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769
한제는 미간을 찌푸린 채 등불을 바라보았다. 그의 안색은 점차 서늘하고 묵직해졌다.
“아냐! 바람이 더 이상 불어오지 않는데도 등불은 여전히 흔들리고 있어!”
이때 한제는 자신의 눈앞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도를 증명하는 행위와 비슷하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다만 그가 증명하려는 도는 자신의 것이 아닌 천운자의 도였다.
그는 벌써 수백 년이나 천운자를 알고 지냈다. 하지만 예전과 달리 지금의 한제는 어렴풋하게나마 상대의 실마리를 파악할 수 있었다.
천운자에게는 매우 많은 비밀이 있다. 그중에서도 한제를 가장 두렵게 만드는 것은 상대의 생각을 조금도 읽어낼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천운자는 이 등불처럼 천태만상으로 변화한다. 그 가장 기초적인 상태를 찾아야 해. 하지만 그러려면 바람만 단절시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지.”
한제는 깊은 생각에 잠긴 채 시종일관 등불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처음으로 본원을 목격하다
시간은 천천히 흘러 부지불식간에 삼경이 넘어갔다. 창밖에는 짙은 어둠이 깔렸고 산바람만이 창호지를 두드리며 쉭, 쉭 소리를 냈다.
적막한 밤이라 모든 소리들은 더 또렷하게 들려왔다.
“바람이 움직이고 산이 움직이고 불이 움직이고⋯⋯.”
한제는 고개를 번쩍 들고 걸음을 내딛더니 그 순간 방에서 사라졌다.
그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칠흑처럼 어두운 하늘이었다.
그의 아래로는 천운종의 자봉이 있었다.
밤이라 그런지 서늘한 바람이 더욱 격렬하게 불어왔고 하늘에는 시커먼 구름이 깔려있었다. 그 구름 때문인지 어둠이 짙었다.
한제는 오른손을 들더니 하늘을 향해 가볍게 손짓했다. 그 손짓에는 그가 환우(喚雨)를 깨달았을 당시의 규칙이 한 줄기 어려 있었다.
하늘에 순간 바람이 일었고 어두운 구름은 가는 빗줄기가 되어 내리기 시작하면서 흩어졌다. 구름이 사라지자 환한 달빛이 남김없이 대지에 뿌려졌다.
그 달빛이 쏟아지는 자봉에 검은 그림자가 하나 나타났다.
산바람이 불어오자 자봉의 풀과 나무들이 흔들리며 서로 부딪히는 가벼운 소리가 났다.
산봉우리와 그 뒤쪽의 그림자를 바라보고 있자니 꼭 이 산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림자만큼은 아무런 변화 없이 그대로였다.
“이 산은 움직이지 않아!”
한제는 머릿속에서 쾅 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 뒤이어 정수리에 누군가가 찬물을 쏟아부은 듯 정신이 퍼뜩 들었다. 어떤 실마리 하나를 잡아챈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저 바람은 표면적인 것만 흔들 뿐. 이 산은 움직이는 것 같지만 사실 흔들리는 것은 내 마음이야! 내 마음이 움직여서 이 산이 움직인 것이다!”
한제의 눈에 드러난 깨달음의 빛이 더욱 짙어졌다. 몸을 훌쩍 날린 그는 다시 누각 안으로 돌아왔다.
등불을 바라보던 한제의 호흡은 꼭 죽은 사람처럼 차차 안정되어 갔다.
등불은 시종일관 가볍게 흔들리며 츠츳 하고 타들어 가는 소리를 낼 뿐이었다. 하지만 한제의 눈에 들어온 이 등불은 마치 거센 파도처럼 격렬하게 흔들렸다. 그렇게 여러 변화를 일으키다가 점차 잠잠해지던 등불은 마치 정신술(定身術)에 당한 듯 완전히 멈춘 채 움직이지 않았다.
그 순간, 한제의 심신이 바르르 떨렸고 그의 눈빛은 믿을 수 없는 무언가를 본 것처럼 커졌다. 체내의 원력은 제멋대로 빠르게 돌면서 신체 곳곳으로 흘러들었고 이에 펑, 펑 하는 소리가 체내에서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마치 온몸의 혈이 뚫린 일반인 무사처럼…
원력이 체내를 맴돌던 와중에 미간에서 세 번째 눈이 서서히 열렸다. 하지만 그 눈은 붉은 빛을 뿜어대는 대신 뭔가를 흡수했고 이에 체내에서 맴도는 원력의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였지만 한제는 어떤 고통도 느끼지 않았다. 지금의 그는 그저 넋을 놓은 듯한 눈으로 눈앞의 등불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는 자신이 본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가 본 것은 더 이상 일반적인 등불이 아니라 아주 나약하고 나약한 불꽃이었다. 한제 자신이 손짓으로 소환해낸 불꽃.
