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awaited RAW novel - Chapter 227
227
케네마에서 일을 모두 끝낸 혁권은 잠시 쉴 여유도 없이 다시 레소토 왕국에 위치한 아틀라스사 훈련 캠프로 날아갔다.
거의 한 달 만에 다시 찾은 훈련 캠프는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다.
머물고 있는 인원들이 크게 들어 났고 각종 물자와 장비 그리고 탄약 들이 위장포로 덮인 채 군데군데 잔뜩 쌓여 있었다.
스마트폰하고 연결된 스피커에서는 시끄러운 랩과 헤비메탈 음악이 쩌렁쩌렁하게 울렸고, 여러 인종이 뒤섞인 용병들은 자유롭게 앉아 각자 장비를 점검하거나 담배를 피우면서 휴식을 취했다.
사륜구동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 혁권은 이제 정말 반군과 싸우러 간다는 것이 실감났다.
옆에 앉아 있던 하킴도 약간 긴장한 얼굴로 말을 걸었다.
“분위기가 확실히 달라졌군요.”
“그래.”
그때 마중을 나왔던 래리가 조수석에 앉아 있다가 몸을 뒤로 약간 돌리면서 물었다.
“바로 숙소로 가시겠습니까?”
“아니, 그것보다 우리 쪽 팀원들을 먼저 만나 보고 싶소.”
“그러시죠. 지금쯤이면 사격장에서 총을 쏘고 있겠군요.”
머리를 끄덕인 래리가 자세를 바로 하면서 운전대를 잡고 있던 사내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자 사륜구동 차가 방향을 옆으로 틀었다.
그렇게 얼마쯤 가자 날카로운 총성이 제일 먼저 들리고 이내 넓은 공터에 만들어진 사격장이 나타났다.
타탕! 탕! 탕!
차에서 내린 혁권이 선글라스를 벗으며 쳐다보자 마침 실전 사격 연습을 하고 있는지 치우 팀 대원 열두 명이 일렬로 늘어서서는 자동소총을 어깨에 단단히 견착한 채 전진하면서 사격을 가했다.
반동이 상당할 텐데도 몸을 거의 흔들거리지 않고 정확하게 목표를 향해 사격을 퍼붓고 있는 모습만 봐도 상당히 숙련된 정예병이라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보통 이런 훈련은 호흡이 안 맞거나 조금만 실수를 해도 오발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는데,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동안 팀워크를 제대로 맞추고 예전 기량을 대부분 회복한 걸 확인할 수 있었다.
탄창에 든 총알이 전부 떨어지자 대원들은 HK416자동소총 대신 재빨리 허벅지에 차고 있던 권총을 빼 들었다.
그러고는 정면에 보이는 표적지를 향해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수십 발이 넘는 총탄에 명중된 표적지는 어느새 구멍이 나서 너덜너덜해지다 못해 산산조각 나 옆으로 쓰러졌다.
진하게 풍기는 화약 냄새와 총성을 듣고 있으니 혁권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움켜쥐면서 가슴이 뜨거워졌다.
사격이 모두 끝나자 제대로 서 있는 표적지가 하나도 없었다.
“솔직히 크게 기대를 안 했었는데 다들 훈련을 제대로 받은 정예들이라 상당히 놀랐습니다. 어디서 저런 인원을 구하셨습니까?”
함께 구경을 하던 래리가 감탄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하자 혁권은 마치 자신이 칭찬을 들은 것처럼 어깨가 으쓱해졌다.
“한국군에서도 상위 1%에 들어가는 재원들이었으니, 이 정도 전투력을 보여 주는 건 당연한 걸 겁니다.”
“그렇군요.”
보통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그래 봤자 얼마나 잘하겠냐며 내심 콧방귀를 뀌었겠지만, 지난 보름간 직접 치우 팀 대원들의 실력을 확인했기에 래리는 머리를 끄덕이면서 수긍하는 얼굴을 했다.
몸을 돌려 사대로 돌아오던 치우 팀 대원들은 사륜구동 차 앞에 서 있는 혁권을 발견하고는 얼른 가까이 다가왔다.
그러고는 질서 정연하게 일렬로 서서 팀장인 태영준의 구령에 맞춰 절도 있게 경례를 올렸다.
“차렷. 경례!”
“충성!”
대원들의 우렁찬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이러고 있으니까 마치 내가 장군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인데…….”
혁권이 웃으면서 농을 던지자 태영준이 선글라스를 벗고 환한 얼굴을 드러냈다.
“언제 오셨습니까?”
“방금 도착했어. 다들 적응은 좀 했나? 훈련하는 건 어때?”
“처음엔 몸이 굳어서 힘들었는데 이젠 어느 정도 익숙해졌는지 할 만합니다.”
더운 날씨에 땀범벅이 된 얼굴을 보니 고생은 많이 한 것 같지만 표정만큼은 여느 때보다 밝았다.
