다.
그는 모래 먼지의 고리를 보지 못한 것도 그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 것도 아니었지만 아무런 신경도 쓰이지 않는다는 듯 속도도 줄이지 않은 채 그대로 그 안으로 들어섰다. 그 엄청난 기세에 원력이 일어나 고리 모양의 모래 먼지가 휘말릴 정도였다.
사방에 모여들어 있던 수련자들은 이 노란색 옷을 입은 청년과 한제가 동굴을 두고 갈등을 빚으리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런 수준 높은 수련자간의 전투는 매우 보기 드물었기에 모두들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개중에는 저 두 사람이 전투로 인해 중상을 입는다면 자신에게도 동굴 안에 들어갈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은 자도 있었다.
한편, 그 청년의 등장에 이원의 안색이 살짝 변했다. 허나 한제는 웃으며 덤덤하게 말했다.
“이 형, 먼저 내려가시지요.”
이원은 말없이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순간, 황의(黃衣)의 청년이 도착했다.
한제는 덤덤한 얼굴로 한손을 들어 허공을 후려쳤다. 순간, 한 줄기 보라색 전광이 나타나 보라색 안개를 내뿜으며 청년에게 달려들었다.
“헛!”
청년의 눈동자가 바짝 졸아들었다. 한제를 보지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은 가문 안에서도 특별한 존재였던 데다가 가문의 다른 구성원들도 뒤에서 바짝 따라오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다가 갑작스런 공격에 당황한 것이다.
하지만 곧 평정심을 되찾은 그는 오른손을 웅크렸고 그러자 다섯 갈래의 검은색 기운이 나타나 번개를 휘감았다.
“삼켜!”
황의의 청년이 낮게 외치자 검은 기운들은 곧장 다섯 마리의 흑룡으로 변해 입을 크게 벌리더니 눈 깜짝할 사이 번개를 모두 삼켜버리고는 청년에게로 돌아가 그 주위를 맴돌았다. 그러는 동안 체구가 점점 불어나더니 이내 길이가 1천 척이 넘는 거대한 용이 됐다. 이에 청년의 기세 역시 순간적으로 증폭됐다.
“도우의 신통력이 나쁘지 않군. 일단 잠시만 기다려주게. 이 당언운이 도우와 함께 저 선인의 유적을 살펴보고 싶은데 어떤가?”
황의의 청년이 느릿하게 말했다. 사실 그 정도의 신분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만약 한제의 수준이 자신보다 높지 않았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데 그 한 마디에 1만 척 밖에 머물러 있던 수련자들은 화들짝 놀랐다.
“당가! 나천성역 남역의 당가!”
허나 한제는 냉랭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면서 침착하게 말했다.
“네게는 그럴 만한 자격이 없다!”
당언운은 흠칫 놀라고 말았다. 상대가 거절할 수도 있다고 예상은 했지만 당가의 사람이라는 말 앞에서도 저토록 오만하기 짝이 없는 반응을 보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는 어두워진 얼굴로 냉소하며 말했다.
“그렇다면 실례했군.”
말을 마친 그는 뒤로 물러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저자의 수준이 나보다 높으니 무턱대고 덤벼들 수는 없다. 형님들이 오신 뒤에 공격해도 늦지 않아.’
당가는 선계에서부터 이어져 내려온 가문은 아니지만 그 규모가 작지 않아 이번에 뇌의 선계에 들어온 이들 중에서도 그 수가 가장 많았다.
이들은 서로 떨어지지 않고 함께 다녔으며, 당언운은 그저 길잡이 불과했다.
그때, 한제가 무표정한 얼굴로 한 걸음씩 당언운의 뒤를 쫓았다. 1만 척 밖에서는 짙은 원력이 피어올랐다.
“나의 번개를 삼킬 자격 역시 네게는 없다!”
그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 순간, 당언운의 곁을 맴돌던 흑룡들이 고통에 찬 포효를 내지르기 시작했다.
“캬오오!”
이어서 녀석들의 체내에서 전광이 흐르면서 끊임없이 펑, 펑 소리가 났고 이내 그중 한 마리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순식간에 나머지 네 마리 역시 요란한 소리를 내며 폭발해버렸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거대한 충격에 당언운은 표정이 급변했고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렸다. 그러자 미간에서 한 줄기의 흑룡 문양이 번득였고 그로부터 검은색 기운이 퍼져 나오더니 당언운의 몸을 감쌌다. 덕분에 그는 폭발에서도 무사할 수 있었다.
찬 숨을 들이마신 그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아무런 적의도 드러내지 않았는데 상대가 자신의 속내를 꿰뚫어본 것만 같아 두려웠다.
한데 그가 이유를 묻기도 전에 상대가 서늘한 눈빛을 번득이며 오른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 순간, 그의 손등에서 마수의 뼈 형태 문양이 살아 숨 쉬는 듯 꿈틀거리기 시작했고 뒤이어 그 손가락을 타고 모습을 드러냈다.
“저건…?”
눈 깜짝할 사이에 한제의 앞에 네 개의 가시가 서늘한 빛을 번득이는 거대한 마수의 뼈가 나타나더니 곧장 당언운을 향해 돌진했다.
“이런!”
표정이 어두워진 당언운이 뒤로 물러나면서 미간에서 다시 흑룡 문양을 번득이며 검은색 안개를 뿜어냈다. 그 안개에는 원력이 깃들어 있었고 그 문양은 미간에서 떨어져 나와 한 마리 흑룡을 소환해냈다.
“캬아아!”
이 흑룡은 길이만 약 1만 척 정도로 엄청난 위압감을 뿜어냈다. 칠흑처럼 검은 몸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비늘이 달려 있었고 그 비늘은 각종 문양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 것 같았다.
포효를 내지른 흑룡은 몸에서 끝없는 원력의 파동을 발산하며 입을 쩍 벌린 채 마수의 뼈를 삼키려 들었다.
“원룡(元龍), 삼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