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957
한제는 그 석상 아래에 멈춰 섰다. 그리고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는 그 석상의 머리 위로 올라갔다.
창송자가 이곳에서 수련한 공법은 백세혈원화영술(百世血元化嬰術)이었다. 그가 봉계의 일곱 번째 영을 소환하는 술법을 깨달은 것도 바로 이 석상에서였다.
혈원화영이라는 신통술을 수련하면 원영과 같은 아홉 존재를 소환할 수 있는데 그 위력은 일반적인 원영을 월등히 능가했다. 더욱이 이 아홉 개의 원영을 통해 창송자는 신통술을 수련하는 속도를 무려 아홉 배나 높일 수 있었다.
또한 놀랍게도 각각의 원영이 신통술을 하나씩 응집할 수 있었다. 신통술 중에는 상극이라 같이 익힐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때문에 아무리 좋은 신통술이라 해도 그중 하나를 택해야만 하는 경우가 많다.
청의의 노부인이 익힌 양음귀조술도 그런 신통술 중 하나였다. 그러나 아홉 개의 원영이 있으면 이런 제한이 사라지는 것이다.
허나 창송자는 청의의 노부인과 싸우면서 하나의 원영을 빼앗겼고 그 후에는 한제의 신통술에 연속적으로 공격을 당하면서 두 개가 큰 손실을 잃어 여러 원영의 신통술을 미처 쓰지 못했다.
번개 낙인
창송자가 잃어버린 육신을 회복한 것도 그의 미간에 새겨진 번개 모양 낙인이 석상과 깊은 연관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가 가지고 있던 아홉 개의 원영 중 하나는 이전에 석상 미간의 번개 모양 낙인에 깨달음을 남겨 놓았다.
그리고 육신을 잃게 되자 아홉 배로 증폭시킬 수 있는 깨달음의 힘으로 석상의 미간에 있던 일부분의 유산을 억지로 얻어 육신을 되찾은 것이다. 허나 지금 그 유산은 한제와의 두 번째 싸움에서 한제의 오른쪽 눈에 응집된 상태였다.
숨을 깊게 들이마신 한제는 심신을 펼쳐 석상 주위를 덮은 뒤 오른쪽 눈으로 전광을 번득였다. 그 전광이 주위를 맴돌았고 석상 미간의 낙인이 격렬하게 번득이면서 요란한 소리를 냈다. 쿠쿵 하는 소리도 어렴풋이 들려왔다.
한제는 두 눈을 감고 신식을 석상 주위에 두른 뒤 온몸으로 전광을 발산했다.
태고의 뇌룡은 세상 모든 천둥번개의 통제자다. 허나 석상의 미간에서 튀어나온 번개는 아주 오래된 듯한 기운을 풍기면서도 뇌룡의 명령에 따르지 않고 한제가 통제하고 있는 번개와 끊임없이 충돌했다. 통제권을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번개와 번개 사이의 접전이었다.
창송자는 구걸하고 빌면서 이 석상 안에 남아 있던 천둥번개의 힘을 얻고 그것을 스스로의 신통력으로 삼았다. 덕분에 그는 심지어 고신의 육신에도 피해를 입힐 수 있는 봉계의 일곱 번째 영을 소환할 능력까지 가졌다.
그가 택한 것은 순종의 길이었다. 석상을 신처럼 마음에 모시고 하나의 원영이 그 공법을 깨닫고 수련을 이어나가게 한 것이었다. 이는 위험성이 적고 자질만 충분하다면 수확을 얻을 수 있는 길이었다.
허나 한제가 그런 길을 택할 리가 없다. 하늘마저 거역하고 나선 그는 오히려 하늘과 싸우면서 스스로의 도를 형성하기를 원했다.
그는 창송자처럼 깨닫거나 석상 미간의 번개 모양 낙인에 따르지도 그 안에 숨겨진 뜻을 깨우치지도 석상에 굴종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는 석상의 천둥번개가 자신 앞에 무릎 꿇게 할 생각이었다. 석상을 깨닫는 대신 그 안에 들어 있는 힘을 통째로 흡수해 오히려 자신을 숭배하게 하겠다는 생각.
