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735
734화.
케일은 나름 왕자의 최측근이자 유일한 시종으로서 행동하기 위해 눈을 뜨자마자 준비를 마친 후 곧바로 알베르 침실로 향했다.
하지만 알베르는 없었고 케일은 당연한 수순으로 찾아다녔다.
침실에도 없고 서재에도 없고 궁 밖으로 나간 흔적도 없고.
그래서 당연히 지하 연무장으로 왔다. 수건과 시원한 물 한 병, 컵을 구비하고서.
케일은 스스로 감탄했었다.
‘나 너무 열심인데?’
아마 신전 밖에 있는 알베르 왕세자가 이 상황을 알면 감동하지 않을까?
케일은 스스로에게 뿌듯함을 느끼며 지하 연무장으로 들어서자마자 알베르의 날카로운 기세를 맞이해야 했다.
‘…나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것이지?’
케일의 손에 들린 수건과 물병을 보는 순간, 그리 내뱉은 알베르는 검날을 겨누며 그에게 ‘너, 무슨 속셈이지?’라고 물었다.
케일은 지난 상황들에 대한 생각을 멈추고 알베르를 바라봤다. 조금 전 케일이 했던 말.
‘왕자님. 무기를 겨눌 땐, 손을 떠시면 안 됩니다. 적에게 내 두려움을 보여줘선 안 됩니다.’
이 말 때문인지, 알베르의 검은 떨림이 사라졌다. 대신 알베르의 눈동자에 잠깐 부끄러움이 어렸다가 없어졌다.
케일은 지하 연무장을 빙 둘러보았다. 케일이 원래 알던 지하 연무장에 비하면 이 공간은 허름하고 투박했다.
그의 무심한 눈동자가 알베르에게로 향했다.
“저한테 이 모습을 들키기 싫으시다면 조금 더 철저하게 숨기셨어야 합니다.”
알베르가 입술을 깨물었다.
반면에 케일은 빙그레 미소를 그렸다.
“하지만 제 생각에는 일부러 저를 지하 연무장으로 유도하신 것 같습니다. 아닌가요?”
여기까지 오는 길에 케일은 어떠한 방해물도 없었다.
더불어 이 지하 연무장에 대련 상대이자 무술 스승인 다크엘프도 존재하지 않았다.
알베르의 눈빛이 달라졌다. 언제 부끄러워했냐는 듯, 언제 입술을 깨물었냐는 듯 그의 얼굴에서 조금씩 표정이 사라져갔다.
대신 기계적으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제 속셈이 궁금하시다면, 이런 방법이 아니라 편하게 대화로 물어보셔도 됩니다.”
케일은 미소를 지었고, 알베르는 손에 들린 검을 내렸다.
“수건.”
알베르는 다른 손을 뻗었고, 케일은 수건을 건넸다. 알베르는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아내며 입을 열었다.
“이렇게까지.”
그의 눈동자가 케일을 향했다. 알베르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이렇게까지 1왕자 궁에 신경 쓰는 시종은 몇 년 만에 처음 보았어. 그래서, 자네에 대해 경계심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궁금했네.”
그는 케일을 힐끗거리며 얕은 한숨과 함께 내뱉었다.
“나에게 이런 일은 흔하지 않고, 나와 이 궁을 생각해주는, 그래, 기본적인 행동을 해주는 이도 참으로 오랜만이라.”
수건을 꽉 쥔 알베르. 그는 힘겹게 말했다.
“그래서 자네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어. 자네를 믿어도 될지, 하지만 나는 누군가를 쉽게 믿을 수 없는 상황이라.”
그때, 케일의 입이 열렸다.
“거짓말하지 마십시오.”
알베르는 저도 모르게 웃고 있지만 웃지 않는 눈동자를 응시했다.
“왕자님은 저를 전혀 믿지 않으시며, 더불어 애초에 믿을 생각조차 없으시면서.”
케일은 잔에 물을 따랐다.