예전엔 마치 안 맞는 옷에 억지로 몸을 끼워 넣으려고 하는 것처럼 불편해 보였다. 그러나 이젠 제자리를 찾은 것처럼 안정감마저 느껴졌다.
“그래? 안 그래도 아까 훈련하는 모습을 잠깐 봤는데, 역시 예전 실력이 어디 가진 않은 것 같더라고.”
“하하, 그렇습니까.”
칭찬이 썩 기분 좋았는지 태영준이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새로 받은 장비들은 괜찮나?”
그러자 태영준이 뒤에 있는 대원들을 한번 돌아보고는 손에 들고 있던 HK416자동소총을 툭툭 두드렸다.
“아주 좋습니다. 군에 있을 때 쓰던 것하고는 비교도 안 될 정돈데요.”
“굳이 말하자면 전 여친과 현 여친의 차이 정도쯤?”
“똥차가 가고 벤츠 온다, 뭐 이런 말도 있지요.”
“야, 그건 좀 아닌 것 같아.”
“엥, 난 비슷한 것 같은데?”
유승우하고 동기로 활발한 성격의 박원중이 여태껏 뒤에서 태영준의 눈치만 보고 있다가 말을 꺼내자 다들 기다렸다는 듯 수다를 떨어 댔다.
“조용!”
물론 태영준의 말 한마디에 모두 언제 그랬냐는 듯 입을 딱 다물어 버리긴 했지만.
자유로운 가운데 군기가 제대로 잡혀 있는 모습에 그는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압둘라흐만을 통해서 구한 장비들을 대원들이 불편함 없이 잘 쓰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다행이군.”
태영준이 그와 나란히 서 있는 래리를 번갈아 쳐다보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보스께서 오신 걸 보니 이제 곧 작전을 시작하시려는 모양이군요.”
순간 말을 들은 대원들의 시선이 혁권한테 전부 쏠렸다.
어차피 곧 알려 줄 이야기였기에 그는 작게 머리를 끄덕였다.
“곧 작전 브리핑이 있을 거니까 그렇게 알고 있도록 해.”
“예.”
대답을 하는 태영준의 목소리에 살짝 긴장감이 묻어났다.
그때 한국말로 나누는 대화를 멀뚱히 듣고 있던 래리가 슬쩍 끼어들며 말했다.
“존슨 씨, 죄송하지만 시간이 너무 지체돼서 이제 가셔야 될 것 같습니다.”
“아. 미안합니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시간이 꽤 지나 있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타머 사장을 만나 본 뒤에 다시 나누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태영준과 대원들의 경례를 받으면서 다시 사륜구동 차에 올라탄 혁권은 전에 한번 왔었던 본부 건물로 향했다.
먼지를 피워 올리면서 사륜구동 차가 멈추자 타머 사장이 환하게 웃으면서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제가 직접 마중을 나갔어야 되는데 이것저것 일이 많아서 그러질 못했습니다.”
“아닙니다. 그것보다 오면서 보니까 작전 준비가 거의 다 끝난 것 같군요.”
가볍게 악수를 나누며 혁권이 건넨 말에 타머가 자신 가득한 태도로 머리를 끄덕였다.
“지금이라도 명령만 떨어지면 바로 반군 놈들을 쓸어버릴 수 있을 겁니다.”
“말만 들어도 든든하군요.”
“자. 여기서 이럴 것이 아니라 안으로 들어가시죠.”
“그러죠.”
혁권은 하킴만 대동한 채 아틀라스사 쪽 인사들과 함께 본부 건물로 들어갔다.
타머의 사무실은 지난번에 왔을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 달라진 곳이 있기는 했는데 바로 한쪽 벽에 걸려 있는 커다란 시에라리온 지도였다.
여러 가지 색깔로 표시가 되어 있는 지도에 그가 흥미를 보이자 타머가 웃으며 말했다.
“보다 원활하게 작전을 진행할 수 있도록 정부군과 반군의 병력 배치 상황을 표시해 둔 겁니다. 여기 목표 지역에 붉은색 점이 두 개 붙어 있는 것이 보이실 겁니다.”
지도 옆에 선 타머가 손가락으로 다이아몬드 광산이 위치한 곳을 가리키는 걸 보며 그가 머리를 끄덕였다.
“바로 다이아몬드 광산을 지키고 있는 반군 거점입니다. 저희가 파악한 정보에 의하면 인접한 시두 마을에 상당수의 반군들이 머무르면서 광산에 인력과 물자를 공급하고 있더군요. 때문에 광산을 확보하려면 시두 마을에 있는 반군도 함께 제거해야 될 것 같습니다.”
그는 문득 지난번 몰래 다이아몬드 광산을 둘러보러 왔을 때 만났던 어린 토롱카와 여관 주인인 은고고의 얼굴이 떠올랐다.
분명 반군이 얌전하게 굴고 있진 않을 텐데, 난폭한 작자들 사이에서 험한 꼴을 당하고 있진 않을지 걱정이 되었다.
