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254
255. 사람의 자격 (20)
***
위원들은 이렇게 예측했다.
“아시프-666이 여기까지 도달하는 데에는 꽤나 긴 시간이 걸릴 겁니다.“
그들은 아시프-666이 시설에서 키워진 촉수 괴물들을 활용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리고 해당 방법의 단점이라고 하면 한 번 도약할 때 촉수들에게 가해지는 심신의 데미지가 상당하며 신성력을 통한 치료를 감안해도 어쩔 수 없이 회복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민준 일행이 한때 델에게 의존하여 도주할 때처럼 말이다.
위원들은 이렇게 말했다.
“위원회가 정상적인 방법으로 함대를 운용하며 진군했을 때와는 경우가 다릅니다. 열일곱 번의 차원 도약 과정에서 우리는 촉수들을 딱 한 번 사용했지만, 그들은 매번 의존해야겠지요. 그리고 애초에 강탈한 우주 모함을 다루는 훈련 기간도 필요할 테구요. 설비의 복잡함과 규모를 고려하면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들의 예측은 틀렸다.
죄인의 군대가 나아가는 경로가 생각보다 빠르게 위원회 측에 알려졌다.
그 방법도.
“터미널을 하나씩 점령하면서 차원을 넘고 있다고?!”
아시프-1이 맨몸으로 차원을 넘을 수 있기에 가능한 방법이었다.
그들은 좀 더 번거롭지만 시간을 훨씬 단축시키는 길을 골랐다.
시작은, 아시프-1이 인접 차원 중 적당한 곳을 골라 터미널에 침투하고 관제 인원들을 지배한다. 그리고 정상적으로 오퍼레이션이 돌아가는 그곳의 슬롯 하나를 확보하는 것이다.
거기까지 준비하고 나면, 도약 코드 생성기를 내재한 우주 모함은 손쉽게 차원을 뛰어넘어 아시프-1을 따라왔다.
일단 한 척이라도 넘어가면 나머지는 식은 죽 먹기다.
“왜 저렇게 하는 것이지? 뭐가 급해서?”
“함대를 통제하는 인공지능은 세뇌가 불가능하니 아예 꺼 버렸을 겁니다. 수동 조작에 의존한다면 익숙해지기까지 긴 훈련이 필요할 텐데 이렇게 빨리···.”
기껏 엄청난 전력을 빼앗아 놓고, 그걸 십분 활용할 준비도 하지 않은 채 무작정 빠르게 진군하는 것이었다.
위원회가 보기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
진군 과정에서 훈련을 병행하며 시간을 들일 거라는 예측은 완전히 틀렸다.
한편, 경로상 모든 터미널을 건드렸기에 그 움직임은 시간 차를 두고 전 차원에 알려졌다.
소식에 가장 기민하게 반응한 이들은 당연히, 각 차원의 지배자 노릇을 하는 드래곤들이었다.
“우주 모함이 158척?!”
“아시프-666? 그건 또 누구야?”
“지구라는 행성에서 복역하던 수형자라는군.”
“아··· 그 탈옥범? 그걸 아직도 못 잡고 있었어?”
“못 잡은 게 문제가 아니라, 꼴을 보니 위원회와 전쟁이라도 벌일 기세야.”
전 차원계의 드래곤들은 긴장했다.
아시프-666이 그들의 땅을 지나다 시험 삼아 총구를 돌려 보기라도 하면 즉시 파국과 재앙이 닥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 탈옥범은 지금 타이밍에 드래곤까지 적으로 돌릴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들의 함대는 경유하는 차원에서 약탈이나 무력 행사를 삼갔다. 그저 다음 차원으로 도약할 준비를 하고 조용히 지나갈 뿐이었다.
용족들은 이 상황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논의했다.
“위원회에서 미친 듯이 협조 요청을 보내고 있어. 놈들 함대가 지나갈 가능성이 있는 차원은 터미널을 다 폐쇄해 달라고. 설사 빼앗기더라도 가동 불가능한 상태로 만들어 놓으라고 말이야.”