“왕자님은 저에게 관심은 있을지언정 그것이 긍정적인 감정도 아니며, 방해물이면 치워버릴 생각이시지 않습니까?”
새로 온 시종을 지하 연무장으로 끌어들여 둘만의 장소에서 상대의 의중을 묻는 1왕자.
궁에서 소외당하며 숨죽인 채 살아가는 1왕자는 시종을 믿어도 될지, 그의 속셈이 무엇일지 물으며 혼란을 감추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힘겹게, 고뇌하듯 시종에게 그쪽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마치 믿고 싶지만 상황이 그래서 쉽게 결정할 수 없다는 듯 말한다.
‘이건 가짜지.’
케일은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하루도 지나지 않았다. 케일이 이 궁에 온 지.
그런데 이 궁에서 평생을 살아온 알베르 크로스만이 이 시종을 믿고 싶어서 고뇌한다?
그건 이 거대한 왕궁에서 살아남아 온 알베르 크로스만을 쉽게 보는 말이었다.
또한 그는 현재 서대륙에서 인식이 좋지 못한 다크엘프와 죽은 마나를 곁에 두어야만 한다. 그런 상황에서 하루밖에 안 된 시종을 곁에 둔다?
‘그렇게 되면 이 시종은 모든 것을 망칠 변수가 될 수도 있어.’
아마도 알베르 크로스만은 케일을 빨리 쫓아내고 싶거나 혹은 곁에 두며 다른 이들에게서 스스로를 숨기기 위해 이용해 먹을 것이다.
살아남는 건, 쉽게 믿음을 주어선 이루기 힘든 것이었으니까.
“왕자님.”
고요한 연무장 안, 케일은 나직이 말했다.
“저는 아마 일찍 이 왕궁을 떠날 겁니다. 왕자님이 말씀하셨던 바람대로요.”
케일이 처음 열다섯 알베르를 마주했을 때.
‘언제 떠날지 궁금하군.’
‘곧 떠날 겁니다.’
케일의 대답에 알베르는 기가 차다는 듯 탄식과 함께 답했다.
‘최대한 빨리 떠났으면 좋겠군.’
그 답을 알베르는 케일이 언급한 순간 손쉽게 떠올렸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늘 곧 떠날 것이라고 말하는 시종을 왕자는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응하듯 시종은 무심히 말을 이었다.
“그전까지 저는 아주 제 마음대로 굴 겁니다.”
곧장 왕자는 비웃음을 숨기지 않았다.
“제 마음대로 굴어서 쫓겨나는 것은 아니고?”
눈앞의 시종이 이대로 군다면, 알베르는 확신한다. 곧 시종장이든 혹은 그 위의 존재든 누군가에게 거슬려서 쫓겨날 것이라고.
피식. 케일은 불퉁하게 쏘아붙이는 말에 웃음을 흘렸다.
“저하.”
또다.
알베르는 다시금 1왕자나 왕자라고 칭하지 않고, 왕세자를 가리키는 ‘저하’로 자신을 부르는 시종 때문에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제 속셈이 무엇인지 궁금하시지요?”
케일은 지금이 아닌 몇 년 전 처음 책이 아닌 실제로 알베르를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눈앞의 이 인간은 믿음, 신뢰보다는 거래와 계약을 더 선호했다.
그러니 그 선호대로 말해주자. 그것이 시종으로서의 자세가 아니겠는가.
“저는 저하께서 다음 태양이 되실 거라 생각합니다.”
열다섯 소년의 얼굴에는 흐트러짐 하나 없었다.
그러나 이어진 말에 그의 얼굴에 찰나의 파문이 일었다.
“그것이 순리니까요.”
순리.
알베르는 그 단어가 무슨 뜻인지 알고 사용하냐고 순간 묻고 싶었다. 하지만 턱밑까지 차오른 질문을 애써 삼켜내었다.
이를 마주한 케일은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하였다.
