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awaited RAW novel - Chapter 950
950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선 것은 국가 안보에 관련해서 중대한 사실을 인지하고 그걸 국민 여러분들께 알려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기자들은 숨소리도 내지 않은 채 책상에 올려 둔 노트북으로 프레 의장의 말을 빠르게 받아 치거나 휴대용 보이스 레코드로 녹취했다.
잔뜩 분위기를 잡는 모습에 본능적으로 특종의 냄새를 맡은 기자들의 눈동자가 열기로 휩싸였다.
흥분과 기대로 점점 분위기가 고조되는 속에서 프레 의장의 이야기가 계속 이어졌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방산기업인 지아트사가 외국 정보기관에 육군이 재규어 차기 장륜 장갑차에 탑재하기 위해서 오랫동안 거액의 연구비를 들여서 개발한 40mm급 CAT 기관포에 관련된 기술 자료를 무단으로 유출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자사의 이익을 위해 본인에게 거액을 뇌물을 주려고도 했습니다.”
충격적인 폭로에 실내가 크게 술렁거리면서 카메라 플래시가 쉴 새 없이 번쩍거렸다.
촤촤착!
“그게 사실입니까!”
“지아트사가 간첩 행위를 했다는 말씀입니까?”
“증거는 있는 겁니까!”
그러자 프레 의장이 양복 안주머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 보이면서 말했다.
“지아트사 사장인 라파엘이 모사드 간부와 모처에서 은밀히 만나 접선하는 장면을 찍은 사진입니다. 그리고 절 매수하기 위해 건넨 BNP파리바(BNP Paribas)은행 본점 개인 금고 번호와 열쇠도 있습니다. 이 정도면 제가 이야기한 내용이 사실이라는 걸 뒷받침할 충분한 증거이지 않습니까.”
보란 듯이 사진을 머리 위로 높게 들어 올리자 눈이 멀듯 한 플래시 세례가 이어졌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지고, 기자들은 조금이라도 더 사진을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 테이블을 거의 넘어갈 것처럼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프레 의장은 자신이 정의의 투사라도 되는 양 목에 핏대를 세우고는 격정적으로 말했다.
“아무리 지아트사가 이익을 추구하는 사기업이라고 하지만 군사기밀을, 그것도 수천만 유로의 국가 재정이 투입된 핵심 군사 기술을 몰래 외국에 넘긴 것은 명백한 반역이자 간첩 행위일 겁니다. 이에 본인은 모든 증거를 방첩기관과 검찰에 제출하고 즉각 지아트사에 대한 수사를 시작할 것을 촉구하는 바입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여기저기서 손을 들고 질문하는 기자들의 목소리가 시끄럽게 터져 나왔다.
“증거 사진을 어떻게 입수하신 겁니까!”
“지아트사에서 의장님께 로비를 했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청탁을 한 건지 말씀해 주십시오!”
질문을 쏟아 내는 기자들을 보며 프레 의장은 내심 득의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십중팔구 오늘 발행되는 신문 일면은 물론이고 모든 뉴스가 방금 자신이 폭로한 것으로 도배될 것이 분명했다.
이로써 이름과 존재감을 한껏 끌어 올릴 뿐만 아니라 사건을 주도적으로 움직여 정국을 원하는 대로 조정할 수 있게 됐다.
한편 사장실에 설치된 텔레비전으로 기자회견 중계를 지켜보던 라파엘의 얼굴은 온통 흙빛이 되어 있었다.
함께 있던 간부들 역시 사색이 된 채 연신 라파엘의 눈치를 살폈고, 커다란 충격에 방 안은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 정도로 깊은 정적에 휩싸였다.
다들 마치 머리 위로 핵폭탄이 떨어진 듯한 기분일 테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피가 날 정도로 세게 움켜쥔 주먹을 떨면서 라파엘이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미친! 저게 지금 뭐 하는 짓거리야!”
“아무래도 심상치가 않습니다. 프레 의장이 무슨 의도로 이런 행동을 하는지는 몰라도 정말로 조사가 시작된다면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거질 겁니다.”
