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awaited RAW novel - Chapter 725
725
물소 가죽으로 만든 고급 소파에 마주 보며 앉은 솔레이마니 사령관은 습관적으로 주머니에서 금색 담배 케이스를 꺼내며 말했다.
“한 대 피우겠소.”
“감사합니다.”
손을 뻗어 나란히 끼워져 있는 담배들 가운데 한 개비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각자 불을 붙이고 첫 한 모금을 빨아들이는 동안 조용하면서도 부드러운 침묵이 객실 안에 흘렀다.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솔레이마니 사령관은 하얀 담배 연기를 내뱉으면서 먼저 입을 뗐다.
“안 그래도 곤란한 상황이었는데 필요한 물자를 늦지 않게 가져다줘서 고맙소.”
“보내 주신 전언처럼 어려울 때 힘이 되는 것이 진정한 친구이지 않겠습니까.”
생색을 내거나 거드름을 피우지 않고 겸손하게 대답하는 것이 마음에 들었는지 솔레이마니 사령관은 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렇지. 친구라면 그래야지.”
“나머지 물자들도 모두 늦지 않게 도착할 겁니다.”
“나는 물론이고 이란 정부도 존슨 씨의 도움을 잊지 않을 거요.”
“도움이 됐다니 다행입니다.”
미소를 지은 그는 어느 정도 분위기가 만들어지자 조심스럽게 본론을 꺼냈다.
“이렇게 사령관님을 뵙고자 한 건 이란에 도움이 될 만한 제안을 하나 전해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계약 조건에 자신과의 만남을 집어넣은 만큼 뭔가 원하는 것이 있을 거라 예상하고 있던 솔레이마니 사령관은 담담하게 말을 받았다.
“그게 뭐요?”
“최근 시리아 문제로 이스라엘과 많은 갈등을 겪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
사업에 관한 이권 보장이나 청탁을 할 거라 짐작하던 솔레이마니 사령관은 그가 이스라엘을 거론하자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 눈을 가늘게 떴다.
“불과 며칠 전에도 이스라엘 전폭기 한 대가 국경 근처에서 대공미사일에 맞아 격추되면서 양측의 긴장감이 크게 높아지는 사건이 있었는데, 이건 중동 지역의 평화를 위해 그리 좋지 않은 일이지 않겠습니까.”
말을 끝내기 무섭게 솔레이마니 사령관이 정색을 하고는 한쪽 손바닥으로 앉아 있는 소파 팔걸이를 세게 내려치며 말했다.
“그건 간악한 이스라엘 놈들이 제 마음대로 시리아 국경을 넘어와서 마구 폭탄을 떨어뜨려 건물을 부수고 무고한 생명을 앗아 가는 천인공노할 만행을 먼저 벌였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오!”
바짝 날을 세우는 모습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반감이 얼마나 크게 뿌리 깊이 박혀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하긴 이란 내에서도 골수 강경파에 해당하는 인물이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 물론 이스라엘의 행동을 두둔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어찌 됐건 이번 일로 인해 양국 사이는 물론이고 중동 정세가 크게 긴장되고 있는 건 사실이지 않습니까.”
시리아 정부군과 헤즈볼라는 격추된 F-15I 전폭기의 불에 탄 잔해를 외신 기자들에게 공개하며 공습을 가한 이스라엘의 행위를 성토했다.
그리고 보복으로 헤즈볼라가 이란이 지원해 준 야포와 박격포를 동원해 골란 고원에 있는 이스라엘군 진지를 포격했다.
당연히 이스라엘군도 곧바로 반격에 나서며 현재 국경 지역은 사실상 전쟁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미국 정부가 막고 있지 않았다면 벌써 메르카바Merkava 전차를 앞세운 이스라엘 기갑부대들이 국경을 넘어서 진격해 골란 고원이 불바다로 변해 버렸을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요?”
손가락 사이에 담배를 끼운 채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솔레이마니 사령관이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가뜩이나 몇 년째 이어지고 있는 시리아, 예멘 내전과 아직 끝나지 않은 IS 토벌전으로 아랍 주민들이 크나큰 고통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또 다른 불씨를 일으켜 중동 전체를 처참한 전쟁의 화마 속에 밀어넣는 불행한 일은 없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 이란과 이스라엘 양국이 만나 서로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으면 하는데, 사령관님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
생각지도 못한 제안에 눈을 크게 치켜뜬 솔레이마니 사령관은 이내 사나운 시선으로 그를 노려보며 추궁하듯 말했다.