만약 그뿐이라면 이렇게까지 놀라지는 않았을 터였다. 그러나 그 불꽃은 정지된 것 같아 보였지만 사실은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 움직임은 일종의 되감기였다. 마치 모종의 힘이 그 불꽃을 감싸 한제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그 불꽃을 빠르게 흩어버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이 불꽃은 끊임없이 확대되고 있었다.
한제는 커지고 커지고 커지다가 결국 처음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해진 불꽃의 깊은 곳에 숨겨진 비밀을 보게 됐다.
그것은 하나하나의 미세한 원력점이었다. 그 원력점들은 서로 교차하며 지나가거나 특정한 방식으로 이따금씩 충돌했고 그때마다 약간의 작열감이 발산됐다.
언뜻 보면 그 원력점들의 움직임은 난잡하고 불규칙해 보였지만 모두 모종의 규칙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불의 규칙이야.”
처음부터 끝까지 눈 한 번 떼지 않고 등불만을 바라보던 한제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좀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을까?”
그 순간, 수많은 원력점들은 좀 전의 불꽃처럼 확대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언가가 피어올랐고 한제 체내의 원력에서 콰르릉 하는 거대한 소리가 났다. 뒤이어 그는 미간에서 찌르는 듯한 고통을 느끼며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이마에서 흐른 식은땀에 옷깃이 다 젖은 상태였다.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한 얼굴로 한제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좀 전의 그건 뭐지? 설마… 본원인가? 규칙을 파악하기는 했지만 그 본원을 본 순간에 몸이 버텨낼 수 없었어.”
한제는 다시 생각을 더듬다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 눈을 감았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창밖의 어둠도 점차 흩어졌다.
하늘이 희끄무레하게 밝아오던 그때, 한제가 두 눈을 번쩍 떴다. 모든 것을 간파한 듯한 빛이 그의 눈에서 뿜어져 나와 창밖으로 쏘아져 나갔다.
그때, 누각 밖에서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곱째야, 들어가도 되겠느냐?”
“들어오십시오.”
한제가 덤덤하게 대답했다.
한참 뒤에야 문이 삐걱 소리와 함께 열렸고 보라색 옷을 입은 아름다운 여인이 입술을 깨문 채 들어왔다.
여인의 미모는 당시 류미나 홍접에 비할 정도는 아니었으나 분명 매우 아름다웠다. 얼굴 곳곳에 드러난 세월의 흔적으로 그녀의 나이를 짐작할 수 있었다.
안으로 들어온 여인은 묵묵히 의자 하나를 차지하고 앉았다. 그녀는 텅 빈 눈으로 한제가 아닌 전방만을 멍하니 주시한 채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방안은 고요했다. 한제는 다시 눈을 감고 좌선하려 했다. 허나 그 순간 보라색 옷을 입은 여인의 미간에서 뻗어 나온 신식이 어렴풋하게 느껴졌다.
이 신식은 한제를 훑었으나 뭔가 망설이고 있는 듯한 기색이었다.
그 신식이 가까워진 순간, 한제는 두 눈을 번쩍 떴다. 그의 번득이는 눈빛에 가까이 다가섰던 신식은 벌벌 떨며 뒤로 물러나려 했다. 허나 그 순간 허공에 고정된 채 꼼짝도 하지 못했다.
여인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녀는 자신의 신식이 조금이라도 움직였다가는 곧장 상대에게 집어 삼켜질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한제는 그 여인을 응시하며 고정시켰던 상대의 신식을 풀어주었다. 그러자 여인의 신식은 체내로 돌아갔다.
여인은 한제의 시선 아래 그 어떤 것도 숨길 수 없었다. 실제로 지금의 한제는 그저 힐긋 보는 것만으로도 여인을 속속들이 파악할 수 있었다.
겉으로 드러난 그녀의 수준은 영변기 후기 정도였으나, 체내의 여섯 갈래 봉인 아래 진정한 수준이 숨겨진 상태였다.
“무슨 일이신지요?”
한참 후에야 한제가 불쑥 묻자 여인은 뭔가 말하려는 듯했지만 이내 입을 다물었다.
“하실 말씀이 없다면 이만 가주시지요.”
말을 마친 한제는 오른쪽 소매를 휘둘러 미풍을 불러일으켰다. 그러자 문이 벌컥 열리더니 여인의 몸은 약간 떨리면서 문 쪽으로 밀려났다.
“이한제, 네 수준은 지금 두 번째 단계에 이르렀지. 천운종 내에 도사리는 위기가 두렵지도 않으냐?”