“누가 그걸 몰라서 그래!”
괜히 말을 꺼냈다가 호통을 들은 스태판 전무는 어깨를 움찔거리며 입을 다물었다.
아무도 몰래 은밀하게 행한 일을 어떻게 알았는지, 아니 그 전에 한 배를 탄 것이나 마찬가지인 프레 의장이 왜 자신의 뒤통수를 때린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폭로로 인해서 앞으로 벌어질 사태를 생각하니 절로 눈앞이 깜깜해지며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라파엘 사장은 프레 의장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로 휩싸여 아랫입술을 세게 질끈 깨물었다.
하지만 일단은 상황을 수습하는 게 먼저였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끄지 않으면 프레 의장에게 앙갚음을 하기도 전에 자기가 먼저 무너질 판이었으니까.
스태판 전무와 간부들에서 대응책을 지시하려는 찰나, 갑자기 다급한 발소리와 함께 밖에서 비서가 노크도 없이 뛰어 들어왔다.
“크, 큰일 났습니다!”
순간 불길한 예감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비서는 헉헉거리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면서 나쁜 소식을 전했다.
“시장에서 우리 회사 주가가 폭락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가뜩이나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던 라파엘 사장이 짜증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프레 의장이 방금 전에 폭탄을 터트렸는데, 주가가 떨어지는 건 당연하잖아!”
뇌물에 간첩 행위까지 한 의혹이 나왔으니 엄청난 악재가 터진 거였다.
아마도 이번 스캔들이 수습되기 전까지는 한동안 지아트사 주가는 약세를 면치 못할 터였다.
하지만 주식 시장 상황은 그가 예상한 걸 뛰어넘어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중이었다.
“그 정도가 아닙니다. 말 그대로 폭락 중입니다.”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은 라파엘 사장은 콧잔등을 찡그리며 물었다.
“얼마나 빠졌기에 그러는 거야?”
“벌써 오늘 시초가 대비 20%나 하락했습니다.”
핏발이 선 눈을 부릅뜨며 비서를 쳐다봤다.
“방금 기자 회견이 끝났는데 뭐가 그렇게 많이 떨어졌어!”
점점 높아지는 언성에 비서는 마치 자기가 죄인이라도 되는 양 뒤로 주춤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개장과 동시에 이틀 연속 공매도가 계속 이루어진 데다가 프레 의장의 폭로 직전에 엄청난 물량이 터져 버리는 바람에 어렵게 버티고 있던 지지선이 무너져 버렸습니다.”
“도대체 공매도 물량이 얼마나 나왔기에 그러는 거야?”
“오전 장에만 쏟아진 공매도 물량이 무려 10억 달러어치입니다.”
말을 듣자마자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신 라파엘 사장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이런 미친!”
아직 정오가 되려면 멀었으니 두세 시간 만에 그만한 액수의 공매도가 시장에 왕창 쏟아져 나왔다는 이야기였는데, 이건 누군가 자신들을 엿 먹이려고 작정하지 않았다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거기다가 타이밍도 너무 공교로웠는데 마치 짜고 치는 포커처럼 폭로가 있을 거라는 걸 미리 알고 있은 듯이 과감하다 못해 무모하게 느껴질 정도로 공매도가 이루어졌다.
혹시 처음부터 프레 의장하고 연결이 돼서 움직인 거라면 머릿속에서 피어나는 짙은 의심에 그는 억눌린 숨을 내쉬면서 물었다.
“지난 이틀간 나온 공매도 물량이 전부 얼마나 되지?”
“아직 정확한 건 파악되지 않았지만 적어도 15억 달러 이상입니다.”
“끄으응.”
라파엘뿐만 아니라 사장실에 모여 있던 간부들 모두의 입에서 무거운 탄식과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가슴속에 커다란 돌덩이가 얹어진 것처럼 답답한 기분에 다들 막막한 심정을 느끼는 듯 했다.
그런 가운데 비서가 분위기를 살피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문제는 이제 다른 주주들까지 투매에 가세하고 있다는 겁니다. 아마 지금쯤은 낙폭을 더 키우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제길!”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엄청난 공매도 물량에 프레 의장의 폭로까지 터졌으니 주가가 아래로 끝없이 수직낙하 하는 건 당연한 일었다.