그렇게 잠시 딴 생각을 하고 있던 혁권은 이어지는 타머의 말에 상념에서 깨어났다.
“대략 300명가량의 반군이 광산과 시두 마을에 머물면서 다이아몬드를 채굴하고 있는 걸로 파악됐습니다.”
설명을 들으며 그는 내심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 넉넉하지 않았던 시간동안 정보를 구하기 어려운 반군 지역 상황을 이 정도로 알아낸 걸 보면 아틀라스사의 역량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하킴, 그걸 넘겨주도록 해.”
“옛.”
가방에서 꺼낸 것은 손바닥만 한 검은 태블릿이었다.
의아한 얼굴로 그것을 받아 든 타머가 설명을 바라는 듯 혁권을 쳐다보았다.
“이게 뭡니까?”
“작전 지역 내에 있는 반군 주둔지를 찍은 위성사진과 항공사진 들이 들어 있으니 참고하도록 하시오.”
깜짝 놀란 타머는 태블릿을 켜서 안에 저장되어 있는 파일들을 확인하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다이아몬드 광산과 시두 마을에 있는 반군의 배치 상황이 상세하게 나와 있었는데, 군사 위성이나 고성능 정찰기를 이용해서 촬영한 것처럼 아주 정밀했다.
“이걸 어떻게 구한 겁니까?”
“자세한 건 밝히기 어렵고 D-DAY를 전후로 48시간 동안 프레데터Predator 한 대의 지원을 받게 될 겁니다.”
“지금 프레데터라고 하셨습니까?”
그가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채 작게 머리를 끄덕이자 타머는 고개를 가로 저으면서 혀를 내둘렀다.
모델명 MQ-1 일명 약탈자라는 무시무시한 별명을 가진 프레데터는 행동반경이 900킬로미터에 달하고 30시간 이상 중단 없이 임무를 수행할 수 있었다.
그리고 4킬로미터 밖에서도 교통신호를 식별할 수 있는 고해상도 카메라 두 대와 적외선 탐지기 등 각종 정찰 장비들을 갖췄다.
무엇보다 무서운 것은 양 날개에 하나씩 장착하는 헬파이어 미사일이었다.
이걸로 조용히 공중에서 목표를 정찰하다가 타깃이 설정되면 곧바로 미사일을 날려 파괴해 버릴 수 있었다.
이런 엄청난 무기의 공중지원을 받게 될 거라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이내 정색을 하며 그를 봤다.
“혹시 이번 일에 미국이 개입된 겁니까?”
군사위성에서 촬영된 것이 분명한 정찰 사진에다가 프레데터 무인기까지 거론되니 이런 의심이 드는 건 당연했다.
만약 그렇다면 상황이 여러 가지로 달라질 수밖에 없으니 타머로서는 꼭 짚고 넘어가야 될 문제였다.
이런 반응을 예상했던 그는 가볍게 머리를 저으면서 대답했다.
“약간의 지원을 받게 된 건 사실이지만 거래에 의한 것일 뿐 다른 건 없소.”
“정말입니까?”
반군 간부인 마싱가를 제거해 주기로 약속이 되어 있지만 그걸 굳이 밝힐 필요는 없었다.
“그렇소.”
미심쩍은 구석이 없지는 않았으나 혁권의 단호한 대답에 타머는 그냥 넘어갔다.
“어찌 됐건 반군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다면 아주 큰 도움이 되겠군요.”
한쪽으로 걸어간 타머는 얼음을 넣은 잔에 위스키를 조금 채워서 그에게 건네고는 이야기를 계속 이었다.
“중간 거점을 케네마로 변경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라이베리아 쪽에 마땅한 곳이 없는 데다 케네마에서 움직이는 것이 목표 지점과 훨씬 가까워서 그렇게 바꿨습니다.”
“직선거리로 80킬로미터 남짓밖에 되지 않으니 확실히 가깝기는 하지요. 그래도 병력과 장비를 목표 지점에 투입하려면 적당한 수송 수단이 필요한데 그건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허리케인 메이커 여덟 대 정도면 되겠습니까.”
군 출신답게 뭘 이야기하는지 상대가 바로 알아차렸다.
“CH-53E 슈퍼 스탤리온 헬리콥터라…… 이것 참.”
한쪽 손에 들고 있던 위스키를 한 모금 마신 타머는 그를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이왕 말이 나온 김이 더 놀랄 것이 있으면 지금 다 이야기하시죠.”
“이제 없습니다.”
잠시 지그시 그를 바라보던 타머는 이내 잔에 남은 위스키를 한입에 다 털어 넣었다.
“그러면 예정대로 내일 아침에 선발대를 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좋습니다.”
머리를 끄덕인 혁권이 손에 든 위스키 잔을 살짝 들어 올리면서 말했다.
“작전이 무사히 끝나면 성공 보수가 지급될 겁니다.”
“기대하고 있죠.”
타머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