“무슨 의도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거지? 아니, 처음부터 이럴 의도로 이번 일을 맡은 건가!”
잔뜩 노기를 띤 목소리에 넓은 객실 안 분위기가 한순간에 혹독한 겨울 시베리아 벌판처럼 차갑게 얼어붙었다.
뒤에 서 있던 백성균이 솔레이마니 사령관의 기세에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킬 정도였지만, 바로 앞에 앉은 그는 전혀 흔들리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더 당당하게 솔레이마니 사령관의 눈빛을 마주 쳐다보면서 사실을 감추지 않고 있는 대로 이야기했다.
“솔직히 이만한 물량의 원유와 물자를 거래하는데 미국의 묵인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사령관님도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당장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은 걸 애써 참고 있는 듯한 솔레이마니 사령관을 보며 혁권은 차분하게 말을 이어 갔다.
“처음에는 저도 회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사령관님께서 보내 주신 전언을 듣고 마음을 바꿨습니다.”
무슨 소리냐는 얼굴로 솔레이마니 사령관이 눈썹을 찡그렸다.
“친구라면 어려움에 처한 걸 알고도 그냥 모르는 척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이스라엘 따위한테 지기라도 한다는 건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솔레이마니 사령관의 호통에 객실 안이 쩌렁쩌렁 울리는 가운데 그는 머리를 가로저었다.
“중동의 강국인 이란의 용맹한 전사들이 이스라엘군과 비교해서 결코 아래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시야를 좀 더 넓게 본다면 양국의 충돌은 결코 이란에 득이 되지 않는 전쟁이 될 겁니다.”
“성지聖地 예루살렘을 더럽히고 아랍의 자존심을 짓뭉갠 복수를 하고 전 세계에 알라의 깃발을 드높일 수 있는 일인데 왜 득이 없다는 거지?”
여기서 말 한마디만 잘못하면 바로 판이 뒤집혀 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대답을 요구하는 솔레이마니 사령관의 눈이 예리하게 빛났고, 직감적으로 승부를 걸어야 할 때라고 확신한 혁권은 전에 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군사적인 측면에서 이라크 북부와 시리아를 통해 육로가 연결되어 있다지만 전장戰場이 이란 본토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보급을 하는 데 너무 많은 힘이 들어갈 뿐만 아니라 자칫 중간에 연결선이 끊어지기라도 한다면 전선의 부대들이 그대로 고립되어 버리고 말 겁니다. 근처에 있는 요르단과 사우디아라비아가 함께 싸워 주거나 길을 열어 준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그러기는 쉽지가 않겠지요.”
솔레이마니 사령관이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며 퉁명스럽게 말을 내뱉었다.
“흥. 수니파 놈들이 아국을 도와줄 리가 없지.”
이슬람교 내의 최대 종파인 수니Sunni파와 시아Shi’ite파의 대립은 중동에 대해 조금만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했다.
같은 이슬람교를 믿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적대시하고 서슴없이 칼을 뽑아 들 정도로 두 종파의 반감은 뿌리가 깊고 컸다.
“정치적으로도 핵 협정 파기로 인한 미국의 경제 제재가 더욱더 압박 강도를 높여 갈 시점에서 무리하게 전쟁을 벌인다면 국력에 커다란 손실이 생길 뿐만 아니라 내부 불만이 높아져 정권에 부담이 될 것입니다.”
그러자 솔레이마니 사령관이 수긍할 수 없다는 듯이 바로 반박했다.
“이스라엘과 전쟁을 한다면 오히려 국민들이 하나로 단합하는 계기가 될 것 같은데······.”
“그럴 수도 있겠지요.”
혁권이 짧게 긍정하고는 소파에 등을 기댔다.
“하지만 전쟁이 지지부진한 상태에서 장기화된다면 어떻겠습니까. 사담 후세인Saddam Hussein과의 전쟁에서 이미 한번 겪었다시피 큰 고통을 감내해야 될 겁니다. 당시에는 먼저 국토를 침범한 적을 막 아낸다는 명분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다를 것입니다. 벌써 곳곳에서 국민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으음.”
날카로운 지적에 솔레이마니 사령관은 얼굴을 딱딱하게 굳힌 채 낮게 침음성을 흘렸다.