“저하. 원래, 태양이 떠오르기 전이 가장 어둡지 않습니까?”
“…그래서 곧 태양이 떠오를 테니, 그 어둠을 이겨내라. 뭐 이런 소린가?”
저도 모르게 알베르는 날카롭게 말을 받아쳤다.
“글쎄요. 어둠을 저는 더 좋아하는 편이지요.”
하지만 시종은 어벙한 얼굴로 능글맞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나 그 말에 거짓은 보이지 않았다.
한 걸음.
시종은 다시금 알베르의 영역 안으로 한 발을 더 내디뎠다.
그리고 속삭이듯 말했다. 누가 듣는 사람도 없건만.
“태양이 되시면.”
시종은 말을 내뱉을 때, 망설임이 없었다.
“그때, 저를 떠올려 주십시오.”
한 걸음.
알베르는 아주 우아하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는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시종을 응시했다.
“방금 내뱉은 말이 네 속셈인가?”
알베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게 다가 아닌 것 같은데.”
“그것은 저하께서 파악하실 몫이지요.”
내 몫이라. 알베르는 스스로에게 묻듯이 중얼거렸고, 이를 지켜보던 케일은 가볍게 허리를 숙였다.
“그럼, 아침 식사 준비하겠습니다.”
그러고는 연무장 문으로 향했다. 그의 등 뒤로 알베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간단하게.”
케일이 고개를 돌리니 알베르는 화사한 미소를 띤 채 부드럽게 말했다.
“어제 점심, 저녁이 과했어.”
“곤란합니다.”
“음?”
“청소년기에는 많이 드셔야 쑥쑥 큽니다.”
케일은 단호하게 제 할 말만 했다.
“열다섯. 영양소가 필요한 때이지요. 특히 아침을 든든하게 드셔야 합니다. 그럼 이만.”
간단하게 인사를 한 케일은 연무장을 유유히 벗어났다. 그의 등 뒤로 웃음기를 머금은 띠꺼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주 멋대로 할 작정인가 보군.”
네. 멋대로 할 작정입니다.
케일은 그 대답을 알베르, 그리고 그를 찾아온 눈앞의 사람에게 하고 싶었다.
지하 연무장을 빠져나와 국왕 궁으로 가기 위해 1왕자 궁 밖으로 향하던 케일은 이른 아침부터 그를 찾아온 시종장을 마주할 수 있었다.
“네 이놈-!”
시종장은 분노를 감추지 못한 채 두 주먹을 부들부들 떨어댔다. 케일의 앞까지 성큼성큼 걸어온 그는 케일을 향해 삿대질을 하기 시작했다.
“이 멍청한 놈! 네가 무슨 짓을 한 줄 아는 것이냐!”
시종장을 따라온 시종 몇 명, 1왕자 궁에 기거하는 하인인 척하는 다크엘프들. 모두 시종장의 서슬 퍼런 기세에 입을 꾹 다물었다.
케일 빼고.
“네. 압니다.”
케일은 경쾌하게 답했다. 생글생글 어벙한 미소를 띤 채로.
“시종장님께서 저에게 주신 책임을 열심히 수행했죠.”
“뭐? 내가 언제 너보고-”
“저보고 궁에 관한 기본적인 업무를 다 하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싱긋. 케일은 웃었다.
실제로 즐거웠다. 시종장이 갑갑해 하다못해 화병이 날 것 같았으니까.
“네놈 때문에 내가!”
“시종장님이 왜요?”
케일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왜요? 무슨 문제 있나요? 원칙대로 했는데요?”
3연속 이어지는 질문 연타에 시종장의 얼굴은 붉어지다 못해 새하얗게 변해갔고, 그는 부들부들 떨리는 입을 열었다.
“너 당장,”
하지만 그 말은 끝까지 이어질 수 없었다.
“시종장님!”
시종 한 명이 급히 시종장에게로 달려왔다. 당연히 시종장은 분노에 눈이 뒤집혀 그 목소리에 반응하지 않았다.
