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501
500화.
사람이 압도되고 당황하면 잠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행동을 멈추게 되는 순간이 있다.
“저, 저-!”
거울을 쥔 노인의 손이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세상에.”
수호 전사 엘프 지트는 단연코 지금이 그런 순간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했다.
‘저런 거대한 뱀, 아니, 괴물이라니.’
그는 그간 케일 사령관이 해온 일들에 대해서 많이 들어왔다. 아무리 엘프들이 속세와 떨어져 있다고 해도 케일은 열손가락 산 엘프 마을에 도움을 줬던 사람이었고. 이래저래 연결점이 많아 그에 대한 소식들은 귀담아들을 수 있었다.
그때마다 했던 생각이 있었다.
‘대단한데.’
이 사람 정말 대단하구나.
그 생각만 했다.
그래서 이번 전투도 대단하겠구나. 그렇게 어렴풋하게 짐작했었다.
하지만 실제로 그 대단함을 마주하니 말문이 막혀왔다.
순간 너무 놀라서 잠시 움직임이 굳어버렸다.
지트는 저처럼 당황한 엘리스네 수하 세 명이 보였다.
하지만 그 시간은 아주 찰나였다.
1, 2분도 채 지나지 않은 짧은 시간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 잠깐의 멈춤이 비록 짧은 시간일지라도 누군가에게는 긴 시간일 수 있었다.
바로 케일과 돌 이무기에게는 긴 시간이었다.
콰앙! 쾅! 쾅, 콰앙!
부서지고 또 부서졌다.
그냥 미로가 무자비하게 무너지고 깨지고 조각나고 부서졌다.
그리고 그 돌 괴물의 목쯤에 매달린 케일은-
‘…신나 보이는데?’
그때, 지트 곁으로 다가온 이가 있었다.
“원래 저런 분이십니다.”
타샤가 지트의 어깨를 두드리며 부드러이 말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주위를 보았다.
다른 엘프들에게도 다크엘프들 몇이 다가가 뭐라 말을 걸고 있었다.
“지트 씨. 우리도 얼른 가야지요.”
그리고 나머지 다크엘프들은 케일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쿵. 쿵. 쿵.
거대한 흑골 몬스터는 메리를 두 손안에 고이 모신 채 재빠르게 움직였다.
다크엘프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크하하하! 역시 공자님을 따라다니면 금광이 아니라 다이아몬드 광산이 나온다니까!”
“내가 이 맛에 개고생을 하지! 죽은 마나가 비 오듯이 쏟아지는구나!”
“닥치고 빨리 죽은 마나 흡수나 해.”
다크엘프들이 거대한 돌뱀이 만든 이 상황을 조금 특이하게 즐거워했다.
“크윽! 이 돌멩이들이! 야, 조심해! 저 돌뱀 미친 것 같다!”
“알아요, 알아. 누님, 앞에 바람 정령 보내서 공자님 돕죠?”
“어. 그러려고. 나무 정령도 보내.”
“네!”
날아드는 돌덩이들.
부서지며 흩날리는 먼지.
그 모든 것들을 요리조리 피하고 뒤집어쓰기도 하며 그들은 웃어댔다.
그리고 메리는 하나로 시작하여 어느새 미로를 파괴하며 넷이 된 해골 몬스터들 중 셋에게 명령했다.
“조심히 모십니다.”
쿵. 쿵. 쿵.
거대한 몸집을 지닌 해골 셋이 달려들어 재빠르게 몸을 숙였다.
우지끈.
나뭇가지들이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세 몬스터에 의해 조피스와 왕족 아이들을 감싸던 나뭇가지 덩굴이 뽑혔다.
실드는 이미 라온이 치워두었다.
해골들은 나뭇가지를 뒤집었다. 그러자 얽힌 덩굴들이 마치 둥지와 같았다. 조피스는 그것을 본 순간, 메리의 의도를 알아챘다.
“타.”
그녀는 왕족 아이들을 이끌고 나뭇가지 둥지 안으로 올라탔다.
물론 망설이는 아이들이 있었다.
“어서 타! 괜찮아요!”
가장 어린 벨이 또렷한 눈동자로 조피스의 손을 잡고 둥지에 올라타 다른 이들에게 손짓했다.
“올, 올려줘.”
죽은 마나에 감염되어 점점 더 팔이 검게 변해가는 소년이 주변 왕족들에게 둥지를 가리키며 부탁했다.