문제는 이걸 막아 낼 방법이 없다는 거였다.
사방으로 달아날 길이 다 막혀 버린 상황에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파 올 때쯤, 품 안에서 스마트폰이 울렸다.
찰스 방델의 이름이 화면에 떠오른 걸 보면서 라파엘은 잠시 받을까 말까 고민했으나 어차피 선택의 여지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예. 라파엘입니다.”
-무슨 일로 전화를 한 건지는 잘 알고 있겠지?
싸늘한 한기가 그대로 느껴지는 목소리에 라파엘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도대체 일을 어떻게 한 거야!
“저도 워낙 갑작스럽게 벌어진 상황이라 자초지종을 파악 중입니다. 하지만 곧 수습이 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과연 수습이 가능할지 스스로도 의문스러웠지만 그렇다고 목숨 줄을 쥐고 있는 찰스 방델에게 그런 기색을 내비칠 수는 없었다.
-자네를 위해서라도 그러는 것이 좋을 거야.
협박과도 같이 느껴지는 말만 남기곤 뚝 하는 소리와 함께 전화가 끊어졌다.
망연자실한 기분으로 힘없이 스마트폰을 떨구는 라파엘의 모습이 심각하게 보였는지 스태판이 옆으로 다가와서는 작게 그를 불렀으나 이미 귀에 들리지 않는 듯했다.
“사장님······.”
어찌해야 하나 싶어 스태판이 엉거주춤 서 있을 때, 바깥에서 뭔가 소란스러워지는가 싶더니 이내 구둣발 소리와 함께 문이 벌컥 열렸다.
그러고는 말리는 비서실 직원을 두툼한 손바닥으로 밀치며 일단의 사내들이 사장실 안으로 허락도 받지 않고 들어섰다.
“당신들 뭐야!”
이맛살을 찌푸린 라파엘이 소리를 지르자 제일 앞에 서 있던 사내가 그를 아래위로 훑어보고는 윗도리 안쪽에서 신분증을 꺼내들며 말했다.
“DGSE(대외안보총국)에서 나왔습니다.”
“······!”
라파엘 사장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듯 크게 흔들렸다.
프레 의장의 폭로가 있었으니, 당연히 수사 기관에서 반응을 보일 거라 예상은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빨리 그것도 검찰이나 경찰이 아닌 정보기관인 DGSE에서 사람이 나올 줄은 몰랐기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다시 신분증을 집어넣은 사내는 흰 이를 드러낸 채 웃으면서 말했다.
“제가 뭣 때문에 왔는지는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으음.”
“이미 검찰 수사관들과 함께 중요 부서에 대한 압수 수색이 진행 중이니까 괜히 엉뚱한 생각은 안 하는 것이 좋을 겁니다.”
작정을 하고 자신과 회사를 옭아매려고 한다는 걸 깨달은 라파엘 사장이 이를 으득 깨물었다.
만약 이대로 흐름에 끌려간다면 지금도 최악인 상황이 얼마나 더 나빠질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라파엘 사장은 창백해진 얼굴로 사내를 노려보았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되겠소?”
“저야 개인적인 유감은 없습니다만······.”
어깨를 으쓱인 사내가 ‘어쩌겠습니까.’ 하며 일부러 꾸민 듯 눈썹을 늘어뜨렸다.
“위에서 지시받은 대로 할 뿐입니다. 죄를 짓지 않았다면 겁을 내실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이미 정해진 결말이고 라파엘 사장이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그 길을 벗어날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손안에 쥐고 있던 찬란한 미래가 한순간에 풍화되어 모래알처럼 덧없이 사라지는 것을 느끼며, 라파엘 사장은 참담한 기분으로 눈을 감았다.
얼마 안 있어 지아트사가 압수수색을 당하고 라파엘 사장을 비롯한 중요 임직원들이 체포되어 조사를 받고 있다는 보도가 나가자, 가뜩이나 폭락을 이어 가던 주가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