어제 눈앞의 이 시종이 벌인 짓으로 인해 자재, 의상, 주방 곳곳에서 혼선이 벌어졌다. 문제는 잘못하다간 그 덤터기를 시종장이 다 뒤집어쓰게 될지도 몰랐다.
“시종장님!”
“좀! 나중에-”
다시 한번 부른 목소리에 시종장은 화를 내려고 했다. 하지만 저를 부른 시종의 옷을 본 순간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그를 찾아온 시종장은 3왕자 궁 소속이라는 표식이 달려 있었다.
일반적인 해당 궁 소속 시종이 아닌, 궁 주인의 측근임을 뜻했다.
“시종장님.”
그제야 저를 쳐다보는 시종장에게 시종은 낮게 읊조리듯 말했다.
“지금 찾으십니다.”
누가 찾느냐고 시종장은 묻지 않았다.
보나 마나 3왕자 궁이니 3왕자 혹은 그의 뒷배들이 부르는 것일 터. 시종장은 후자에 더 무게를 두었다.
“후우.”
그는 깊이 한숨을 내쉬다가 이내 케일에게서 등을 돌렸다.
“네놈은 나중에 보자.”
그러고는 3왕자 궁으로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따라 남은 시종들이 모두 함께 갔고 남은 케일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나중에 보자는 놈 중에 무서운 놈이 없지.”
그는 저를 관찰하는 다크엘프 하인들에게 손 인사를 건네곤 걸음을 옮겼다.
“흐음. 내일이면 관두라고 말하려나?”
케일은 언제 자신이 쫓겨나게 될지 가늠하며 마지막으로 알베르에게 해줄 것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 뒤로 2일 동안 케일은 쫓겨나지 않았다.
***
눈을 뜬 케일은 어두워지는 창밖을 보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도착했군.”
톨스 자작의 영지 중 한 마을.
바로 라온이 갇혀있는 동굴이 있는 그 마을에 위치한 톨스 자작의 별장에서 케일은 눈을 떴다.
사실 말만 톨스 자작의 별장이지 실질적으로는 스텐 후작가의 비밀 별장이었다.
베니온 뒷골목 오른팔의 오른팔의 오른팔. 그 몸에서 눈을 뜬 그는 익숙해진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근육을 풀었다.
그는 창밖으로 어두워지는 사방과 달리 불빛이 맴도는 곳을 바라봤다.
동굴 입구 근처였다.
당연히 저 동굴은 라온이 있는 동굴이었고.
“흐음. 딱 맞춰 눈을 떴군.”
베니온 스텐이 기사 한 명을 대동한 채 동굴 안으로 들어가는 중이었다.
케일의 눈동자가 침대 한편으로 향했다. 그는 가방을 뒤졌다.
양말이 감싼 약병 두 개.
왕궁 도서관에서 알아낸 이 약의 정체는 마비독.
케일은 단검과 장침, 약병을 품에 챙겼다.
쿵쿵쿵.
때마침 거칠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문밖에서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안 나와? 빨리 와서 술 챙겨! 소가주님 성질부리기 전에 어서!”
술병이 가득한 마차에서부터 케일은 눈치를 챘지만, 이 몸의 주인은 베니온 스텐의 술과 오락을 위한 물건을 관리하는 자였다.
‘자, 술에 어느 것을 타볼까?’
케일은 마비독이지만 성능이 다른 두 약병 중 무엇을 사용해서 베니온 스텐을 한 방 먹일까 매우 심도 깊게 고민했다.
끼이익.
“야, 왜 이렇게 굼ㄸ-, 너 왜 그리 심각한 얼굴이야? 어디 안 좋냐?”
케일은 미소를 띤 채로 답했다.
“아닙니다. 아주 컨디션 좋습니다.”
진심으로 케일은 컨디션이 좋다 못해, 상쾌하기까지 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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