그제야 아이들은 서둘러 모두 둥지로 올라섰다.
동시에 엘리스네의 찢어질 듯한 외침이 들려왔다.
“막아! 저 뱀 같은 거 부숴!”
중년인과 두 노인의 손이 빠르게 수인을 맺기 시작했고, 엘리스네가 벽 아래로 내려서며 올라타던 아이들 앞에 나타났다.
“어딜 감히 내 명령도 없이 움직이려고!”
그 순간, 조피스는 엘리스네의 손에서 시작되는 붉은빛과 함께 아이들의 눈동자가 흐려지는 것이 보였다.
“크윽!”
죽은 마나에 중독된 소년과 벨만이 괴롭다는 듯 머리를 흔들어대었다.
“크르르르!”
그때, 복슬이가 엘리스네와 아이들 사이에 나타났다.
“명령 필요 없습니다.”
그리고 메리가 나타났다.
“환각사나 네크로맨서나 모두 죽은 마나를 다루는 사람입니다.”
“뭐?”
엘리스네의 반문은 제대로 닿지 못했다.
메리의 두 손에서 검은 실이 뻗어져 나와 빠른 속도로 엘리스네를 덮쳐 버렸다.
마치 그녀의 몸에 새겨진, 검은 선들이 얽힌 거미줄 같은 그물이었다.
“크윽! 어딜!”
순간 엘리스네는 이를 피하기 위해 다른 수인을 맺어야 했다.
그 찰나를 메리는 놓치지 않았다.
“태웁니다.”
해골들이 손을 뻗어 빠르게 아이들을 둥지 안으로 옮겨버렸다. 그리고 둘이서 붙잡은 채 둥지째로 들어 올렸고 하나는 그 둘의 뒤에서 호위를 맡았다.
쿵. 쿵. 쿵.
그리고 빠른 속도로 이무기 뒤를 따랐다.지트와 엘프들도 케일에게로 향하는 다크엘프들을 뒤따랐다. 물론 죽은 마나 액체 때문에 자연스레 해골 몬스터들보다 더 뒤로 갈 수밖에 없었다.
“제길, 죽여!”
검은 그물을 치운 엘리스네의 분노 가득한 외침이 뒤에서 들려왔다.
“이런!”
지트는 제 등 뒤에서 다가오는 거대한 힘을 느꼈다.
그 순간, 케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트! 주술사들의 발을 묶어둬라!”
명령을 듣고 있을 때, 이미 엘프들은 그들의 역할을 깨닫고 뒤로 돌아있었다.
깃털 뱀이 그들에게로 달려들고 있었다.
그리고 거대한 불 호랑이가, 바람으로 만들어진 말이 그들에게로 쏘아져 왔다.
“막아!”
지트는 목청을 높이며 그의 정령을 불러들였다.
그의 손이 등 뒤를 향했다.
“장전!”
지트 주위 엘프들이 활을 잡아당기며 화살을 적들에게로 겨눴다.
각기 다른 주술사의 각기 다른 성질의 짐승들.
그리고 각기 다른 속성의 정령을 지닌 엘프 궁사들.
“쏴라!”
지트의 명과 함께 화살이 활을 벗어나 짐승들에게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가라!”
그리고 그 화살에 정령들이 달라붙었다.
불, 물, 흙, 바람, 나무.
정령의 숨결이 담긴 화살들이 그 몸체가 거대해지며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막대한 기운을 품은 채 짐승들에게로 달려들었다.
콰아아앙-!
곧이어 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크윽!”
안경 쓴 중년인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의 불 호랑이가 물화살에 등이 갈라진 채 비틀거렸다.
그런 그의 어깨를 거울을 든 노인이 잡았다.
“정신 차려.”
바람의 말과 깃털 뱀은 조금 흔들렸지만 아직 멀쩡했다.
이를 지트도 확인하였다.
적들의 힘을 가늠했다.
그렇다면 이제는.
“힘을 아끼지 마라! 주술사들을 무조건 막아라!”
지트가 적들을 노려보며 외쳤다.
“이, 이것들이!”
깃펜을 든 노인의 얼굴이 왈칵 일그러졌다.
그 순간에도 노인의 귀에는 천둥 치는 것 같은 소리와 부서지는 미로 벽이 보였다.