이는 그의 거만함이자 고신의 위엄이었다.
태고의 수많은 종족 가운데 고신족에 비할 수 있는 존재가 있었던가?
월서족은 강력했지만 한제는 영이를 통해 그들이 이전에는 고신족의 종에 불과했음을 알게 됐다. 그렇다면 다른 종족도 고신족 앞에 굴복할 수밖에 없을 터였다.
한제의 눈에 오연한 빛이 드러났다.
“흥! 감히 나를 거역할 생각인가!”
차게 코웃음을 치며 석상의 머리를 힘껏 후려치자 콰르릉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석상은 무너지지 않았지만 매우 강력한 번개가 폭발하면서 하늘로 솟구치더니 전광을 번득이는 한 마리 용이 되었다.
사방의 천둥번개가 모두 녀석에게 흡수되었다. 용은 광기를 품은 모습으로 한제와의 거리를 맹렬히 좁혔다.
천둥번개의 용은 매우 거칠어 보였지만 한제는 그보다 더 거칠었다. 용이 광기 어린 것 같아 보인다면 한제는 그보다 열 배는 더 광기 어린 모습이었다.
“크오오오!”
포효를 내지르는 용이 코앞으로 다가온 순간, 한제의 오른쪽 눈에서 전광이 튀어나갔다. 동시에 그의 미간에서는 태고의 뇌룡 형태 원신이 나타났다. 칠채계에 강림한 듯 위엄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한제의 원신은 곧장 달려들어 번개의 용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캬오오!”
그때, 한제의 미간에서 어렴풋이 고신의 반점이 드러났다. 온몸에 고신의 힘이 차오른 것을 느낀 순간, 한제는 허공을 힘껏 움켜쥐었다. 순간 거대한 고신의 팔이 허상으로 나타나 석상에서 튀어나온 용을 꽉 틀어쥐었다.
“캬아아!”
전광을 번득이던 용은 격렬하게 몸을 떨며 발버둥 쳤다. 하지만 고신의 손은 녀석을 더욱 강하게 옥죄었고 용의 몸에는 전보다 더 강하고 많은 천둥번개가 흘렀다.
그 순간, 한제의 원신이 달려들어 그 용을 한입에 집어삼킨 뒤 곧장 체내로 돌아왔다. 그러자 그의 오른쪽 눈에서 번득이는 전광이 수백 배나 강해졌다.
“세상 모든 천둥번개는 내 명령에 따라야 할 것이다!”
한제의 침착하지만 엄청난 위엄이 깃든 목소리가 퍼져 나가자 사방의 천둥번개가 모두 몰려들어 그의 오른쪽 눈에 응집되어 번개의 낙인을 형성했다. 그리고 그 순간, 석상에는 대량의 균열이 일어났다. 두 다리에서부터 시작된 균열은 순식간에 퍼져 나가면서 머리에 있는 한제에게 달려들었다.
쩌적! 쩌저적!
요란한 소리를 내며 뻗어 나가는 균열 안에서 밝은 전광이 번득였다. 그것들이 끊임없이 퍼져 나가는 동안 석상은 산산조각이 났지만 떨어져나가지는 않았다.
전광을 품은 균열은 순식간에 한제에게 이르렀다. 그때, 콰쾅 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석상의 머리 부분에 수많은 은빛 뱀 같은 번개가 나타나 1천 척에 이르는 거대한 번개 공을 형성했다. 그 공의 중심에는 한제가 있었는데 번개들은 그의 통제에 따르지 않겠다는 듯 몸부림을 쳤다.
한제의 온몸에서는 전광이 흐르고 있었다. 석상에 대항하기에 그의 수준이 좀 부족할 수도 있지만 태고의 뇌룡을 원신으로 가진 그는 세상 모든 천둥번개의 통제자였다. 이는 수준과는 무관한 전투였다.