조금이라도 진군 속도를 늦추려는 위원회의 노력이었다.
“뭐야, 인원은 다 철수시키고 유도탑의 마정석도 빼놓으라고?”
“그 정도가 아니야. 아예 시설과 장비를 분해해서 다른 곳에 놓으라는데?”
“······미친 놈들 아니야?!”
탈주범의 이계 도주를 막기 위해 지구의 터미널을 봉쇄할 때와는 경우가 달랐다.
지금은 비슷한 요구를 받은 차원이 너무 많았다. 함대가 지나는 루트의 경우의 수를 모두 고려했기 때문에 더더욱.
하지만 그랬다간 인근 차원 간 물류와 돈의 흐름이 완전히 멈춰버리게 된다.
각 차원의 지배자들은 위원회와의 채무 관계나 그들에게 종속된 정도에 따라 다른 선택을 내렸다.
지구가 그랬던 것처럼 즉각 닫아버리는 차원도 있었고, 미적거리며 최대한 늦추는 쪽도 있었다.
아시프-666의 군대는 그 틈을 노려 계속 나아갔다.
심지어, 노골적으로 그들을 위해 길을 터 주는 차원마저 나타났다.
그런 차원에서 열린 용족 회의 결과는 거의 비슷하게 도출되었다.
“158척의 행성급 무기를 탈취한 탈옥범이란··· 확실히 위협적이지.”
“하지만 지금 놈의 목적은 오로지 위원회인 것 같더군.”
하물며 목적지는, 오래전에 그들이 빼앗긴 바로 그곳.
차원계의 중심부다.
“지금은 누구 편을 들기보다 그냥 관조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래! 어디 한 번 끝까지 가 보라고 그래. 양쪽이 서로의 힘을 갉아먹으면 주면 우리는 감사한 일이지.”
“그리고, 애초에 아시프-666의 전력이라고 해 봤자 결국 위원회 것을 훔친 거잖아?”
탈옥범의 세력이 알아서 위원회의 곳간을 비우고 그들 무기를 소모해 준다고 하니, 드래곤들은 강 건너에서 구경하며 이득이나 챙기면 그만이었다.
나중에 왜 터미널을 속수무책으로 빼앗겼냐고 항의가 들어오면, 미처 손쓰기도 전에 점령당했다고 항변하면 그만이었다.
또한, 결정적으로 그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어차피 승자는 위원회다. 아시프-666이 추후 드래곤의 위협이 될 가능성은 없어. 그러니 서로 싸우게 두는 게 제일 좋다. 그 죄인이 위원회에게 가능한 많은 피해를 입히도록.”
그렇게 상당 수 드래곤들의 협조 아닌 협조를 받으며, 함대는 계속 진군했다. 사람들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덕분에 엔델리온의 왕은 황급히 계획을 실행해야 했다.
***
차원 #98 194.
이 세계에 존재하는 별은 대부분 광석 채굴을 위한 공업용 행성이다.
중년의 드워프, 오스달이 근무하는 이 별도 그중 하나였다.
도약 터미널의 근무자인 그는 방금 출항하는 배와의 교신을 마쳤다. 운반선은 이 별에서 채굴되는 특수한 금속을 잔뜩 실은 채 다른 차원으로 떠나갔다.
오스달은 한숨 돌리며 품에서 파이프를 꺼내 물었다.
‘여기서 더 일할 수 있는 시간도 앞으로 3년 정도인가?’
이 행성에서 생산되는 엘레브리움이라는 이름의 금속은 마법의 매개체로 사용되기에 수요가 높지만, 이곳의 매장량은 앞으로 3년치 밖에 남지 않았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오스달의 고용주이자 이 행성 소유주인 광업조합은 드래곤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었다.
그리고 드래곤은 피고용인들의 고용안정성이나 생계 따위에 관심 없기로 유명한 종족이다.