“늦지 말고 와라.”
엘리스네가 노인들을 뛰어넘어 미로 벽을 따라 움직였다.
“벽 위를 공격해!”
벽 위로 올라설 수 없는 엘프들이 지트의 명을 따라 각자 위치에서 엘리스네도 노렸다.
당연히 주술사들은 그런 엘프들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엘리스네의 미간은 갈수록 찌그러졌다.
“저 미친놈!”
미로가 쉬지 않고 부서지고 있었다.
그리고 케일은 그만큼 앞으로 나아갔다.
-인, 인간아!
투명화한 라온은 그런 이무기의 꼬리 끝을 따라 움직이며 저도 모르게 외쳤다.
-인간아! 진즉에 이렇게 할 걸 그랬다!
속이 시원했다.
여섯 살 용은 저도 모르게 솟구쳐 오르는 상쾌함에 자연적으로 마법이 펼쳐졌다.
콰아앙!
콰앙! 콰앙!
마법으로 미로 벽이 부서지며 구멍이 생겼다.
그 구멍으로 이무기가 머리를 들이대 박았다.
콰아앙!
굉음과 함께 죽은 마나 액체가 치솟아 올랐다.
“케일 님.”
“그냥 잠자코 숙여있어.”
케일은 퉁명스럽게 말하더니, 저에게로 쏟아져 오는 죽은 마나를 향해 두 팔을 벌렸다.
한껏 두 팔과 몸을 펼친 케일에게로 라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간아! 조금 보기 민망하지만 최고의 자세다!
…나도 창피해.
무슨 허세부리는 것도 아니고, 케일은 제 자세가 조금 창피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뒤에 있는 라온과 최한에게 죽은 마나가 닿아선 안 되었고, 돌 이무기가 최대한 죽은 마나에 닿는 면적을 줄여야 했다.
-태운다! 불바다! 크하하하하!
화르르르-
그의 몸을 감싼 적금빛 불이 삽시간에 주변의 죽은 마나를 잡아 먹어버렸다.
곧 적금빛 재가 흩날리며 돌 이무기위에 내려앉았다.
툭툭. 최한은 케일 뒤에 한껏 쪼그리고 있다가 그 재를 털어내며 입을 열었다.
“효율적입니다, 케일 님.”
-인간아! 희한하게 멋있다! 나도 다음에 그런 자세 할 거다!
어휴.
케일은 한숨을 내쉬며 절레절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지만 기분이 좋았다.
다 때려 부수고 아주 빠른 속도로 나아가니까.
‘곧 중앙이다.’
케일이 지도와 조피스의 말을 통해 확인한 것이 맞다면, 곧 미로의 중앙에 닿게 된다.
가짜 세계수를 볼 시간이 머지 않았다.
콰아아앙!
다시 한번 미로가 부서졌고 케일은 멈칫했다.
“크윽!”
“이 무슨!”
“다들 조용히 해라! 진군을 멈춰라!”
부서진 미로 너머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무기가 움직임을 멈췄고, 서서히 부서지며 미로 벽 너머에 드러나는 광경이 있었다.
“적, 적입니다!”
선두에 섰던 기사 한 명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때, 케일은 뒤에서 엘리스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수를 썼는지 모르겠으나, 날듯이 벽을 뛰어넘어 온 엘리스네였다.
“기사단이 왔구나!”
아군을 반기는 목소리였다.
타닥.
하지만 그녀가 케일이 마지막으로 부순 벽 바로 옆의 벽에 내려섰을 때.
그녀의 얼굴이 구겨졌다.
“…왜 이것밖에?”
“전하!”
“폐하!”
기사들이 그녀를 보며 간절히 외쳐댔고, 엘리스네의 얼굴은 더욱더 일그러졌다.
총 삼백여 명의 기사가 지하로 들어섰다.
그런데 지금 그녀의 앞에 자리한 이들은 채 오십여 명이 안 되었다.
거기다가 여기저기 부상을 입거나 먼지를 뒤집어쓴 모습으로, 무언가를 피해 도주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전하!”
“기사 단장, 이게 무슨-!”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엘리스네에게 기사 단장이 다급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최대한 침착하려고 하지만 그게 안 되는 모습이었다.
“적입니다! 적들이 두 번째 입구에 나타나, 기사들을 사로잡았습니다!”
“…뭐?”