문 밖으로 밀려나기 직전, 여인이 내뱉은 말에 한제가 오른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밖으로 떠밀려 나가던 여인의 몸은 우뚝 멈추었다.
“그게 무슨 뜻이지요?”
여인은 이를 악물더니 한제를 똑바로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당시 도망치지 못했다면 넌 이미 알 수 없는 이유로 실종됐을 것이다! 너도 알고 있겠지만 스승님을 제외한 천운종의 제자 수천 명 중, 심지어 일곱 명의 직계 제자 중에도 음의의 수준에 이른 자는 없어!”
한제는 침착한 얼굴로 그 여인을 바라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문정기 절정을 돌파하여 음의에 이르면 그자는 1년 안에 실종되어버린다. 이건 우리 천운종의 금기이자 저주 같은 일이야.”
보라색 옷을 입은 여인은 줄곧 한제를 응시하고 있었으나 그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믿기 힘들겠지. 나 조현몽은 일곱 살 때 이곳에 와 천운종에서 1천 년 넘게 수련을⋯⋯.”
조현몽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한제는 고개를 저으며 말을 끊어 들었다.
“그 사실을 제게 알렸다는 것을 스승님께 들킬 걱정은 안 하셨습니까?”
“스승님은 매일 묘시에 폐관수련을 하시지. 중대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깨어나지 않으신다. 수천 년 동안 이어오신 습관이야.”
조현몽의 말이 빨라졌다.
“이한제, 내 말은 사실이다!”
한제는 잠시 묵묵히 조현몽을 바라보다가 불쑥 물었다.
“그게 사저의 체내에 여섯 갈래의 봉인이 있는 이유입니까?”
조현몽은 한제가 자신의 비밀을 눈치챘음에도 놀라기는커녕 씁쓸하게 웃었다.
“그 외의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내 명혼(命魂)은 스승님의 손에 달려 있어서 도망칠 수도 없어. 떠난다고 해도 스승님이 원하기만 하시면 내 명혼은 그대로 파괴될 테니까.”
조현몽은 가늘게 몸을 떨었다.
“나처럼 스스로의 수준을 봉인한 동문도 적지 않아. 그중 적계(赤系) 소속인 손홍의 수준이 가장 높지. 그녀의 체내에는 열한 개의 봉인이 있어서 겉으로 드러난 수준은 문정기 중기에 불과해. 심지어 깨달음을 얻는 것을 스스로 거부하고 있지. 하지만 그녀가 봉인을 해제한다면 그 수준은 삽시간에 규열기 초기에 이르게 될 거야. 그리고 적계의 노해도 체내의 봉인을 해제한다면 그 순간 양의 절정에 이를 테고.
그녀의 말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한제는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은 이 둘뿐이야. 하지만 천운종 전체를 찾아보면 훨씬 많을 거야. 허나 잠시라도 봉인을 풀면 다시 봉인한다 해도 1년 안에 실종될 것이 뻔해. 내가 아는 바에 의하면 스승님은 수만 년간 수련을 해오셨고 또 수많은 제자들을 거느리셨지. 하지만 여태까지 음의 이상의 수준에 이른 사람은⋯⋯.”
한제는 말없이 조현몽을 훑어보았다. 그녀의 몸에 숨겨진 봉인들은 매우 기이했다. 마음먹고 살펴보지 않는다면 그 봉인의 존재를 눈치채기란 어려울 것 같았다. 허나 천운자 앞에서 이런 것은 아무런 소용도 없을 터였다.
“물론 스승님도 우리가 수준을 숨기는 것을 알고 계실 거야. 그런데도 저지하지는 않으시지. 그저 무시하실 뿐이야.”
조현몽의 얼굴에 두려움의 빛이 드리웠다. 그것이 바로 수준을 숨기고 있는 천운종 제자들이 가장 의아해하면서 또 두려워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5백 년 전, 등계(橙系)의 한 수련자가 체내의 봉인을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만들었다가 결국 감당하지 못하고 해제한 적이 있어. 그리고 다음 날, 그는 바로 사라졌지. 도망칠 수도 없고 수준을 숨기는 데도 한계가 있어. 이런 삶을 난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 게다가 1백 년 전부터 내 봉인은 풀리려는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고 더 이상은 통제도 할 수 없어. 아마 갈수록 더욱 힘들어지겠지. 이한제, 제발 나 좀 살려줘! 네가 하라는 대로 다 할게. 제발 살려만 줘!”
조현몽은 눈물을 흘리며 한제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목소리는 어느새 갈라져 있었다.
“어제 네가 돌아왔을 때부터 수준을 숨기고 있는 천운종의 모든 제자들이 너에게 모든 신경을 집중하고 있어. 그들은 네가 언젠가 반드시 실종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