‘미리미리 살 길을 찾아놓아야 한다는 소리지.’
안타깝게도 지금 미리 이직하는 건 선택지에 없었다. 드래곤들의 원한을 살 테니까.
일단 해고당하고 난 뒤에나 새 일을 시작해야 한다. 고용주의 권리와 힘이 극단적으로 강할 경우 일어나는 상황이었다.
‘망할 도마뱀 새끼들.’
그렇게 투덜거리던 그는, 최근 고용주 중 한 명과 나눈 통신 내용을 떠올린다.
그 드래곤은 여느 때와 다름없는 협박 섞인 훈계를 섞어 업무 지시를 했다. 주인은 아니지만 주인처럼 일하고, 드래곤은 아니지만 드래곤 같은 능력을 보이라는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나불거리면서. 그 부분은 평소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런데··· 그걸 전하는 말투가 평소와 좀 달랐다.
‘묘하게 기분이 좋아 보였단 말이지.’
드래곤이 기분 좋을 이유가 무엇이겠나?
‘어디서 한 탕 거하게 해 먹었나 보지.’
이번에 출하된 엘레브리움을 매우 좋은 가격에 팔아 치운 것이 틀림 없다.
‘휴, 여기서 짤리면 난 어디로 가야 하나. 하필 요즘 같은 때에 차원 이민이라니.’
가족들을 먹여 살리려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나마 오스달은 터미널 근무자이며 자유인이니 사정이 낫다.
지금 지하에서 열심히 채굴 중인 만 오천 명의 고블린 노예들 신세와 비교한다면 말이다.
노예는 사람이 아니라 물건이다. 고블린들은 드래곤의 소유물 취급을 받으며, 탄광이 폐쇄되고 나면 이곳에 그대로 버려질 확률이 높다.
혹여 위원회에서 집단 이민을 주선할 확률도 있지만, 요즘 들어 고블린은 안 받는 차원이 늘어나는 추세였다.
다른 차원의 광산에 혹여 수요가 존재할 수도 있지만···.
‘지금 같은 시세로는 그 운송비가 노예 값보다 비싸게 계산되겠지.’
고블린에 대한 오스달의 상념은 거기에서 끊겼다.
설사 그들의 미래가 몹시 암울하고 처참하다고 해도, 그건 오스달의 잘못도 아니고 그가 신경쓸 부분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드래곤 몰래 취업처를 미리 알아보고 일종의 ‘예약’을 걸 방법이 정녕 없는지 궁리하기 시작했다.
그런 생각의 물꼬가 바뀐 것은 그 순간이었다.
어떤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던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복종해라”=
***
파앗!
외딴 행성의 화물 터미널.
그곳 하늘에 푸른 섬광이 일렁이며 터졌다.
화아아앗!
눈부신 빛이 사라질 때마다 부유하는 섬과 같은 거대한 우주 함선이 나타났다.
“좋아, 또 한 대.”
도약 터미널의 관제실에서 아시프-1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의 곁에는 멍한 눈빛의 드워프가 무심한 얼굴로 계기판을 조작한. 그 외 다른 곳에 있는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이 터미널은 애초에 화물용으로 설계되었고 운영 중이었기에, 여객용과 비교하여 직원수가 많지 않다.
아시프-1이 이곳을 고른 이유였다.
파아앗!
먼저 도약한 우주 함선이 움직여서 자리를 내면 또 한 대가 모습을 드러낸다.
터미널을 지키기 위해 설치되었던 무인 병기들은 아시프-1이 무력화시킨지 오래였다.
“위원회 놈들도 이렇게 간단하게 넘어가면 좋겠지만.”
아시프-1은 씁쓸히 웃는다. 불가능하다는 걸 뻔히 알기 때문이다.
과거처럼 쉽게 세뇌할 수 있다면 모를까, 이제는 꽤나 까다로워졌다.
“좋아, 158번째.”
마지막으로 우주 모함이 넘어오고 아시프-1은 한숨을 돌렸다.