“은신에 특화된 암살자들 같습니다! 그들이 미로 속 어둠에 스며들어, 저희들을 공격하였습니다!”
그건 말이 공격이었지, 산 채로 사냥감을 잡기 위한 사냥꾼의 사냥이었다.
그때였다.
“멍, 멍!”
“멍!”
저 멀리 미로 모퉁이에서 개 짖는 소리와 함께 강아지 두 마리가 나타났다. 기사가 다급하게 외쳤다.
“저, 저 개들이 귀신같이 추격해 와서!”
그리고 복슬이를 닮은 꼬질꼬질한 강아지 두 마리 뒤로 쓰윽 어둠 속에서 두 사람이 나타났다.
-인간아! 론 할배랑 비크로스다!
몰든 왕국 요리사 복장의 비크로스와 시종 옷차림의 론이었다.
한 사람은 대검, 한 사람은 단검을 여러 개 들고 있었다.
“…너-”
엘리스네의 시선이 케일에게로 향했다.
씨익.
케일이 미소를 그렸고. 동시에 엘리스네의 뒤에서 쿵쿵 땅이 울리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그 소리가 곧 멈췄고 조피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도 당해보니 어때?”
동시에 기사 단장이 다급하게 외쳤다.
“전하! 왕족분들과 궁 사람들이 인질로 잡힌 것 같습니다!”
채앵!
기사 단장은 검을 뽑아 론에게 겨누며 엘리스네를 보호하듯 진을 짰다.
“저놈의 수하들이 궁을 통째로 인질로 잡아뒀습니다!”
엘리스네의 시선이 여전히 케일에게 못 박혀 있었다. 케일은 어깨를 으쓱였다.
인질은 무슨.
왕족과 궁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몰란 가문 사람들이 기습으로 엘리스네 병력을 밀어내고 궁을 점거해버렸다.
하지만 케일은 인질범이라는 듯 저를 노려보는 기사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네놈들이 잘하는 걸 내가 해봤지?”
당연히 그 말은 엘리스네를 향한 것이었다.
“네 이놈!”
“욕을 하면 쓰나?”
조피스가 우아하게 비웃는 소리가 엘리스네 뒤에서 들려왔다.
“너!”
엘리스네가 휙 돌아서며 조피스를 노려본 순간. 조피스는 기품 있게 웃으며 말했다.
“싸우는 도중에 시선을 딴 데로 돌리면 어떡해, 응?”
콰아아아!
굉음이 들려왔다.
“피해!”
“벽이 부, 부서진다!”
“다들 폐하를 보호하는 일에 집중해라! 폐하만이 몰든의 빛이다!”
기사 단장의 명령과 기사들의 당황한 목소리가 뒤섞였다.
엘리스네는 다시 정면을 바라봤다.
그녀가 선 벽을 보호하듯이 진을 친 오십여 명의 기사들.
그리고 그들은 관심도 없다는 듯이 직진하는 돌 괴물을 탄 케일.
그녀는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라 소리쳤다.
“멍청한 것들! 저 괴물을 막아!”
“하지만, 전하!”
“닥치고 저거를 쫓아!”
그녀는 기사 단장과 기사를 지나쳐 케일에게로 향했다.
타닥.
하지만 그녀의 앞에 이무기를 타고 있던 또 다른 사람이 내려서며 그 앞을 막았다.
“우린 할 게 있지 않아?”
스윽.
최한이 검을 뽑아 들고 엘리스네에게 겨눴다.
그가 케일을 따라온 이유.
막 이무기에 그가 올라탔을 때.
‘최한. 너는 마지막. 목적지가 코앞일 때 이무기 등에서 내려라. 그리고 엘리스네를 막아. 분명 그녀가 쫓아올 거다.’
최한은 순한 미소와 함께 검을 곧게 뻗었다.
엘리스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콰아아앙!
그때 다시 한번, 벽이 부서졌다.
“안 돼!”
그녀는 저도 모르게 다급한 마음에 외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당연히 최한의 검이 그녀를 향했지만 엘리스네는 그다음 벽을 부수는 돌 괴물을 보며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마지막……!’
저게 마지막 벽이다.
케일을 가로막은 벽의 마지막.
케일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돌 이무기의 거친 몸짓에 케일은 그 몸통을 꽉 붙잡았다. 이무기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이제 저 머리가 내려서며 앞으로 들이받는 순간!