혁권이 이야기한 대로 그동안 시리아뿐만 아니라 예멘과 이라크 내전에 연달아 깊숙이 개입하면서 중동의 맹주로 위상을 끌어 올릴 수는 있었으나, 국력 손실이 심각할 정도로 너무나도 컸다.
지금까지는 핵 협상 이후 제약이 사라진 원유 판매와 풍부한 석유 자원 개발을 노린 메이저 석유 회사들의 대규모 투자 덕분에 달러가 끝없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좋던 시절은 잠시였고 핵 협상이 파기되고 미국의 경제 재제가 다시 재개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폭등한 물가와 민생고에 불만을 드러내며 북동부 마슈하드에서 시작된 시위는, 수도인 테헤란을 거쳐 전국적으로 확산돼 진압 과정에서 사상자까지 나올 정도였다.
거기다가 가뭄까지 발생해 단수가 수시로 이루어지면서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는 남부 지역에서 정부에 대한 불평이 쏟아지고 있었다.
“아이한테서 입에 문 사탕을 뺏기 어렵듯이, 한번 단맛을 본 사람은 그걸 포기하려 하지 않지요.”
“그래서 이스라엘과 평화 협상을 해야 한다는 건가?”
혁권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그게 이란 정부에게도 득이 되는 일이지요.”
그를 한참 쳐다보던 솔레이마니 사령관이 표정을 구긴 채 힘겹게 동의했다.
“궤변이지만 맞는 말이로군.”
사실 국민들의 불만과 비난이 이란 정부를 넘어 신성시되는 종교 지도자한테까지 쏟아지면서 크게 당황하고 있었다.
이번 거래도 이런 상황을 조금이라도 타계해 보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상대가 살짝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자 혁권은 그걸 놓치지 않고 더욱 적극적으로 솔레이마니 사령관을 설득했다.
“협상에 나선다면 중재를 서는 미국 정부로부터 어떤 것이든 양보를 받아 낼 수 있을 테고, 시리아 상황이 안정됨으로써 내부를 추스릴 여유를 가지게 될 겁니다. 이만하면 이란 입장에서 절대 손해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어떻습니까?”
반쯤 타들어 간 담배를 입에 문 채 솔레이마니 사령관은 고심에 찬 표정을 지었다.
이제 자신이 할 이야기는 다 했기에 혁권 또한 상대가 마지막 결정을 내릴 때까지 조용히 지켜보았다.
그렇게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중요한 문제인 만큼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던 솔레이마니 사령관이 고개를 들었다.
“나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 테헤란으로 가서 지도부와 논의를 해 보도록 하겠소.”
바로 거절하지 않고 논의를 해 보겠다는 건 상당히 긍정적인 신호였기에 그는 반색을 하며 말했다.
“현명하신 판단을 내리길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더 할 이야기가 없다면 이만 가 보겠소.”
솔레이마니 사령관이 몸을 일으키려고 하자 혁권은 발밑에 놔둔 은색 알루미늄 가방을 탁자에 올리고는 자연스럽게 앞으로 내밀었다.
“개인적으로 준비한 선물입니다.”
잠시 그를 물끄러미 쳐다본 솔레이마니 사령관이 팔을 뻗어 양옆에 달린 잠금장치를 풀고는 가방을 열었다.
그러자 홍콩에서 스텐저 변호사가 준비해 줬던 미국 재무부 채권 다발이 그대로 안에 들어 있었다.
“다른 의도 없이 약소하지만 이번 거래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입니다.”
원유를 가져가서 챙길 차익을 생각하면 이 정도 커미션을 주는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좋은 관계를 계속 이어 가고 싶다는 표시이기도 했다.
가방을 닫은 솔레이마니 사령관은 아까보다 한결 부드러워진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친구가 주는 우정의 표시이니 잘 받도록 하겠소.”
“감사합니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거였지만 교묘하게 뇌물이 아닌 것처럼 포장하자 혁권은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일어나 솔레이마니 사령관과 악수를 나눴다.
“부관을 통해 이야기를 해 놓을 테니 하역이 끝날 때까지 여기서 머물도록 하시오.”
“배려를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럼 결정이 내려지는 대로 연락을 해 주겠소.”
솔레이마니 사령관이 객실을 나가자 팽팽하게 유지하고 있던 긴장이 풀어진 혁권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뱉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후우. 이제는 결과를 기다리는 일만 남았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