이제 창조주로부터 다음 경유지에 대한 의사 결정을 받고, 조금 쉬면서 힘을 회복하다가 또 차원을 넘어서 비슷한 일을 반복하면 된다.
“끝!”
아시프-1은 손을 젓는다.
그러자 이제 할 일이 없어진 터미널의 직원들이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그런데··· 너무 반응이 없지 않나?’
대다수의 거주민이 광산 노예이며, 지하에서 노역에 전념하는 탓에 터미널 주변에는 눈에 띄는 거주 구역이 없었다.
그걸 감안해도 너무 고요하다.
‘우리가 이렇게 터미널을 점령해 버리면, 드래곤들이 저항은 못 해도 항의하는 티라도 내던데. 그래야 나중에 위원회 쪽에 생색이라도 낼 수 있으니까.’
이 광산 행성의 소유주 역시 드래곤이다.
모두 다른 행성에 거주하더라도 지금 상황을 전달 받았을 텐데.
그럼에도 너무나 조용하다.
이곳 직원들 기억은 사전에 전부 뒤적거린 뒤였지만, 수상쩍은 정보는 전무했다. 지하의 고블린 노예들도 평소와 다름 없이 생산 활동에 전념 중이다.
심지어 방금 전에도 특수 금속을 수출하는 운반선 하나가 정상적으로 출항했다.
‘놈들 입장에서는 별 관심이 없는 행성인가?’
뒤늦게 이 차원에 도착한 아시프-666에게 정신파를 보내려던 참이었다.
=······!=
날카로운 의념이 그의 머릿속을 파고 들었다.
그의 창조주가 발산한 것이었다.
=이 괘씸한···!=
“······?!”
아시프-1은 처음엔 그것이 자신을 향한 질책인 줄 알고 몸을 굳혔다.
하지만 곧, 한 박자 늦게 깨닫는다.
그것은 이 자리에 없는··· 창조주의 적을 향한 혼잣말 비슷한 정신파였다.
그리고 아시프-1은 아버지가 무엇을 느꼈는지 또한 알게 되었다.
——-!
아시프-1의 얼굴이 굳는다.
그가 밟고 선 건물의 바닥. 아니, 그보다 훨씬 밑에 위치한 지저의 어딘가에서.
크기를 가늠하기 힘든 마력의 폭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그리고.
쿠르르르르릉!
땅이 미친 듯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자연적인 지진과는 다른, 마력적 유인에 반응하는 대지의 몸부림이었다.
***
토드의 대위원이 물었다.
“그래서, 그 드래곤들에게 얼마나 지불하기로 약속했습니까?”
엔델리온의 왕이 답한다.
“400만 달란트.”
토드가 눈쌀을 찌푸렸다.
“터무니 없는 금액이군. 산정 근거는?”
왕은 보고 받은 내용을 더듬는다.
“행성의 토지 대금과 엘레브리움 매장량 추정치, 기간설비의 감가상각 후 가치, 기타 잡다한 자산을 다 더해서 370만 달란트. 거기에 고블린 노예 만 오천 명의 몸값을 합산하여 30만 달란트. 총 400만 달란트를 지불하기로 했습니다.”
토드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되묻는다.
“고블린 노예를 두당 20달란트로 쳤다고? 잡범에게 거는 현상금이 두당 100에서 200달란트인 마당에? 흥, 그 드래곤들의 입이 찢어졌겠군.”
왕은 무심한 어조로 말했다.
“저들의 전력을 적당히 소모시킬 수 있다면, 싸지 않은 값이지요.”
그리고는 조용히 덧붙인다.
“어차피 그대로 지불할 생각도 없습니다.”
토드가 ‘하긴, 그렇겠지.’ 라고 중얼거리며 고개를 돌린다. 그들의 시선이 마법 영상에 집중된다.
그곳에는 지저 깊숙한 곳에서 뒤틀린 마력 폭풍을 뿜어내는 행성이 비춰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