‘이것만 부수면-!’
주륵.
케일의 입가에 피가 흘러내렸다.
-인간아! 피 냄새난다! 인간, 또 무리한 거 아니냐? 이제 그만 해라!
콰아아아앙-
마지막 벽이 부서졌다.
촤아아아-
어느 때보다도 많은 죽은 마나 액체가 그를 덮쳤다.
하지만 곧 불길이 그 죽은 마나를 잡아먹어 태워버렸다.
스스스-
적금빛 재가 흩날리며 사라지자 케일은 정면의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허.”
아름다운 꽃밭 위.
이 흉측한 지하 미로의 중심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아름다운 꽃밭.
그 위에 자리한.
-지, 징그럽다!
시꺼먼 나무가 있었다.
가짜 세계수다.
케일은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이무기가 속도를 줄이지 않고 꽃밭으로 전진했다.
“안 돼!”
뒤에서 엘리스네의 외침이 들려왔지만, 케일은 목표를 앞에 두고 여유를 부릴 틈이 없었다.
진짜 세계수와 비교해도 상당히 큰 이 나무는 잎이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그 몸통과 나뭇가지 표면이 울퉁불퉁하고 왠지 모르게 징그럽게 생겼다.
꼭 귀신이 나올 것 같은 나무가 등장하는 무서운 이야기의 주인공 나무 같아 보였다.
하지만 돌 이무기는 멈추지 않았다.
케일은 가짜 세계수를 얼마 남겨두지 않고 입을 열었다.
“멈춰.”
화르르르-
케일을 감싼 불이 더욱더 타올랐다. 당장이라도 저 나무를 잡아먹어 버릴 듯했다.
-인간, 바로 태우나?
라온이 물어왔고.
-흐흐흐, 불바다! 크하하하하!
짠돌이가 미친 듯이 웃어댔을 때.
“음?”
케일은 멈칫했다.
바르르르-
‘떨어?’
흉측하게 생긴 거대한 나뭇가지들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뭇가지들이 움직이며 웅크리듯이 모여들었다.
“잠시.”
케일은 귀를 기울였다.
짠돌이의 광기에 찬 웃음소리 사이로.
-…살…살려…주…. 요.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스으윽-
케일은 제일 작은 나뭇가지가 저를 향해 뻗어져 오는 것을 보았다.
그 가지는 파르르르 떨고 있었다.
왠지 그의 앞에서 바들바들 떨던 쥐족 혼혈 드워프 뮐러를 떠올리게 했다.
‘겁먹었어?’
가짜 세계수가 그에게 겁을 먹었다?
케일은 잠시 팔 주위 불을 치우고 작은 나뭇가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순간 나뭇가지가 다가오다가 놀라서 뒤로 물러섰지만, 케일의 손이 빨랐다.
그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 제 목소리가 드, 들리시나요?
소심하고 바들바들 떨리는 목소리였다.
“…너냐?”
케일이 검은 나무를 보며 물었고, 그 순간 케일은 다다다 쏟아지는 소심한 목소리를 들을 수가 있었다.
-크흡.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저 좀 옮겨 심어주세요 흐흑. 세계수 님을 뵙고 싶어요. 흐흑. 크흡.
“…음?”
-허어엉. 허엉. 크흡, 큽.
울고불고 콧물 삼키는 소리가 다 들렸다.
나무도 콧물 삼킬 게 있나?
케일은 뜬금없는 생각을 할 만큼. 당황했다.
그때, 소심한 목소리가 간절히 부탁했다.
-제발…. 저 좀 옮겨 심어주세요…. 여길 탈출하고 싶어요. 흐흐흑. 허어헝.
옮겨달라고?
…탈출?
케일의 시선이 저도 모르게 미로 천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자연스레 별 의미 없이 생각했다.
이 큰 나무를 옮기려면-
-케일.
짱돌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와중에 케일은 문득 든 생각을 끝맺었다.
이 큰 나무를 옮기려면, 천장을 다 부수고 통째로 들어올려야 하지 않을까?
-그건 좀 너무 많이 부수는 거 아니냐?!
다급히 케일을 불렀던 무서운 짱돌이 급하게 말했다.
그러나 케일의 시선은 미로 천장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오, 케일! 그건 아니다!
짱돌의 탄식과도 같은 목소리가 케일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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