석상은 태고의 사람들 중 섬뇌족의 선조를 본 따서 만든 것이었다. 그는 이미 죽었지만 평생 천둥번개와 더불어 살다가 번개 모양의 낙인이 되어 석상의 미간에 새겨진 만큼 쉽사리 남에게 굴종하려 하지 않았다.
소문에 의하면 섬뇌족 선조는 한 줄기 천둥번개가 되어 하늘에 거역하고 천도에도 굴종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를 숭배하면 천둥번개의 권리를 얻을 수 있지만 그에게 반항하면 천둥번개에 영혼이 소멸되고 말았다.
하지만 한제는 그를 숭배할 마음이 없었다.
그가 오른쪽 눈으로 전광을 번득여 다시 소환한 태고의 뇌룡은 주위를 맴돌다가 빠르게 수축하고 있는 은빛 번개 공을 향해 포효를 내질렀다. 이 포효에는 천둥번개를 통제하는 위엄이 배어 있었다.
은빛 번개 공은 끊임없이 수축하다가 한제로부터 10척 떨어진 곳에서 우뚝 멈추더니 더 이상 꼼짝도 하지 못했다.
한제는 뇌선처럼 우뚝 서 있었다. 그의 몸에서는 고신의 기운이 발산되고 있었다. 고신과 천둥번개가 결합할 수 있다면 그는 고대 뇌신이었다.
“굴복해라. 그러지 않으면 파멸하리라!”
한제는 신식을 통해 뜻을 전했다. 주위를 에워싼 전광은 의지를 품은 존재, 영혼임을 알고 있었다. 말하자면 주위의 천둥번개는 석상으로 만들어진 사람이 죽은 뒤 그의 의지로 만들어진 뇌령(雷靈)인 셈이었다.
콰쾅!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한제의 주위를 에워싼 번개 공은 덜덜 떨면서 그의 몸에 흐르는 천둥번개의 위엄과 고신의 기운 앞에 결국 굴복했다.
뒤이어 그것들은 줄기줄기 번개가 되어 한제의 원신에 흡수되었다. 한제의 원신은 거대하게 부풀기 시작했고 석상은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 바르르 진동했다.
한제는 허공에 뜬 채로 번득이는 두 눈으로 석상의 미간에 아직 흩어지지 않고 남은 번개 낙인을 바라보았다.
“너희 종족은 내게서 천둥번개를 통제할 권리를 빼앗지 못한다!”
한제의 오른쪽 눈이 번득이자 태고의 뇌룡이 포효하며 그 주위를 맴돌다가 번개 모양의 낙인이 되어 석상의 미간으로 달려들었다.
쾅!
격렬한 소리와 함께 번개는 곧장 석상 미간의 낙인에 떨어졌다. 그 순간, 석상의 두 눈에서 밝은 빛이 발산되었다.
그 눈에서 한제는 우주를 보았다. 그 우주에는 흘러넘칠 듯한 힘을 지닌 진이 있었다.
성역 전체를 덮고 단단히 봉쇄한 그 거대한 진 밖으로는 기이한 사람들이 빽빽하게 서 있었다. 옷차림으로 봐서 수련자는 아닌 듯했는데 냉랭한 조소와 불만이 어린 표정으로 진 안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선기와 원력이 맴도는 진 안에서는 수많은 상고 시대 연기사와 선인들이 진을 빠져나오려고 기를 쓰고 있었다. 허나 진은 매우 견고해 그들의 공격 앞에서도 끄떡없었다.
진에는 아홉 갈래의 빛이 흐르고 있었다. 그중 한 갈래의 빛 안에는 도끼가 들어 있었는데 이 도끼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죽이고 있었다.
아홉 갈래의 빛 중 다른 한 갈래는 번개였다. 번개는 콰르릉 소리를 내며 수련자와 선인들을 죽여 나갔다.
진 밖에 있는 이들의 눈에 드러난 비웃음의 빛은 갈수록 짙어졌다. 신분이 높은 이가 천한 이들을 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러던 와중 번개에 공격당한 어느 선인이 죽기 직전 악에 받친 목소리로 외쳤다.
“절대로 가만두지 않겠다! 언젠가 우리 후손들이 반드시 이 진을 깨고 너희를 도륙할 것이다! 계외에 피로 이루어진 강이 흐르게 만들 것이야!”
석상의 두 눈에서 나타난 환영은 흩어져 사라졌다.
그 순간, 진에서 번득이던 번개가 허공과 우주, 시간을 가르고 곧장 한제의 오른쪽 눈으로 달려들었다. 한제는 수백 척을 밀려난 뒤에야 멈추고는 싸늘한 얼굴로 석상을 노려보았다.
콰르릉!
석상은 한 무더기 돌 조각으로 무너져 내렸고 사방으로 먼지가 일었다.
“계외⋯⋯.”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한제는 좀 전에 환영을 보았을 때 온몸의 피가 뜨겁게 끓어오르는 듯했다. 특히 이런 감정은 진 안에서 죽어간 선인들을 보는 순간 극에 달했다. 지금껏 수많은 분쟁과 싸움으로 수련자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수도 없이 봐왔지만 이런 감정을 느낀 적은 없었다.
죽어가던 어느 선인의 울부짖음이 귓가에 생생했다.
“절대로 가만두지 않겠다! 언젠가 우리 후손들이 반드시 이 진을 깨고 너희를 도륙할 것이다! 계외에 피로 이루어진 강이 흐르게 만들 것이야!”
오른쪽 눈으로 번개의 표식이 번득이며 무너진 석상을 응시하던 한제는 한참 뒤에야 몸을 돌려 세월금에 둘러싸인 산봉우리로 향했다.
한편, 한제가 석상의 천둥번개를 흡수하던 순간, 멀리 떨어진 안개 속에서는 계외에서 온 세 청년 중 번개 낙인의 청년이 하얗게 질린 채 덜덜 떨었다.
그는 어디선가 천둥번개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음을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한쪽이 발휘한 천둥번개의 힘은 자신과 같은 뿌리였으나, 다른 한쪽이 힘을 발휘한 순간 청년은 체내의 힘을 통제할 수 없었다.
곁의 두 청년은 별다른 느낌을 받지 못한 듯했다. 초승달 낙인의 청년은 지금껏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고 있는 듯 안색이 다소 어두웠다.
화염 낙인의 청년은 탐욕에 젖은 얼굴이었다. 그가 노리는 것은 한제의 신식이 자신들을 스치고 지나갔을 때 그 너머에서 느낀 화염의 힘이었다.
한참 뒤, 세 사람은 석상이 있던 곳에 이르렀다.
석상이 가루가 된 모습을 본 번개 낙인의 청년은 더욱 창백해졌다. 그는 이 석상이 자신의 선조임을 느낄 수 있었다. 어째서 이런 곳에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주 오래전 선조가 남겨둔 뇌령(雷靈)을 누군가가 억지로 취한 것이 분명했다. 분노와 큰 두려움에 청년은 몸을 떨었다.
“어떻게 하지?”
번개 낙인의 청년은 두 동료에게 물었다.
“우리 셋이서 봉인을 푼다면 2각 정도는 절정의 힘을 발휘할 수 있어. 그럼 그자를 죽이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
화염 낙인의 청년이 입술을 혀로 핥으며 답했다. 허나 번개 낙인의 청년은 내키지 않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냥 떠나는 게 좋겠어. 예감이 좋지 않아. 그냥 장로님께 알리는 게…”
“귀한 것은 본디 위험한 곳에서만 얻을 수 있는 법이지.”
초승달 낙인의 청년이 비웃는 목소리로 말했다.
번개 낙인의 청년은 그런 상대를 잠시 바라보다가 말없이 천둥번개의 흔적을 찾아 나아갔다. 두 청년이 그 뒤를 따라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불과 불의 대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